2
구제반의 정식도입은 2주일 후다. 그때까지… 뭐, 알아서 처신해라. 라는 충고 아닌 충고가 머릿속에 단단히 틀어박힌 다음날 아침이다. 별관으로 이어지는 복도의 코너를 도는 순간 가슴팍에 뭔가가 부딪혔다.
드문 일은 아니다. 여긴 통로의 조명이 정확히 끊기는 지점이다. 시야의 사각지대라는 뜻이다. 이성과의 충돌을 노리고 굳이 지나는 놈들이 있을 정도로 흉흉한 사고 다발지역. 내가 비틀거리는 동안 상대방은 으앗. 하는 작은 비명과 함께 세 걸음 통통통 물러나더니.
“재, 재송… 재송합니다! 아니, 죄송합니다!”
부딪힌 코를 문지르며 맹맹한 목소리로 사과한다. 음성으로 짐작하면 여학생이다. 어둠 속으로 내 가슴에 머리가 닿는 소형 사이즈의 실루엣이 보인다. 체구에 대비되는 등 뒤의 커다란 물체가 시선을 끈다. 손에는 뭔가를 꼭 쥐고 있다. 얼핏 거북이가 두 발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묘한 윤곽이다.
“그럼, 괜찮으신 것 같으니!”
충돌사고를 일으킨 미니 거북이는 멋대로 내 상태를 진단하곤, 전력질주로 후다닥 멀어진다. 짧은 신장은 물론이고 거북이 답지도 않은 경이로운 속도다. 그녀가 끼이익 소리가 날 정도로 급히 드리프트해서 또다른 코너로 모습을 감추기 직전, 나는 등에 매달린 물건의 정체를 간신히 알아챈다.
“…모자?”
불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로 챙이 넓은 고깔 모자. 마법사 모자라고 부르던가. 저런걸 매달고 다니면 그야 거북이처럼 보일만도 하지. 그다지 기억에 담아두지 않고 가던 길을 걷고 있으면 이번엔 갑자기.
“망할, 그 빌어먹을 년이 진짜…!”
하는 무서운 대사와 함께 서너 명이 지나쳐 달려간다. 마찬가지로 전력질주다. 복도를 두드리는 발소리에 고함과 욕설이 뒤섞인다. 자기들끼리도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되는 소음 뭉텅이에서 유일하게 또렷한 단어는, ‘마법사, 문제아, 낙제생’.
그 단어는 마치 코너에서 튀어나온 그림자처럼 무의식의 경보장치를 툭 건드린다.
3
“그건 아마 낸시일거야.”
작은 키에 커다란 모자. 타샤는 두 가지 키워드를 듣자마자 곧장 그런 이름을 내뱉는다.
“낸시?”
“1학년의 낸시 타타나. 저주받은 낸시. 문제아 낸시. 실패의 낸시.”
“하나같이 긍정적인 별명은 아니네.”
책상 위에 올려진 진흙 공예품을 만지작거리며 그렇게 말하면,
“좋게 쌓인 명성이 아니니까.”
손을 뻗어 끌어당기고선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한다.
“하긴, 본 것만 해도 잡히면 두들겨 맞을 기세로 쫒기고 있었지.”
아침의 충돌사고를 떠올린다. 다급한 태도나 교칙을 위반하는 복도의 전력질주는, 추격전 도중이었다. 는 전제를 붙였을때 그럭저럭 이해가 되는 행동이다.
“낸시는 왜?”
“그냥, 특이한 사람이구나 싶어서.”
흠. 하고 의미없는 소리를 내면서, 타샤는 안경을 손으로 치켜올린다. 그 너머의 암갈색 눈동자가 제 역할을 까먹은 것처럼 나른하게 초점을 흐린다. 아무튼 그녀는 대화를 즐기는 성격이 아니다. 취미이자 특기인 흙장난 할 시간을 나에게 뺏기는 것에 심통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짐작하고 있으면 갑자기.
“저번 역량시험 말인데.”
하고, 조용히 입을 연다.
“나, 흙마법 이론시험에서 낸시에게 졌어.”
“네가?”
타샤는 대답없이 딱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 의외라고 해야할까. 허를 찌르는 이야기다. 적어도 흙마법 분야에 있어서 그녀의 역량이나 재능이라 부를만한 것은 손에 꼽는 탑 클래스다. 그걸 깨끗하게 ‘졌다.’ 라고 인정한다.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을만큼 차이가 벌어졌다는 소리다.
“걔… 낸시는 1학년이잖아.”
“고학년 시험에 막무가내로 들어왔어. 결과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수준의 만점.”
“뭐야 그게. 별명이랑 안맞는 천재잖아. 낙제생이라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게 또 이상한 일이야.”
타샤는 드물게도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
“실기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질 못했어.”
“아무것도?”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무것도 라는 말에 힘이 실려있다. 예컨대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마법조차 보여주지 못했다는 소리일까. 그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다. 타샤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눈썹 찡그리기 표정을 지을 정도로 이상한 일이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빛나는 공을 만들어보세요.’ 같은 초보 수준의 마법이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
마법을 쓴다는 것이, 100명 중 한 명이나 10명 중 한 명… 처럼 특출난 재능을 요구하는 분야는 아니다. 어느 정도 수준은 노력이나 학습이라는 말로 메꿀 수 있다. 만약 그조차 불가능하다면 그건 그야말로…
“저주받은 낸시.”
타샤는 딱 잘라서 그렇게 내뱉는다. 이론으론 완벽한 천재, 그러나 실제로 써먹진 못하는 재능. 바위를 깨부수는 활이라도 시위가 없으면 말이 되질 않는다. 그야말로 저주다. 그러나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얘기를 끝내고 싶은 것처럼 눈매를 축 내리고 있는 안경에게 할 질문이, 공교롭게도 아직 한 가지 남았다는 뜻이다.
“그럼… 그게 끝이야? 이론만점에 실기낙제. 시험에 멋대로 난입해서 지식을 뽐냈다… 를 감안해도, 싫은 별명을 덕지덕지 붙이고 쫒겨다닐만한 이유론 부족해 보이는데.”
이게 마지막이야. 하는 얼굴로 타샤는 말한다.
“오늘 아침에 낸시가 쫒겨다니는 걸 봤다고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손에… 뭔가 들고 있지는 않았어?”
4
점심, 식당 옆자리에 문제의 낸시 타타나가 덜컥 앉아버렸다.
이거 참 우연이네. 나, 꽤 자주 마주치는데. 같은 속 편한 생각은 물론 하지 않는다. 이쯤이면 바보라도 눈치챈다. 뭐시기 깃펜이 엮어버리는 인연은 다분히도 물리적인 양상을 띄는 모양이다.
낸시 타타나는 여전히 작은 체구에, 여전히 커다란 모자를 등에 메고, 예상 외로 귀여운 생김새다. 목뒤를 간신히 가리는 담황색 머리를 한쪽 귀 밑으로 꼼꼼하게 땋아놨다. 그 끝을, 어떻게든 포인트를 주고 싶어! 라고 주장하는 엉성한 리본이 장식한다. 입은 밀빵을 오물거린다. 눈은 오물거리는 움직임을 따라 깜빡인다. 몸집에 걸맞게 작은 동물 같은 버릇이다.
그 귀여운 외면의 안쪽에, 이를테면 탐욕에 젖어 먹이를 마구 볼에 집어넣는 다람쥐와도 같은 포악함이 숨어있는 것이다….
나는 확인차, 넌지시 입을 연다.
“낸시 타타나. 맞지?”
“네… 절 아시나요?”
그녀는 고개를 이쪽으로 돌린다.
“오늘 아침에 실습용 교재를 전부 훔쳐갔다면서.”
순간 낸시 타타나는 스프링처럼 튀어오르더니, 돌연 양손을 올려 상반신을 보호한다. 주먹에서 팔꿈치로 이어지는 전완부는 급소부위를 완벽하게 가린다. 교과서에 나올법한 모범적인 가드다.
“워, 원예학 사람인가요! 때리지 말아주세요!”
“잠깐… 진정해, 무슨 소릴 하는거야.”
때리고 자시고, 그런 훌륭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주먹을 날릴 엄두도 나지 않는다.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진정시킬 요량으로 손을 뻗으면,
“그만두세요! 그만두지 않으면 맞기 전에 때리겠습니다!”
자세를 바꿔 주먹을 이쪽으로 향한다. 실로 능수능란한 공수교대다. 상당한 테크니션, 체급을 고려해도 승산은 반반인가. 만만찮은 싸움이 되겠군.
나는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고 양쪽 손바닥을 들어보인다.
“원예학 사람이 아니야. 때릴 생각도 없어, 맞을 생각은 더더욱 없고.”
“…그럼 뭔가요. 갑자기 남의 허물을 들춰내다니. 시비라면 이제 사양이에요.”
그녀는 조금 경계를 낮춘다. 시비는 이제 사양이라니, 이런 식으로 싸움을 걸어오는 일이 꽤 있는건가. 하기사, 타샤에게 전해들은 다람쥐 같은 포악함… 낸시 타타나는 다른 학년, 학과의 물품을 마구잡이로 훔치고 다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수긍이 가는 얘기다.
“왜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는 건가요.”
“아니, 너 마법사 지망 사이에선 유명하지? 정말로 두들겨 맞은 적이 있나 싶어서.”
“뭐에요. 뜬금없이.”
낸시는 조금 경계가 누그러졌는지 자세를 풀고, 덤으로 표정도 풀고. 다시 의자에 앉는다. 점점 모여들던 주변의 이목이 수그러든다.
“설문조사 같은건가요? 교내 폭력행위의 실태 같은… 그렇다면 할말이 좀 많은데요.”
“전혀 아니야. 절도 행각의 공공연한 원흉 같은 소제목이면 모를까.”
“아, 그쪽이군요… 뭐, 어때서요. 수업용 교재나 창고의 비품이나… 진열장의 귀중품 같은건 학생들을 위한 물건이라고요.”
“아니, 마지막은 완전히 도둑질인데. 한 번도 붙잡힌 적 없어?”
“그럴리가.”
낸시는 입가에 손을 대고 잠시 눈을 굴린다.
“보통은 사과하거나 물건을 돌려주거나… 엉엉 울거나 무릎을 꿇고 빌거나 개처럼 짖는 흉내를 내는 걸로 봐줘요.”
“두들겨 맞는 것보다 심하잖아. 어떻게 되어먹은 자존심이야.”
“무슨 상관인가요.”
낸시는 입을 삐죽인 뒤에, 청록색 눈동자를 반쯤 감으며 노려본다.
“아하, 이제보니 그냥 놀려먹을 생각이군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런 말을 한다. 공연한 시비나, 개처럼 왕왕 짖는 것 따위는 별 것도 아니다. 그런 걸로 일일히 상처받는 일은 없다는 듯이.
“아니, 그럴 생각은 없는데.”
“이제와서 늦었어요. 뭐, 마음대로 하세요. 놀림은 익숙하니까.”
그야말로 해볼테면 해봐라.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양손에 허리를 올린다. 완전히 도발하는 모양새다. 물론 그녀에게 딱히 악감정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깔보는 눈을 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분위기를 타게 된다.
“그런 체구로 도발해봤자 전혀 안무섭거든.”
“걸고 넘어진다는 게 고작 키 얘기인가요. 성장은 13살때 멈췄습니다.”
자뭇 당당한 태도로 한층 더 가슴을 편다. 커다란 모자가 한층 더 눈에 띈다.
“그 모자도 안어울려. 불편해 보이고.”
“하나도 불편하지 않거든요.”
낸시는 따지듯이 말하며 눈썹을 치켜올린다.
“너 말고 모자에 치이는 주변 사람이 불편하다니까… 애초에, 마법은 못 쓴다고 들었는데.”
“진부하네요. 그 놀림은 벌써 수백 번이나 들었다구요.”
그야 그렇겠지. 나는 테이블에 올리고 있던 손을 들어올려 그녀의 머리 끝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리고 리본 촌스러워.”
“그건 아무 상관도 없는데요!”
자세를 무너뜨리면서 손으로 머리 끝의 리본을 가린다. 확실히 반응이 좋으니 놀리는 맛이 난다.
“끝인가요? 참고로 제 마음엔 아직 손톱 만큼의 스크래치도 나지 않았어요.”
“다음은… 도둑질?”
“죄책감을 자극할 심산이라면 소용 없어요.”
낸시는 뻔뻔하게도 그런 말을 내뱉는다. 나는 책상에 손을 얹고 턱을 괸다. 글쎄, 이건 일단 내 추측일 뿐이지만.
“훔친 물건, 그걸로 마법쓰는 흉내를 내려는 생각이지?”
“뭐, 무슨…”
말을 맺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내 짐작은 맞아 떨어졌나보다.
“오늘 원예학 수업에서 훔친 거, 불민들레 라면서.”
“…….”
입으로 불면 홑씨가 불꽃이 되어 날아가는 마법틱한 식물이다. 화려한 효능에 걸맞게 가격도 비싸다. 그런 걸 훔칠 생각을 했다니 대단한 배짱이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비싸다.
“저번이랑 저저번에 훔쳤다는 물건도 비슷하잖아. 전부 마법사 느낌의 화려한 소품이고, 어디에 자랑하거나 허세를 부릴 생각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낸시는 시선을 내리깐다. 뭔가 분한듯이 눈이 가늘어진다. 방금 전의 당당함은 어디가고 이불에 실례한 것을 들킨 어린애 같은 태도다. 목소리도 어쩐지 중얼중얼 자신없는 음성으로 바뀌어 있다.
“…뭘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건가요.”
“자기만족 같은 건 남한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해결하지 그래.”
“…….”
툭 튀어나온 말은, 확실히 배려심이란 필터링을 거친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내심 그녀를 깔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낸시는 고개를 숙이고 몇 초 정도 침묵한다. 조금… 아니, 실은 굉장히 실례되는 말을 했다는 자각이 들어서 사과할 요량으로 손을 뻗으면,
“됐어요.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기운차게 외치며 고개를 든다. 기운차게. 그렇게 말해도 5분 전과 지금의 기세가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녀는 빵을 탁 내려놓고 벌떡 일어선 뒤에.
“앞으로 다시는… 의욕 없고 친구도 없어보이는 사람 곁엔 안 앉아요. 아무리 자리가 없어도!”
그렇게 선언하고 타다닥 달려 식당을 빠져나간다. 얘기를 이렇게 끝낼 생각은 아니었는데. 최소한 구제반에 대해 화두를 꺼내지 못한 부분에서 이번 회화 점수는 F등급이다.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부분이나, 도망치는 걸 붙잡지 못한 점에서 더더욱 감점이 들어간다.
인연으로 묶이니 어쩌니해도 결국 근본적으로 사교능력이 부족하면 안되는건가. 한숨을 쉬며 식사를 끝마치고 식당을 빠져나오면.
복도의 구석, 대 여섯쯤 되는 남자들에게 둘러쌓여 모범적인 가드를 올리고 있는 낸시 타타나가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