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맞았다.
네오는 그녀보다 백년은 더 살았고, 그녀의 키는 자신의 어깨까지 왔다. 그런 그녀를 보며 네오는 자신의 가족이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과연 잘 지내고 있을까. 나를 걱정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냥 잊어버렸을까. 이대로 나는 버려지는 것인가.
‘아니야. 다 쓸모없는 생각이야.’
네오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네오, 괜찮아?”
다시 정신이 들자 이베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아무 이상도 없다는듯 유쾌하게 말했다.
“뭐라고 했는데?”
그의 말투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느낀 이베니는 네오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갈건지 물어봤어.”
네오는 이 상황을 넘겼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녀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가자! 유피나로!”
* * *
네오와 이베니는 이레네(말)를 데리러 금은방으로 갔다. 이베니는 자신이 살아왔던 마을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기억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좋은 기억들은 별로 없었다.
주변을 보며 걷자 어느새 금은방에 도착했다. 금은방 마구간에는 이레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레네는 네오가 오는 것을 보고 앞발을 들며 히히힝 울었다.
네오는 이레네가 자신을 보고 화내는 것을 보고 하하 웃었다.
“기다리게해서 미안해.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랑 달려주어야겠어.”
그의 말에 이레네는 금방이라도 달려나가고 싶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베니는 옆에서 그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화도 해?”
“당연하지. 나도 드래곤이니까 인간들이 보면 동물이라고 할 수 있어.”
네오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이레네를 마구간에서 꺼냈다. 그 때 밖이 소란스러워서 나온 할아버지가 이베니를 보고 말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매우 놀라웠다.
“가는 것이냐?”
“네….”
이베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듯한 할아버지의 말에 말끝을 흐렸다. 혹여, 할아버지가 말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줄 알았다. 잘 다녀오녀라.”
“네?”
너무나도 쉬운 허락에 이베니와 네오는 오히려 당황했다. 할아버지는 이베니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그동안 미안했었다.”
할아버지의 말은 매우 안타까워하는 말이었다. 이베니는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앙 다물었다.
“네…….”
할아버지도 그런 이베니의 모습을 보며 마음 한쪽이 저려왔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울지 않고 네오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우리 이베니를 잘 부탁허이.”
“당연하죠, 할아버지.”
네오는 울고 있는 이베니를 보며 같이 마음이 아프기도 했으며, 부럽기도 했다. 자신도 할아버지처럼 걱정해주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가 부러웠다.
이베니는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네오의 뒤에 올라탔다. 네오는 그녀가 타자 말을 이레나와 디오넬이 있는 곳으로 몰았다.
“끼랴!”
그의 호령과 함께 이레네는 히힝 거리며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렸다. 네오는 의기소침해져서 자신의 등 뒤에 기대있는 이베니에게 말했다.
“도둑 아가씨, 그 떄는 성깔있었는데, 지금은 왜 그러세요?”
“뒤끝 봐.”
뒤에서 새침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네오는 피식 웃었다. 그러자 또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나 울었다고 놀리면 죽어.”
그녀는 위협이라고 한 말이었지만, 네오는 그녀가 마냥 귀여웠다. 네오는 마을에서 벗어나 성문을 향해 달렸다. 히힝, 이레네는 세차게 달렸다.
“나는 너가 부러워.”
“뭐?”
네오의 갑작스러운 말에 이베니는 다시 반문했다. 네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나도 너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듣고 싶어.”
이베니는 그런 그의 말에 속으로 생각했다.
‘얘도 어린애같은 부분이 있구나. 이런 부분에서는 드래곤이나 사람이나 차이가 없네.’
이베니가 네오에게서 동질감을 느낄 때였다. 저 멀리에서 디오넬과 이레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야, 여기!”
“시끄럽군.”
둘은 아직도 서로를 용서하지 못했는지 서로 시비를 걸었다. 네오는 그 둘의 모습을 보고 하하 웃었다.
“이제 같이 다닐 친구인데, 둘이 화해를 하면 아니될까?”
“싫어.”
“싫소.”
어떻게든 좋게 넘어가려는 네오는 자신의 말이 소용이 없어지자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베니는 다시 활기를 되찾아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가볼까?”
이레나와 이베니는 네오가 말을 찾아오는 동안에 자신들의 말도 구했다. 이레나는 자신과 닮은 도도한 말을 골랐고, 디오넬은 잘생긴 검은색의 흑마를 구해왔다.
네오는 그들이 고른 말을 보고 웃었다.
‘그 주인에 그 말이군.’
속으로 그들의 말을 고르는 센스를 보고 감탄하며 자신의 말 이레네 위에 올라탔다. 이레나는 네오의 말을 보고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행히 이레네는 그녀를 걷어차지 않았다.
“이 예쁜 말은 누구야? 나를 닮은거 같에.”
“말에게 실례군.”
이레나는 디오넬에게 한번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낸 다음에 다시 네오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이 성문을 나가서 남서쪽으로 달리면 돼.”
네오는 남서쪽 방향을 가르키며 말했다.
* * *
그들은 신나게 달렸다. 주변에는 여러 풍경들이 지나갔고, 조그마한 집들도 몇 채가 있었다. 이베니는 그 장면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우리 동네 말고는 처음 봐…….”
“잘됐네.”
네오는 이베니의 말에 싱긋 웃었다. 그러다가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근데 이베니 너는 왜 이레나와 대화를 하지 않는 거니?”
이건… 그렇다. 이베니와 이레나는 지금까지 대화한 것은 처음 만났을 때였다.
[그 당시]
“하하, 이베니 거기 있었구나? 이 아이는 이베니라고해. 이레나? 이쪽은 이레나야.”
이베니는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차가웠다.
“너 나한테 나를 소개했어.”
네오는 자신의 말실수로 할 말을 잃었다. 그의 자연스럽게 넘기려던 상황은 두 여자의 기싸움으로 시작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레나였다.
“네오, 누가 우리 어머니를 죽였는지 알아? 그건 바로 ‘인간’이야.”
[다시]
심지어 그 때의 만남도 그닥 좋은 만남은 아니었다. 이베니는 이레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레나도 신경이 쓰였는지 약간 얼굴을 붉히며 새침하게 말했다.
“뭐.”
“뭐가.”
둘은 전혀 친해질 기색이 없었다. 인간과 드래곤이어서 그런가? 서로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듯 하였다. 네오는 그 중간에 끼어서 한숨만 쉬었다.
디오넬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이레나에게 또 다시 시비를 붙였다.
“흠, 인간과 드래곤이어서 그런가?”
“님도 인간이거든요? 그래서 싫거든요?”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레나가 과민 반응을 하는 느낌을 주긴하다만,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를 가릴 수 없다.
“아오, 이 아저씨는 맨날 시비야.”
“너가 계속 반응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해본적이 없나?”
‘차라리 이베니와 이레나가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네오는 앞으로 함께 다닐 동료들끼리 싸우고, 말도 걸지 않는 모습을 보며 그저 한숨을 쉬었다. 그로써는 앞으로가 걱정될 뿐이었다.
“제발 친하게 좀 지내면 아니되겠니…….”
그러다가 중간에 이베니가 우와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감탄하는 소리에 다른 일행들은 말을 멈추었다.
“왜?”
“저기 봐. 저기.”
그녀는 마냥 신난 어린 아이처럼 말에서 내렸다. 그들도 말에서 내려서 바라보니 넓은 바다가 보였다.
“어라 왜 바다가 나오지? 방향을 잘못잡았나?”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이레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야, 우리는 똑바로 왔어. 그리고 저기는 바다가 아니라 넓은 호수야.”
“호수…….”
그러나 이렇게 넓은 호수가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것은 이상한 사실이었다.
“그 지도 좀 봐볼래?”
네오는 이레나의 말대로 자신의 지도를 꺼냈다. 이레나는 그 지도의 왼쪽 위의 귀퉁이를 가르켰다.
그곳에는 이런 친절한 글씨가 써져 있었다.
[주의* 이 지도는 1270년 제작이므로 몇 년이 지나면 약간의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네오는 이 글을 본 다음에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게 있었다.
“근데 10 여 년 안에 이 정도의 호수를 만들려면…”
“우리 아빠가 이곳을 싸그리 쓸어버렸어.”
이레나는 품위 있게 말하였다. 네오는 그 말을 듣고 식은땀이 흘렀다.
‘정말 큰일날 부녀다!’
이레나는 그런 네오의 속도 모르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역시 우리 아빠야. 이 정도의 크기를 한방에 날려버리다니.”
이레나는 이렇게 떠들었으나 말들을 묶어놓고 온 디오넬은 몸이 굳어졌다. 네오는 이상함을 느끼며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디오넬?”
“여기는 내 고향이었다.”
디오넬은 과거형을 썼다. 이레나는 그의 말을 듣고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조용하게 말했다.
“여기가 고향이라면….”
“지금은 싸그리 쓸어졌지.”
디오넬은 고의인지 우연인지 이레나의 표현을 빌려썼다. 이레나는 뭐라해야할지 몰라서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것 참…”
“기막힌 우연이지. 하늘의 장난인가보군.”
그러고는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잠시간의 대치 상황에서 네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가족은…”
“죽었다.”
너무나도 짧고 차가워서 다음 말은 해서는 안 될거 같았다. 그러나 네오는 용기를 내고 말을 이었다.
“혹시 복수를?”
“약간 안타깝기는 하지만 미련은 없다. 어차피 가족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복수는 안한다는 뜻인거 같았다. 그러나 이번 일은 효과가 있었는지 이레나는 다시는 그에게 시비를 붙이지는 않았다.
네오와 두 사람은 이베니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한편 이베니는 어느 집 한 채 앞에 서있었다.
그들이 다가오자 이베니는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집이 있어.”
이베니는 자신이 하려던 말을 멈추고 이레나를 보았다. 이레나의 얼굴은 평소에 그녀가 알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뭔일 있었어?”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생각인가?”
지금은 판도가 바뀌었다. 칼은 디오넬에게로 넘어갔다. 이레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다. 네오는 마른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어,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그는 방금 있었던 일을 이베니에게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이베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레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호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일부러 이베니는 말을 끌었다. 첫날의 만남도 좋지 않았던 상황. 디오넬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베니는 그저 그녀를 이기고 싶었다.
“그랬구나?”
고의인지 아닌지 계속된 물음에 이레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이베니는 씨익 웃고 말했다.
“그나저나 여기 집이 있는 이유가 그거 때문이라고?”
이레나는 그제야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빠가 그래도 무고한 사람들을 줄이기 위해 나쁜 사람들만 있을 때 쓸었대.”
아마도 이 집은 그 당시에 피해를 벗어난듯 하였다. 네오는 그녀의 말을 듣고 하하 웃기만 하였다.
‘집을 부신 것 자체가 피해아닌가? 도대체 무슨 마인드인거지?’
그 때 디오넬이 네오에게 물었다.
“여기에 더 머물 것인가?”
“글세…….”
네오는 말을 끌며 이베니와 이레나를 보았다. 이레나는 상관없다는 사인으로 어깨를 으쓱였고, 이베니는 눈을 반짝였다. 그런 이베니의 모습을 보고 네오는 피식 웃었다.
이베니는 그가 웃자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쳇, 오래 살았다고는… 이런 아저씨!”
정확히는 할아버지였다. 네오는 그녀의 말에 그저 웃었다.
“그럼 일단 실례지만 이 집에서 머물러야겠군.”
그 때 네오의 눈을 사로잡은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바로 두 개의 무덤이었다.
[친애하는 시뷰니 에이온]
[그의 부인 안젤리나 에이온]
하나는 어느 남자의 무덤인거 같았고, 또다른 하나는 그의 부인인 것 같았다. 네오는 왜 이 두 개의 무덤이 자신의 눈을 사로잡았는지의 의문을 뒤로하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안의 광경은 매우 이상하였다.
“너무 깨끗해…….”
이상하리만치 깨끗했다. 최소 몇 년동안은 이 곳에서 사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깨끗할 수 있을까?
그 때 그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는듯이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그리고 의문의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지냈나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