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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배니셔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7.11.3

동경하던 영웅은 영웅이 아니었다.
평화는 더 큰 혼란을 위한 준비기간일 뿐이었다.
각성자라고 불리우는 인간과 다른 인간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기어나오는 전쟁의 망령들.
그 앞에, 각성자 소녀 홍세연이 서 있었다.

 
세계의 왕과 죽음을 내리는 자들 3
작성일 : 17-12-30 11:42     조회 : 301     추천 : 1     분량 : 4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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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하고 있는 언노운 사태에 관해 G5가 공식적 입장을 표명했습니다.......G5는 언노운을 공식적으로 규탄하며....... 사태 해결을 위해 한국정부의 협력 요청에 적극적으로......”

  “......”

  서울 어딘가의 한 김밥 프랜차이즈 식당. 김연은 야구모자 하나를 깊게 눌러쓰고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답답하네.”

  컬러렌즈라도 사용한 건지, 지금 그의 눈은 갈색이었다.

  TV소리와 잡담소리로 가득한 식당. 김연은 그 모든 소리를 무시하며 묵묵히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에이, 망할 새끼들....... 언노운?”

  옆 테이블에서 아저씨 한명이 TV를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아유...... 정말 안 그래도 살기 힘든데.......”

  맞은 편에 앉아있는 아줌마가 맞장구 치고 있었다.

  “그 전담청 새끼들은 뭐 하는 거야? 빨갱이새끼들 때려잡으라고 만들어 놨더니.”

  “에이 병X들. 이북 거지 새X들이 폭동 일으켰을 때도 구경만하더니......”

  다른 테이블에서도 대화소리가 들려온다. 김연은 그저 묵묵히 들으며 식사를 계속한다. 사실 전담청이 욕을 먹건 말건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잠깐 있다 갈 곳이었으니.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저 입을 다물게 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야 그래도 얼마 전에 한명 잡았다며? 대통령이 발표까지 하더만.”

  “김상우 그 빨갱이 두목이 하는 말을 어떻게 믿냐?

  “왜 범죄자새X 공개를 안 하는 건지......”

  “기밀 사항이래잖냐.”

  “지랄......”

  “.......”

  김연이 숟가락을 멈추었다.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때, 식당의 TV에서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속보입니다. 조금 전, 방송국에 의문의 녹취테이프가 전달되었습니다.”

  “??”

  “뭔데”

  “저건 또 뭐여?”

  “테이프와 동봉되어있던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 심판에 대한 예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CBC 독점으로 보내드립니다.”

  “.......”

  “별 미친.......”

  곧이어 목소리가 들려온다. 쇳소리가 섞인 듯한, 거칠고 불쾌하게 변조된 목소리.

  김연에겐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의 요구를 묵살했다. 평화를 해치는 범죄자들과 악당들을 모아 만든 집단은 아직도 그 민낯을 가린 채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악당들이 몇 명 있긴 하지.

 

  “전담청의 해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이 등신도 아닌데 하겠냐.

 

  “우리들은 그 동안 세계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 피와 눈물을 뿌리는 자들에게 심판을 내려왔다.”

 

  심판이 아니라 자기위로와 우월감 중독이었을 뿐이지.

 

  “우리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각국의 정부가 정치적 논리, 경제적 이유로 외면한 지옥을 바로 세우는 것.”

 

  “아니야........ 네놈들이 하는 짓은 절대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린 김연은 어느새 숟가락을 멈추고 TV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전담청은 악이다. 그들은 평화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피를 뿌렸다.”

 

  너희들 보단 덜 뿌렸을 걸.

 

  “그리고 무능하다. 전담청이 무엇을 했단 말인가? 대한민국 정부는 각성자들을 모아 그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쓰고 있었다.”

 

  “저건 맞는 말 아냐?”

  “조용히 해봐 임마.”

  “빨갱이 당이 지들 친위대로 만든 거지 뭐,”

  “형, 전담청 만든 건 야당이 여당일 때잖아......”

  “개기냐?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 토를 달아?”

  어느새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김연은 거기에 신경을 끄고, TV로부터도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TV에서 흘러나오는 기분나쁜 목소리는 그의 귀를 괴롭히고 있었다.

 

  “우리가 청와대에 보낸 통보는, 비밀로 붙여져 묵살 당했다. 우리는 권력에게 목줄을 맡긴 각성자들을 해방시키고자 했으나, 그들은 자신의 무기를 놓으려 하지 않았다.”

 

  “청와대에 뭐 있었나?”

  “몰라....... 또 숨겼겠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행동에 나선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후, 6월 6일 오전 12시, 그 때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전담청의 해체를 선언하지 않는다면.......”

 

  “......”

 

  “우리가 직접 전담청을 없애줄 것이다.”

 

  “!!”

  김연은 황급히 고개를 들어 TV를 보았다.

  분노와 경악에 찬 시선으로 화면속의 인물을 노려보지만, TV속 괴한이 그런다고 말을 멈출 리가 없었다.

  그리고, TV속 괴한은 감정의 편린 조차 드러나지 않는 기괴하면서도 평탄한 목소리라 말을 이었다.

 

  “전담청에서 멈추지 않는다. 돈에 팔려 생명을 학살하던 용병, 이건혁, 김연....... 모두 사라진다.”

 

  “뭐야? 뭐야?”

  “미친.......김연은 안돼!!”

  “아우 잘한다!!”

 

  미친 것들. 이놈들도, 저놈들도 죄다 미쳤다.

 

  “한국 정부가 그들과의 결탁을 멈추지 않는다면 한국 정부가 사라질 것이다.”

 

  “.......”

 

  “기억하라. 조직이 사라지지 않는 다면, 인간이 사라지면 된다. 우리는 정의이며, 인간을 위해 싸운다. 인간이 전쟁과 정치를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세계를 위해 싸우는 자들....... 전부 사라질 것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송이 끊어진다.

 

  인간을 위한다는 놈이 인간이 사라질 거라고? 웃기는 군. 저열하고 모순적이야.

  마치 그 날들의 나, 그리고 우리들처럼.

  역시 네놈이 생각할 법한 사상이구나.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더욱 깊게 썩어버렸군,

 

 

 그런 생각을 하는 김연의 귀에, 앵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식당 안이 소란스러워 지고 있었다.

  언젠가 올 거라고 생각한 일. 그것은 김연의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시작되었다.

 

 

 

  “도대체 왜 그런 걸 방송한 겁니까!!!!!!!!!!!!!”

  예고방송이 나간 직후, 건혁의 노성이 청장집무실 내에서 울려퍼진다.

  “당신들 미쳤어? 왜? 시민들 보고 전담청에 불꽃놀이 구경이라도 오라고?? 이 X발!!!!! 잘 들어, 지금 당장.......”

  “.......”

  그러나 건혁이 들고 있는 전화기에서는 아무런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CBC 개 자식들이!!!!!!!!”

  건혁은 핸드폰을 벽에 내던졌다. 콰직, 하고 경쾌하게 박살이 난 휴대폰. 건혁은 그쪽으론 고개도 돌리지 않고 씩씩댄다.

  “CBC가 또 시작이군요.”

  옆에 있던 허준성 차장이 탄식하며 말했다. 건혁은 분을 삭히려는 듯 주먹을 쥐고 잠시 바닥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숨을 골랐다.

  얼마간 그렇게 씩씩대던 건혁이 허준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마리아는?

  “죄송합니다. 아직 성과가 없습니다. 그 여자가 입을 전혀 열고 있지 않아서.......”

  “.......”

  건혁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엇을 생각하는 건지, 그저 계속 바깥의 하늘을 바라볼 뿐인 건혁을 허준성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청장님?”

  “........”

  “괜찮으신 겁니까?”

  “아, 미안. 난 괜찮아.”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건혁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

  “준성아.”

  “네.”

  “모든 반장을 소집하도록 해.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건 간에 두 시간 내에는 모두 모일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두 시간 뒤입니까?”

  그 애매한 소집시간에 의문을 표하는 준성. 건혁은 다시 고개를 그 쪽으로 돌리며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억지로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잠깐, 마리아에게 다녀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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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쨍그랑

  TV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을 본 후, 들고 있던 컵을 떨어트려버렸다. 컵에 담긴 우유가 바닥에 흩어진다.

  “젠장!!”

  왜 하필 지금일까. 쉴새없이 쏟아지는 잽을 맞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 한방한방이 묵직한 훅이었다.

  언노운, 사라진 김연, 언노운, 오빠, 수상한 김연, 다시 언노운.

  이것이 영화였다면 정신없는 전개에 관객들이 피로를 느낄 법한 스토리. 물론 이걸 직접 겪고 있는 나만큼 어지럽지는 않을 것이다.

  “후우....... 그래 김연은 잠시 접어두자.”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움직이려다,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네가 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김연이 언젠가 했던 이 말이다.

  아직 나는 내가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자신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지.

 

  나는 지금 당장 전담청으로 가야한다. 그리고 전담청 대원이라면, 혹은 오빠였다면 할 일을 해야만 한다.

  주저 없이 전화기를 꺼낸다. 그리고 주소목록에 있는 한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착신음이 이어지고, 전화가 연결되었다.

  “.......강윤선배? 저 세연입니다. 방송보셨나요?”

  “봤다. 지금 안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다.”

  “지금 당장 복귀하겠습니다.”

  “물론이다. 나도 지금 가고 있다. 사무실에서 보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김연 반장님은 아직 행방이 묘연한 건가요?”

  “아직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우선 내가 대행을 맡을 것 같군.”

  김강윤선배는 애써 침착을 유지하는 것 같았지만, 그도 어지간히 당황한 듯한 목소리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통화 종료. 나는 빠르게 방으로 뛰어들어가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집을 나서려고 하는 순간,

  “아, 미친, 우유!”

  박살난 컵과 내용물을 떠올리고 허겁지겁 걸레를 찾아 집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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