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기점주는 금방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뒷말을 삼켰다. 재수 없는 말을 하면 꼭 그렇게 될 것 같다고 느껴서였다.
“괜찮습니다…….”
소삼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온몸의 뼈란 뼈는 다 삐걱거렸고, 근육이 제발 좀 쉬라고 소리쳤지만, 그는 움직여야만 했다. 소삼은 병기점주의 안타까운 시선을 뒤로하고 병기점을 나섰다.
그는 죽을 듯 비틀거리면서 한 발 한 발 봉양객잔으로 걸어갔다. 너무 무리해서 숨이 넘어갈 듯 거칠어져 있었고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이 상태에서 조금만 더 무리하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용케 쓰러지지 않고 봉양객잔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지저분한 몸을 본 객잔 점소이가 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원래도 더러웠지만, 지금 소삼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아까 마칠에게 얻어맞아 흘린 피와 무기를 옮기면서 흘린 땀방울이 땟국물에 뒤섞여 완전히 상거지 꼴이었다. 결국, 그는 점소이에게 일이 끝났다는 걸 마칠에게 전해달라고 하고는 몸을 돌렸다.
나중에 왜 직접 전하지 않고 점소이에게 시켰느냐고 마칠에게 추궁을 당할 게 뻔했지만, 소삼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돌아가서 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힘들어. 그냥……쉬고 싶어…….”
마음은 단리세가 마구간, 그의 보금자리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소삼은 너무 힘들어서 이대로 길바닥에 드러눕고 싶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이대로 탈진해서 죽으면 편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또 그냥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아까보다 더 비틀거리며 석양에 빨갛게 물든 봉양의 번화가를 가로질렀다.
큭…크큭.
자기도 모르게 비틀린 웃음이 찢어진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다. 소삼아… 소삼아, 이렇게나마 벌레 같은 삶을 연명하고 싶으냐? 자신에게 물어본다.
“응……. 그래. 이렇게라도…….”
죽기 싫어.
살자. 그래 살자.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어이, 마변삼.”
힘들어 죽겠는데 누가 자기를 부른다. 소삼은 자꾸 감기는 눈을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하지만 시야가 흐려져서 누군지 쉽게 확인되지 않았다.
툭.
목소리의 주인으로 생각되는 누군가와 부딪히는 느낌이 났다.
자신의 몸이 기울어서 부딪힌 것인지, 저쪽에서 부딪쳐 온 것인지는 몰랐다. 이미 몸에 감각이 없어지고 있었으니까.
“이 새끼가 돌았나?”
거친 욕설이 들렸다. 방금 그 목소리였다. 마칠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퍽, 퍼벅.
순식간에 소삼의 복부에 서너 번의 타격이 가해졌다.
“읔!”
아팠다. 죽을 듯이 아팠다.
소삼은 주먹맛을 보고 나서야 그가 마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칠의 주먹은 이렇게 맵지 않았다.
소삼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내렸고,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아파서였다. 이제 맞는 일에는 이력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아파도 너무 아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고통 때문에 흐려졌던 시야가 조금 회복되었다는 것이었다.
소삼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꺽꺽거리면서 무릎을 꿇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름은 잘 몰랐지만, 단리세가의 무사 중 한 명이었다.
퍽. 소삼의 얼굴에 충격이 가해졌다.
“사, 살려…….”
소삼은 내공이 실린 발길질을 맞고는 결국 살려달라는 말을 끝까지 하지도 못했다.
왜? 왜? 왜……?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에게는 그냥 숨죽인 채 벌레처럼 살아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 무림은 그런 곳이었다. 그와 같은 최하층 초식곤충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세상이 아니었다.
“이 자식이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똑바로 말해, 이 새끼야.”
욕설과 함께 끝도 없는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소삼은 이미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반쯤 명계에 발을 들였다는 걸 깨달았다.
억울했다. 그저 어떤 식으로든 살고 싶었을 뿐인데, 왜 세상이 자신한테 이렇게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진 단초를 제공한 마칠을 죽이고 싶었다. 지금 자신을 밟고 있는 무사놈도 죽이고 싶었다. 자신을 무시하고 깔보며 농락하던 단리세가 사람들을 전부 다 죽이고 싶었다.
그냥.
다 죽이고 싶었다. 세상을 박살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른 말이었다.
“……살……려……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역시나 ‘살려줘’였다.
퍽.
그게 그가 이승에서 내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비록 지옥과 같은 세상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살아남고 싶어했다.
그렇게 너무도 살고 싶어했던, 112차원계 3789028376번 영혼의 주인인 소삼은 지긋지긋한 생을 마감했다.
● ● ●
푹.
“크악!”
영혼 없는 비명소리와 함께 ‘동네건달’이 죽었다.
동봉수의 창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가 한 번 창을 휘두를 때마다 동네건달이 하나씩 바닥에 몸을 눕혔다. 하지만 아무리 죽여도 동네건달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줄어든 만큼 다시 생겨났다. 자신뿐만 아니라 이곳의 다른 사람들도 동네건달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있었지만, 동네건달들은 무한히 재생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몸을 썼는데 지치지도 않았다.
접속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동봉수는 이내 ‘무림 온라인’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이것이 게임의 폐해로 살인사건이 증가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될 정도인가?
완전히 기대 이하였다. 새로운 사냥터를 찾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사냥터가 아닌 놀이터였다.
동네건달이 죽었을 때 흘리는 피는 색감만 실제 피와 흡사했다.
진짜 피와 같은 뜨거움과 촉촉함, 그리고 그 고유의 자극적인 끈적임이 없었다. 아무런 감촉도 느낄 수 없었다. 손에 느껴져야 할 묵직한 ‘손맛’도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동네건달들에게 역습을 당해 죽는 플레이어들의 얼굴에는 웃음까지 맺힐 정도였다.
죽는 게 죽는 것이 아니었다. 죽이는 것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죽고 죽이는 것이 장난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동봉수의 흥미를 반감시킨 것은, 이곳에 ‘육식동물’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이곳에 있는 동물들은 장난감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초식곤충이었다.
애초에 이 ‘무림(武林)’이라는 가상현실 게임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었다. 아무리 현실과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어떻게 현실과 손맛이 똑같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취미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한 번씩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낚시터 정도는 되리라 여겼었는데. 이건 아니었다.
동봉수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달려드는 동네건달의 머리를 바수고는 결론을 내렸다.
이걸로는 전혀 취미생활이 되지 않는다. 물론 아직 레벨이 낮았고, 게임의 법칙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레벨업을 계속해나간다고 해서 피의 질감이 달라지고, 없던 육식동물들이 이곳에 출몰할 리는 없어 보였다.
가짜는 가짜일 뿐, 진짜가 될 수 없었다.
동봉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진짜 사냥감이 넘치는 현실 속으로 말이다.
“로그 오프.”
낮고 정확한 동봉수의 음성.
동시에 그의 게임 캐릭터가 가상현실 게임 무림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111차원계 3789028376번 영혼의 주인 동봉수는 112차원계로 ‘로그 온’하게 되었다.
● ● ●
2. 적응(適應)
누구나 평등하게 빈손으로 태어나지만, 처음 그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다른 법이다.
-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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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동봉수는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가슴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숨이 잘 쉬어지질 않을 정도였다. 그뿐 아니라, 온몸의 뼈란 뼈는 전부 부서진 것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고, 근육들이 아파죽겠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심지어 눈까지 부어서 잘 뜨여지지 않았다.
‘뭔가 이건? 기어이 경찰에게 붙잡힌 건가?’
동봉수는 자신이 벌인 그동안의 행적이 기어이 수사망에 걸린 것이라 여겼다.
332번의 살인.
완벽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었나 보다. 피식. 가벼운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 참 위험한 취미생활이었지. 언젠가는 끝날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결말이 났다.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어차피 취미는 죽지만 않는다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이니까. 대한민국은 사실상 사형이 없는 국가 아닌가. 자신으로 인해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지지 않는 다음에야 살인범에게 살인을 구형한다 하더라도 실제 집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권국가 대한민국은 동봉수 같은 포식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사냥터였다.
그런데…….
어딘가 좀 이상했다.
방금 생각한 대로 대한민국은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였다. 아무리 332명의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재판 없이 함부로 범죄자를 고문하거나 구타할 수는 없었다. 설혹 정보를 얻기 위해 비밀리에 폭행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심하게 하지는 않는다.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 유추해봤을 때, 지금 그의 몸에 난 상처는 못해도 몇 달 동안은 꼼짝 않고 누워 있어야 간신히 회복될까 말까. 까딱 잘못했으면 죽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게다가 신문(訊問)을 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의식이 없는 용의자를 이 정도까지 구타한다?
이런 행동은 동봉수의 모든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경찰에게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언론과 인권쟁이들이 들고 일어나면 골치 아픈 건 경찰들이 될 테니까 말이다. 동봉수 입장에서야 환영할 일이지만, 경찰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할 리가 없었다.
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거기까지 생각한 동봉수는 억지로 눈을 떴다. 퉁퉁 부은 눈에 격통이 느껴졌다. 얼마나 부었는지 평상시 볼 수 있던 사물의 5분의 1 정도밖에 볼 수 없었다. 사방이 온통 사각(死角)이었다. 지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주변 정경의 매우 제한된 일부분뿐.
그나마 어딘가에서 어스름한 달빛이 새어 들어와 지금 시각이 저녁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 빛이 눈을 부시게 했지만, 그 사실이 동봉수에게 여러 가지를 시사해줬다.
‘달빛이라.’
이곳은 자신의 방은 아니었다. 그의 방에는 창이 없다. 그의 방에 존재하는 모든 빛은 전등에서 나온다.
동봉수는 찬찬히 자신이 누워있는 이곳의 풍경을 살폈다. 목의 삐걱임이 안 그래도 제약된 그의 움직임을 더욱더 제한했다. 하지만 그는 목의 통증을 눌러 참고는 목을 최대한 돌려가며 주변을 살폈다. 눈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으니 목이라도 사용을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긴 얼굴을 가진 제법 큰 동물들이었다.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TV를 통해서 수도 없이 접해본 바로 그 동물.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