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발견했다! 그것도 치명적인 문제였다!
영혼번호 아래쪽에 적힌 차원계의 번호가 111이 아니라 112였다! 이번 고객은 111차원계의 3789028376번 영혼이 아니라, 112차원계의 3789028376번 영혼이었던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단순한 실수였지만, 사신계에서 실수는 곧바로 소멸과 연결되기 십상이었다. 만약 이 일이 염라대왕에게 알려진다면 끝장이었다. 재수가 없다면 아까 얘기했던 팔지옥에서 일천만 년간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 이 영혼이 아니라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당연히 그 결말은 십중팔구 소멸이었다.
벨테루크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사신업무를 수행한 지 수천만 년. 이제껏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그걸 너무 과신한 나머지 기어이 오늘 일이 터진 것이다.
‘이 한 번의 과오 때문에 수천만 년간 고생한 걸 모두 잃을 수는 없어! 젠장! 젠장! 젠장……! 아!’
마음속으로 젠장이란 말을 수도 없이 뱉을 어느 순간.
수억 년 전 명계를 뒤흔들었던 ‘그 일’이 떠올랐다.
‘영혼 접붙이기’ 사건.
한 미치광이 사신이 영혼 샴쌍둥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보겠다며 저질렀던 엽기적인 일.
그 사신은 하나의 몸에 영혼 두 개를 집어넣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을 했다. 방법은 매우 간단해서 끊어진 영혼의 끈을 살아있는 또 다른 영혼의 끈에 붙이고 땜질을 하는 것이었다. 이는 엄연히 사신 복무규정을 어기는, 대죄였다.
사신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차원계의 질서와 관계가 된다. 그런데 살아있어야 할 영혼에 그런 짓을 했으니, 그의 결말은 뻔한 것이었다. 결국, 그 사신은 그 일이 발각되어 소멸당했다.
실험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그 일의 영향으로 차원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염라대왕이 관계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사신들 내부에서는 대체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쪽에 무게가 실렸었다.
과연.
‘가능할까?’
만약 자신이 지금 그걸 시도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의 눈에 가상현실 캡슐 밖으로 덜렁거리고 있는 영혼의 끈이 보였다. 아직 시간은 있었다. 3789028376번은 아직 로그 오프를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저 영혼이 로그 오프를 한다면?
벨테루크는 소멸이었다. 하지만 영혼 접붙이기를 시도하면 자신의 잘못을 덮을 기회는 생길 수도 있었다. 원래 죽었어야 할 112차원계 3789028376번 영혼의 육체에 111차원계 3789028376번 영혼을 접붙이기한 후 112차원계 3789028376번 영혼의 끈만 끊어 명계로 인도해간다면, 모든 차원계는 원래 계획되었던 대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리라!
비록 111차원계의 영혼이 112차원계로 가게 되는 것이지만, 일단 명계 영혼의 총량은 보존된다. 그거면 일단 벨테루크는 안심할 수 있었다.
결단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벨테루크는 111차원계 3789028376번 영혼의 끈, 그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사신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삑삐빅-.
단말기 위에 112라는 사신 숫자가 찍혔다. 가벼운 진동과 함께 벨테루크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수억 년 만에 영혼 접붙이기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이때까지 벨테루크는 자신의 작은 행동이 전체 차원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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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이란 끼니를 잇기가 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남의 집에 기식(寄食)하며 고주(雇主)의 부림을 받던 사람을 말한다. 쉽게 말해 머슴이었다.
고공과 고주는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지만, 대부분의 계약은 무용지물이거나 오히려 족쇄의 단초가 되었다. 계약서를 관에서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닌, 고주가 관리하기 때문이었다. 고주는 자기 편한 대로 수시로 계약서를 멋대로 파기하고 새로 작성할 수가 있었다. 특히, 무림문파에 속한 고공들은 머슴이 아닌, 노예에 가까웠다. 관무불간(官武不干)의 원칙에 따라, 관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무림문파의 고공들에게 무관심했다. 그들이 착취를 당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미 그건 관의 영역이 아니었다.
소삼(小三)은 지금 단리세가(段里世家)의 마고공(馬雇工)이다.
그는 원래 찢어지게 가난한 화전농의 셋째 아들이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다섯 살 때 태풍이 몰아닥쳐 가족이 모두 죽고 그 혼자 살아남게 되었다. 이후 소삼은 솔호(率戶) 없이 유리걸식(流離乞食)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구걸을 하기 위해 단리세가의 문을 두드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리세가의 고공이 되었다. 그 이후 십여 년간 세가의 말을 돌보는 일을 해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머슴으로서 단리세가 내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세가 내의 청소는 말할 것도 없고, 주방의 허드렛일을 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측청(廁圊, 화장실) 청소 또한 해야 했다. 말만 마고공이었지, 실제로 소삼이 마고공임을 느낄 수 있을 때는 아침저녁으로 말을 산책시킬 때와 그가 잠을 잘 때뿐이었다. 그의 잠자리는 마구간이었다.
마구간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의 몸에는 말똥 냄새와 말 특유의 노린내가 온몸에 배어있었다. 그의 천한 신분과 더불어서 그 냄새들은 그를 다른 천한 사람들에게도 경원시 되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소삼은 세가 내의 사람들에게, 본명인 소삼보다는 마변삼(馬便三)이라고 불렸다. 마고공의 마, 말똥 냄새가 난다 하여 변, 소삼의 삼. 이 셋을 엮어 마변삼이 되었다. 소삼, 아니 마변삼에게 단리세가는 집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풍도옥(酆都獄)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변삼은 오늘도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병고공(兵雇工) 중 한 명인 마칠(馬七)이 마변삼을 자신의 개인적인 용무에 동원을 해 부려 먹었는데, 자주 있는 일이었고 아무도 마변삼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변삼은 세가 내 고공 중에서도 최악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둘은 지금 단리세가 무사들을 위해 주문 제작된 무기들을 수령하기 위해 봉양(鳳陽)의 병기점에 왔다.
“마칠이 왔나?”
점주가 나와서 마칠에게 알은척을 했다. 단리세가는 봉양 최대의 문파였기에 봉양 어디를 가든 병장기점에서는 제일 고객이었다. 당연히 이 병기점의 점주 또한 단리세가에 많은 무기를 대고 있었고, 단리세가의 병고공인 마칠과는 잘 아는 사이였다.
“한 달 전에 주문한 창과검도정(槍戈劍刀釘)을 받으러 왔수다.”
“아, 마침 잘 왔네. 한 달 동안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겨우 어제서야 완성했다네.”
병기점주는 상인들이 으레 하는 말을 하며 완성품들을 내어왔다. 양이 엄청나서 점주는 몇 번이나 광에 왔다갔다해서야 마칠 앞에 무기를 모두 가져다 놓을 수 있었다.
마칠은 대충 한 번 슥 훑고는 삯을 치렀다. 어차피 자기가 쓸 것도 아닌데, 겉만 멀쩡하면 그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겨우 둘이 온 겐가? 수레도 없어 뵈는데, 둘이서 단리세가까지 옮기기 괜찮겠나? 꽤 먼데.”
“뭔 걱정이오? 옆에 이렇게 훌륭한 말이 한 마리 있는데.”
병기점주의 말에 마칠이 그의 옆에 서 있는 마변삼의 가슴을 한 번 세게 쳤다. 비쩍 말라 뼈밖에 없는 마변삼은 마칠의 주먹에 맥없이 병기점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 모습을 본 병기점주는 할 말을 잃고 그저 몸을 돌렸다. 어차피 자신이 어떤 말을 한다고 들어줄 것도 아니었고, 단리세가 내부의 일이었다. 봉양에서 마변삼의 처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누구도 그를 위해 앞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런 처지의 사람은 중원 어딜 가든지 있었으니까.
“어이, 마변삼. 뭐해? 당장 일어나서 무기 옮겨.”
“…….”
마변삼은 죽는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일어나서 무기를 들 수 있는 만큼 어깨에 둘러메었다. 아마 오늘은 이 무기들을 세가 내로 옮기는 것만으로 하루를 다 보내리라.
“난 봉양객잔(鳳陽客棧)에 볼 일이 있어서 가 있을 거야. 다 옮기면 그리로 와. 알았지?”
“…….”
마변삼은 대답이 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말을 하는 것도 아끼려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처세술로는 훌륭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퍽.
마칠이 그런 마변삼의 면상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마변삼은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입가에 설핏 핏물이 묻은 것이 입술이 찢어진 모양이었다.
“야이 새끼야. 대답을 해, 대답을. 내가 너하고 같은 마씨라고 무시하냐?”
“아, 아닙니다…….”
드디어 마변삼의 입이 열렸다. 빼짝 골은 그의 몸과 마찬가지로 그의 목소리도 빈곤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말을 하면서 입 밖으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입술만 찢어진 것이 아니라, 입안에도 크게 찢어진 것이었다.
퍽.
마칠이 피를 흘리는 마변삼을 보고는 다시 발로 그의 얼굴을 걷어찼다. 이번에는 충격이 좀 컸는지 마변삼은 병기점 구석까지 데굴데굴 굴러가서 처박혔다. 그는 힘이 없는 와중에도 있는 힘껏 고개를 들어 마칠을 바라봤다. 눈의 실핏줄이 터져 핏발이 선 그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왜? 왜……?
“아, 저 새끼 때문에 무기에 피가 다 튀었네. 재수 없는 자식. 하여간 뭘 하든지 도움이 안 돼.”
고작 그것 때문에……?
마변삼, 아니 소삼은 정말 괴로웠다. 하루하루 살기가 너무 힘들었고, 죽고만 싶었다. 하지만 죽을 용기를 먹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으려고 시도를 할 때면 겁이 나서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다시 죽을 용기로 한 번 열심히 살아보자고 하지만…… 매번 금세 다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일이 반복이 되다 보니, 이제는 그 살아갈 용기마저 그다지 남지 않게 되었다.
죽을 수도, 그렇다고 살아가기도 어려운…….
소삼은 이도 저도 아닌 겁쟁이인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그는 벽을 짚고 간신히 다시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마칠에게 다가갔다.
툭툭. 마칠이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깝잖은 말투.
“무기 다 옮기고 튄 피도 전부 깨끗이 닦아. 나중에 내가 확인해보고 피 한 방울이라도 묻어 있으면 네 입에서 피 한 바가지 쏟을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네…….”
그 말을 끝으로 마칠은 병기점을 나섰다. 소삼은 마칠이 왜 봉양객잔에 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십중십 앵앵을 만나러 가는 것이겠지. 마칠은 소삼이 무기를 옮기는 일을 모두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앵앵의 속살을 만지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소삼은 병기점주가 건넨 고적쪼가리로 입가의 피를 닦았다. 병기점주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도움이었다. 정말 별것 아니었지만, 소삼은 눈물이 핑 돌았다. 단리세가 내에서는 이 정도마저도 그를 위해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그저 세가 내의 가장 쓸모없고 냄새나는, 벌레보다 못한 고공에 불과했으니까.
소삼은 피가 묻은 고적쪼가리를 다시 병기점주에게 건네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창 두 자루를 어깨에 걸쳐 메고 병기점을 나섰다.
후악후악.
거친 숨이 쏟아져나왔고.
또옥또옥.
뜨거운 땀이 흘러내렸다.
저녁 무렵 파김치가 된 소삼은 마침내 병기를 옮기는 일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병기점주가 말했다.
“자네, 좀 쉬는 게 어떻겠나? 얼굴색이 좋지 않아. 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