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띠링띠링, 띠리리리리링,......
숫자가 줄어듦에 따라 종소리가 점점 더 다급해져 갔다.
‘이건……? 조기경보 시스템 같은 건가?’
동봉수는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메시지와 급박한 종소리에서 영안의 효능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무림 온라인은 게임의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 모든 몬스터와 적들을 최대한 현실과 비슷하게 만들어 실체감을 살렸다.
기존의 3D 온라인처럼 NPC의 레벨이나 체력 등을 그냥 봐서는 알 수 없게 프로그램 되어 있었다. 당연히 NPC들에 대한 모든 정보도 통제했다.
그럼으로써 기존의 3D 온라인 게임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경험하고, 시도하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알아내라. 그 안에서 재미를 느껴라.
라는 것이 무림 온라인의 모토였다.
지금에야 무림 온라인에 대해 많은 것이 파헤쳐져,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공유가 되고 있었지만, 이 ‘차별화 정책’ 때문에 처음 무림 온라인에 접속하는 사람들은 적들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는 채 무턱대고 달려들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 왔다.
이 정책은 항상 유지되어 왔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테스터들에게도 똑같았다. 그들 또한 일반 플레이어들처럼 처음 상대하는 몬스터나 적들에게는 고전하고 무방비로 노출되기도 했다.
그래서 테스터 전용 스킬이 필요한 것이었다. 테스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테스팅을 효율적이고 현실적이게 만들어 주는 그런 스킬들.
그중에서 테스팅의 실제감과 효율성 사이의 중도를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 스킬 영안이었다.
영안은 테스터들에게 상대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주는 대신 위험에 대한 최소한의 경보만 줌으로써 좀 더 실제적인 테스팅을 하도록 유도하는 스킬이다. 이 스킬이 있음으로 해서 테스터들은 정보가 없는 적에게는 좀 더 조심스럽고 자세하게 접근하고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실익이 없는 케릭사망을 줄여서 테스팅의 시간을 줄여주는 역할까지 담당하는 것이 바로 이 영안이었다.
칠감(七感).
동봉수는 영안의 효과를 아는 순간 그 단어가 떠올랐다.
육감은 불확실한 예감이나 전조에 기초한 감각이지만, 영안은 그걸 넘어서 주변 20미터 이내의 모든 적을 스캔해서 경보를 해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닌가.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육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칠감까지 얻게 되었다.
오감과 육감, 그리고 칠감.
그는, 동봉수는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14, 13, 12, 11,......]
그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고, 영안이 감지한 그 ‘적’은 마구간으로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동봉수는 그에 대해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영안은 접근하고 있는 누구든 스캔하게 프로그램하게 되어 있을 터.
그리고 아마도 그 스캔의 대상은 유저가 아닌, NPC들일 것이다. 이곳에 유저는 그 혼자뿐이었다.
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었지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특별한 일이 아무에게나 일어나면 그건 이미 특별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신무림 온라인의 시스템에게는 자신을 제외한, 이곳의 모든 이가 NPC였다. 그래서 앞으로 영안의 경보를 들을 경우 동봉수는 그 스스로 적인지 아닌지 판별해야만 한다.
무림 온라인의 테스터였다면 경보음이 울린 순간 뒤로 물러서면 그만이겠지만, 여기 신무림 온라인에서는 다르다.
그리고 지금.
그는 다가오고 있는 ‘적’을 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10,......]
카운트는 10을 지나고 있었다. 10미터 내까지 접근했다는 뜻. 동봉수는 여전히 태연히 있었다. 다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동봉수가 다가오는 ‘적’을 적이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는 ‘적’의 이동속도에 있었다.
애초에 단리세가 내에 침입할 만한 간 큰 인간이 별로 없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단리세가에 몰래 침입한 적이라면 저렇게 천천히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지금 접근 중인 자는 단리세가 내의 고수였다. 그것도 생각보다 높고 강한 자일 것이다.
아직 레벨 10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레벨 2가 되는 데에 들어간 노력과 목숨 값을 생각해봤을 때에는 상당히 크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레벨 10이 될 때까지 일반인만 죽인다면 과연 몇 명이나 죽여야 할까? 수천 명? 수만 명?
어쩌면 수십 만명?
계산이 서지도 않았고,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정도 목숨 값의 차이만큼 수련을 통해 강해진 자다. 그런 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후보군을 좁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봉수는 즉시 입고 있는 기본장구류들을 모조리 인벤토리에 넣고, 원래 입던 옷을 꺼내 입었다.
인벤토리에서 바로 뿜어내 몸에 덧입히는 방법도 가능할 법했지만, 아직 그 정도까지 미세하게까지 인벤토리를 조절할 수는 없었다.
[5, 4, 3,......]
동봉수는 어느새 원래의 마아삼으로 돌아와 있었다.
흐리멍텅한 눈, 평범한 얼굴, 살짝 벌어진 입과 허름한 옷.
소삼이 다시 살아 돌아오더라도 자신과 동봉수 중 어느 누가 진짜 소삼인지 분간하지 못하리라.
끼이익-.
낡은 문이 뒤로 젖혀지며 달빛이 스며들어왔고, 기다란 그림자 두 개가 마구간 안으로 드리워졌다. 뒷짐을 진 중년인과 단단한 체형의 이십대 남자가 뒤이어 마구간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바로 기대효와 기만지였다. 둘은 오늘 하루 내내 자살역병에 관해 조사를 하고 다니다가, 이제야 단리세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 조사를 위해 이곳에 찾아온 것이었다.
기대효는 마구간에 들어오자마자 여러 말 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가 소삼이냐?”
“…….”
동봉수는 벙어리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에 대답 없이 가만히 눈만 뻐끔거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실상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화들짝 놀란 표정 그 자체였다.
동봉수는 기대효와 기만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레벨업을 위한 준비뿐만 아니라, 단리세가에 대해서도 구석구석 연구를 했다.
그중 핵심이 바로 인물들에 대한 조사였다.
그는 기대효를 보자마자 그가 자살역병에 대한 일 때문에 자신을 찾아왔다는 걸 알았다. 지금의 얼굴표정은 준비된 여러 개의 가짜 얼굴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가 추린 ‘적’의 후보군은 세 명이었다.
가주, 흑오단주, 십자천검단주.
그 세 명 중 누구에게든 맞춰 연기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었다. 그리고 찾아올 이유도 동시에 생각하고 있었고 말이다.
결국, 마구간 안으로 들어온 건 흑오단주 기대효였고, 그에 맞춰서 표정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흑오단주인 기대효가 이곳에 지금 찾아올 이유는.
마칠의 죽음.
그것뿐이었다.
“네가 마칠을 죽였느냐?”
대답이 없는 동봉수에게 기대효가 다시 말했다. 전혀 뜻밖의 내용. 옆을 보니 기만지 또한 뜬금없는 기대효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약, 일반적인 살인마였다면 얼굴에 나 살인마요 하는 표정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봉수의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기대효는 가만히 동봉수의 흐릿한 눈을 응시했다.
초점이 흔들리는 멍청한 눈에, 자신의 등장에 잔뜩 겁을 먹은 것인지 눈이 산지사방을 누빈다. 그럼에도 기대효는 집요하게 동봉수의 눈을 들여다봤다.
동봉수의 눈을 뽑을 듯이 노려보는 기대효의 눈은 마치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네가 범인이다. 아니, 범인이어야만 한다!
기대효는 일평생 집법과 정보에 관련된 일을 해왔고, 이 방면에서는 개방이나 하오문(下午門), 관보다 더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살아왔다.
오늘 하루 온종일 그는 자살역병이 발생한 장소를 모두 돌았다. 그러나 수확은 전혀 없었다.
아들인 기만지는 그에게 정말 역병이 아니냐고 말했지만, 기대효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인가? 누구여야 하는가?
모든 장소를 둘러봤는데, 사건현장은 하나같이 봉양객잔의 그 방과 마찬가지로 밀실이었다.
누구도 침입한 흔적은 없고 자살자만 덩그러니 있는 형태. 뭔가 작위적이었다. 완벽해도 너무 완벽했다. 마치 신이 존재한다면 신이라는 존재가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말이다.
그는 다시 동봉수의 눈을 바라봤다. 역시 뭘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멍청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니야. 그놈이 이런 눈을 가진 놈일 리가 없어.’
기대효가 동봉수를 찾아온 건 마지막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현장을 꼼꼼히 확인한 것뿐 아니라, 자살자들이 있던 밀실들의 옆방에 있는 모든 이들을 만나봤다. 동봉수만 제외하고.
이곳에 오기 전, 용의자는 동봉수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마지막 용의자마저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
“후-. 가자.”
“네? 아, 네. 아버지.”
기대효의 말을 들은 기만지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마구간을 벗어났다.
기대효는 마구간을 떠나기 전 고개를 돌려 다시 한 번 동봉수를 바라봤다.
‘역시 아니야…….’
밟으면 부러질 것 같은 손과 발, 잘못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가슴.
저 몸은 절대로 축골공을 연마한 몸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숨은 사파의 고수일 수가 없었다.
동네 웬만한 왈짜들보다도 훨씬 약한 몸을 가진 놈. 그게 기대효의 동봉수에 대한 평가였다.
“후-.”
마지막 한숨을 남기고, 기대효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는 아마도 오늘 밤 쉽게 잠에 들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자살역병 보균자’이자 웬만한 왈짜들을 때거리로 몰살시킨 장본인인 동봉수는 그와 같은 집 아래서 단잠에 들 것이다.
동봉수의 눈은 기대효가 마구간을 완전히 떠날 때까지 그의 등을 주시하고 있었다. 열린 문을 통해 진한 달빛이 들어와 동봉수의 맑고 기괴한 눈을 핥고 지나갔다.
아쉽다. 기대효가 그 눈을 봤어야 했는데 말이다.
달빛을 받고도 낮게 음영이 진 동봉수의 눈을 말이다.
끼이익. 탁.
마구간은 다시금 고요한 암흑의 세상이 되었다.
동봉수의 음영 진 눈은 그 칠흑의 공간에 그 빛을 숨길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잠시 동안 그 자세 그대로 아까 하다가 만 새로운 법칙에 대해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리고는 늘 그렇듯 짚을 깐 보금자리에 몸을 눕혔다.
내일부터 좀 더 바빠질 것이다. 새로운 사냥감이 많이 생겼다.
달빛이 요요롭게 빛나던 날 밤.
자살역병은 봉양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내일부터 새로운 살풍(殺風)이 봉양에 몰아닥칠 것이다…….
* * *
신무림 온라인 제 4법칙 :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빼낼 때 동봉수의 신체 중 어느 부위로든 뽑아낼 수 있다.
신무림 온라인 제 5법칙 : 레벨업을 하면 몸에서 하얀빛이 뿜어지며, 몸에 있는 상처가 모두 회복된다. 동시에 모든 스탯이 조금씩 올라간다.
신무림 온라인 제 6법칙 : 스킬에는 숙련도 시스템이 적용된다. 즉, 스킬을 많이 사용할수록 능숙해진다.
신무림 온라인 제 7법칙 : 패시브 스킬 영안은 동봉수의 반경 20미터 이내에 접근한 위험인자를 파악해서 그에게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