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벤토리 안에 못 보던 검 한 자루와 옷 한 벌, 가죽신 한 켤레, 두건 하나가 구석 끝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모두 끄집어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전부 겉보기에는 허름한 천으로 만들어진 듯 보였지만, 그 위생상태만큼은 최상이었다. 마치 공장에서 갓 나온 신품처럼.
사실 이것들은 원래 동봉수가 신무림 온라인에 접속했던 그 순간에 지급되었어야 할 물품들이었지만, 치명적인 오류로 인해서 이제야 받게 된 기본장비들이었다. 물론 동봉수는 알지 못했고, 알 바도 아니었다.
생겼으니 사용한다. 그에게는 단순명료한 명제였다.
동봉수는 잠시 물건들을 살펴보다가 별 망설임 없이 검을 먼저 잡았다.
찰칵-.
검을 들었을 뿐인데, 금속제 장신구를 차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더 강해진 것 같다.
동봉수는 그 즉시 지금 입고 있는 허름한 마고공의 옷을 모조리 인벤토리에 넣고, 늘어놓은 장비들을 몸에 걸쳤다.
그것들을 하나씩 걸칠 때마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검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템이라는 건가?”
그는 이 모든 게 게임 아이템(Item)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리고 강해진 것 같은 착각도, 착각이 아닌 실제라는 걸 알았다.
그는 인벤토리창을 닫았다. 인벤토리 확인을 끝내서인지 황금빛 깜박임은 사라졌다. 장비를 착용했으니 이제는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동봉수는 바로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거기에는 역시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드디어 장비가 인식이 되는 건가?”
비어있던 장비창에 아이템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지금 끼고 있는 것들이 그 모습 그대로 표시되어 있었다.
[초보자의 검], [초보자의 옷], [초보자의 신], [초보자의 두건]
우선 동봉수는 손을 마우스처럼 움직여 ‘초보자의 검’ 위에 올렸다. 그러자 그 옆으로 투명한 창이 뜨며 초보자의 검에 대한 설명이 떴다.
[초보자의 검]
속성 : 무
필요 직업 : 공통
요구레벨 : 2
최소 공격력 : 2
최대 공격력 : 5
타격치 상승효과 : ?
최소 무공 공격력 : 3
최대 무공 공격력 : 8
무공타격치 상승효과 : ?
부가능력치 상승 : 무
동봉수는 잇따라서 나머지 아이템도 똑같은 방식으로 확인을 했는데, 모두 비슷한 설명이었다.
다른 아이템들의 설명이 검의 것과 차이점이 있다면, 공격력 대신 방어력, 무공 공격력 대신 무공 방어력.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 빼고는 형식 자체는 똑같았다.
둘의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타격치나 방어치의 상승효과에 대해서는 ‘?’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 그것이었다.
동봉수는 그것 또한 크리티컬 에러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잠시 그것들이 어떠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어차피 지금은 알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런 일에 괜히 심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다시 스테이터스 창의 변화를 살펴갔다. 장비착용과 더불어서 스탯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힘, 민첩, 지능의 기본 스탯치가 이전의 ‘?’에서 모두 노란색 게이지 바(Gauge Bar)로 변해 있었다.
아라비아 숫자로 나타나 있지 않아서 확실한 수치로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엄청난 변화였다.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에 불과했지만, 모든 게이지 바가 조금씩 차올라 있었다.
레벨업을 하면서 드디어 스탯도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레벨, 힘, 민첩, 지능의 상승에 비례해서 상승하게 되는 체력, 명중, 회피, 공격력, 방어력, 무공 공격력, 무공 방어력, 원소 방어력, 진기/내공 등에도 모두 게이지 바가 생겼다.
마찬가지로 정확히 수치화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 현상도 앞서와 마찬가지로 크리티컬 에러와 관련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현실에서는 게임처럼 모든 걸 수치화할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리라고 추측했다.
동봉수는 여러 가지를 더 점검해본 후 스테이터스 창을 닫았다. 인벤토리 때와 마찬가지로 확인이 끝나자 스테이터스 창의 깜박임이 사라졌다.
딸칵.
이번에는 스킬창 차례다.
스킬이 다섯 가지나 생겨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액티브 스킬(Active Skill)’은 하나도 없고, 모두 ‘패시브 스킬(Passive Skill)’이었다.
게임 캐릭터를 생성한 순간부터 있었어야 하는 기본 동작 네 가지에 정체불명의 스킬 한 가지가 추가되어 있었다.
네 가지는 그도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비록 몇 시간 플레이하지는 않았었지만, 그래도 무림 온라인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는 그 다섯 가지의 설명을 바로 확인했다.
[베기 (패시브) Lv.1 숙련도 : 0%]
무기를 휘두르는 기술.
무기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적을 격멸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공격 중 하나이다.
현재 행동 보너스 : 0%
[찌르기 (패시브) Lv.1 숙련도 : 0%]
무기를 찌르는 기술.
무기를 전후로 움직이며 적에게 관통상을 입히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공격 기술 중 하나이다.
현재 행동 보너스 : 0%
[던지기 (패시브) Lv.1 숙련도 : 0%]
무기를 던지는 기술.
날카롭거나 뭉툭한 물건을 적에게 던져 상해를 입히는 기술은 고래로부터 이어져 온 기본적인 공격 기술 중 하나이다.
현재 행동 보너스 : 0%
[막기 (패시브) Lv.1 숙련도 : 0%]
무기를 들어 막는 기술.
무기를 수직이나 수평으로 세워 적의 공격을 막는다.
현재 행동 보너스 : 0%
이 네 가지는 원래 무림 온라인 캐릭터를 생성하면 공통적으로 생기는 기본 동작들이었다.
그런데.
[영안(靈眼) (테스터 패시브) Lv.1 숙련도 : 0%]
테스터 전용 스킬.
현재 행동 보너스 : 0%
이건 처음 보는 것이었다.
테스터 전용이라는 것 말고는 특별한 설명도 없어서, 동봉수로서는 전혀 어떤 건지 짐작을 할 수 없었다.
다만, 일반 게이머들은 가질 수 없는 스킬이라는 것만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무림 온라인 내의 모든 것들, 몬스터, 아이템, 배경, 스킬 등은 원칙적으로 서버의 구성물들이고, 그 자체로 완벽한 인공구조물로써 하나의 인공지능이 부여된 완성체였다.
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테스팅(Testing).
새롭게 연 서버나 새로이 만들어진 던전, 신규 몬스터 등은 그 구성이 어설프거나 미완성일 때가 있다.
그래서 그걸 대중들에게 공개하기 전에 테스터(Tester)들이 불완전한지 아닌지에 대해 미리 플레이해본다.
그리고 그런 테스터들의 테스팅을 돕기 위해 따로 마련된 스킬들이 있었다.
그게 바로 테스터 전용 스킬이었다.
지금 그 스킬 중 하나가 동봉수에게 적용이 된 것이다.
왜 일개 플레이어인 동봉수에게 테스터 전용 스킬이 적용이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동봉수가 생각한 것처럼 신무림 온라인의 시스템과 이곳 현실무림 간의 충돌 때문이었다.
신무림 온라인의 시스템은 그 자체적으로 상당히 고성능의 인공지능을 가진 시스템인데, 지금 상당히 망가지고 꼬인 상태였다.
실제 무림 온라인의 서버에 있어야 할 것들이 이곳 무림에는, 당연하게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신무림 온라인의 시스템이 지금 동봉수의 모든 플레이를 새로운 행위, 즉 ‘테스트 행위’로 간주하게 되었다.
동봉수는 이 사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굉장한 행운이었고 무림에는 커다란 불운이 될 사실이었다.
이 영안이라는 스킬은 과연 어떤 효용이 있는 것일까?
그건 곧 밝혀지게 될 것이다.
동봉수는 스킬들을 손으로 잡아 스킬 단축키란에 넣어보려 했으나, 되지 않았다.
이 세 가지 기술들은 모두 패시브로써, 특별히 사용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들이었다. 동봉수도 몰라서 그랬다기보다는 확인차원에서 해본 것이었다.
붕, 휙, 탁.
그는 바로 검을 들어 휘두르고 찌르고 던지고 막아봤다.
그리고는 곧바로 숙련도를 확인했다. 모두 0.1%씩 올라 있었다. 즉, 천 번씩 이 행동을 반복하면 숙련레벨이 Lv.2가 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차츰 레벨업하기 힘들어질 건 자명한 사실.
어쨌건 그는 또 한 가지 더 강해지는 법을 발견했다.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지는 레벨이 올라봐야 알겠지만, 이건 이 나름대로의 장점이 분명히 있으리라.
굳이 사냥을 하지 않아도 강해질 수 있다는 건 게임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커다란 이점을 가져올 것이다.
그는 몇 번 더 검을 이리저리 휘둘러 본 후 스킬창을 닫았다.
이제 깜빡이는 창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동봉수가 신무림 온라인을 시작한 이후 가장 신경을 쓰지 않은 퀘스트창이었다.
그동안 퀘스트창이 활성화가 되지 않았기도 했거니와, 퀘스트가 생길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건, 동봉수는 마지막 차례인 퀘스트창을 눌렀다. 그 순간.
삑-.
[Critical ERROR 발생! Critical ERROR 발생! Critical ERROR 발생! 퀘스트 진행을 위한 NPC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NPC가 없으므로, 퀘스트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빨간 점멸등이 나타나며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고, 에러메시지가 머릿속을 마구 헤집고 다녔다.
이것은 NPC가 있어야만 끌어나갈 수 있는 퀘스트를 전혀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퀘스트창에서 유달리 심하게 치명적인 오류 메시지가 뜨는 이유는 뻔했다.
스킬이나 스탯 등과는 다르게, 이건 시스템을 변형시키고 말고 할 원형인 NPC가 애초에 이 ‘무림’에 존재하지를 않았다.
그는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퀘스트는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줄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중요한 것에 문제가 생겼으니, 당연히 시스템이 이런 식으로 호들갑을 떨 수밖에. 아마 앞으로도 이 무림에 NPC가 생기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기계음이 더 시끄럽게 떠드는 걸 차단하기 위해 퀘스트창을 바로 닫아버렸다.
얼핏 활성화된 퀘스트 몇 개가 있는 걸 보았지만, 그 앞에 모두 X 표시가 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그 퀘스트 모두 진행불가일 것이 확실했다. 활성화만 되었다 뿐이지, NPC가 없으면 아무 실효가 없을 터.
그는 아무 고민 없이 퀘스트에 대한 미련을 버려버렸다.
그제야 다시 세상이 고요해졌다.
물론 그 고요해진 세상은 그만의 세상, 신무림 온라인이다. 아무리 경고음이 심하게 울리더라도 그건 모두 그의 인터페이스(Interface)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단리세가의 누구도 들을 수 없었다.
“후-.”
방금 있었던 그 잠깐의 울림으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동봉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며 정신을 다잡았다.
드디어 최초의 레벨업으로 얻은 것들에 대한 확인을 대충이나마 끝을 냈다. 이제는 그것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띠링띠링-.
그가 막 오늘의 수확들을 정리하려는 바로 그때.
머릿속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들렸다.
[영안 발동 조건이 만족 되어 영안이 자동으로 시전됩니다.]
[귀하와 10레벨 이상 차이가 나는 적이 20미터 이내에 접근했습니다. 19, 1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