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양객잔이다.
장호와 왈짜패들이 죽어나갈 때, 기대효와 기만지는 자살역병이 최초로 발생한 장소로 추정되는 봉양객잔 이 층 방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 객잔의 주인인 노가(盧家)도 따라 들어와 있었다.
“이 방인가?”
“네, 나리. 이 방, 저쪽 들보에 목을 맨 채 죽어있는 마칠과 초선이를 제가 처음 발견했습죠.”
노가가 머리가 땅에 닿을 듯 조아리며 기대효의 질문에 대답했다.
“흠.”
기대효는 일단 둘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가정한 상태에서 방안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특별한 건 없는 전형적인 객잔의 방이었다. 짙은 붉은색으로 염색된 야시시한 침대보가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봉양객잔의 장사형태를 알고 있는 기대효로서는 그게 그리 이상하거나 특별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가장 먼저 살핀 건 창의 유무였다. 창이 있다면 그리로 자객이 들어왔을 수도 있다.
하나, 방의 전후좌우 상하 육면 어디를 둘러봐도 창은 없었다. 일반가옥이라면 보통 창은 입구와 마주 보는 벽면 쪽에 나 있었다.
하지만 이 방의 그쪽 벽면은 그냥 벽면일 뿐이었다. 그쪽으로 무언가 들어왔을 가능성은 한눈에 배제되었다.
그럼 문으로 들어왔을까?
드르륵.
기대효는 닫았던 문을 다시 열어보고는 객잔의 구조를 살펴봤다. 봉양객잔은 전형적인 이 층 건물로써 아래층은 입 구(口)자 형태의 개방형이었고, 이 층은 클 거(巨)자 형태의 복도가 연결된 모양이었다.
복도 가운데 쪽으로 계단이 나 있고, 그 양쪽 복도로 방들이 쭉 배치되어 있었다.
이 층 복도에서 일 층을 내려다보면 객잔 일 층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일 층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층 복도를 통해 사람이 이동했다면 다 확인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침입자가 문쪽으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사라졌다. 만약 범인이 문으로 들어왔다면, 객잔의 점소이든 손님이든 누구든 목격자가 있었을 테니까.
전과 후로의 침입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어서 우의 가능성도 그냥 없어져 버렸다.
이 방의 위치는 클 거자 형태의 머리부분에서도 그 끄트머리 부분에 있는 방이었다. 이 방의 우측 벽은 바깥과 통했다. 벽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그 방향으로는 절대로 들어올 수 없었다.
다음 차례는 상하. 하지만 상하로의 침입도 불가능했다. 위쪽은 지붕이 있었다. 지붕을 통째로 들어내지 않는 다음에야 그쪽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아래쪽은 바닥이다. 마찬가지로 바닥을 전부 들어내어야지만 침투가 가능했다. 지붕과 바닥 모두 나무와 석재로 틀을 잡고 진흙으로 마감 처리되어 있었다.
물 한 방울 쉽사리 내침할 수 없는 형태. 이 가능성도 순식간에 삭제되었다.
객잔 주인의 말로는 마칠과 초선이 죽은 이후 한 번도 방에 손님을 들인 적도, 방을 보수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걸로 전후우 상하로의 침입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남은 가능성은 좌측 벽 하나였다. 만약 자살역병이 정말로 살인사건이라면 범인은 좌측 벽을 통해서 이 방에 들어왔을 것이다.
기대효는 뒷짐을 진 채 좌측 벽 쪽으로 다가갔다. 멋들어진 호피무늬 천이 발처럼 길게 아래로 처져 있었다. 방음을 위해 아주 두텁고 꼼꼼하게 가려져 있기는 했지만, 천은 천이었다.
촥-.
기대효의 일수에 천이 사라지고, 내 천(川)자 형식으로 쭉 정렬된 벽면이 드러났다.
“흠.”
그는 그걸 보고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고 확신했다. 다른 벽면과는 다르게 이 벽은 나무만 제거한다면 마음대로 통행이 가능한 모양새였다.
문제는…….
이 나무가 제거된 적이 없다는 데에 있었다.
“이것 보게.”
“네, 나으리.”
기대효의 부름에 객잔주인 노가가 빠르게 다가와 대답했다.
“지붕을 들어내지 않고 이 통나무들을 빼낼 방법은 없는 건가?”
“네, 물론입죠. 이 나무들은 천장들보와 바닥들보에 난 홈에 끼어 있습니다요. 들보들을 빼내지 않으면 절대로 끄집어낼 수 없습니다요.”
기대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확인차원에서 재차 물은 것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꼼꼼히 벽면을 살펴봤다. 원통형으로 깔끔하게 처리된 통나무들 사이에는 종이 한 장 들어가기 쉽지 않아 보였다. 나무를 빼낸 흔적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다는 건……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자살사건이 정말 온전히 역병 때문이란 말인가?’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가 곧 고개를 흔드는 기대효였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세상에 자살을 유도하는 역병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설사 있다손 치더라도, 자고로 역병이라면 한 지역을 중심으로 옆으로 옆으로 점진적으로 퍼져 나가야 하는데, 자살역병자들은 봉양 이곳저곳에 불규칙하게 나타났다.
그 말은 사람을 가려서 퍼진다는 얘기인데, 그런 역병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어불성설이다. 즉, 역병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기대효는 다시 타살 쪽에 무게를 싣고는 통나무를 살폈다.
만약 축골공(縮骨功)을 극한까지 익힌 사람이 있다면 이 틈으로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그런 고수를 보거나 들은 적은 없지만, 그럴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강호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인이사(奇人異事)들이 많으니까 말이다.
물도 투과하지 못할 정도인 전후우 상하보다는 이쪽이 가능성이 높았다.
최소한 이 가공된 통나무들 사이는 물이라면 통과할 수 있어 보였다. 몸 자체를 물처럼 흐물흐물 거리게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이곳을 통해 침투할 수 있으리라.
가능성이 없는 것과 조금이나마 있는 것. 자연히 기대효의 추리는 그리로 튀었다.
“마칠이 죽었을 때 이 옆방에도 사람이 있었는가? 혹 비어있지는 않았는가?”
기대효는 비어있었을 거라고 예측하고 물었다. 비어있었다면 그쪽으로 침입을 한 범인이 어떤 식으로든 이 벽을 통해 이 방으로 들어왔으리라.
하지만 예측은 곧바로 빗나갔다.
“네, 그 방에도 손님이 있었습죠. 아마 마칠과 거의 같은 시간에 봉양객잔에 왔을 겁니다.”
“……그게 누군가?”
기대효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 노가에게 질문했다.
“단리세가의 소삼입니다.”
노가가 단리세가의 소삼이라고 특정을 지은 이유는 소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냥 소삼이라고만 하면 봉양에만도 수십 명이 있을 터. 하지만 단리세가의 소삼이라고 하면 벙어리 마아삼뿐이었다.
“단리세가의 소삼? 그게 누구지? 세가에 그런 이름을 가진 자도 있었느냐?”
기대효는 소삼이 누구인지 몰랐다. 아무리 소삼이 봉양에서 꽤 유명인사였지만, 둘의 지위 차이는 너무도 컸다. 오히려 기대효가 소삼을 알고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그래서 그는 기만지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 그는 세가의 마고공 중 한 명입니다.”
“마고공? 그런 자가 그 시간에 왜 여길 온단 말이냐?”
“아마 마칠과 같은 이유 아니겠습니까.”
마칠과 같은 이유라는 말에 기대효의 시선이 노가로 향했다. 노가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네, 나으리. 마칠이 초선이를 안고 있을 때, 소삼이 앵앵이를 안고 있었습죠.”
“그런가? 그럼 가서 앵앵이라는 아이를 좀 데려와 보게.”
노가는 네라는 대답을 하기 무섭게 앵앵을 데리고 왔다.
앵앵은 한창 손님을 받고 있었는데,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다. 그녀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는 사이 기대효가 질문을 시작했다.
“너는 마칠과 초선이 죽은 날 소삼이라는 자와 이 옆방에 있었느냐?”
“네.”
앵앵이 대답했다.
“무얼 했느냐?”
기대효의 질문에 앵앵이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호호호. 유녀와 젊은 놈이 여기서 뭘 했겠어요? 당연히 빠…….”
“앵앵! 입을 조심해서 놀리거라!”
노가가 다급히 앵앵에게 입조심을 시켰다.
“……당연히 잠을 잤죠.”
“그게 다냐? 혹시 마칠과 초선이 있던 방 사이에 놓인 벽으로 뭔가가 들어가거나 하는 건 보지 못했느냐?”
“글쎄요……. 소삼과 빠……일을 치르느라 다른 건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험험.”
노가가 다시 헛기침으로 눈치를 줬다. 그를 기대효가 손짓으로 만류했다.
“괜찮네. 그럼 다른 특별한 건 없었느냐?”
“네. 특별한 건 전혀 없었어요. 평소에 하던 것처럼…… 아, 이런 건 있었어요. 소삼이 배가 고프니까 밥을 좀 갖다 달라고 했었어요. 보통 여기 오는 손님들은 일을 먼저 치르고 밥을 먹는데, 소삼은 처음이라 긴장해서인지 밥을 먼저 먹고 일을 치르더라구요.”
“흠.”
앵앵의 말을 들은 기대효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이후에도 앵앵에게 이것저것 캐물었지만, 역시나 특이한 점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협조해줘서 고맙네. 만지야 우리는 이만 가자.”
“네, 아버지. 그럼 이제 어디로 가실 겁니까?”
“다음 자살역병이 일어난 곳으로 가자꾸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둘은 경공술을 발휘해 순식간에 봉양객잔에서 사라졌다.
그런 둘의 뒤를 바라보던 노가가 고개를 저으며 일 층으로 내려갔다. 다시 그런 노가의 뒤를 바라보던 앵앵이 툭 던지듯 한마디 했다.
“생각해보니 특별한 거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소삼 그놈 정력이 정말 절륜했다는 거. 아웅-. 그런 대단한 방중술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소삼 같은 사내 어디 또 없나? 그런 남자라면 아무리 벙어리에 멍청이라도 이 한 몸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앵앵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는 다시 손님을 접대하러 갔다. 소삼과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인지 그녀의 몸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느 사내인지 몰라도 오늘 제대로 극락을 느낄 수 있으리라.
봉양객잔은 금세 원래 그랬던 것처럼 사내들의 음탕한 욕망이 꿈틀거리는 곳으로 돌아갔다.
* * *
동봉수는 단리세가로 돌아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 일과를 마쳤다.
겉보기에 그는 세가를 벗어나기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누가 봐도 그는 그저 소삼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는 바보 멍청이 벙어리.
그것이 다른 이에게 보이는, 동봉수였다.
아무도 진일보한 동봉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눈앞 저 멀리에는 여전히 그만이 볼 수 있는 신무림 온라인의 에러박스가 깜박이고 있었다.
[무림 온라인 시스템에 Critical ERROR 가…… 발생했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는 데에 지장은 없겠지만…………습니다.]
끼이익. 탁.
문이 닫히고, 마구간은 다시 그만의 공간이 되었다.
Critical ERROR.
‘치명적인 오류라.’
이미 자신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치명적인 오류였다. 여기서 어떻게 더 오류가 발생한단 말인가?
아마도 저 치명적인 오류도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자신의 존재로 말미암은 시스템적 괴리에서 오는 것일 터.
그는 대충이나마 저 에러 메시지가 왜 떠올랐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신무림 온라인(현실)과 무림 온라인(가상현실)이 ‘강제접목’되면서 발생하는 것.
동봉수는 그 문제가 그동안 내재되어 있다가, 레벨업을 하면서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정확한 추측이었다. 111차원계와 112차원계, 그리고 그 매개체가 된 보조차원 무림 온라인.
이 세 가지 차원계의 법칙들이 레벨업과 함께 충돌하면서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Critical ERROR 메시지는 동봉수가 레벨업을 할 때마다 뜰 것이다.
세 가지 다른 차원계 사이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테지만, 세 차원계는 본질적으로 전혀 달랐다.
당연히 모든 시스템의 적용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턱이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뒤틀린 시스템으로 그의 앞에 나타나리라.
동봉수는 그런 깊은 것까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얼추 비슷하게 추론은 해냈다. 그리고 결론은.
그 모든 뒤틀림이 그에게 별로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저 계속 레벨업을 하고 새로 적용된 시스템인 신무림 온라인에 적응해나가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그가 생존하는 길이었고, 더 강해지는 방법일 테니까.
동봉수는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에러박스의 우측에 있는 X자 버튼을 클릭했다.
에러박스가 사라지고 레벨2가 되면서 사용가능해지거나 변화가 생긴 여러 가지 창에 금빛이 반짝였다.
인벤토리, 스테이터스 창, 스킬 창, 퀘스트 창.
동봉수는 가장 먼저, 이제는 상당히 익숙해진 인벤토리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