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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먼 옛날 정령의 땅이라 불리웠던 왕국, 로단테.
이 왕국엔 신비한 힘을 가진 마녀가 전국을 떠돌며 살아간다.
반란의 씨앗이라는 불명예와 함께 왕궁에서 쫓겨나, 나라를 떠돌며 자신의 존재가 이 왕국에 악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
그렇게 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로단테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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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13 15:50     조회 : 285     추천 : 3     분량 : 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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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헤르바 지역은 닷새만에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처럼 조용해졌다.

 예전의 그 활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침묵만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부 집안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이유인 즉, 헤르바 지역을 습격한 마물에게서 도망치려면 그 방법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물은 굳이 마을까지 사람을 해치러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감시하듯 하늘을 날며 마을을 살폈다.

 덕분에 마을사람들은 꼼짝 못하고 집안에 갇혀 두려움에 떨기만 했다.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니 그 어디에도 이 사태를 알리지 못했다.

 그저, 약초 거래가 늦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누군가가 왕국군에 알려 구조가 오기만을 하염없이 바랄 뿐이었다.

 

 헤르바 지역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들의 약초밭은, 마물이 차지하고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곳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려는 듯.

 

 

 "흑, 흑.. 엄마.."

 

 훌쩍이며 소매를 꼬옥 붙드는 아이의 엄마는 괜찮다며 아이를 안아주었다.

 차라리 헤르바 지역을 벗어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집밖으로 나가, 마물의 눈에 띈다면.. 어찌 되는지.

 

 이미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 말이다.

 

 

 

 

 ***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말발굽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세차게 들려왔다.

 

 티폰산맥으로 향했다면 동쪽 게이트를 지났을 것이라 예상한 그는 동쪽 게이트를 살폈고, 리사의 말 대로 무언가 불에 탄 흔적을 발견했다.

 그 게이트 근처에 노블의 사병들이 치워 놓은 나무뿌리들도.

 

 게이트로 가는 길목 한복판에는 평범해 보이는 검이 땅에 꽂혀 있었다.

 다른 것들은 한쪽에 치웠지만, 미로의 주술이 걸린 그 검은 뽑히지 않아서 그대로 둔 것이었다.

 

 그것들을 발견한 그는 그 즉시 말을 달려 에스타스를 벗어나 티폰산맥 방향으로 향했다.

 

 

 

 

 ***

 

 

 

 침묵이 내려앉은 헤르바 마을.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도 된 것처럼 분위기마저 차가웠다.

 지금껏 몇 번인가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마을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미로도 처음이라 꽤나 충격적이었다.

 

 오는 길에 도깨비인 로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들은 미로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얼어 붙은 공기에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마을 안으로 수레를 끌었다.

 

 정적만이 마을을 에워싼 가운데 수레가 굴러가는 소리가 그 정적을 깨트리며 들려왔다.

 그러자, 하나 둘씩 창가에 서서 소리의 근원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분위기를 보아서는 이대로 계속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겠다고 판단한 미로는 가장 가까운 짚 앞에 수레를 세웠다.

 

 

 "잠깐 기다려."

 

 창문을 열고 아인에게 나오지 않을 것을 신신당부하고는 집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미로의 너울 속에 숨어 그녀의 머리칼에 매달리 로키는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마물을 두려워하며 덜덜 떨었다.

 

 

 문 앞에 다가선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마을을 에워싼 공기.

 

 공포다.

 

 

 "...마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미로의 목소리에 문 너머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우릴.. 다 죽일 거예요.."

 

 공포에 질린 목소리.

 

 

 "괜찮습니다. 문제가 생긴 걸 알면 왕국군이 와줄 거예요."

 "...아니요.."

 

 진정시키려는 미로의 말을 문 너머의 주민은 부정했다.

 

 

 "왕국군에 알리는 것도 불가능해요.. 헤르바에서 나가려던 사람은 전부.. 마물에게.."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거리는 목소리. 미로는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누군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왕국군이 올 때쯤이면 마을사람들은 전부 굶어 죽을 거예요."

 

 

 마을 하나를 통째로 공포에 몰아 넣을 만한 마물.

 이곳까지 습격을 시작하는 걸 보니.. 티폰산맥을 원점으로 왕국을 점거하려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연락을 취한다고 해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군대가 마물 퇴치를 위해 장비를 갖추고 이곳까지 당도하는데 아마도 수일은 걸릴 것이다.

 벌써 닷새가 이 상태가 지속 되었다면 아마도 마을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겠지.

 

 물론 그것보다도.. 내부에서 마물들을 들여보냈거나, 만들어 냈을 가능성이 있는 이상 군대가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잠시 말이 없던 미로는 이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피며 슬쩍 걷었던 천을 다시 내리며 머리에 매달려 있는 로키를 떼어냈다.

 

 "으악! 잠깐, 하지 마!"

 

 로키가 하는 말을 무시한 미로는 여전히 닫혀 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에 붙잡혀 있던 로키는 그녀가 놓아주자 금세 다시 너울 속으로 파고들어 그녀의 머리칼 사이로 숨었다.

 

 

 "약초를 좀 받아가고 싶습니다만.. 마물을 퇴치해 드리면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마을을 습격할 만한 마물을 과연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일들을 위해 시작된 여행이다.

 게다가 네이핀의 힘을 부여해, 자신을 늘 지켜주는 이가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 여겼다.

 

 미로의 말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살짝 열리고 아주 작은 틈으로 마을사람이 눈만 빼꼼 내비쳤다.

 

 

 

 

 문 앞에 서서 주민의 이야기를 대충 들은 미로가 굳게 문을 닫아주고는 만물상으로 돌아왔다.

 마물은 약초밭을 차지하고는 간간히 마을을 감시하기만 한다고 했다.

 마을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면 굳이 해치지 않는다고.

 

 만물상 안으로 들어선 미로는 렌의 상태를 먼저 살폈다.

 그 사이 그녀의 팔과 손에 붕대를 다시 감아주는 아인.

 미로는 아인이 붕대를 다 감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인."

 "응."

 

 붕대를 다 감고 렌의 이마에 물수건을 갈아주던 아인이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여기서 마물을 기다릴 시간은 없을 것 같아. 렌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필요한 약초를 가져올 테니까 절대, 절대 박으로 나오면 안돼. 알겠지? 밖에 나오지 않는 이상은 위험해지지 않는 것 같아."

 "마물한테 가려고?"

 

 놀란 아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이 마을로 내려오면 피해가 클 거야. 내가 가서 처리하고 약초 찾아 올게."

 "그래도 혼자는..!"

 "걱정 마. 여차하면 도와 달라고 할 테니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않겠다는 말에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을 숨기지 못하는 아인을 보며 미로가 재촉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면 안돼. 응?"

 

 

 마지못해 아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미로는 너울 속에 숨어 자신의 머리에 매달려 있던 로키를 다시 떼어내 아인 쪽으로 밀었다.

 

 "로키, 너도 여기 있어. 잡아 먹히고 싶지 않으면."

 "미로?! 이게 뭐야?"

 

 얼결에 미로에게서 로키를 받아 든 아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라니! 난 도깨비야!! 로키라고! 이거라고 하지 마!"

 

 아인의 손바닥 위에서 펄쩍 뛰는 로키를 보고는 픽 웃은 미로가 아인과 로키, 그리고 렌을 차례로 훑었다.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 셋 다."

 

 나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눈빛을 읽은 아인과 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야 미로는 만물상을 벗어나 마물이 차지했다는 약초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절벽 위에 위치한 약초밭.

 사람이 그곳에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절벽 반대쪽에 위치한 산길 뿐이다.

 

 걸어 올라가는 산길은 고요하기만 했다.

 울창한 나무에 가려져 하늘은 거의 보이지 않아 어두웠다.

 미로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산을 살폈다.

 

 마물은 악의와 마력이 합쳐져 생겨나는 생명체다.

 악의로부터 태어난 그들은 마물의 기운, 마기를 흩뿌리며 다닌다.

 그것은 다른 생명체가 근접해오면 달라붙어 그 생명을 갉아먹는다.

 

 그렇기에 기가 허약한 사람이나, 어린아이들은 이에 영향을 받기 쉬워서 마물들의 최상의 먹잇감이 된다.

 물론 기가 세다고 해도 마력을 가지지 않은 자들은 마물 앞에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악의를 가진 마력이 자아를 가진 것이니 마력을 가진 자만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마력을 가진 이라고 마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짙은 마기에 오래 머문 식물은 그 겉모습이 기이하게 변형하기도 하고, 사람에게 오래 머무는 경우 정신이 이상해지거나 외형이 바뀌기도 한다.

 

 약초밭으로 향하는 산을 뒤덥은 마기는 그렇게 짙지는 않았지만 산짐승들에게는 충분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를 눈치채고 전부 달아난 것인지, 새소리는커녕 이 산에 그 어떠한 생명체도 머물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바스락거리며 산을 오르는 미로만이 산에 들어선 유일한 생명체였다.

 

 

 불길한 예감을 애써 떨쳐내며 미로는 계속 걸음을 내디뎠다.

 렌의 상태가 좋지 않아 멈춰 설 수가 없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나무가 자란 산길을 지나, 한순간 탁 트인 하늘이 보이는 곳으로 나왔다.

 헤르바의 약초밭. 순간적으로 눈을 찌르는 밝은 빛에, 잠시 눈을 가렸던 미로가 다시 손을 내리고 약초밭을 바라봤다.

 

 한없이 드넓은 들판. 절벽 위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푸르렀다.

 곳곳에는 다 다른 종류의 약초들이 가득했다.

 자연적으로 졀벽위에 만들어진 이 아름다운 곳에 자라난 약초들을, 사람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관리하고, 경계를 만들어 약초를 구분하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

 

 과연 헤르바의 자랑거리일만 했다. 하지만 어쩐지 위화감이 감도는 분위기였다.

 약초밭에 도착한 미로는 그 위화감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앞뒤 생각할 겨를 없이 우선 렌의 치료에 필요한 약초를 가득 손에 넣었다.

 

 열을 내리는 약초와, 벌어진 상처를 치료할 약초.

 가져온 주머니에 약초를 가득 담고 나서야 미로는 주변을 감도는 위화감의 정체를 눈치챘다.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거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다.'

 

 즉, 약초밭을 지키고 있어야할 마물이 없었다.

 

 섬뜩한 기분에 미로가 뒤를 돌아보려는 찰나.

 

 

 끼이이이익!!!!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하늘을 뒤흔들 듯이 고막을 찔렀다.

 서둘러 살핀 상공과 산 쪽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봐도 약초밭 쪽엔 아무것도 없었다.

 

 불길한 예감을 안고 절벽에 선 미로가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

 

 

 

 "아가, 괜찮아. 이리 오렴."

 

 창가에 서있는 작은 아이를 부르는 여인.

 아무도 없는 길가를 까치발을 떠야 겨우 보일 크기의 작은 아이가 밖을 내다보고는 자신의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창밖엔 아무것도 없는데.. 왜 나가선 안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도 무거운 공기를 느끼기는 하는지 별말 없이 돌아서려 하는데, 그 순간 아이의 눈에 무언가 보였다.

 

 길바닥을 스친 검고 거대한 그림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가 순식간에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는 렌을 보며 아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짐 취급 안 하니까 안 참아도 돼."

 

 부들부들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올린 렌이 아인을 보며 힘겹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 그냥 열이 좀 나는 건데 뭐."

 

 아인은 괜스레 입술을 내밀었다.

 짐 취급하려던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한심해서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는데..

 

 인상을 찌푸린 아인이 막 그 부분을 렌에게 정정해주려던 찰나.

 

 "그-"

 "안돼!!!!!"

 

 입을 뗀 아인의 목소리 위로 만물상 밖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덧씌워졌다.

 놀란 아인이 곧장 창문으로 달려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가!! 이리 와!!"

 

 문 밖으로 나선 작은 아이. 그리고 열린 문 앞에 서서 공포에 질린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아이의 어머니.

 집 밖으로 나와있는 아이를 발견한 아인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재빨리 그 주변을 확인했다.

 

 그리고 길가에 다른 생물체는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즈음.

 

 

 끼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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