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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먼 옛날 정령의 땅이라 불리웠던 왕국, 로단테.
이 왕국엔 신비한 힘을 가진 마녀가 전국을 떠돌며 살아간다.
반란의 씨앗이라는 불명예와 함께 왕궁에서 쫓겨나, 나라를 떠돌며 자신의 존재가 이 왕국에 악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
그렇게 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로단테를 떠돈다.

 
/18
작성일 : 17-12-07 07:45     조회 : 315     추천 : 3     분량 : 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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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렌을 붙잡고 일어서려는 아인을 미로가 돌려세웠다.

 

 

 "아인!!!"

 

 귓가를 찌르듯 크게 들려오는 목소리와 자신을 흔드는 손길에 퍼뜩 정신을 차린 아인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눈으로 미로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만물상 안을 한번 훑어보고는 아직 불길이 안까지 번지지 않았음을 인지했다.

 그래도 수레 밖에 불이 붙은 것은 사실이라 열린 문으로 연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미로를 붙잡고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미로.. 수레에 불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뱉어낸 아인을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던 미로는 이내 아인이 불을 다루는 마범죄자에 의해 아버지와, 가족처럼 지내던 극단 식구들을 잃었던 것을 기억해내고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떠올렸을 것이다.

 

 마치 이 수레가 자신의 소유물인 양 제멋대로 행동해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장본인인 저 수행인 놈을 당장이라도 잡아 짓뭉개고 싶었다.

 

 

 누구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한두가지쯤 가지고 있는 법이다.

 떠올리지 않게끔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애써 분노를 다스린 미로가 아인과 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이 안까지 불길이 번질 거야. 그러기 전에 나가자. 꼭 필요한 물건만 어서 챙겨."

 "하지만 내가 밖으로 나가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는 렌이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네가 걱정해 줘야 할 만큼 곤란해지는 건 아냐. 내 선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야."

 

 단호한 그 한마디에 렌은 어쩐지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자신보다 몸집도 작은 미로에게.. 마치 보호 받는 듯한 입장에 놓인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꽤나 믿음직스러웠다.

 

 미로가 등을 떠밀자, 아인은 방으로 급히 들어가더니 늘 가지고 다니는 분장 도구가 든 가방을 챙겨 나왔다.

 마크에게서 받았던 작은 목걸이는 목에 걸어 옷 속에 감췄다.

 

 

 미로는 아인에게 렌을 맡겨 두사람을 먼저 만물상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린 할아버지한테 받은 약초들이 한번에 불에 타면 좀 곤란한데.."

 

 [그렇겠지.]

 

 

 미로의 중얼거림이 허공에 흩어지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귓가에 들려온 것이 아닌 머리속에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미로가 원하지 않는 이상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이것들 만이라도 어떻게 안될까? 약초들이 한번에 타서 연기가 퍼지면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지도 몰라."

 

 어마어마한 양의 약초들을 살피며 미로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지.]

 

 믿음직한 목소리와 함께 미로의 손으로 작은 주머니 하나가 툭 떨어졌다.

 미로가 주머니를 움켜쥐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약초들이 전부 들어갈 크기는 될 거다.]

 

 손바닥 보다도 더 작은 주머니와 한가득 눈앞에 놓인 약초들을 번갈아 바라본 미로는 의심하는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연기를 마신 탓에 만물상을 나선 아인과 렌이 기침을 토해내는 사이, 병사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상처투성이의 렌을 발견한 키리가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렸다.

 

 

 "과연. 보아라! 저 자가 마녀가 빼돌린 용의자다!!"

 

 망설이는 병사들에게 키리가 목소리 높여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몇몇 병사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키리에게 동조했을 뿐, 다른 이들은 여전히 멈칫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용의자라고는 해도 안쓰러울 정도로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길을 헤치고 나온 아직 어린 아인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것이 연기 때문만은 아닌 듯.

 

 렌을 무사히 만물상 밖까지 구출해내고도 아인은 움켜쥐었던 렌의 옷자락을 놓지 못하며 기침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눈에 띄게 몸을 떨며 만물상을 불태우고 있는 불길을 바라봤다.

 누가 보아도 불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병사들은 키리가 렌을 용의자라고 지목했음에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그 주위를 둘러싸기만 했다.

 

 

 그리고 이내 미로가 불이 붙은 만물상에서 뛰쳐나오자 키리가 보란듯이 렌과 아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째서 이 용의자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빠져나오며 불길에 데인 미로가 팔을 붙잡고는 키리를 바라봤다.

 병사들이 이미 아인과 렌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 그런 걸 인정할 리가 없지 않은가..

 

 미로는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용의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저 자와 함께 있는 것이, 당신이 저택에 침입했던 마녀라는 증거입니다. 이제 얌전히 동행하시지요."

 

 의기양양한 그의 태도에 미로는 미간을 구겼다.

 하지만 이내 기다렸다는 듯 입술 사이로 비웃음을 흘렸다.

 

 

 "이놈이 용의자라고? 그렇다면.."

 

 그 웃음이 어쩐지 기분이 나빠 키리는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된 것에 대해 제대로 해명해야 할 겁니다."

 

 키리는 입꼬리에 경련을 일으키며 미로를 바라봤다.

 

 

 "글쎄요.. 그는 처음 붙잡았을 때부터 그런 상태였습니다만."

 "그렇습니까?"

 

 

 미로는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렌을 빼돌린 이후에 그리 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면 어쩌나 살짝 긴장했는데 키리는 원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다.

 

 "저에게, 직접 잡으셨으니 의뢰를 취소한다 말하러 왔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기억합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 일을 꺼내나 불안한 눈빛이 허공을 헤매다 너울로 얼굴을 가린 미로를 향했다.

 

 

 "그날 낮에 제가 그를 만났을 때에 그는 멀쩡한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를 만나고, 당신들에게 잡히기까지 갑작스레 저렇게나 다쳤다.. 뭐 이런 말인가요?"

 

 이어진 미로의 말에 키리가 미간을 좁혔다.

 

 "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단 몇시간 만에 저런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뭐.. 뛰어난 마범죄자, 그리고 왕국군 대대장 정도가 있겠죠. 하지만 지금 현재, 에스타스에 숨어든 마범죄자도, 한가한 왕국군 대대장도 없는 걸로 압니다만."

 

 키리는 다시 초조한 듯 입술을 물어뜯었다.

 

 

 "몇시간보다는.. 꼬박 하루정도 쉴 새 없이 고문당한 상처.. 처럼 보이죠?"

 

 만일 그녀가 저택에 숨어들어 빼돌린 것이 렌이라고 주장한다면 저 상처가 저택에서 생긴 것이라는 사실을 자백하는 셈이 된다.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병사들은 미로의 말에 또 한번 멈칫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용의자라 한들, 저렇게까지 고문을 받은 것이라면 그건 잘못된 일이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범인을 저리했다고 해도 왕국군이 직접 조사를 나올 판인데, 그저 용의자일 뿐인 사람을 저지경으로 만들다니..

 

 동요하는 병사들을 힐끔거린 미로는 한걸음 다가서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 왕국에서 시민의 고신은 불법입니다만. 알고 있겠죠."

 

 입술을 지그시 깨문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 이상 우리를 붙잡는다면, 지금 달려오고 있다는 그 노블이 직접 가디언에게 문초를 받게 될 겁니다. 아니,"

 

 한층 더 차가워진 시선으로 키리를 바라보는 미로가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왕국군 쪽이 더 좋을까요?"

 

 

 하지만 키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가디언이든, 왕국군이든, 노블을 건드리는 것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키리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과감히 움직였다.

 

 그가 미로의 손목을 낚아채자, 그의 옆에 우물쭈물하던 몇 병사들도 덩달아 달려들었다.

 키리가 렌을 빼돌린 용의자로 지목했을 때에 키리에게 동조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차마 움직이지 못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작스런 접촉에 당황한 미로가 미간을 좁힌 사이, 미로의 허리춤의 주머니를 힐끔 바라본 키리가 두 개의 주머니 중 하나를 잡아챘다.

 

 저택에 침입했을 당시에도 이 이상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뿌렸고, 병사들은 기억에 혼란이 생겼었다.

 이것을 없애야 그녀를 조금 더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키리는 그녀에게서 빼앗은 것을 불타고 있는 수레를 향해 힘껏 던졌다.

 

 

 "잠..!"

 

 미로가 말릴 새도 없이 힘없이 날아가 만물상에 부딪힌 작은 주머니로 순식간에 불길이 엉겨 붙었다.

 눈에 띄게 얼굴이 일그러진 미로가 병사들의 손을 뿌리치며 손을 뻗었다.

 

 염력으로 감싸 주머니에 엉겨 붙었던 불씨는 금세 사라졌다.

 

 

 "염력계 마녀라.."

 

 이를 바라본 키리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염력계 마녀? 아니다. 그녀는 분명 생물을 다루는 마력을 지녔다.

 

 보통 마녀들과는 다른 힘. 거기에 백발.

 아니, 만일 백발이 잘못 본 것이라도.. 그녀는 보통 마녀가 아니기에 주인님이 헛걸음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불씨가 사라진 주머니는 허공에 둥둥 떠있다가 병사들이 다시 미로를 붙잡자, 바닥에 툭 떨어졌다.

 입술을 꾹 깨문 미로의 머리속은 온통 저 주머니 안의 약초가 무사할 것인가로 가득했다.

 

 말이 없는 미로를 가만히 응히사던 키리가 회중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확인했다.

 곧장 에스타스로 향하신다고 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키리는 미로를 붙잡은 병사들에게 눈짓을 했다.

 

 

 "가디언이든, 왕국군이든,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받지요. 하지만 지금은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붙들고 움직였다.

 다시 언덕을 내려가, 노블의 저택으로 향할 심산이었다.

 

 

 "놔!!"

 "저택에 당도하면 정중히 모시겠습니다. 그전까지는 참으시지요."

 

 비웃음을 머금은 키리의 말에 미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끌려가지 않으려 애썼지만 장정 여럿이 달려들어 끌고 가니, 미로는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

 

 

 "놓으라니까!!"

 

 

 이렇게 붙잡힌 상태에서 힘을 쓰면 들킬 위험이 높지만 정 안되면 네이핀의 힘을 써서라도 뿌리쳐야겠다는 생각을 한 미로가 팔을 비틀어 빠져나오려 강하게 몸부림 치던 그때.

 

 

 그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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