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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먼 옛날 정령의 땅이라 불리웠던 왕국, 로단테.
이 왕국엔 신비한 힘을 가진 마녀가 전국을 떠돌며 살아간다.
반란의 씨앗이라는 불명예와 함께 왕궁에서 쫓겨나, 나라를 떠돌며 자신의 존재가 이 왕국에 악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
그렇게 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로단테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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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26 19:01     조회 : 295     추천 : 5     분량 : 4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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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고막을 때리는 굉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모두가 멈칫한 그 찰나에 병사들 틈으로 밀고 들어온 마크가 미로에게서 병사를 떼어놓았다.

 

 "이야, 혹시 몰라서 와봤더니 난장판이네."

 

 숨이 찬 미로가 살짝 고개를 떨궜다.

 

 괴상한 물건을 손에 든 마크를 병사들이 주춤거리며 경계했다.

 길고 날카로운 것이 검처럼 보였지만 그가 그것을 휘두르자 또다시 탕!! 하고 굉음이 들려왔다.

 굉음과 함께 압축되었던 공기가 한순간 퍼지듯이 눈도 뜨기 힘든 바람이 짧은 순간 불었다.

 

 정통으로 맞으면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 같은 물건이었다.

 그리고 역시 이번에도 마력을 이용한 물건처럼 보였다.

 

 그와 그의 손에 든 무기 덕분에 병사들은 쉬이 다가오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움찔거렸다.

 그 사이 미로가 주머니에서 꺼낸 망각초를 잘게 부쉈다.

 

 "덕분에 시간을 벌었습니다."

 

 힐끔 담장과의 거리를 가늠한 미로가 살의가 형형한 눈으로 병사들과 저택을 노려보는 마크를 보고는 부순 망각초를 더욱 꾹 움켜쥐었다.

 

 하루였다. 단 하루만에 그렇게나 처참히 만신창이가 되어 나타났는데 어찌 마음이 온전할까.

 

 마크는 금방이라도 날뛸 것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겼다.

 병사들도 그의 그런 심상치 않은 살의를 감지했는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물러나지 마라!! 당장 잡아!!"

 

 그런 병사들을 뚫고 키리가 성큼성큼 미로를 향해 다가왔다.

 미로는 마크의 손목에 살포시 손을 올려 놓으며 또렷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봤다.

 

 "참으세요. 탈출이 우선입니다."

 "....."

 

 마크가 대답없이 매섭게 병사들을 노려보고만 있자, 미로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해서 와보았다고 하더니 순전히 날뛰러 왔던 모양이었다.

 

 "렌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어서 돌아가시죠."

 

 매섭게 병사들을 노려보던 마크는 잠시 숨을 거칠게 쉬더니 이내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에 성공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담벼락 쪽으로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긴장으로 공기가 가득 차 있었고 병사들은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고 움찔거리며 거리를 유지하기만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담벼락에 가까워졌다고 판단했을 즈음.

 

 "당장 붙잡지 못해?!!"

 

 키리가 버럭 고함을 내지르자, 병사들이 너도나도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로가 지금껏 손에 움켜쥐고 있던 잘게 부신 망각초를 병사들을 향해 흩뿌렸고, 그 틈에 마크가 달려나가 손으로 눈을 가린 병사를 있는 힘껏 밟고 뛰어올랐다.

 

 그 뒤를 미로가 곧장 따랐고, 그녀 역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잡아!!!"

 

 키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병사들은 두 사람이 그 정도 점프로는 절대로 담을 넘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 땅에 내려서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미로가 손을 뻗자 담장 너머에서 나뭇가지가 빠르게 내려와 마크와 미로를 붙잡았다.

 

 

 "안돼!!"

 

 두 사람이 담 끝까지 오를 즈음, 키리가 활을 들고 있는 병사에게 소리쳤다.

 

 "당장 쏴! 맞춰서 떨어트려!!"

 

 반사적으로 당겼던 활시위를 놓자, 화살이 빠르게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마크를 노리고 날아오는 화살을 발견한 미로가 몸을 던져 그를 담벼락 너머로 밀쳤다.

 그리고 화살은 길게 늘어틀니 그녀의 흑발에 엉켜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며 그 가발을 벗겨냈다.

 

 

 "....."

 

 검은 머리칼 사이로 새하얀 백발이 드러남과 동시에 두 사람은 담벼락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키리는 두 눈을 의심했다.

 지금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자신할 수 없었다.

 

 워낙 순간적이었어서 자신이 본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당장 쫓아!!"

 

 날이 선 목소리로 외쳤지만 저택을 둘러싸고 거대한 나무뿌리가 겹겹이 게이트는 물론 작은 개구멍 조차도 단단히 막아 놔서 병사들은 이도저도 못하고 한참이나 나무뿌리를 베며 쩔쩔맸다.

 

 그 결과 그들이 게이트를 빠져나왔을 때에는 주변에 한밤중의 침묵 이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어둠을 노려보던 키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중얼거렸다.

 

 

 "...백발.."

 

 그냥 잘못 본 것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백발의 마녀'는 의미하는 바가 컸다.

 

 주인님께 보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

 

 

 "하여튼.. 그래서 내가 늘 말했잖아. 조심, 또 조심하라고."

 "하하..."

 

 잔소리를 퍼붓는 마크를 보며 렌은 그저 어색하게 웃음지을 뿐이었다.

 

 "정체라도 드러났으면 어쩔 뻔했어."

 "그럴 리가. 그래서 얌전히 잡혀 있었잖아."

 "그건 그거 대로 문제야!"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며 웃는 렌을 보며 마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경 쓰인다..하기 보다는 걱정한 건데.'

 

 하지만 렌에게 콕 집어 말하지는 못하고 괜스레 툴툴거리는 마크였다.

 픽 웃은 렌은 머리를 벽에 기대며 물었다.

 

 "미로는?"

 "올 거야. 곧."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여자는 저리 기다리면서 걱정했는지 신경 썼는지도 구분 못하는 머저리라며 마크는 또다시 혼자서 툴툴거렸다.

 

 

 노블의 저택에서 탈출하고 이제 이틀.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 만을 남긴 미로는 지하감옥에 갇혀 있던 여자들을 위해 왕국군의 부대로 향해서 그 후로 아직 보질 못했다.

 

 아직 렌은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만 마냥 에스타스에 머무를 수도 없게 되었다.

 

 

 

 

 ***

 

 

 

 대저택의 복도를 거니는 키리의 표정은 꽤나 험악하게 굳어져 있었다.

 타마린드 아가씨는 요 며칠 사이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 마녀의 짓이겠지..'

 

 입술을 깨문 그는 걸음을 서둘렀다.

 

 

 

 

 ***

 

 

 

 아쿠아 펜션을 나서는 미로는 미소를 머금고 리사의 곁에 서있는 에밀리에게 다가갔다.

 

 "꼭 다시 만나러 올 게."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 에밀리는 살며시 리사의 손을 붙잡았다.

 다행히도 리사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좀 더 있다가 가면 좋을 텐데.."

 "응. 일을 제대로 마무리 못하고 가는 것 같아서 좀 그렇네. 뒷일은 부탁해도 되겠지?"

 

 아쉬움에 한 소린데 또 일을 맡긴다며 리사가 툴툴거렸다.

 

 저택 지하에서 발견된 여자들은 전부 왕국군 부대에 데려갔다.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또 다시 이런 문제가 생긴다면 가만 있지 않을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과 함께 여자들의 보호를 왕국군에 맡겼다.

 

 아마 이 일이 왕궁에 알려지면 그녀 역시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미로가 아는 그녀라면 분명.

 게다가 타마린드 가의 발목을 붙잡을 명분이 되어줄 터였다.

 

 미로가 일을 해결하는 동안 리사가 준비를 서둘러 준 덕분에, 금방 에스타스를 떠날 수 있었다.

 물론 마음이야 더 머물고 싶었다.

 에밀리와도 조금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하지만 아무래도 화살에 걸려 가발이 벗겨졌던 것이 영 찜찜했다.

 덕분에 마크에게 머리를 보였지만 그와는 렌의 일이 있으니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지난 이틀간 에스타스의 노블, 타마린드 저택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노블 본인이 수도에 머무르고 있기에 그와 연락을 취하는 데에 시간이 걸려서 일 것이라고 미로는 추측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지금 바로 떠나야 하는 것이다.

 

 "예정보다 좀 더 빨리 가게 됐지만.. 그래도 에밀리. 여기가 이제 네 집이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지내야 돼. 내가 다시 왔을 적에는 나에게 들려줄 즐거운 이야기들이 잔뜩 있도록. 알겠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던 에밀리가 그제야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 미소를 보고 나서야 한시름 놓는지 미로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인은 줄곧 아무런 말도 없다가 에밀리가 미소를 머금자 비로소 용기가 생기는지 한걸음 내디뎠다.

 

 

 "에밀리."

 

 아인의 부름에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아인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어려운 듯이. 그러더니 두 눈을 질끈 감고서 말했다.

 

 "다음에 만날 때엔 더 강한 사람이 될 게. 절대로, 두 번 다시 도망치는 겁쟁이가 되지 않을 게."

 

 도톰한 입술을 휘며 곡선을 그린 에밀리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미로와 아인, 두 사람을 차례차례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작게 입술을 벌려 말했다.

 

 

 "다녀오세요."

 

 그 고운 목소리를 등에 지고 미로와 아인은 수레를 끌고 펜션을 벗어날 수 있었다.

 

 

 

 

 

 "바로 에스타스를 떠나는 거야?"

 

 수레를 함께 밀며 아인이 묻자, 미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 비밀을 알아버린 그 놈, 어디 가서 못 떠벌리게 내가 데려가야지."

 

 

 

 

 ***

 

 

 

 미로가 떠나고 어쩐지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선 에밀리.

 조금 풀이 죽은 그녀를 보고는 리사가 괜스레 일거리를 만들려 애썼다.

 

 "에밀리도 만들어 볼래? 수제 인형."

 

 리사가 손에 집어 든 인형을 바라본 에밀리가 옅은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쯤 이 아이가,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뚜렷하고 솔직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될까..

 그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평생 흉이 남을 걸 알면서도 리사는 괜스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자신이 그 상처보다도 더 살뜰히 살피고 아끼면 이 아이가 행복해질지도 모르니까.

 

 두 사람은 손님들이 관광을 위해 빠져나간 조용한 홀에 앉아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수제 인형을 만들었다.

 그렇게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두 사람을 방해하는 종 소리가 들려왔다.

 

 뎅- 뎅-

 

 문에 달린 종과는 다른 종소리였다.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리사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혹시 무언가를 두고 간 미로가 다시 돌아온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현관으로 향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미로는 단 한번도 종을 울린 적이 없었다. 늘 불쑥불쑥 나타났었지.

 

 펜션의 손님이라면 종을 울리지 않고 그냥 들어왔을 것이었다.

 문밖에 매달아 둔 소리가 다른 이 작은 종은 리사 개인에게 오는 손님 용이었다.

 주로 정보 의뢰를 하러 오는 손님들.

 

 "네- 누구세요?"

 

 하지만 문을 열은 그곳에 서있던 것은 다시 돌아온 미로도, 리사 개인에게 온 손님도 아니었다.

 

 그 인물을 발견한 리사는 단번에 인상을 구기며 싫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꽤나 실례되는 행동이었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무슨 일이세요?"

 

 그렇게 묻는 리사의 목소리가, 표정이.

 그녀는 온몸으로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정말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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