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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 세계의 이야기
작가 : macarong
작품등록일 : 2017.10.30

[현대판타지]
일그러진 세계, 탐욕으로 물든 전쟁속에서 깨어나서는 안될 존재들이 눈을 뜬다

다가오는 그 날을 막기 위해 자신을 망가트려야만 했던 그 세계의 이야기

 
#0009 세계의 모순
작성일 : 17-11-20 20:57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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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할 영감 탱이…! 저번 조율에서 내가 실수를 좀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곳에 보낼 것까진 없잖아!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나 두고 보라고 젠장…”

 

  결계의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서재민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서재민은 기지개를 펴며 피곤한 듯이 바닥에 드러눕는다.

 

 “하아암… 잠이나 잘까”

 

  단주에게 몇 시간에 가까운 설교를 듣고 온 탓인지 눈꺼풀이 무겁다. 서재민은 굳이 자신이 이곳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누가 감히 조율자들의 결계를 침범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자신의 처지에 자고 있는 모습마저 들켜버린다면 다음엔 정말로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서재민은 어쩔 수 없이 하는 시늉이라도 하기 위해 반쯤 감은 눈으로 결계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어라? 저 녀석은 뭐야?”

 

  멍하니 입구를 바라보던 서재민은 결계를 향해 다가오는 불청객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린다.

  은차산은 산의 중심에 위치한 결계석의 능력으로 공간이 왜곡되어 있었기에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갑작스레 나타난 불청객은 보일 리 없는 결계의 입구를 향해 곧장 걸어오고 있었다.

 

 “제발 그냥 가라”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왜곡된 공간을 인지하지 못한 채 결계를 둘러서 갈 것이다. 되도록 귀찮은 일은 사양하고 싶었던 서재민은 그저 우연이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불청객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하지만 서재민의 바람과는 달리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불청객은 그대로 결계의 입구를 넘어섰다.

  불청객이 침입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젠장!”

 

  서재민은 욕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침입자가 가문의 결계로 들어온 상황, 본래라면 가문에 침입자에 대한 것을 보고해야 하지만 서재민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조율에서 자신을 제외시켜버린 단주를 향한 사소한 반항이기도 했지만 이 기회에 혼자서 침입자를 붙잡아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완벽한 계획에 서재민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먹잇감을 노려보았다.

 

 “하필이면 내가 지키고 있을 때 들어와버린 네놈의 운을 탓하라고!”

 

  서재민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침입자를 향해 기세 좋게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침입자와의 거리를 좁힌 서재민은 자신의 마력을 이용하여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쏟아져 나온 마력은 침입자를 둘러싼 공간을 멈춰 세웠고 서재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 순간, 또다른 마력이 멈춰버린 공간을 강제로 밀어내며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낸다.

 

 “큭?!”

 

  서재민의 검은 침입자에게 닿지 못한 채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 충격에 검을 놓쳐버린 서재민은 얼얼한 손목을 감싸 쥐며 인상을 찌푸린다. 자신의 공간을 상쇄시켰다는 것은 상대가 자신과 같은 공간을 다루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뜻이었다. 그 능력은 오로지 공간의 가문의 조율자들에게만 허락된 것, 서재민은 고개를 들어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누구인지가 떠오르지를 않는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황, 유심히 상대를 바라보던 서재민의 표정이 돌처럼 굳는다.

 

 “당신은 설마…”

 

  그제서야 침입자의 정체를 알아챈 서재민은 경악했다.

 

 “어째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돌아오신 겁니까!”

 

  십여 년 전 자신의 의지로 조율자이기를 포기하고 가문을 떠난 배신자, 서재민은 자신의 검을 주워 들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오랜만이구나”

 

  서지훈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옛 제자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아... 자신의 처지는 알고 계십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저 잠깐 가주님을 만나기 위해 왔을 뿐이야”

 

  가주를 만나기 위해서 왔다는 서지훈의 표정은 가주를 죽이러 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서재민은 이를 악물고 서지훈의 앞을 막아 섰다.

 

 “배신자를 가문에 올려 보낼 순 없습니다”

 “하아…”

 

  서지훈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이러는 와중에도 서지애는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고작 이런 곳에서 허비할 순 없었다.

  되도록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서지훈은 초조함을 참기 위해 주먹을 움켜쥐었다.

 

 “비켜라”

 “그럴 순 없습니다”

 “후우… 마지막 경고다. 비켜”

 “…”

 

  서재민에게 서지훈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 같은 존재였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전 과거일 뿐, 서재민은 흘러간 시간만큼 자신도 강해졌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재민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자신의 스승이었던 자를 노려보았다.

 

 “넌 항상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버릇이 있었지. 어쩔 수 없구나”

 

  서지훈은 변함없는 제자의 어리석음에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었다. 마력이 요동치는 것을 느낀 서재민은 서둘러 서지훈과의 거리를 벌린다.

  거대한 마법진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공간에 새겨진다. 서지훈의 손끝에 모여든 마력은 마법진을 통해 푸른 칼날이 되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저기에 닿으면 순식간에 두 동강나버리겠군’

 

  서재민은 정신을 집중하고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칼날을 바라보았다. 칼날의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오히려 느리다는 생각이 들 정도, 서재민은 자신이 강해졌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거라 생각하며 아무런 의심도 없이 칼날을 피해 몸을 숙였다.

 

 “어?!”

 

  애초에 칼날은 눈속임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서재민은 자신의 멍청함에 고개를 숙인다.

 

 “너도 여전하구나. 곧 풀릴 테니 잠시만 그렇게 있어라”

 

  서지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서재민을 지나쳐 산을 올라간다. 격리된 공간 속에 갇혀버린 서재민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격리되어 있던 공간이 사라지며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서재민은 서둘러 서지훈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에선 서지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서재민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따라간다고 해서 자신이 어찌해볼 상대가 아니다. 비록 속임수에 당하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힘의 차이는 역력했다.

 

 “하 도대체 저 분이 왜 다시 가문으로 돌아온 거야?”

 

  서재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보석을 꺼내 들었다.

 

 “으.. 지금이라도 보고해야겠지?”

 

  망설이던 서재민은 떨리는 손으로 보석을 움켜쥐고 그것에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는다. 마력을 머금은 보석은 옅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고 곧 보석에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저 그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잠시 말을 더듬던 서재민은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주님 소가주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무슨 소리냐구요? 아.. 전 소가주 서지훈이 돌아왔습니다. 아니 장난하는게 아니라 진짜라니까요?! 예에? 그런데 뭐하고 있냐구요? 지금 단주님에게 보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 이미 가문으로 올라갔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까지 제정신이니까 조금 진정하세요. 제가 어떻게 그 사람을 막습니까! 아니 대드는 게 아니라요… 단주님은 제 걱정도 안되십니까? 아.. 상관없다구요… 아무튼 방금 전에 올라갔으니 곧 그쪽에 도착할 겁니다. 단주님도 겪어보면 아시겠죠. 아무튼 조심하십쇼”

 

  상대방과의 연결이 끊어지며 보석은 다시 빛을 잃는다.

 

 “에라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젠장할!”

 

  서재민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눈앞에 있던 거대한 바위를 걷어찼다.

  그 순간, 거대한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서재민은 당황하며 움직이는 바위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바위의 윗부분이 미끄러지듯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서재민은 그곳이 아까 전 자신이 피했던 칼날이 지나간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

 

  바위가 미끄러지며 드러난 절단면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물질을 이루고 있는 마력에는 다른 마력에 저항하려는 항마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바위와 같은 자연적인 물질들의 경우 다른 것들에 비해 월등한 항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서지훈은 그 정도의 항마력을 지니고 있는 바위를 마치 두부 썰 듯 깔끔하게 잘라버린 것이다.

 

 “변함없이 괴물이구나…”

 

  서재민은 그 칼날이 속임수였던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마 피하지 않았더라면 자신도 이 바위처럼 깔끔하게 반 토막 났을 것이다.

  그 순간, 미끄러지던 바위가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고 거대한 굉음과 함께 대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어? 어라?!”

 

  풍경이 떨어져 내린다.

  눈앞에 펼쳐지는 압도적인 광경에 서재민은 미처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세상이 반으로 접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다리가 풀려버린 서재민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았다. 다른 생각은 할 수 없다. 지금은 그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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