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가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반겨준 건 영정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다은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설화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대로 사진 앞에 주저앉아 흐느끼는 딸의 친구를 향해 다은의 어머니가 다가왔다. 건강이 나빠져 걸음을 힘겹게 옮기던 그녀는 설화를 가만히 안으며 말했다.
“설화야. 우리 이제 그만 다은이 놓아주자. 우리 다은이, 하늘나라 가서 마음 편하게 보내주자.”
“안돼요. 어머니, 안돼요. 다은이 죽지 않았어요. 제가 찾아낼 거라고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발요.”
“어젯밤 꿈에 다은이가 나왔어. 이제 그만 보내달라고 그러더라, 우리 다은이가.”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세상이 끝나 버린 것처럼 설화는 서럽게 울었다. 이런 상황만은 오지 않길 바랐기에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장례식장의 한 구석에서 설화는 다은의 사진만을 보면서 앉아있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이는 그녀를 조문객들은 흘끔 흘끔 쳐다보곤 했다. 다은의 부모님은 그런 설화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설화야. 이거, 네가 사람들 앞에서 읽어줄래? 부탁한다.”
다은이의 언니는 창백한 모습으로 설화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친숙한 필체의 글이 적혀있었다. 다은의 유서였다. 편지지가 아닌 연습장에서 한 장 찢은 것처럼 보이는 그 종이에 다은이는 짤막한 글을 적어놓았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해요. 불효라는 걸 알지만 더는 살고 싶지가 않아요. 대학에 합격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너무 염치없고 부끄러웠어요. 절 잊어주세요. 더는 기억하지 마세요. 효도하고 싶었는데 못난 자식이라 그러지도 못하고, 이렇게 먼저 떠나요. 제가 하늘에서 지켜드릴게요. 정말 죄송해요. 언니, 미안해. 부모님 잘 부탁할게. 그리고 내 친구 설화야. 대학교 합격한 거 정말 축하해. 모두 정말 사랑했어요. 그리고 사랑해줘서 고마웠습니다. -정다은-
종이 위에는 눈물자국으로 보이는 얼룩이 드문드문 보였다. 다은이가 유서를 쓰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하는 생각에 설화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녀는 유서를 보물처럼 가슴에 품고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런 설화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유 원장인가 하며 위를 보던 설화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보고 싶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 것이었다.
“김설화, 너 대체 몇 시간을 이러고 있었던 거야? 집에 연락도 하지 않고! 선생님께 물어서 찾았잖아!”
부모님은 설화를 보자마자 화부터 냈다.
“교복입고 볼썽사납게 뭐하는 짓이냐. 남들 보는 눈도 있는데! 어서 가자.”
그러나 설화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녀의 팔을 잡아 당겼다.
“얘가 왜이래? 빨리 일어나. 여기 기자들도 있는 거 모르니!”
“너 아버지 창피 주려고 작정했어?! 회사 이미지 나빠지게!”
그 말을 들은 설화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봤다.
“창피요?”
“그만하면 됐다. 친구 때문에 부모망신 시켜서야 되겠냐!”
설화는 어이가 없고 기가 찼다.
“아버지! 지금 전 친구를 잃었어요. 그게 어떻게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거란 말씀이세요?! 제 심정이 어떤지 모르시는 거예요?”
그녀의 반항에 어머니는 황당해하며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설화의 큰 목소리 때문에 장례식장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조용히 하지 못하겠니? 다들 쳐다보잖아. 자꾸 아버지께 말대답할거야?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니! 몰상식하게 왜 이러는 거야.”
“장차 한 기업을 이끌 놈이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되겠냐!”
화가 난 아버지는 설화에게 악을 질렀다.
“아버지는 제가 없어져도 회사만 신경 쓰실 분이군요. 정말 실망입니다, 아버지.”
설화는 유서를 떨어뜨리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뛰었다. 어디든 부모님에게서 멀리 떨어질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달린 뒤 설화는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겨울이라 그런지 달릴 때 흘린 땀이 차가운 바람에 의해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는 한기가 몰려왔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자 설화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곳은 다은이 사라진 유성 공원이었다. 수사가 종결된 후 공원도 다시 개방되었다. 새벽이라 어둠이 깔려서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도 없고 쥐죽은 듯 조용했다. 설화는 다은의 유서가 발견된 다리 위로 올라갔다. 달빛에 반사된 강물은 잔잔해서 음산해 보이기까지 했다. 설화는 다은이가 간절히 보고 싶었다. 만약 정말 그녀가 여기서 뛰어내렸다면 그 기분이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다은의 마지막 순간을 느껴보고 싶었다. 설화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설화는 신발을 벗고 차가운 다리에 섰다. 바닥의 냉기에 발이 어는 것 같았다. 찌르는 듯 고통스러운 아픔을 느끼며 설화는 그대로 있었다. 설화는 유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고 통화는 자연스럽게 음성사서함으로 연결 되었다.
“원장님. 다은이, 오늘 정식으로 죽은 걸로 되었어요. 정말 살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다 끝났어요.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저 지금 다은이가 사라진 곳에 있어요. 다은이처럼 서있는데 발이 너무 시려서 끊어질 것 같아요. 그 애도 저처럼 추웠겠죠. 힘들었겠죠. 원장님, 전 정말 다은이가 보고 싶어요. 너무, 너무….”
설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음성사서함에 녹음이 되었다. 녹음이 저장되도록 해놓은 후 설화는 휴대전화를 강에 떨어뜨려보았다. 퐁당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속으로 전화기는 사라졌다. 설화는 그 모습에서 다은이를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은이가 보이는 물속으로 들어가고만 싶었다. 물을 향해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던 설화는 몸의 중심을 잃고 다리위에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