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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정상인 병동
작가 : 쉐리
작품등록일 : 2017.10.30

대한민국 청소년이 가장 많이 자살하는 때가 언제인 줄 아는가?
바로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시기이다.
한명, 두명씩 사라지는 아이들..
이 아이들의 공통점은 '유서'를 남긴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사건을 그저 '자/실사건'으로 취급한다. 자살인지 실종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자/실사건에 설화의 친구 다은이 휘말리게 되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설화는 의외의 장소에서 다은과 마주하게 된다.
과연 그들이 마주친 곳은..?

인간의 심리를 다룬 이야기.

 
3화
작성일 : 17-10-30 14:17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7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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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리에 든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설화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 다은이가 맞이하게 될 힘든 상황들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에게 ‘재수’라는 단어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얼마나 힘들게 1년을 보냈는지 알기에 그 생활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설화는 한 번도 재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그녀와는 먼 얘기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절친한 친구가 재수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기 싫은 공부를 1년이나 더 하면서 다은이가 버틸 수 있을지 설화는 의문이었다. 지금 다은에게 설화는 얄미운 존재일 것 같았다. 같이 공부한 친구가 혼자만 붙고 자신은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설화도 괜히 화가 나고 그 친구가 미워질 거라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설화는 자신이 다은에게 미움당할까 봐 걱정스러웠다.

  한 참을 생각에 잠겨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누워있던 다은이가 자꾸만 몸을 뒤척이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 으. 윽.”

  설화는 무슨 일인가 싶어 방의 불을 켰다. 다은이는 옆으로 누워 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과 머리는 식은땀으로 온통 젖어 있었다.

  “다은아, 왜 그래! 어디 아파?”

  “배, 배가.. 배가 너무 아파.”

  설화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일어날 기운도 없어 보이는 다은이에게 겉옷을 입히고 자신도 잠옷위에 대충 옷을 걸쳤다. 다은이를 등에 업은 설화는 집에서 15분 정도 걸리는 큰 병원으로 뛰어갔다. 도착했을 때에는 설화도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여기요! 여기 환자 있어요. 도와주세요!”

  설화의 외침에 간호사 두 명이 달려와 다은이를 침대에 눕혔다. 등에서 다은이가 옮겨지자, 설화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은이는 서둘러 응급실로 옮겨졌다. 간호사의 부축으로 간이 의자에 앉은 설화는 너무 놀라고 긴장해서 온 몸이 다 떨릴 정도였다.

  “아까 그 환자 보호자 맞죠.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친구세요? 그럼 그 환자 가족에게 연락 좀 해주세요. 작성할 게 있으니까 빨리 오시라고 하세요. 접수대에서 전화 사용하세요.”

  설화는 너무 당황해서 간호사의 말이 귀에 잘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은의 집에 전화해야 한다는 사실은 병원에 오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은의 집에 전화했다. 그녀의 어머니께서는 설화의 말에 아연실색하시며 당장 오시겠다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간이 의자에 앉으려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김재규 사장님의 자제분 아니신가요?”

  낭랑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몇 시간 전 텔레비전에서 본 유 마리아 병원장이 설화 앞에 서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그녀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의사 두 명이 서있었다.

  “마, 맞는데요.”

  유 마리아 원장은 설화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그리고 뒤에 있는 의사에게 뭐라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러자 두 의사는 유 원장에게 살짝 고개 인사를 하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유 원장은 설화의 옆에 앉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병원에는 무슨 일로 온 거에요? 가족 중에 누가 아픈가요?”

  “아, 아뇨. 저희 식구들은 모두 지금 국내에 없어요. 실은 제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같이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복통이 심했나 보네요. 내가 가서 상태가 어떤지 알아볼게요. 걱정하지 말고 있어요.”

  다은이의 생김새도 묻지 않고 유 원장은 응급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리고 유 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설화에게 물었다.

  “저기,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러는데. 이름이 어떻게 되죠?”

  “저요? 저는 김설화라고 합니다.”

  “맞다. 눈꽃! 전에 이름 듣고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어요. 설화양, 친구는 괜찮아요. 며칠 동안 잠을 충분히 못자서 과로가 왔고, 배탈이 겹친 거예요. 밥을 갑자기 많이 먹은 모양이더군요. 심각한 정도는 아니고 금방 나을 거니까 안심해도 되요.”

  “네. 감사합니다.”

  원장의 말에 설화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설화양의 친구 안색이 좋지 않던데 맥박도 너무 약해져있고. 혹시 요새 무슨 큰 충격 받은 일이 있었나요?”

  “실은, 그 친구가 수능 시험을 잘 보지 못해서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아요.”

  그녀의 다정한 말투에 설화는 자신도 모르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역시 그렇군요. 친구는 지금 몸이 너무 많이 약해져 있어요. 아니, 몸보다는 마음이 쇠약해져 있다고 해야 맞겠네요. 하루라도 빨리 정신적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게 친구의 건강에 좋을 거예요. 옆에서 잘 보살펴 줘야 해요. 알았죠?”

  병원장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설화에게 당부했다.

  “…네, 감사합니다. 병원장님.”

  “그렇게 어려워할 거 없어요. 김 사장님하고는 잘 아는 사이니까 아버지 친구처럼 생각하세요. 나도 내 친 자식처럼 생각할 테니까.”

  “예? 아, 알겠습니다. 병원장님.”

  “어머, 또 그런다. 예의가 무척 바르네요.”

  그녀는 설화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앞으로 무슨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날 찾아와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아낌없이 도울 테니까.”

  유 원장은 다시 한 번 환하게 웃어보이고는 차갑게 얼어있는 설화의 손을 잡아주었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에 설화도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유 원장은 정말 다은이의 부러움을 받을 만 한 사람이었다.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앉아있는데, 허겁지겁 병원으로 들어서는 다은의 부모님이 보였다. 설화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들에게 여기라고 손짓 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셔서 설화가 있는 쪽으로 뛰어오셨다. 그분들은 설화와 옆에 서있는 유 원장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설화야. 어떻게 된 거니?”

  “배탈입니다. 과로를 해서 몸이 많이 약해져있고요.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니 염려 마세요. 자세한 건 저희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말씀드릴 겁니다.”

  유 원장은 늘 해오던 일이라는 듯 여유 있게 병명을 설명했다. 그녀는 굳이 자신이 병원장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기에 다은의 부모님은 이미 눈치 챈 듯 보였다.

  “어휴, 다행이다. 난 또 너무 놀라서…. 그런데 설화야. 다은이가 시험에 관해서 무슨 말 하지 않았니?”

  어머님은 설화에게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설화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설화가 대답을 하지 않고 있자, 어머님께서 말을 이으셨다.

  “어제 집에 밤 11시가 넘어서 들어왔거든. 어디서 있었는지 몸이 꽁꽁 얼었더라고.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오늘도 그래. 아까 너희 집에서 자고 온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어. 속상해 죽겠다니까. 너한테 무슨 말 없었어?”

  설화가 망설이며 이야기를 주저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다은의 부모님을 불렀다.

  “정다은씨 보호자 분! 이리로 오셔서 서류 작성해주세요.”

  부모님께서 접수대로 가신 후, 설화는 실의에 빠졌다. 다은이의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다은이의 상태는 지금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깨질 수 있는 살얼음과 같았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설화는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 원장이 설화의 팔을 붙잡았다.

  “설화양. 괜찮아요? 안에 들어가서 친구 얼굴 보고 갈래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설화를 데리고 유 원장은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링거를 맞고 있는 다은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핏기 없는 유령 같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설화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재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다은에게 더 끔찍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설화를 엄습해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거지?”

  응급실을 나오던 설화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원장은 그녀의 말을 들은 듯 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말했다.

  “설화양.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집까지 태워다 줄게요.”

  “예? 아니에요. 저희 집 가까워요. 걸어가면 금방이에요.”

  설화는 그렇게까지 신세질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 몇 신 줄이나 알아요? 새벽 3시가 넘었어요. 아무리 집이 가까워도 여자 혼자 걸어 다니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병원장은 마치 드라마 속의 자상한 엄마처럼 다정히 말했다.

  “정말 괜찮아요.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원장님.”

  “설화양을 그냥 보내면 내가 나중에 설화양 부모님 얼굴을 어떻게 보겠어요? 어차피 나도 지금 퇴근하려던 참이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계속되는 설득에 설화는 유 원장의 호의를 기꺼이 받기로 했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종합병원의 총 책임자이면서도 친절하고 배려 깊은 그녀의 모습에 설화는 부러움과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설화양은 수학능력시험 잘 치렀어요?”

  시선은 앞으로 고정한 채, 유 원장은 물었다.

  “아, 실은 저, 수시 1학기로 이미 합격했어요.”

  사실대로 말을 하면서도 설화는 자신이 잘못이라도 한 듯이 마음이 찜찜했다.

  “그래요? 대단하네요. 역시 장차 대기업을 이끌 후계자다워요.”

  “아닙니다.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유 원장은 도착할 때까지 설화를 칭찬했다. 훌륭하기로 유명한 사람에게 그런 칭찬을 받으니 설화는 멋쩍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잘 들어가요. 친구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설화는 유 원장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대로 서있었다. 왜 많은 여성들이 되고 싶어 하는 미래상으로 그녀를 뽑는지 이해가 되었다. 설화 역시도 10년 뒤에는 그녀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튿날, 다은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불안해진 설화는 교무실로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낯빛이 어두워있었다. 왜 찾아왔는지 알고 있다는 듯 선생님은 설화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다은이 부모님께 연락이 왔는데, 울면서 말씀하시더라. 다은이가 실종됐다고.”

  설화는 ‘헉’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뜨고 선생님을 쳐다봤다.

  “마,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요! 어제, 어제 분명히…!”

  어제 새벽, 퇴원하는 길에 다은의 부모님은 설화의 집에 들러 다은의 교복과 가방을 가져 가셨다. 그들을 마중하며 차 뒷좌석에 누워있는 다은이를 확실히 보았기에 선생님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아침에 방문을 열어보니 다은이가 없었대. 그래서 학교에 갔나하고 장롱을 열어보니까 교복이랑 가방이 그대로 있었다는 구나. 잠옷 바람으로 나간 것 같다고 하시더라.”

  설화의 심장은 튀어나올 기세로 쿵쾅거렸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기운이 빠져 설화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선생님은 그런 설화를 부축하며 위로했다.

  “괜찮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다은이, 곧 돌아 올 거야.”

  선생님은 마치 그 말을 자신에게 하는 듯 보였다. 그녀 또한 정신이 반쯤 나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교무실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건장해 보이는 중년 남성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정다은 양 담임선생님 계십니까?”

  선생님은 얼굴이 거의 흙빛으로 변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전데요. 누구시죠?”

  두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서 단숨에 선생님 앞에 섰다. 그들은 경찰임을 입증하는 자격증을 살짝 들어 선생님의 앞에 내밀었다.

  “경찰입니다. 정다은양이 자살한 것으로 추정돼서 조사 중입니다. 같이 서까지 가셔서 조사에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은 너무 놀란 나머지 짧은 비명소리를 지르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설화 역시 경찰의 말에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굳은 듯이 서있었다. 경찰들은 학년부장 선생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얼빠진 표정의 담임선생님을 부축하고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설화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설화는 ‘말도 안 돼’라는 말을 계속 되 뇌이며 미친 듯이 교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걸음이 빠른 경찰들은 선생님을 거의 끌다시피 하며 운동장에 세워 둔 경찰차로 걸어가고 있었다. 설화는 다급히 뛰어가 그들 앞을 막아섰다.

  “…저기요. 제가 어제 다, 다은이랑 같이 있었거든요. 저, 저도 갈, 갈게요!”

  설화는 숨이 차서 말을 잘 할 수 없었다.

  “뭐라고? 그런 말은 듣지 못했는데.”

  경찰이 놀라서 설화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제 저희 집에서 자다가 응급실에 실려 간 거예요. 그러니까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다은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학생 말대로라면 같이 가야겠군. 학생도 조사해봐야 하니까 말이야.”

  말을 마친 경찰은 선생님과 설화를 경찰차 뒷좌석에 타게 했다. 경찰서로 이동하는 동안 선생님은 두 손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못했다. 자꾸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선생님에 반해, 설화는 침착하려 노력했다. 있는 대로 머리를 쥐어짜보았지만 설화는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다은이는 죽지 않았어. 절대, 절대 그럴 리가 없어.’

  경찰서에 도착하자, 설화는 두려움과 긴장감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찰서 안은 험악한 사람들로 혼란스러웠지만 설화에게는 어떤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경찰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우선, 사건정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벽 7시경, 정다은 양의 실종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사를 하던 중, 오전 8시 50분 경 유성공원의 다리위에서 정다은 양의 것으로 추정되는 겉옷과 신발, 그리고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살로 판단을….”

  “잠깐만요! 8시 50분이면 아직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잖아요. 다은이를 자살로 판단하기는 너무 이른 거 아닌가요?”

  선생님의 강력한 항의에 경찰은 난감한 듯 말했다.

  “선생님. 혹시 자․실 사건 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예? 그게 다은이와 무슨 상관이죠?”

  “자․실 사건은 자살한 것처럼 유서나 옷가지 등이 발견되었지만 시신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서 자살로도, 실종으로도 판단할 수 없는 사건을 말합니다. 그 사건은 정확히 3년 전, 2007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 명으로 시작한 이 사건은 해가 갈수로 늘어나 올해만 벌써 세 명이 사라졌습니다. 3년 간 총 여덟 명의 청소년들이 실종되었죠. 저희는 정다은 양이 그 사건의 아홉 번째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그, 그렇게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아주세요.”

  평소의 무섭게 아이들을 혼내던 모습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금 선생님은 입원을 해야 하는 환자처럼 몸을 심하게 떨고 곧 쓰러질 듯이 연약해 보였다.

  “…섣부른 판단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이 여타 실종사건과 다른 이유는 실종자들에게 자살동기가 확실하고 강가나 옥상 등 자살가능 지역에서 그들의 소지품이 발견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 제일 많은 연령대가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으로 수능시험 전후에 특히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렇게 자살로 확연히 추정되는 실종자들은 자살로 결론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가족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실종자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진짜 실종자들을 찾기에도 경찰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정부에서도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에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그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는 방송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다은양도 시신이 2주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면 자살로 수사를 종결하게 됩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시신이 발견되지도 않았는데 살아있을 지도 모르는 사람을 감히 죽었다고 판단할 수가 있냐고요!”

  설화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학생, 진정해. 진정하라고. 지금까지 그 사건의 실종자는 누구도 찾을 수 없었어. 아무런 단서가 없단 말이야. 머리카락 한 가닥도 보이질 않아. 유서가 나왔으면 다 끝난 얘기라고. 이미 포기하고 죽은 걸로 받아들이는 유가족들도 상당수야.”

  “흐흑. 흑.”

  선생님은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터뜨렸다. 설화는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붉어진 설화는 소리치고 싶은 걸 억누르며 말했다.

  “다은이, 제가 찾을 겁니다. 제가 꼭 찾아올 거예요. 그러니까 멋대로 자살인양 판단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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