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듬해 기원전 205년 3월, 한군의 정비가 완전히 마무리 되었다. 장수들의 활약과 소하의 내정관리로 관중과 옛 위나라 지역, 그리고 옛 한(韓)나라의 땅을 완전히 복속, 통치하는데 성공한 유방은 본격적으로 서초와의 전쟁을 시작하였다. 특히 관영은 죽음에서 살아 돌아와 한시라도 바삐 설욕전을 펼치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였기에 유방은 그에게 자주 군사를 주어 서초의 변경을 침공케 하였다. 관영이 나아가는 길마다 서초의 모든 수비진은 철저하게 격파되었고 한군은 승승장구, 계속 진격에 진격을 거듭하였다.
이 승리는 유방에게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계속하여 군사를 여러 갈래로 출정시켰고 번쾌, 주발, 역상, 왕릉 등 수많은 장수들이 연이어 전공을 세워 돌아왔다.
“우리 생각보다 서초의 힘이 약한 것이 아닌가? 연이어 아군이 가져오는 승전보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구려. 우리가 과하게 두려워 한 것이 아닌가하는.”
유방은 장량, 한신을 불러다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요. 대왕께서는 어찌 하시고 싶으십니까?”
“이제 우리와 저들의 국경이 마주하고 있지 않소이까? 나는 대군을 일으켜 항우의 심장을 찌르고 싶소만 두 분의 의견이 어떤지 궁금하구려.”
항우의 심장을 찌른다. 이 말은 팽성을 친다는 뜻. 현재 한군은 연이은 승리로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장수들부터 병사들까지 싸우지 못해 안달이 난 상황이었다.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그들이 어찌 싸움을 마다할까. 지금의 한군은 명령만 떨어지면 단숨에 팽성까지 치달아 성을 떨어뜨릴 준비가 된 정병 중의 정병이었다.
하지만 기세만으로 싸움을 이길 수 없다는 것쯤은 유방도 아는 사실. 때문에 그는 장막 안에서 천리 밖을 내다본다는 천재 장량과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불세출의 명장 한신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한 것이다.
“현재 움직일 수 있는 우리 군의 규모는 대략 15만 정도입니다. 만일 우리가 팽성으로 진격한다면 반드시 항우가 돌아올 것인데 이 정도로는 승리를 낙관하기 힘듭니다.”
“대장군의 말이 옳습니다. 대왕, 우리 군이 비록 연이어 승리를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모두 단순한 국지전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서초군의 힘을 단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뜻밖에도 둘은 당장 팽성으로 진격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항우가 아닌가? 힘이 산을 뽑고 기개가 세상을 뒤덮는다는 천하의 용장. 지금껏 져 본적이 없는 한신에게조차 항우는 두렵고 꺼려지는 상대였다.
“그럼 이것은 어떻소? 의제의 상을 발하여 각지의 제후들을 모으는 것이오. 그 정도의 군이 모이면 능히 팽성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소?”
“......”
그러나 유방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항우가 주력을 이끌고 제나라를 정벌하러 떠났으니 지금이야말로 비어있는 서초의 심장부, 팽성을 도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은 사실이었다. 이미 왕이 그렇게 결정을 내렸으면 이에 따르는 것이 신하의 도리. 장량과 한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함께 팽성을 칠 전략을 구상하였다.
우선 의제의 상을 발하여 각지의 제후들에게 항우의 천인공노할 죄상을 밝힌 후, 그들의 군대를 끌어 모은다. 그러면 반드시 대와 조, 연나라 같은 여러 제후들이 호응을 할 것이다. 그러면 유방은 그들의 대장이 되어 동진을 시작한다. 하지만 반드시 영포가 이들을 가로막으려고 들 터이니 구강으로 가는 길을 미리 차단하여 끊고 그 사이, 유방과 한신은 서초 전역을 휩쓸며 팽성을 함락한다. 소식을 들으면 항우는 반드시 도로 내려올 터, 그러면 항우의 등 뒤에 위치한 제나라의 군사들과 연계하여 항우를 앞, 뒤로 협공한다. 항우가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다 하여도 그 상황에서는 어찌하지 못할 터, 그 한번의 싸움으로 항우를 제압하고 이 난세를 마무리 짓는다. 이것이 그들이 구상한 대 항우전 전략이었다.
“좋군. 이대로 진행하게.”
“알겠습니다, 대왕.”
다음날, 유방은 격문을 지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하의 제후들이 의견을 모아 의제를 세워 북면하여 왕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항우가 의제를 쫓아낸 다음 강남에서 기어이 죽였으니 참으로 대역무도한 자다. 과인이 의제를 위해 친히 상을 발하니 제후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라. 과인은 관중의 모든 군사들과 하상, 하남, 하내 삼군의 사졸들을 일으켜 장강과 한수 물결을 타고 남하하여 제후들과 함께 의제를 죽인 초나라의 항우를 토벌하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은 스스로 의제를 위한 제단을 쌓고 그의 장례를 황제의 예로써 성대하게 치루었다. 이것을 들은 제후들은 항우의 강함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새롭게 떠오른 유방이라는 강자에게 하나 둘씩 붙기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한(韓)왕 신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왔고 뒤이어 위표, 사마앙같은 유방에게 복속된 자들이 도착하였으며 상산왕 장이도 적은 군사를 이끌고 합류하였다. 장이는 진여라는 인물과 문경지교를 나눈 사이였는데 거록에서의 싸움으로 둘의 사이가 심히 벌어졌다가 항우가 제후들을 분봉하였을 때, 옛 조나라 땅을 나눈 대왕으로 진여가, 그리고 상산왕으로는 장이가 임명되었다. 그리고 전영이 항우에게 반기를 들었을 무렵, 진여는 장이를 공격하여 몰아내었다. 그 후, 장이는 천하를 떠돌며 유방에게 합류할 기회를 엿보다가 지금에서야 마침내 그에게 합류한 것이다.
그리고 조나라의 왕, 조헐도 군사를 보내왔다. 대왕 진여 역시 장이를 죽이면 합류하겠노라는 전갈을 보내왔다. 그러자 마침 유방의 휘하로 있던 진평이 입을 열었다.
“마침 우리가 사로잡아온 포로들 중, 상산왕과 생김새가 흡사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를 죽여 진여에게 보내십시오.”
그 말에 유방은 그 포로의 목을 베어 대나라에 보냈고 진여는 3만의 군사로써 답을 하였다. 그리하여 서초를 토벌하여 극악무도한 역적을 타도한다는 대의명분하에 모인 군사의 규모는 자그마치 56만, 말이 56만이지 실제로 모이니 글자로만 보던 인산인해가 무엇인지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엄청난 대군이 나타나자 유방의 어깨엔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것은 한신도 마찬가지, 그녀 역시 눈앞에 나타난 엄청난 규모의 대군에 흥분되고 들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녀의 사고는 앞으로 달렸다. 이 대군을 이끌고 국경을 넘어 진격하여 어찌 서초를 취할까. 그녀는 세세한 전략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행동이 빠른 이가 바로 유방, 그는 벌써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다.
“우리는 저 극악무도한 항우를 토벌한다는 대의로 모인 정의의 군사들이다. 이제 각 장수들은 과인의 명령을 받을 지어다.”
“예 대왕! 하명하소서!”
“지금부터 우리는 팽성으로 진격한다. 감히 의제를 시해한 저 부모 없는 어린아이의 소굴을 빼앗아 돌아갈 집을 깨부수어 목을 취할 것이다. 알겠는가?!”
“우오오오오오오오!!!”
각 장수들은 우렁찬 함성으로 사기를 드높였다. 그럴 것이 56만이다. 이 대군 앞에 맞설 수 있는 이가 누가 있으랴? 몽둥이만 들고 달려도 오금이 저릴 터, 아무리 용맹스러운 항우라 할지라도 이 대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리라. 그들은 비참히 패해 퇴각하는 항우의 그림을 머리에 그리며 함성을 질렀다.
“번쾌가 선봉을 맡으라. 과인이 너에게 3만의 군사를 내어줄 것이다.”
“감사하옵니다!”
“조참과 주발은 각기 5만 군사를 이끌고 중군의 양 날개가 되라. 위왕 표와 사마흔, 동예 역시 5만의 군사로 혹시 모를 적습에 대비하여 후방을 맡으라. 과인과 대장군, 상산왕과 한왕 신은 중군이 되어 진군한다.”
“예 대왕! 명을 받드옵니다!”
부대를 편성한 제후 연합군은 위풍당당하게 북을 울리며 국경을 넘어 서초로 진군하였다. 이 소식은 구강의 영포에게 전달되었는데 그는 즉시 전국에 대동원령을 내리는 한편, 한군의 진로와 장수진들을 파악하기 위해 척후를 배로 늘려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한군의 규모가 자그마치 56만에 달한다는 것, 그리고 각 제후들이 한왕의 깃발 아래에 모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참모들과 장수들은 영포의 출진을 말리고 들었다.
“대왕, 적의 군세 중 절반만 이쪽으로 향해도 우리는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 생각을 하신다면 즉시 그만 두십시오. 자살행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선 자국부터 지키는 것이 상책 아니겠습니까? 그만 두십시오. 아니 됩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이미 영포는 마음을 굳힌 상태. 그는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초가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 구강이라는 것을 그대들도 알 것이다. 만일 저들이 서초를 무너뜨리고 우리 땅으로 밀고 들어온다면 그때야말로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서초가 건재한 지금, 우리는 나가 싸워야 한다. 그러니 여러 신료들은 군소리하지 말고 과인의 말을 따르라. 즉시 군사들을 징발하여 도성으로 올라오게 하라!”
그렇게 명령을 내린지 사흘 째, 도성인 육성 밖에 5만의 군사가 집결하였다. 처음 파촉으로 밀고 나아갈 때 모인 군사가 3만이었던 점으로 보아 영포로써는 수비군을 제외한 모든 군사를 참빗으로 긁다시피 모은 것이다.
병사들의 앞에 영포가 나타나자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그를 맞이하였다. 그가 잘 갈려 시퍼렇게 빛나는 화극을 높이 치켜들자 병사들의 함성은 두 배나 높아졌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유린하기 위해 달려오는 한왕 유방을 상대하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 적의 규모가 아군의 10배가 넘는다고 하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라. 지난날 패왕과 함께한 거록에서의 싸움은 결코 우리가 적보다 수가 많아서 이긴 것이 아니요, 분연히 떨쳐 일어나 사력을 다해 싸운 결과였던 것처럼 우리는 오늘 그 싸움을 다시 재현해 보일 것이다. 내가, 이 영포가 그대들의 앞에서 싸울 것이니 병사들이여, 과인을 따르라! 과인과 함께 회수를 건너 머릿수만 믿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장돌뱅이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가자! 한왕 유방을 잡으러!!”
“대왕을 따르라!! 유방을 잡자!!”
영포의 연설에 병사들의 사기는 끝없이 높아져 가히 하늘에 닿고 대지를 뒤흔들기에 충분하였다. 그는 그 병사들을 이끌고 진군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무렵, 한군도 이미 영포에 대한 대비를 시작하였다.
“대왕, 지금쯤이면 영포가 군사를 내었을 것입니다. 장수들에게 군사를 주어 회수 이남으로 내려 보내십시오. 그래야만 팽성을 도모할 때 후미가 위협을 받지 않게 됩니다.”
“장량 군사의 말씀이 지극히 옳습니다. 영포만 묶어 놓는다면 서초를 지원할 군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겪이니 한층 일이 수월해 질 것입니다.”
장량과 진평이 그렇게 간하자 유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신에게 말했다.
“대장군은 즉시 군사를 갈라 회수 이남으로 내려 보내시오.”
“알겠습니다.”
한신은 조참, 주발, 역상에게 명을 내렸다.
“세 장군은 즉시 10만 군사를 이끌고 회수를 건너 올라오는 구강군을 막으시오. 역장군은 한차례 겪어 보았을 것이오. 영포는 절대 만만한 장수가 아니외다. 그러니 그를 이기려 들지 말고 그저 발을 묶는데 주력하시오.”
“예. 대장군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그들 셋은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본진에서 갈라져 나와 회수로 올라오는 영포를 막으러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