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강마저 평정한 영포는 3일간 강릉에서 군을 정비한 후, 비로소 파촉으로 진격을 시작하였다. 그때가 바로 유방이 함양 입성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였다. 장한이 무너지고 삼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그로써는 더는 지체하였다간 관중은 둘째 치고 항우가 세운 천하가 뒤집어 엎어질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한신의 능력은 영포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삼진이 떨어지면 다음은 하남과 한(韓), 그리고 서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만일 여기서 한군의 진격을 막지 못한다면 그때는 한나라의 기세를 꺾을 수 없기에 그는 서둘렀다.
"행군을 서둘러라. 한시라도 바삐 파촉에 도착 해야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는 군사들을 재촉하여 질풍처럼 내달렸다. 구강 군이 백제에 도달하였을 무렵, 한의 승상 소하에게 영포의 움직임이 전해졌다. 놀란 그는 신속히 군을 편성하여 백제로 지원군을 보냈지만 너무 늦었다. 유방이 삼진으로 진군하며 주력을 모두 북으로 끌고 나갔기 때문에 모든 전선이 북쪽에 펼쳐졌고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쪽의 관문을 지키는 병사들은 예비군과 같은 무리들이었다. 한마디로 전투력이 차이가 나는 부대, 그런 그들이 방비를 해봐야 얼마나 튼튼하게 하겠는가? 결국 임강과 파촉의 경계를 지키는 관문 백제는 순식간에 뚫렸다.
"퇴각하라! 어서 퇴각하라!"
견디다 못한 백제 성주는 남은 군사들과 함께 서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영포는 2천의 군사를 남겨 남은 일들을 정리하게 하는 한편, 자신은 대군을 휘몰아 달아나는 한군을 맹렬히 추격하였다. 그러던 도중, 승상 소하가 보낸 지원군 1만과 조우하게 되었는데 영포는 벼락같이 들이쳐 원군을 무참히 깨뜨렸다. 원군도 달아나는 신세가 되어 남정으로 퇴각하였고 영포는 군을 나누어 파촉을 쓸어버리기 시작하였다.
여기까지가 소하의 전령이 유방에게 도착하기까지 벌어진 일이다.
"영포가......."
영포가 움직였다는 말에 유방의 낯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일찍이 항량과 함께 반진의 깃발 아래 모였을 때부터 그는 영포라는 인물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 항우의 세상을 만드는데 누구보다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 선봉은 언제나 그의 것이었고 누구보다 맹렬하고 치열하게 싸웠다. 그가 가는 길에는 진나라 군대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고 피는 강을 이룰 정도였으니 그 정도면 그가 어느 정도의 장수인지 설명이 될 것이리라.
"당장 지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파촉에는 영포를 막을 만한 장수가 없지 않습니까?"
"예 대왕! 소장을 보내주십시오. 기필코 영포를 사로잡아 대왕께 바치겠나이다!!"
관영이 한발 앞으로 나오며 유방을 향해 돌아섰다. 관영 역시 맹렬하고 치열한 싸움을 즐기는 장수, 그라면 충분히 상대가 되겠다 싶은 판단에 유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대에게 3만의 군사를 줄 터이니 기필코 승리토록 하라. 가서 과인의 근심을 덜어주어라."
"감사하옵니다. 기필코 승리하여 돌아오겠습니다!!"
관영을 보낸 유방은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는지 표정을 풀고 한신을 돌아보았다.
"영포는 관영이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이제 됐소. 대장군, 앞으로의 움직임은 어찌 하는 것이 좋겠소?"
"......"
그러나 대답이 없는 한신, 영포가 파촉으로 밀고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무언가 혼이 빠져 나간 듯한 표정이었는데 그 모습이 정신줄을 놓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대장군!!"
"아.... 예!!"
유방의 언성이 높아지자 비로소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유방은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표정을 엄히하며 꾸짖었다.
"지금 뭐하시는 것이오? 삼군을 지휘하는 대장군이 어찌 그리 정신이 없는가!!"
"송구하옵니다, 대왕. 영포의 움직임은 소장의 계산 밖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대책을 생각하느라 그만......"
"그래도 대장군이 그래서야 되겠소? 항상 냉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 대장군이라는 위치 아니오?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 하시오."
"예.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곧 유방은 표정을 풀고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 앞으로 어찌 움직이는 것이 좋겠소?"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우선 여기를 보십시오."
그녀는 지휘봉을 잡고 앞으로 나와 지도를 가리키며 앞으로의 움직임을 설명하였다. 먼저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행동은 폐구성 포위였다. 이미 한군은 삼진을 대부분 평정하였고 색왕과 적왕도 투항하였지만 옹왕 장한만은 여전히 폐구성에 들어가 농성하며 기회가 보이면 즉시 달려나와 한군에게 적잖은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말은 반대로 생각한다면 폐구성이라는 성 하나만 장한의 세력권이며 나머지는 모두 한에 복속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그녀는 굳이 성을 공격하는 것보단 성을 겹겹이 포위하여 장한을 안에 묶어두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 다음으로 그녀는 옛 한(韓)나라 땅을 쪼깨어 만든 한(韓)과 하남, 그리고 하내의 은나라 이 3국을 평정하는 것으로 잡았다. 3국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한나라의 영역은 항우의 서초 못지 않게 넓어지게 되는 것이고 유사시, 관중으로 퇴각할 때 수비하기도 매우 수월해진다. 그리하여 은과 하남, 한을 치러 갈 장수들을 선발하였는데 한나라에는 이미 한왕 신이 파견되어 있었지만 형산과 임강의 군대가 빠지자 전황은 다시 백중지세가 되었다. 그리하여 주발이 한왕 신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었고 은나라에는 역상과 하후영이, 하남에는 번쾌가 각각 5만 대군을 거느리고 출정하였다. 유방과 한신은 장량과 함께 유사시 전선을 지원하기 위해 후방에 주둔하여 있었다.
열흘 후, 제일 먼저 한(韓)나라로 파견된 주발로부터 낭보가 전해졌다. 주발과 한왕 신이 마침내 정창을 격파하고 한나라를 차지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에 유방은 한(韓)왕의 인수를 한왕 신에게 하사하여 정식으로 그를 한(韓)왕으로 삼았다. 뒤이어 하남으로 진격한 번쾌에게서도 승전보다 도착, 하내 성을 깨뜨리고 하남왕 신양을 사로잡고 개선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이틀 후, 하후영과 역상에게서도 은왕 사마앙을 끌어내어 격파하는데 성공, 사로잡았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각 전선에서 장수들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방은 뛸듯이 기뻐하며 장수들이 돌아올 때마다 일일이 손을 잡으며 한상 부러지게 연회를 배풀었다.
"이제 남쪽으로 내려간 관영의 승전보만 기다리면 되는구나! 하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관영이 너무 미적거리는 것 아닙니까? 승전보가 올라와도 진작에 올라와야 되는데."
유방과 장수들은 관영이 당연히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쪽에서도 전투가 시작되었다. 관영이 이끌고 내려간 3만의 군사가 남정에서 소하와 조우, 현 상황을 듣고 파촉으로 내려간 것이다.
"관영이라고?"
"예 대왕, 유방이 관영에게 3만의 군사를 주어 내려보냈사옵니다."
"관영이라면 유방 휘하의 맹장이다. 한왕이 제법 강수를 두었군."
관영은 번쾌와 함께 유방의 검으로 불리는 장수, 성격이 불같아 항상 맹렬하게 싸웠고 그와 맞상대한 적들은 항상 비참하게 격파되었다. 하지만 그는 피식 웃으며 좌, 우의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적장이 관영이라면 이 싸움은 오히려 쉬워졌다. 여러 장수들은 군을 나누어 흩어져라."
"예?"
"관영은 다른 곳은 보지 않고 오직 나를 바라보며 달려올 것이다. 내가 놈을 유인할 터이니 그대들은 신호가 오르면 병사들을 이끌고 한군을 사방에서 몰아쳐라.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삼가 명을 받듭니다!"
이에 부장 다섯 명이 3천씩 군을 나누어 이곳 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언뜻 보기엔 그 방면을 수비하는 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형국, 보고를 받은 관영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영포 이놈이 우리를 아주 물로 보았구나. 고작 3천으로 수비진을 함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장군, 우리도 군을 나누어 저놈들의 뒤를 쳐야하지 않겠습니까?"
"아니지. 놈이 3천씩 군을 다섯으로 나누었다면 군의 절반 가까이 빠졌다는 뜻이잖느냐."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신의 말판을 들어 영포의 말판 앞으로 내려놓았다.
"우리는 군이 절반으로 줄어든 놈의 본진을 친다!"
그날로 관영은 전군을 들어 영포의 본진을 향해 진군하였다. 곧 조우한 양군, 관영은 군의 선두에서 적진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영포는 군사들 속에 있는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매의 눈으로 영포를 찾고 있는 그에게 부장이 곁으로 다가왔다.
"장군, 적군이 생각보다 적은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않느냐? 나머지 절반은 파촉의 각 지역을 공격하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하지만 놈들이 수비적인 만큼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바보같은 소리! 내가 직접 앞장 설 터이니 그대는 병사들을 잘 통솔하여 내 뒤를 따라오도록 해라. 알겠는가?!!"
"예 장군."
곧 그는 말고삐를 틀어쥐며 말이 두 발로 일어나게 하고는 창을 높이 치켜들었다.
"전군 나를 따르라!! 나와 함께 적진으로 돌격한다!!"
관영이 먼저 내달리자 부장은 칼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장군의 뒤를 따르라!! 놈들을 쓸어버려라!!"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드디어 관영의 3만 군사가 구강 군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영포 역시 군중에서 창을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방패를 든 병사들이 앞장서고 장창병이 그 뒤를 받쳐라. 궁노수는 후방에서 화살을 쏘고 기마대는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 쉽게 밀려서는 안된다! 전원 죽기로 자리를 사수하라!!"
"방패 앞으로!! 창병이 그 뒤를 받쳐주어라!! 궁노수는 화살을 쏴라! 전원 물러서지 말고 자리를 지켜라!!!"
그의 명에 따라 구강군 역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니 곧 철벽과도 같은 방패의 벽과 빽빽한 숲과 같이 창을 내세운 진형이 나타났다. 그것을 바라보며 이를 악 물고 창을 쥔 손에 힘을 더욱 세게 주는 관영.
"오냐!! 뚫어주마. 목을 씻고 기다려라 영포!!!"
"오너라. 여기가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