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로 들어오고, 의외로 조용한 카지노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것이었다.
‘파라다이스.’
생각했던 칙칙한 모습과는 달랐다.
오히려, 생기가 넘쳐있었다.
웃으며 슬롯머신을 돌리고, 웃으며 테이블에서 포커를 치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는 ‘즐거움’밖에 찾을 수 없었다.
또, 잔잔히 흐르는 음악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처음 오셨나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자,
메이드 복장을 한 점원 한 명이 와서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가만히 있으니 이상하게 보인 모양.
“아, 예. 그, 이 카드가 있으면 입장이 가능한가요?”
“카드요? 어? 이건 블랙 프리미엄 카드 아니에요? 우와, 저도 실물은 처음인데…! 이럴 때가 아니지, 저를 따라오세요.”
잠시 뭐라 할 틈도 없이 끌려갔다.
메이드는 손목을 붙잡고선 어딘가로 데려갔다.
별로 힘은 강하지 않아, 뿌리치려면 충분히 가능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쩐지 이곳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도저히 세피로트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
오히려 겉으론 웃으며 등 뒤에서는 칼을 꽂으려 하는 사람이 대부분.
그들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카지노엔 그런 것이 없었다.
“일단 임시로 최고 등급의 카드를 부여해 드릴게요. 칩은 그 안에 기본적으로 들은 오천 개를 쓰시면 됩니다.”
“이렇게 퍼주어도 되는 건가요?”
“어휴, 그럼요. 블랙 프리미엄 카드를 소지하고 계시잖아요? 원래는 제 선에서 처리하면 안 되는 건데, 지금 점장님이 밖에 나가계시니 이 정도로 만족해주셨으면 해요. 부탁드립니다!”
만족이고 자시고.
나로서는 지금의 이 흐름세를 이해하지 못했다.
존중하고, 대우한다.
누구를.
나를?
“게임을 하시는 기분으로 편안히 즐겨주세요. 진짜 게임으로 하는 겜블링도 있으니까요! 궁금한 점 있으면 언제나 물어주시면 돼요.”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었다.
존중받는다.
그것도 같은 사람에게.
그건, 바닥을 굴러오며 살아오던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감정이었다.
“한 게임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그럼 그럼. 당연하지! 어서 앉으라고.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입인가? 자자, 카드 돌릴게. 포커 어떻게 치는지는 알지?”
도저히 뭐라 말 할 틈이 없었다.
수다스러운 아저씨, 활기찬 메이드, 그리고 자연스럽게 웃으며 오가는 사람들.
부자연스럽다.
익숙하지 않았다.
“이런, 졌네요.”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칩도 많아 보이는데. 자네가 원하면 한 판 더 하지. 도전을 받는 건 내 전문이거든!”
“아뇨, 다른 곳도 좀 둘러볼게요.”
억지로 메이드에게 등을 떠밀려 온 포커 테이블.
대략 룰 정도는 알고 있어서 한 판 치기는 했지만, 역시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게 도박장인지, 이 분위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별로였다.
‘…그냥 가자.”
왜인진 몰라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친근한 분위기에 대한 거부감?
모르겠다.
나도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어, 벌써 가시게요?”
“예. 제 적성엔 맞지 않네요.”
“히잉, 그럼 안 되는데.. 점장님이 대형 손님 놓쳤다고 뭐라 하실 텐데.. 다른 도박장 가시면 안 돼요, 꼭 돌아오셔야 해요! 카드는 그대로 들고 가셨다가 나중에 또 오셔서 쓰시면 되니까요!”
“…아, 예. 그럼 이만.”
가식인가.
가게에서 나올 때까지도 메이드의 행동은 친절했다.
그건 다른 손님들 역시 마찬가지.
실수로 어깨를 부딪쳤음에도, 상대쪽에서 먼저 사과했다.
괜찮냐고, 그것도 밝게 미소지으며.
순간 나한테 한 게 맞나 싶어 당황할 정도였다.
‘어쩐지 도박보다는 술이 끌리는데.’
이번에는 조금 걸어 BAR이라고 적힌 건물에 도착했다.
걸어오면서 주변을 의식하며 느낀 건, 인상을 찌푸린 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있었다면 조금 칙칙하게 걷고 있는 나 자신 정도.
그리고 그 상황은 술집에서조차 예외 없이 이어졌다.
“어서오십시오. 처음이신 것 같은데.”
이제는 메이드 때의 선례를 떠올려 블랙 프리미엄 카드라고 불리던 카드를 내밀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웨이터가 조금 동요했다.
그러더니 곧 언제 동요했냐는 듯 본래의 고요한 표정으로 돌아와, 나에게 또다시 새로운 카드를 주었다.
이걸로 벌써 카드만 세 개째.
“맥주, 소주, 막걸리, 양주, 청주, 와인, 기타 등등. 드시고 싶은 술이 있으시다면 그 카드로 주문해 주십시오. 5000L까지는 제한 없이 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럼 소주로 한 병 부탁드립니다.”
“금방 내오겠습니다.”
고개를 까닥인 웨이터가 카운터 아래를 뒤지더니, 금방 시원한 소주 한 병을 꺼냈다.
소주 한 병과 소주잔 한 잔.
‘오랜만이군.’
이런 곳에서 한국 술을 마실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술집의 분위기도 카지노처럼 이상하리만치 밝았고,
다시 한번 거기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알코올이 몸 속으로 들어가자 겨우 무시하고 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안주는 중간에 웨이터가 깜빡했다며 가져온 기본 안주였다.
한 잔, 두 잔 마셔가자 어느새 술병은 바닥을 보였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해 술집을 빠져나왔다.
다시 오라고 강조하는 건 웨이터 역시 마찬가지.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이유 없는 호의는 세피로트 속에선 찾아볼 수 없다.’
유일하게 믿고 따랐던 남자가 죽기 전에 남겼던 말.
이제는 너무도 오래된, 그것도 과거를 거슬러 올라오며 없던 일이 되어버린 일이었다.
그러나 그 조언만은 잊지 못한다.
가슴에 간직했던 조언이 나를 살린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이번 역시 예외는 아니다.
평소처럼 경계하고, 평소처럼 행동한다.
즐기는 건 최소한으로.
그 후엔 저택으로 돌아와 수련을 계속한다.
감이라는 건 안 쓰면 안 쓸수록 녹이 스는 놈이었으니.
밑바닥을 굴러오며 겨우 키워낸 감마저 없다면,
특성을 제외한 순수한 내 능력은 바닥에 가까우니 말이다.
*
그렇게 지낸 지 30일째.
어느덧 파라다이스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첫날 생각했던 마음가짐은 겨우 지켜낼 수 있었다.
풀어질 뻔했던 순간이 없던 건 아니었다.
심지어, 가끔은 이게 창조주 중 한 명의 인정을 받기 위한 시련이라는 것마저 까먹기도 했다.
그만큼이나 너무 편한 장소였다.
괴물과 싸우고, 살기 위해 같은 동족의 등을 검으로 찌르고.
배신하고, 연합하고, 또 배신하고.
강자에겐 비굴하며 약자에겐 강해지는.
본디 알고 있는 세피로트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달랐기에.
“오늘로써 한 달이 모두 지났습니다. 알고 계시지요?”
“이제 돌아가는 겁니까?”
“주인님이 곧 오실 겁니다.”
그냥 잠시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사타나엘이 나타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집사가 커피 한 잔을 비울 정도의 짧은 시간.
“여어, 오랜만이야! 내가 만든 세계, ‘사게브 사르’는 좀 마음에 들었을지 모르겠네.”
“이제 돌려보내 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지! 아, 혹시 여기 더 있고 싶다거나 그런 거야?”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당연하지. 그랬다면 나도 실망했을 텐데.”
사타나엘은 느긋하게 대화하려는 듯 집사에게 차를 한 잔 부탁했다.
근처의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본다.
“그래서, 시련 말인데. 사실 아직 안 끝났어.”
‘그게 무슨?’
“어라, 당황한 표정이네. 시련이 알려주지 않았어? 한 달 동안 생존하라고.”
무언가를 자세히 설명하려는 듯, 즉석에서 시계를 창조해내었다.
“시계가 없어서 몰랐겠지만, 아직 ‘한 달’이 지나려면 세 시간 정도가 남았거든. 카드 좀 줄래?”
내가 가지고 있던 카드는 세 개.
도박장, 술집, 그리고 사타나엘이 처음 나에게 주었던 블랙 프리미엄 카드까지.
세 개 모두를 건네자 사타나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역시, 진짜 별로 안 썼네. 특히 도박장은 거의 가지도 않은 모양이야? 대단해, 칭찬해줄 만한 성적이야.”
조롱하려는 의도인지, 정말 감탄이라도 한 건지.
즉석에서 박수를 나에게 짝 짝 짝, 세 번 쳐준 사타나엘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빚은 갚아야겠지?”
빚?
무슨 빚?
“설마 그 모든 게 공짜라고 생각한 거야?”
세상에 공짜는 없어, 이 멍청아.
사타나엘이 조소하며 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