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탄의 사수라면, 이 활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멍청한 표정으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짓는다.
액티브 특성, ‘사기’는 임의로 발동시키지 않는다.
본체가 아닌 분신이라지만 상대는 신.
하물며 이곳이 그를 모시는 신전이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발동시키지 않는 편이 더욱 안전할지도 모른다.
“그래. 네가 함부로 사용한 내 활 말이다.”
“이 활은 아까 첫 번째 관문에서 고른 겁니다만.”
“적어도 그때는 봉인이 되어있었지. 튼튼한 활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안 그런가? 네가 더 잘 알 텐데.”
“제가요? 저는 그저 활을 감정한 것뿐입니다.”
사마엘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내가 누구인지 진정 알고서 하는 말이더냐? 나는 창조주, 신이다. 그런데도 나를 우롱하려는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음에도 이러는가?”
“예, 사실이니까요.”
“그러니까, 우연히 시작부터 S++ 짜리 감정 특성을 얻었고. 특수 효과인 절대 감정을 거기에 쓰셨다?”
“어차피 다른 쓸 곳도 없어 보여서요.”
이런저런 패시브 특성들의 보조 덕분에 태연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혹여나 잘못될까 싶어 엄청난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저 겉으로만 티를 내고 있지 않을 뿐.
“참, 이거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고…”
만약 내가 그저 그런 플레이어였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복종 마법으로 아는 정보를 다 토해내게 시켰으리라.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의 시련을 EX+++ 랭크로 통과했다.
다른 창조주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탐나는 인재일터.
여기서 대상자의 정신 붕괴가 일어나는 복종 마법을 나에게 쓸 수 없을 리가 없다.
그의 차원이었다면 정신을 온전하게 남겨두고 복종시켰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곳은 세피로트와 다른 차원 사이에 걸쳐있는 입구.
창조주인 사마엘마저 인과율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는 곳이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사마엘은 내가 ‘매혹’에 걸린 상태라고 믿고 있을 것이었다.
연기까지 하면서 멍청하게 신전까지 걸어왔으니 이상하다고 생각할만한 부분도 없었다.
매혹에 빠져있다면 이렇게까지 뻔뻔히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판단할 가능성이 높았다.
사마엘은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고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꼼꼼한 성격답게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뭐, 좋아. 믿어주지.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이라면?”
아무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그로써는 나라는 인재를 놓칠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리라.
“다른 시련도 EX랭크 이상으로 통과할 수 있겠나?”
차분히 기억을 되짚는다.
남은 시련은 용기, 지혜, 그리고 권능.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평균 EX 랭크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두 번이나 EX+++ 랭크로 통과했으므로.
하지만 모든 시련을 EX 랭크 이상으로 통과하는 건 다른 문제다.
지금까지는 어찌저찌 꽤 편하게 시련을 통과해왔다.
그러나 용기의 시련부터는 이렇게 날로 먹을 수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일단은 믿어주는 거로 하지.”
그래도 해내야만 한다.
할 수 없다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인류를 구하려면 이러한 난관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찾아올 터.
극복하고, 다시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 세 번째 시련, 용기. ]
[ 사마엘이 직접 개입합니다. ]
[ EX 랭크의 난이도부터 시작합니다. ]
‘S 랭크가 죽음도 불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죽음보다 더한 공포.
그게 대체 무어란 말인가.
미지에 대한 불안감이 서서히 죄어오기 시작한다.
눈 앞에 있던 사마엘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
오직 어둠만이 주변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겁다.
비릿한 혈향이 풍겨온다.
배가 고프고, 무기력했다.
특성 같은 건 발동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설마.’
어쩐지 익숙한 장소였다.
나를 깔고 있는 건 시체였다.
겨우겨우 시체들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온다.
한참을 어둠만 보고 있었더니, 빛이 익숙하지 않다.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상황.
빛이 눈을 자극해서였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전생.’
무의미하게 살아온 15년.
특성, ‘룰 브레이커’가 발동하기 전의 시점.
내 육체는 더 이상 시련을 도전하고 있는 초보자 이현우의 것이 아니었다.
시궁창을 구르며 살아왔던 천민 이현우.
이제는 잊고 살아가려 했던 기억이 억지로 끄집어 내어졌다.
몰려오는 자괴감, 그리고 상실감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이 정도로 한심한 삶이었던가?
정신을 언제나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주는 특성에 너무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분명 이미 겪었던 상황임에도 너무나 고통스럽다.
아니면 시련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인간, 죽인다!”
주변에 있던 오크로드가 나를 보고선 달려들었다.
죽일만한 인간이 없나 정찰을 하고 있던 참에 눈에 걸린 모양.
이대로 죽으면 편해지지 않을까.
모든 걸 놓고 싶어진다.
죽고 싶고, 아무것도 생각하기가 싫었다.
나는, 나는, 나는.
아.
이대로 죽는구나.
[ 피해야 한다고 생각함. ]
멍하니 오크로드의 곤봉이 날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시지.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굼벵이가 바닥을 구르듯 볼품없이 바닥을 구르며 겨우 피해냈다.
‘뭐지?’
이 시련 속은 과거랑 완전히 일치했다.
나를 도와줄 특성이 없다는 건 이미 확인했다.
정말 전생과 완벽히 똑같이 만들어진 시련이었으므로.
심지어 EX 등급 이상의 시련일 것이니 이런 힌트가 나타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대체 이 메시지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정신없이 죽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뛰고 있음에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 특성이 없긴 왜 없는 건지 의아해함. ]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다시 한번 떠오르는 메시지 창.
하지만 오히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정체가 무엇인지, 왜 도와준 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 전생이랑 같다면서 왜 모르냐고 말하려 함. ]
‘전생과 모든 것이 같다?’
전생에서의 나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재능도, 특성도.
특성?
‘설마 룰 브레이커?’
[ 이제서야 눈치를 챘다며 당신에게 박수를 보냄. ]
‘어떻게?’
아무리 전생과 같다지만 룰 브레이커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룰 브레이커는 사용하지 않았는가.
[ 룰 브레이커는 위대함.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소원은 사용되지 않았었음. ]
‘하지만 죽지 않았잖아?’
[ 룰 브레이커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죽을 목숨이었음. ]
EX+++ 특성은 환상 속에서도 무언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반가웠다.
목숨을 구해준 건 덤으로 쳐도 말이다.
‘회귀와 특성은 이미 이룬 소원이니, 이번에는 다른 소원이 이루어 진 건가?’
[ 맞음. 당신이 두 번째로 원하던 소망임. ]
일단 첫 번째는 알 것 같았다.
살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두 번째는.
‘동료? 말동무?’
[ 그러함. 조언자의 형태로 당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소원을 이루었음. ]
그랬다.
잠시간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한 적도 있었지만, 혼자 있던 시절이 훨씬 길었다.
죽을 때까지도 고독했었다.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던 마음 한 편에는, 그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룰 브레이커가 소원을 이루어 준 것이리라.
‘하지만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 EX 랭크의 시련을 너무 날로 먹으려 든다고 화를 냄. ]
맞는 말이다, 설마 오크로드의 공격을 한 번 피한다고 EX 랭크의 시련이 통과된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 전생에선 내지 못했던 용기를 내라고 충고함. ]
전생에선 내지 못했던 용기라.
그게 무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죽을 때까지도 아쉬웠던, 그리고 다시는 이루지 못할 것이로 생각했던.
“고맙다, 사마엘.”
비록 어이없이 시련에서 떨어질 뻔 했지만, 고마웠다.
전생에서의 미련도 이걸로 훌훌 털어버린다.
그리고, 현생으로 돌아가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다.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