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육체적으로도, 지능적으로도 가장 우위에 있다는 종족.
비록 인류가 세피로트를 거치며 힘을 길러 나중에는 힘을 모아 드래곤을 토벌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들이 최강의 종족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압박감은 확실히 덜 해.’
그렇지만 이곳은 사마엘이 만든 시련 속.
약화되어 나온 블랙 드래곤에게 실제 드래곤과도 같은 압박감은 없었다.
어느 정도 약화되어 나오긴 했으나, 그 정도는 당연히.
[ 특성, ‘침착’이 흑룡 발투자르의 ‘압도’를 파훼합니다. ]
사기적인 특성들로 커버할 수 있었다.
활의 시위를 잡아당긴다.
압도당하지 않았다고 한들 이 싸움은 애초에 이길 수 없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그렇지만 사마엘이 아무 생각도 없이 내보냈을 리가 없다. 분명 여태껏 내가 보여준 실력이라면 저 드래곤 역시 잡을 수 있다고 믿었으리라.
그 믿음에 배신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의 전력으로 잡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조금 아깝지만…’
잔여 스테이터스 포인트 중 2를 체력에 투자하고서 남은 포인트는 10.
이 중 절반인 5를 힘에 투자한다.
곱연산이 적용되며 10에 가깝게 힘이 높아진다. 당연히 활시위가 좀 더 팽팽히 당겨진다. 그러나 조금 아쉽다. 부족하다.
‘광폭화.’
[ 특성 / 광폭화 (Berserk) (A+)가 발동됩니다. ]
[ 현재 체력의 50%를 사용합니다. ]
[ 특성, ‘침착’이 ‘광폭화’의 부작용을 견뎌냅니다. ]
[ 힘 스텟이 1분간 1.5배로 적용됩니다. ]
1분간 가진 힘을 1.5배로 뻥튀기 시켜주는 대신, 체력의 50%와 이성을 대가로 가져가는 특성.
체력은 빠져나갔지만, 만능 특성으로 불리우는 침착이 이성을 잃는 건 방지했다.
여기까지는 예상한 바.
아직 쓸 특성이 더 남았다.
‘자해를 세 번 사용한다.’
[ 특성 / 자해 (Self-Injury) (B+)가 세 번 발동됩니다. ]
[ 전체 체력 중 30%를 잃습니다. ]
[ 힘 스텟이 30초간 15% 상승합니다. ]
[ 특성 / 비장의 한 수 (Ace in the hole) (S++)가 발동됩니다. ]
[ 5초간 두 배 강해집니다. ]
전체 체력의 10%를 소모해서 원하는 스텟을 30초간 5% 올려주는 자해를 세 번 발동한다.
따라서 남은 체력은 20%, 자동적으로 패시브 특성인 비장의 한 수가 발동된다.
더군다나 비장의 한 수는 그냥 단순히 ‘두 배’ 강해진다. 힘 스텟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강함이다.
‘이렇게 했는데도 살짝 아쉬운 감이 있긴 하지.’
[ 특성 / 천운(Fateful Fortune) (S++)가 발동됩니다. ]
[ 사용자의 소망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1개월간 쿨타임이 지속됩니다. ]
따라서 천운의 액티브 효과마저 발동시킨다.
그저 단순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기에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일발필중을 이미 사용한 이상 원하는 곳에 맞추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더 확실하게 해야만 했다.
비장의 한 수의 효과가 떨어지기까지 2초.
드디어 팽팽하게 잡은 활의 시위를 놓았다.
[ 크아아아아아아아! ]
곱연산이 적용되고, 또 뻥튀기가 되어 순간적이나마 힘 100을 넘어섰다.
‘천운’의 액티브 효과를 사용해 드래곤의 눈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빗나갔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화살은 정확히 콧구멍에 들어가 박혔다.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통 괴로운 게 아닌 듯싶었다.
[ 특성, ‘비장의 한 수’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눈알을 뚫고 들어가 실명, 내지는 즉사를 시키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대처 할 수 밖에 없다.
사마엘이 의심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
‘간파.’
[ 시련용 활 (No Class) ]
사마엘이 시련에 도전하는 이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활입니다.
비록 등급은 없지만 놀랍도록 튼튼하며, 놀랍도록 강력합니다.
드래곤이 공격하기 전에 빠르게 마쳐야만 한다.
드디어 활을 고른 이유가 빛을 발할 때.
간파로는 평범한 정보밖에 출력되지 않지만, 다른 특성을 하나 더 사용한다면 다르다.
‘절대 감정.’
[ 특성 / 감정 (Appraisal) (S)의 특수효과가 발동됩니다. ]
[ 아이템의 진가를 꿰뚫어봅니다. ]
[ 앞으로 2개월간 절대감정의 쿨타임이 지속됩니다. ]
특성, ‘감정’도 충분히 좋다고는 하나 ‘창조주’가 꼭꼭 숨겨놓은 옵션을 파헤치기엔 무리.
그러나 이미 ‘권능’의 영역에 놓여있는 절대감정을 사용한다면 다르다.
사마엘이 숨겨놓고자 했던 활의 진 명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박한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실린 무게감 자체가 달라진 기분.
[ 마탄의 사수 (Legendary+++) ]
힘이 봉인되어 있던 신의 활이었으나 권능에 의해 봉인이 강제로 풀렸습니다.
독과 죽음을 관장하는 사마엘이 온갖 정성을 들여 만든 활입니다.
적합한 사용자가 사용할 경우,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 신의 독 (Passive) – 언제나 화살 끝에 치명적인 독이 발라집니다.
• 마탄의 비극 (Passive) – 매 일곱 번째 화살을 쏠 때마다 대가를 치릅니다.
‘이게 보우마스터 김천호의 활인가.’
검이 아니라 활을 잡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물론 검도, 창도 실제로는 대단한 무기이겠지만 이 마탄의 사수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비록 일곱 번째 발을 쏘면 치명적인 리스크를 부담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고는 해도 무기의 위력 자체가 워낙 상상을 초월하기에.
본격적으로 스테이지가 시작되면 레벨 제한이라던가 직업 제한이 걸려서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이곳은 스테이지 제로.
세피로트로 진입하기 전이기에 아무런 제약조차 없다.
과거에는 한국의 최강자 중 한명이었던 보우마스터, 김천호가 아끼던 활이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가져갈 생각이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은 없다.
‘일곱 번째 화살을 쏘고서, 그는 자살했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으나, 몇 안 되는 선한 강자였던 그가 자살하자 기득권층은 더 이상 눈치 볼 게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어차피 활이 하나 없다고 해서 최강자의 자리까지 못 오를 인재도 아니었으니.
[ 여기에 있었구나! ]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나름대로 추억을 맛보려 했으나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첫째로는 특성으로 뻥튀기 시킨 힘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이유였고,
둘째로는 콧구멍에 화살이 박힌 흑룡이 무지막지하게 흥분을 한 채 달려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내가 작고, 잘 숨어있다고 해도 드래곤은 드래곤.
숨어서 계속 쏘며 죽인다는 선택지가 있을 리가 없었다.
단 한 번의 사격만으로도 내 위치를 발견해내고 엄청난 속도로 하강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저기에 깔리면 그 즉시 사망.
부활한다고 해도 압사한 그 위치에서 살아난다면 또다시 사망이다.
‘일단 떨어지기 전에 한 발.’
약화가 되어 그런지 빠르다고 해도 못 피할 수준은 아니었다.
항시 켜져 있는 패시브 특성인 ‘신속’ 덕분에 피하고도 한 발을 맞출 시간이 있었다.
[마탄의 비극이 카운트 됩니다.]
[6/7]
[ 가소롭구나, 인간이여! ]
팅-, 치명적인 독을 담고서 날아간 화살은 비늘에 의해 튕겨 나왔다.
아무리 마탄의 사수라고 해도 단단한 비늘을 뚫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남은 스텟을 모두 힘에 투자.’
어쩔 수 없이 남은 5의 잔여 포인트마저 힘에 몰아넣었다.
극단적으로 힘만 높은 기묘한 능력치. 당장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어도 후에는 어떻게 작용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사용을 안 하자니 죽을지도 모른다. 느껴지는 위기감에 침을 꼴깍 삼키고선 선회해 다시 오는 드래곤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가까이 오면 피하고, 다시 쏘고. 그렇지만 다시 튕겨나고.
[ 통하지 않는다고 했을 터! ]
두 번이나 화살이 통하지 않자 기세가 등등해진 드래곤.
노림수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드래곤에게 데미지를 입히지 못한다고 해도, 드래곤 역시 나에게 데미지를 입히지 못한다.
이대로 간다면 영원토록 어느 한 쪽도 죽지 않으리라.
상대 역시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게 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네 번째 화살을 쏘았을 때.
[ 이 브레스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지어다! ]
드디어, 화살이 박힐만한 부위를 찾았다.
마탄의 사수를 당긴다.
목표는 녀석의 입속.
‘이것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끝이다.’
시련임을 감안하여 밸런스 조절이 되어 마법을 쓰지 못하고 있다지만 드래곤은 드래곤.
설마 드래곤의 상징인 브레스를 쏘지 못 할 리가 없다.
그리고 그 점을 노렸다.
그 어느 생명체든 입속이 연약할 수밖에.
“잘 가라.”
이미 화살은 내 손을 떠났다.
브레스를 쏘기 위해 주변의 마나와 공기를 빨아들일 때,
근처로 쏘아진 화살이 입속으로 들어가 박힌다.
[ 대체, 대체 화살에 무슨 짓을 한 것이냐! ]
저 멍청한 드래곤이 이 활이 마탄의 사수라는 걸 알 리가 없다.
애초에 여기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다 나사가 빠져있긴 했지만.
드래곤이 괴로운 듯 몸부림치다 바닥으로 추락했다.
떨어진 이후에도 움직이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 시련의 두 번째 단계가 끝났습니다. ]
[ EX+++ 랭크로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하셨습니다. ]
모든게 끝났다.
후우, 한숨을 내뱉으며 땅 바닥에 앉으려는 순간.
“너.”
[ 사마엘이 당신에게 적대감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
“마탄의 사수를 어떻게 아는 거지?”
여섯 쌍의 날개를 가진 미형의 천사.
사마엘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