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이덴티티 3
“무..무슨..” “아주머니 여기서 오래 일하셨어요?” “오래 됐지 여기 오픈할때부터 일했으니까” 서하, 의아해하면서 “오픈..할때부터요? 그럼, 유찬씨 여자 친구 있을때부터 계셨어요?”
주방 아주머니 당황스럽다는 듯 “여..여자친구라니? 유부남이 무슨 여자 친구여” “유..부..남 이라니요?” “유부남 무슨 뜻인지 몰라? 결혼한 남자 말이여” “결..결혼이라니요? 얼마전에 오래 만난 연인이랑 헤어진거 아니었어요?”
“이건 또 뭔 소리래? 아까 온 갸있지 손님으로 온 갸..갸가 바로 와이프 동생이여 아이구, 아까 진이한테는 말하지 말라구 하구서는, 내가 다 주절거리네 우리 주인 양반 삼년째 병든 와이프 간호중이여 식물 인간 돼서 누워있는 와이프를 삼년째 돌보고 있는 양반이여” “네? 아까 알바생은 그렇게 말 안 했는데..” “네 아까 알바생은 손님의 동생이 아파서 봉사활동차 만났던 학생을 돌봐준다고 했어요”
“갸는 그리 알고 있구만 쯧쯧..주인 양반이 갸한테는 그리 말했구만 우리 주인 양반 딱한 사람이야 참말로, 칠년전에 결혼해서 고생 고생 하다가, 삼년전에 라면가게 오픈하고 좀 살만하다 하니까, 와이프 사고로 식물인간 돼서 또 그리 누워있고, 불쌍한 양반이지 이제 그만 산소 호흡기 떼라고 말해도 안 들어, 다시 일어날거라구 쯧쯧..이제 그만 보내고, 편히 살것이지, 젊은 양반이 딱하게도”
“네에?” 너무 놀라서 말도 더듬는다. “저..정말이에요?” “그럼 정말이지 않구..한 6개월 전인가, 병원에서도 가망이 전혀 없다고 했다는데도, 산소 호흡기 쓰면서 간신히 버티는데도, 아직도 저리 버티고 있어 그 병원비며 다 어찌 부담하려는지 보는 나도 답답한데, 저 양반 속은 어쩌것어 아마 시커멓게 탔을거여 말을 안해서 그렇지” “그..그럴수가...” “뭐가 그럴수가여?” 핸드폰이 울린다.
“어 우리 아들이네 나 고만 가봐야겠어 아참, 오늘 내가 주절거린건, 주인 양반한테 말하지 말어 나도 그 냥반이 하도 답답해서 푸념삼아 말한거니까 그리들 알고 어서 가봐들” 주방 아주머니 서둘러 바삐 걸어간다.
서하와 준결 할말을 잃고 멍하니 서있다.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을 스쳐간다. 서하와 준결 아무 말없이 터벅 터벅 걸어간다.
깊은 밤, 커피 전문점에 마주보면서 앉아있는 서하와 준결, “누나 뭐 마실래?” “아메리카노” 준결 주문하러 가고, 서하는 가까운 자리에 털썩 앉는다. 준결 잠시후에 주문한 커피를 들고 온다 아메리카노 두 잔이다.
서하 커피를 마시다가 “후아..” 하고, 짧은 한숨을 내쉰다.
“뭐야..우리..의뢰를 받은거야? 안 받은거야? 이 사건을 해결해야해? 말아야해?”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모르겠네...”
“잠깐 우리 하나 하나 차근 차근 정리해보자 연락이 끊어진 여자 친구를 찾아달라고 의뢰한 남자가 있다 여자친구와는 칠년전부터 만났었구 삼년전쯤 여자친구와 라면 가게를 오픈했다 여자친구와 싸운 후 헤어지고, 그동안의 세월이 있으니까, 연락은 하면서 지내기로 했다 뜸하게 연락하면서 지내다가 그런데 갑자기 6개월 전부터 여자친구와 연락이 끊어졌다 여자친구가 걱정되니까 찾아봐달라고 의뢰한 남자, 여기까지가 남자가 말한 내용이야”
“라면 가게에서 오픈할 때부터 같이 일한 주방 아주머니가 있다 그 아주머니 말씀대로 하면, 그 남자는 이미 결혼한 남자이고, 결혼 생활은 7년째다 삼년전쯤 라면 가게를 오픈했구, 오픈할 무렵, 와이프가 사고를 당해서 식물인간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누워있다 6개월 전부터 가망이 없다는 말을 병원에서 들었지만, 산소호흡기를 떼지않고 와이프가 다시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까지가 아주머니가 말한 내용이구”
“자..정리해보자...남자가 한 얘기 중에 과연, 진실이 있을까? 만약, 진실이 있다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1%의 진실이 99%의 거짓과 섞여있다면, 1%의 진실은 거짓에 묻혀서 진실이 아닌게 되어버리겠지”
“아주머니가 한 얘기는 모두다 과연 진실일까? 아주머니 역시 그 남자에게 들은 얘기일뿐이라면, 그 얘기가 과연 진실일까? 그 얘기가 진실이라면, 그 진실에는 몇 %의 거짓이 섞여있을까? 섞여있는 거짓이 진실에 묻혀서 모두다 진실처럼 보여진다면, 우리는 구별할 수 있을까?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을까?”
“자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의뢰한 사건이니, 사건해결은 예정대로 해야겠지” “그래야지 어디서부터 조사를 해야하나” “먼저 우리가 어느 쪽 말을 더 믿고 있느냐를 따져봐야해 추리의 원칙 하나, 믿지마라 믿는 쪽에 거짓이 있고 믿지 않은 쪽에 진실이 있다 믿음에 현혹되면, 진실을 보는 눈을 가리게 되거든 너는 어느 쪽을 더 믿고 있어?”
“나는 아주머니 쪽 말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누나는?” “나는..남자의 말을 믿고 싶어지네” “그럼 누나는 아주머니의 말을 따라가봐 나는 남자의 말을 따라가볼테니까” “알았어” 머릿 속이 복잡한 채로 커피를 마시는 두 사람, 가방 속의 시계가 반짝인다. 서하와 준결 반짝이는걸 보면서,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밤 늦은 시각 병원 복도에 나와서 울고 있는 손님(유경)과, 유경을 달래는 유찬
“어떡해요 우리 언니..우리 언니..이대로 산소 호흡기 떼야해요? 아저씨 어떡해요?” “어떡하기는 뭘 어떡해, 산소 호흡기를 왜 떼..쫌만 더 있어보자 아니, 일어날때까지 있어야지” “아저씨 병원비는요 언제까지 아저씨한테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이제 3년인데..뭘..괜찮아 그정도는..아무 염려하지 말구,” “언니 간호나 잘 해줘 언니 얼른 일어날 수 있게” 유경의 어깨를 다독이는 유찬의 손길이 따뜻해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고마워요’
화창한 날씨, 적당히 시원한 바람, 알바생 라면 쟁반을 들고 배달가고 있다.근처인지 걸어서 가고 있는 알바생 앞에 갑자기 멈춰서는 준결, 알바생 깜짝 놀란다. “깜짝이야 어제 오셨던 분?” “어..알아보네 배달 이 근처인가봐” “네 요앞 편의점이에요” “그래? 나도 편의점 가서 물 한병 사야되는데, 같이 갈까” “그..러세요” 준결, 알바생과 나란히 걷는다.
“이리줘 들어줄게” “괜찮아요” “같이 가는데, 여학생한테 들게 하는거, 매너 아니라서 그래 부담 갖지 말구 일루줘” 준결 쟁반을 뺏어서 들고 간다. “고맙습니다” “학생은 1년전부터 일했다구 했지?” “네” “주인 아저씨 어떤 분이야? 잘 해주셔?” “네..워낙 잔정이 많으셔서 이것 저것 잘 챙겨주세요”
“어제 왔던 그 손님도 자주 와?” “자주 오지는 않고, 가끔 와요 한달에 한번 정도 오나?” “아저씨랑 그 손님 어떻게 아는 사이야?” “어제 말씀 드린 것처럼” “그래? 그 손님이랑 얘기할 때 뭐 특이한거 없었어?” “특이한거요?” “예를 들면, 둘만 아는 뭔가를 소근댄다든지, 뭐 그런거” “글쎄요 그런거는 없었는데” 곰곰히 생각하다가 뭔가 떠오른 듯 “아 맞다 6개월 전쯤인가? 문 닫을 시간 쯤에 만취한 아저씨를 데리고 온적 있었어요 그때 주방 아주머니도 안 계셔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모셔두고 불 켜두고 퇴근하고 갔거든요 어디 연락할때도 없어서, 그 손님은 아저씨만 두고, 병원에 가봐야 된다면서 가버리고, 저도 집에 들어가 봐야 돼서 그때 아저씨가 좀 이상했어요 만취해서 한 소리라고 하기에는 왠지 좀 횡설수설 하는게, 좀 거림찍하기도 하고, 그냥 좀 기분이 이상해서, 안에 두고 저 먼저 얼른 퇴근했거든요 다음날에는 기억을 못하시는지, 별말씀 없으시길래 저도 모른척 했구요”
준결 흥미롭게 “그래? 무슨 말을 했는데?” “유라야 미안해 미진아 미안해 미진아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너한테 안 그랬으면 유라한테 갈 수 있을텐데...너한테 미안해서, 유라한테도 못 가겠다 그러시더니 갑자기 저보구 유라야 그러시길래 무서워서 얼른 나왔거든요” “분명 유라라고 했어?”
“네 분명히 유라야 그랬어요” “또 미진이라고 했구?” “네 미진아 미안해 이러셨어요” “유라와 미진이라” “근데요 유라라는 사람, 그 여자 손님 동생이거든요 가끔 올때마다 아저씨가 유라는 괜찮냐구 물으셨어요 그 손님은 괜찮다구 하고,” “동생이라구?” “네” 편의점에 도착한다 “이리 주세요 안에는 제가 들고 갈께요” 쟁반을 받아들고 먼저 안으로 들어간다. 준결 먼 산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주방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병원으로 찾아가는 서하, 한솔 병원 간호사들 바쁘게 움직이고, 서하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한 간호사에게 다가간다. “저기요 말씀 좀 물을께요 여기 식물 인간 상태로 삼년이상이신 여자 환자분 계실까요?”
“아..106호 환자 말씀이시구나 어떻게 오셨는지? 환자분이랑 무슨 관계세요?” “환자랑 직접적인 관계는 아니구요 환자 가족이랑 아는 사이라서”
“아..유경씨랑 아는 사이구나 유경씨 쫌전에 들어갔는데 병실로 가보세요” “유..경씨가 병실에요?”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꾸벅 하면서 병실 쪽으로 걸어간다.
106호 병실 문 앞에 서유라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서하 조심스럽게 노크한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린다. 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는 서하, 파리한 얼굴의 유경 들어오는 서하를 놀라면서 본다. “누구세요?” 서하 누워있는 환자를 유심히 본다. 산소호흡기를 하고 누워있는 환자 이십대 중반쯤으로 보여진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저 혹시 알아보시겠어요?” 유경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요 누구세요?” “저..어제 라면 가게에서 봤는데 “어제? 라면 가게에는 갔는데, 뵌 기억은 안 나는데요” “저도 그때 라면 먹고 있었거든요 거기서” “네에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민유찬씨 잘 아세요?” 단도직입으로 묻는다. “민유찬 아 아저씨 말씀이세요? 아저씨 아주 잘 알죠 근데 왜 그러세요?” “아..저씨? 언니 남편이면, 형부 아닌가요? 근데 왜 아저씨라구?” “언니 남편이라니요? 누가요? 아저씨가요? 무슨 말씀이세요?”
“유찬씨랑 유라씨 부부 아닌가요? 칠년 전 쯤에 결혼한 부부” “무슨 말씀이세요 아저씨를 알게 된게 3년전인데 그것도 언니는 전혀 모르고, 언니 사고 났을 무렵에 아저씨 알게 됐는데요” “3년전에요? 언니 사고라구요? 실례가 안된다면, 어떤 사고 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교통 사고 였어요 아저씨가 운전하던 차에 언니가 치였어요” “네에? 사고났을 당시 상황을 좀 자세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밤길이었어요 늦은 밤, 우리 언니는 남자친구랑 싸우고 만취된 상태로 걸어오고 있었어요 앞에 먼저 달려가던 차에 우리 언니가 치였는데, 그 차는 그대로 달아나버렸구, 코너에서 돌아서 나오던 아저씨가 쓰러져있는 우리 언니를 못보고 다시 한번 치였어요 아저씨는 자신이 우리 언니를 친 줄 알고, 병원에 급하게 데려갔는데, 병원에서 수술하고 다 해봤지만 결국 식물 인간 판정을 받았어요 경찰 조사 결과, 아저씨보다 먼저 치인 차에 언니가 그렇게 됐지만, 아저씨는 거의 과실이 없었어요 살짝 받은 정도였는데 아저씨는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우리 언니를 돌봐줬어요 언니랑 둘만 살고 있었던 저도 같이 돌봐주셨구요” “아...그렇군요...부모님은”
“우리 언니가 가장이었어요 하늘 아래 언니랑 저 단 둘이었거든요 언니랑 오랫동안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남자랑 언니는 자주 싸웠어요 그 날도 언니랑 심하게 싸우고, 언니는 홧김에 술을 들이부어마시고 만취한 상태로 걸어오다가 사고가 났구요 그 사고 이후에 남자친구는 연락도 끊기고, 종적을 감췄어요” “아, 그동안 유경씨가 고생이 많았겠어요” “저보다 아저씨가 더 많았죠 여태까지 입원해있는 병원비며, 수술비며, 모두다 아저씨가 책임지시고 계신걸요 6개월 전에 병원에서 언니 가망없다고 판정 받았는데도, 아저씨의 고집으로 산소호흡기 쓰면서 여태 있는거에요 저는 그만 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이제 더는 아저씨께 부담드리고 싶지 않아서 가망없는 언니 이제 그만 보내주고 싶지만 아저씨가 언니 꼭 다시 일어 날거라면서 아저씨 정말 좋은 분이세요” 흑흑 흐느낀다
“유경씨 그동안 혹시 유찬씨한테 이상한 점 없었어요?” “이상한 점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좀 횡설 수설 한다던가, 이상할 때 없었어요?” “이상할때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아 아저씨 가끔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우리 미진이도 유라씨랑 같은 나이라구 우리 미진이도 유라씨처럼 가냘프고 이뻤다구요”
“미..진이라구요? 누구죠?” “저도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아저씨 애인이었다구 하셨어요” “애인이었다구요? 과거형으로 말했어요?” “네..그래서 지금은요? 물었더니, 헤어졌다구” “그..래요?” “근데, 왜 아저씨 일을 물으세요? 아저씨한테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아저씨가 저희한테 뭔가 부탁을 하셨는데, 그 부탁 들어드릴려면 좀 알아야할게 있어서요” “그래요? 무슨 부탁”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나쁜 일은 아닌거죠? 혹시?” “그런건 전혀 아니에요 걱정마세요” “휴우 다행이다 아저씨는 저한테 이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유경씨 힘내요 씩씩하게 살다보면, 앞으로 유경씨한테 더 좋은 일 있겠죠” “고..맙습니다...” “그만 가볼께요” “아저씨한테 비밀로 해야하나요?” “그럴 필요는 없지만, 묻지 않는다면,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눈치가 빠른 아가씨네요 힘내요 꼭!”
유경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서하 유라를 한번 힐긋 보면서, 유경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밖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