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이덴티티 2

　서하, 망설이다가 “음..그럼..내일 낮에 뵐까요? 한시쯤 시간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어디서 뵐까요?” “인사동에 ‘찻집’에서 뵙죠” “좋습니다 내일 그때 뵙겠습니다 바쁘실텐데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 제가 맛있는 점심 대접하겠습니다 식사하지 마시고 나오세요” “아니 뭐..그러실 것은 없어요 괜찮습니다” “제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부담갖지 마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는 서하,

　“내일 약속 잡았어? 모르는 사람인데 괜찮겠어?” “뭐 어때..너도 같이 나갈텐데...위험하면 네가 알아서 잘 해주겠지” “허이구 김치국을 아주 사발 체 들이키시네 내가? 왜?” “너 유단자잖아 내일 하루 내 경호원이 될 수 있는 영광을 줄게”

　“경호원으로 임명할 수 있는 영광을 내가 주는거 아니구? 누나..” “그게 그거잖아 암튼, 너 내일 낮에 시간 비워둬” “알았어 그 사람 여기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지?” “출판사에 물어본거 아닐까? 아..맞다 그걸 왜 안 물어봤지? 여기 어떻게 알았는지..내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그래”

　갑자기 준결의 손 안의 태엽시계가 반짝인다. “누나 방금 봤어? 반짝인거?” “어 나두 봤어” “왜 갑자기 반짝였지?” 서하 우스개 소리처럼 “사건을 감지한거 아닐까?” 태엽시계를 보면서 “너 우리를 사건으로 인도하는거야? 그런거야?” 장난스럽게 얘기한다. “그..런..건..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준결이다. “농담한거 가지고 너 너무 진지하다” 아랑곳하지않고 “이거 맞아 확실히 뒷면이 반짝였어 뒷면이 그 용도였어 반짝이는” 망설이다가 확실하게 얘기한다. “사건을 감지할때 반짝이는 뒷면..음..시계의 뒷면은 그런 쓰임이었군” “뒷면이 반짝였어? 정말? 확실해? 우와..이거 새록새록 신기한데 태엽시계 우리가 아직 알아야할게 많네 다음에 또 언제 시계가 반짝이는지 보자구 검증해보면 더 확실해지겠지”

　“그러자구 내일 이 시계가 사건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면, 태엽시계 또 다른 사용법 하나를 찾은거니까, 이거 이거 흥미진진한데 왠지 요녀석 왠만한 여자보다 더 흥미진진해” “그러시겠지 비교하는거 하구는 여자랑 비교를”

　“아니 남자한테 여자보다 더 흥미진진한 대상이 어딨단 말이야 누나 그건 누나도 마찬가지일텐데” “나도 마찬가지지” “거봐 그러면서 아닌척은”

　“나도”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여자가 흥미진진해” 서하의 엉뚱한 대답에 자지러지는 준결이다. “뭐야? 푸하하하”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는 서하, “가봐야지 열시가 넘었어” “가봐야되는데, 가기가 싫다 오늘 여기서 신세 좀 지면 안되나” “뭐..라구? 작업할 것도 없는데 여기서 왜?” “그냥 들어가기 싫어서” “너 요즘 왜 그래?” “그냥 그럴 때 있잖아 매번 똑같은데, 그런게 당연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하는거 잘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갑자기 다 귀찮고, 다 싫은거 있잖아 누나도 그럴 때 있잖아”

　“그럴 때 있지 너 요즘 많이 그래?” “그냥 쫌 그렇네” “좀 쉴래? 요며칠 내가 널 너무 부려먹었나보다 올라가서 좀 쉬어” 작업실은 복층으로 된 오피스텔이라서 침실은 위쪽에 있다. “땡큐 누나” 준결 주섬 주섬 윗층으로 올라가서, 침대에 눕는다. 밑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서하, “거기 보면 스텐드 있어 그거 켜고 있어 잠들때까지 이따 내가 꺼줄게” 서하는 준결을 배려하듯 작업실 불을 끄고 책상 앞의 스텐드를 켠다. 서하의 배려를 눈치챈 준결은 말없이 침실 스텐드를 켠다. “아늑하다” 준결 편안하게 잠이 든다.

　다음날 점심무렵 약속된 시간 찻집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서하와 준결, 나란히 앉아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쳐다보지만, 유찬은 보이지 않는다.

　약속시간에서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입구쪽을 바라보면서,“왜 안 오지?” “그러게” 누군가 통화하면서 들어오는 소리 들린다. “그래 알았어 유라 연락 받으면 전화할게” 전화를 끊고 뚜벅 뚜벅 걸어와서 서하와 준결 앞에 선다. “단서하씨 되시죠” “네 어제 전화하신 분” 유찬 꾸벅 인사를 하면서, 자리에 앉는다. “원고는 가져오셨죠? 보여주세요” “급할 거 뭐 있습니까? 차 한잔 드시고 천천히 보시죠 뭐 드시겠어요?” “생강차 마실께요 너는?” 준결을 본다 “같은걸로” “여기요” 주문받으러 온다 “생강차 두잔, 유자차 한잔 주세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준결 침묵을 깨려는 듯 유찬에게 말을 건넨다. “소설은 언제부터 쓰셨어요?” “아..그거..실은..말씀드릴거 있어요” “무슨?” “실은, 소설 때문에 뵙자고 한게 아닙니다” “네에? 그럼 왜? 저희를?” “제 여자 친구가 행방불명입니다 여자 친구 좀 찾아주십사하고 뵙자고 했습니다” “여자친구를요? 그걸 왜 져희한테” “서하씨 쓰신 추리 소설 읽었어요 거기 그런 내용이 있더군요 잃어버린 과거는 때로는 찾지않는게 좋다” “네 그런 구절이 있었죠 근데 그거와 이건 다른데” “다르지 않습니다 제 여자 친구가 저랑 헤어진 후에 연락이 안 됩니다” 준결,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뭐야? 싱거운 표정으로 “그건 여자분이 이제 그쪽과 연락할 일이 없으니까 연락을 안 받는거구요 나는 또”

　“잃어버린 과거는 때로는 찾지 않는게 좋다 이 구절이 인상깊으셨다면, 찾지 않는게 좋을텐데요 왜 찾으려 하세요?” “우리는 헤어지기는 했어도, 서로 외로운 사람들이라, 그냥 아는 사람으로 남기로 하고, 가끔 연락하기로 하고, 그렇게 좋게 헤어졌어요 근데, 6개월 전부터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전혀 연락이 안됩니다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닌지, 걱정 되기도 하고,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겨서 그런거라면, 깨끗하게 정리해주고 싶어서, 암튼, 왜 연락이 안되는건지, 궁금해서요 두 분이라면, 제 여자 친구를 찾아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가 찾을 수 있다구요? 경찰의 도움이 더 필요한거 아닐까요? 우리가 아니라,” “경찰에 의뢰하기도 좀 우습지 않습니까? 헤어진 연인을 찾아달라는게”

　“그건 그렇네요” “부탁드립니다 꼭 좀 찾아주세요” 서하 난처해하면서, 준결을 본다. 준결 한번 맡아보자는 눈빛이다. 서하, 망설이면서 무겁게 “그럼 좋습니다 한번 해볼께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일어나서 인사를 꾸벅한다.

　서하, 수첩을 꺼내서 받아 쓸 준비를 하면서 “여자 친구분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 “서유라입니다 나이는 스물 일곱이구요 아..여태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민유찬 서른 살 요 앞에서 라면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요 앞에 모퉁이 돌아가면 바로 있어요” “라면 가게 라구요? 혹시? “출출 라면” 거기 말씀이세요?” “네 맞습니다 잘 아시네요”

　“거기는 젊은 부부가 한다고 들었는데...” “삼년전부터 여자친구랑 같이 해왔어요 헤어지고 나서는 혼자서 하고 있지만,”

　“아 그래서 젊은 부부가 한다구 했군요” “네” “같이 라면 가게를 꾸려가실 정도면, 결혼까지 생각한 분이실텐데, 어쩌다 헤어지셨어요 아,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질문이지만, 의뢰하셨으니, 여쭤봐야될 것 같아서” 유찬, 담담하다 “괜찮습니다 그냥 서로 권태로워서 헤어진거죠 오랜 연인들의 잦은 다툼, 뭐 그런거, 칠년을 만나면서 헤어지다, 만나다, 하도 많이 반복해서, 이번에도 다시 돌아오겠거니, 시간 쫌 지나면, 다시 연인으로 그렇게 지내겠거니 했는데, 이번에는 연락조차 되지를 않으니” “아 그렇군요 많이 걱정되시겠어요” “네 많이 걱정됩니다” “잘 알겠습니다”

　차를 가져와서 내려놓는 점원, 서하 천천히 생강차를 마신다 “궁금한거 있으면 라면 가게로 연락드릴께요” “네” 유찬, 한모금 한모금 천천히 유자차를 들이킨다.

　서하 유찬을 유심히 쳐다본다. “전에 우리 만난적 있나요? 낯이 익은데” “그러네 그러고 보니까 낯이 익어 우리 어디서 봤죠?” “두..분..글쎄요 어디서 본것같기는 한데, 혹시 라면 가게에서 봤나?” “라면 가게는 아니구, 최근에 어디서 뵌 것 같은데” 준결, 갑자기 생각난 듯 “어? 혹시, 골동품 가게, 그때 거기서 봤잖아요”

　“아 맞다 골동품 가게에서 봤다” “골동품 가게, 아하 그때 뭐 좀 사러 갔었는데, 아 저도 기억이 날듯합니다” “그때 우울해보이셨던게, 여자 친구 분 때문이었구나 굉장히 우울한 눈빛이라서 기억에 남아있었거든요” “그러셨어요? 아마도 그럴거에요 요즘 계속 여자 친구 생각에” “여자 친구 분 걱정 마세요 우리가 꼭 찾아 드릴께요” “야아 너 너무 자신만만이야 지금 그러다 못 찾으면 실망하실텐데” “못 찾는다고 하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찾는데까지 찾아보고 없으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나보다, 잘 살고 있어서 나한테 연락하기 싫은가보다 해야죠 그저 하는데까지 노력해보고 싶어서 그런거에요” “아 네” 유찬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차를 마신다. 서하도 더 묻지않고 차를 마신다.

　준결 차를 마시다가 유찬을 유심히 보는데, 차 마시는 유찬의 독특한 손이 눈에 들어온다. 찻잔을 들고 있는 오른 손은 투박한데,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왼 손은 여자 손처럼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신기해하면서 유찬의 손을 보는 준결, 준결이 눈짓으로 서하에게 유찬의 손을 가리킨다. 서하도 유찬의 남다른 손을 유심히 본다. 서하도 눈빛으로 신기해한다. 유찬 두 사람이 자신을 보며 신기해하는걸 알지 못하면서 아까와 다름없이 묵묵하게 차를 마신다. 찻잔을 내려놓고, 양손을 나란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유찬, 클로즈업되는 오른 손과 왼 손의 대비..

　저녁, 유찬도 만나볼겸 라면도 먹을겸 라면 가게에 들른 두 사람 서하와 준결 “어서 오세요 어?”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면서 활짝 웃는다.

　“라면 먹으러 왔어요” 유찬, 반갑게 맞이하면서 “이쪽으로 앉으세요”

　“여기 매운 짬뽕 라면 괜찮드라 나는 요거 먹을래 누나는?”

　“글쎄 나는 그냥 라면 먹을래” “매운 짬뽕 라면, 그냥 라면 하나, 두 분께는 특별히 더 맛있게 해드리죠” “하하하 고맙습니다” 유찬 주방을 보면서 “매운 짬뽕 라면, 그냥 라면 하나, 특별히 더 맛있게 해줘요” 서하와 준결을 돌아보면서 싱긋 웃어보인다. 서하와 준결도 덩달아 같이 웃는다.

　서하와 준결 라면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딸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 들린다. 서하와 준결 무심코 돌아보니 전에 본 젊은 아가씨다.

　“아저씨 오늘은 계셨네요” 유찬 반가워하면서 “이게 누구야? 유경이 아니야” “네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그래 넘 오랜만이다 이쪽으로 앉아” 유찬 비어있는 자리로 안내하며 여자가 앉는 것을 본 후에 자신도 따라 앉는다.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지?” “네” “유라는?” “아직” “얼른 좋은 소식이 와야되는데”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라면 먹을래? 뭘로 줄까?” “매운 짬뽕 라면 주세요”

　“그래 잠깐만 기다려” 유찬 주방을 보면서 “매운 짬뽕 라면 하나 더 추가” 알바생 유찬에게 다가와서 소근거린다. 유찬 고개를 끄덕인다. 알바생 한숨을 내쉬면서 유찬을 안쓰럽게 본다. 유찬 괜찮다는듯 알바생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서하와 준결은 두 사람을 유심히 지켜본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리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손님, 유경은 전화를 끊고 다급하게 일어난다. “아저씨 저 다음에 와서 먹을께요” “왜? 무슨 일 있어?” “연락이 와서 가봐야겠어요” “그래? 나도 같이 가보자” 손님 다급한 와중에도 알바생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나간다. 유찬 메고 있던 앞치마를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서하와 준결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황급히 나간다. 서하와 준결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면서 바깥을 본다.

　알바생, 두사람이 주문한 라면을 갖고 온다. “라면 나왔습니다 매운 짬뽕 라면은?” “여기다 주세요” 준결 앞에 매운 짬뽕 라면을 내려놓고, 서하 앞에 그냥 라면을 놓는다. “맛있게 드세요” 인사하면서 가려고 한다 “저기..요..잠깐만요...”

　알바생 의아해하면서 서하를 본다. “네?” “여기서 오래 일했어요?” “네 한 일년쯤 됐어요 그건 왜 물어보세요?” “주인 아저씨 아까 왜 급하게 나가셨어요?” “그건 왜 물으세요?” “아 아저씨랑 친분 있는 사람인데, 아까 봤잖아요 특별히 맛있게 해주신다구”

　라면 그릇을 가리키면서 “아..네..” “갑자기 급하게 나가셔서 무슨 일이 있는건가 걱정돼서요” “아 급하게 나가신거 병원에 가신거에요 아저씨 돌봐주는 학생이 있거든요 그 학생이 좀 아파서...가끔 그렇게 급하게 잘 나가세요 우리는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는데,” “돌봐주는 학생이라니요?” “아 우리 아저씨 봉사활동 하시다 알게 된 학생인데요 아까 오신 그 손님 동생 같아요 그 손님 가끔 와서 여기서 라면 먹고 가거든요 아저씨가 그냥 먹여주시는거에요”

　주방 아줌마, 어느 틈에 나왔는지 알바생을 나무란다. “뭐여? 너? 주인 얘기를 잘 모르는 손님한테 막 하는거 아니여?”

　서하, 알바생을 두둔하듯 서둘러 얘기한다..“유찬씨랑 모르는 사이 아니에요 급하게 나가시길래 염려돼서 물어본거에요” “염려 되면 이따 직접 물어봐요 어서 일햐 저기 손님 기다리신다” 알바생을 재촉하면서 데리고 간다.

　서하, 주방 아주머니의 태도가 미심쩍다 여겨진다. 준결 역시 같은 생각이다. 알바생, 주방 아주머니에게 몇마디 나무람을 들으면서, 바쁘게 일한다.

　주방 아주머니, 서하와 준결을 한번 쓰윽 본다. 서하와 준결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눈빛이다. 서하와 준결이 마주보자, 얼른 고개를 돌리면서, 주방으로 들어간다.

　깊은 밤 셔터를 내리면서 라면 가게를 닫고 있는 주방 아주머니 뒤돌아보다가 깜짝 놀란다. 서하와 준결이 아주머니를 보고 있다. “아이구 깜짝이야 뭐여? 두 사람 여태 안 갔어?” “아주머니께 궁금한게 있어서 기다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