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은 만임조원과 함께 재정각 건물의 숙소를 배정받았다.
재정각에는 당연히 각주가 있지만, 총관까지 상주해 있었다.
그래서 만임조가 재정각 소속 같지만 실제로는 총관 개인의 조직이 된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떠돌았다.
어쨌든, 만임조원의 숙소는 하나의 마루를 두고 네 개의 방을 각 개인이 따로 쓰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왼쪽은 안쪽에서부터 낙천과 곽홍이,
오른쪽은 백사웅과 막청지가 각각 차지했다.
원래 열악했던 숙소와는 천지 차이가 나는 환경에 만임조원은 한껏 들뜬 기분으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낙천은 제 방 환경이 어찌 변했는지 둘러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침대로 곧바로 들어가 곯아떨어졌다.
일어나자마자 운기조식을 마친 낙천은 기가 막힌 냄새에 코를 벌렁거렸다.
생선을 굽는 냄새 같은데 희미하던 냄새가 점점 더 짙어졌다.
“꼬르르륵!”
냄새에 자극받아 다른 날보다 더욱 배가 고파진 낙천은 방문 앞에 놓인 세숫대야에서 눈곱만 떼고 주방부터 쳐들어갔다.
안을 기웃기웃하는 낙천을 본 주방장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뭐야? 못 보던 얼굴인데 왜 남의 주방을 기웃거려?”
입안에 침이 고인 낙천이 되물었다.
“이 집 식군데 밥 한 공기만 주면 안 될까? 거기에 냄새 좋은 생선 한 마리만 주면 되는데.”
“뭐?”
“그게 그리 싫으면 생선 반 토막만 주던지?”
주방장이 기가 막힌 얼굴로 낙천을 쏘아보다 옆의 보조들에게 물었다.
“저 시키 누구야?”
“그, 글쎄요.”
보조들도 낙천이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데 한 보조가 손바닥을 탁 마주치며 말했다.
“아! 어제부로 재정각으로 새로 들어왔다는 그 만임조원 같은데요?”
주방장이 낙천을 쏘아보며 다시 물었다.
“맞아? 만임조원?”
“그런데?”
주방장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알아서 음식을 숙소로 가져다줄 텐데 뭐하러 찾아와?”
“웅?”
낙천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주방장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보조들에게 말했다.
“자리 만들어서 먼저 챙겨 줘. 여기까지 찾아올 정도로 배가 고픈가 본데.”
곧 보조들이 한쪽에 있는 작은 탁자에 음식들을 내려놓으며 설명했다.
“다른 조직은 몰라도 이곳 재정각 소속은 모두 음식이 그냥 제공됩니다. 재정각주가 워낙 알뜰하게 돈을 쓰는 편이라 그 남는 돈으로 음식까지 제공하는 거지요.”
낙천은 공짜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군침을 흘렸다.
“뭐 지척에 있는 총관 눈치를 보느라 뒷돈을 챙길 수가 없어서 그렇다는 말도……”
“쯧! 쓸데없는 소리 할래?”
주방장의 불호령에 보조는 화들짝 놀라 제자리로 돌아갔다.
수인장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는 낙천은 젓가락을 들었다.
음식들을 모두 살피던 낙천이 물었다.
“생선은?”
“무슨 생선이요?”
주방장 대신 보조 중 한 명이 물었다.
“냄새 죽이는 생선 있잖아?”
“오늘 생선 요리는 안 했는데요?”
낙천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리 아까우면 반 토막이라도 주지?”
주방장이 굳은 얼굴로 국자를 탕 내려놓았다.
“내 식단에 불만 있으면 처먹지 말고 그냥 나가!”
“지길! 아까우면 그냥 아깝다고 해? 냄새가 분명 났었다고. 내 코가 그냥 코인지 알아? 개 코라고 개 코!”
“개 코 같은 소리하네? 네놈이 지금 주방장이라고 날 무시하는가 본데 내가 이래 봐도 왕년엔 나는 새도 잡는다는 칼잡이였어. 그 개 코 잘리기 싫으면 나가!”
낙천이 주방장을 쏘아보는 눈빛으로 식탁에 놓인 음식을 마구 집어 먹었다.
“이놈이!”
주방장이 옆에 꽂아놓은 식칼을 집어 들었다.
“정말 없나 본데? 냄새가 이쪽이 아닌가?”
낙천이 음식을 순식간에 폭풍 흡입하며 중얼거렸다.
주방장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내 주방엔 다시는 얼씬거리지 마라, 이놈아!”
주방장이 어떤 말을 하던 낙천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음식이 맛있긴 하네. 사 먹는 거랑은 비교가 안 되는데?”
낙천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주방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큰 솥의 고기볶음을 휘젓다가 갑자기 히쭉 웃어 보였다.
“그럼 내 솜씨가 어딜 가지 않지.”
햇살이 걸어가는 네 명의 사내를 비추었다.
한 명은 비교적 걸음걸이가 반뜻했고 한 명은 말라서 그런지 걸음걸이도 경쾌하게 느껴졌다. 홀로 삐죽이 튀어나온 덩치는 덩치만큼이나 걸음걸이도 묵직했다.
나머지 한 명은 어찌 보면 방만하고 어찌 보면 여유가 있는 걸음걸이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곽홍과, 백사웅, 막청지였고 마지막은 낙천이었다.
이들은 똑같이 수인장을 나와 똑같이 선화로로 향했다.
이들 모두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은 낙천이 담당하는 선화로의 동쪽이었다.
낙천의 눈에 건어물 가게가 보였다.
입에 넣을 말린 과일이 없다는 것을 안 낙천이 인상을 팍 찡그린다 싶더니 양쪽의 만임조원을 슬쩍 바라봤다.
“아, 씨! 내 건과일! 내 이 금전장 놈들을 당장 가서 싸그리 죽여버리고 말 테다!”
고함을 내지르며 낙천이 앞으로 내달렸다.
“이, 이봐! 계 소협 참아. 오늘까지 이러면 어쩌려고 그래.”
“이러면 안 되는데…….”
곽홍과 막청지가 양쪽에서 낙천의 팔을 잡고 말리는 동안 백사웅이 총알같이 건어물 가게로 달려갔다.
건 과일을 사서 품에 안겨주자 낙천이 그걸 품 안에 잽싸게 집어넣더니 곽홍과 막청지를 바라봤다.
“둘은?”
한숨을 내 쉰 곽홍과 막청지는 각자 건 과일을 사다가 낙천의 품에 안겨주었다. 각자 담당한 구역으로 가면서도 셋은 낙천을 얄밉다는 표정으로 쏘아보곤 했다.
말린 과일을 꺼내 씹으며 낙천은 이와 똑같은 천 꾸러미가 두 개나 더 있다는 것에 만족한 미소를 보였다.
“야오오옹!”
이놈의 고양이는 이제 아예 낙천에게서 식량을 해결할 생각인 듯했다.
경계심도 사라졌는지 앉아 있는 낙천의 다리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꼬리를 한껏 치켜든 채 제 몸을 슬쩍슬쩍 비비기까지 했다.
“야오옹! 야오옹!”
탈혼귀조의 손에서 자란 낙천은 부드러움과 다정함이라는 감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무영신투와의 1년 동안도 다정함보다는 바른 인성에 대한 잔소리만 들어왔었다.
인제 와서 무영신투가 자신에게 보였던 어떤 부분들이 가슴 안쪽의 무언가를 건드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낄 뿐이었다.
그래서 고양이가 자신에게 보이는 친근한 행동이 낙천은 무척이나 어색하고 이상했다.
“시……!”
낙천은 다리를 빼며 버럭 욕설을 내지르려 했다.
“‘시’가 아니라 ‘시시’라고 부르기로 하지 않았나요?”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낙천은 고개를 들었다.
고양이 이름을 제멋대로 붙여준 여인이었다. 그 옆에는 당연한 듯 시녀 소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