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욕설을 내뱉으려다가 움찔하는 소화와 여인을 본 낙천이 억지로 욕설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생선값을 주시던지 내 생선을 가져간 저 도둑이라도 잡아 줘야지요?”
“시……, 진짜 귀찮네.”
낙천은 짜증을 부린다 싶더니 의자에서 일어섰다.
어감상 또 욕설을 퍼붓는지 알고 두 눈을 부릅떴던 여인은 그냥 욕을 꿀꺽 삼킨 낙천을 보곤 이번에도 잘못 봤나 하고 넘어갔다.
“어멋! 이봐요. 우리 아가씨가 누군 줄 알고 그리 무례하게……”
하지만 옆에 있던 시녀 소화는 낙천의 행동이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소화야. 되었다.”
“그래도 아가씨…….”
“됐다고.”
여인의 단호한 말에 소화는 찍소리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슬렁어슬렁 걸어간 낙천은 지붕 위에서 생선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곤 혓바닥으로 얼굴과 앞발의 털을 고르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순간, 불길함을 느낀 것인지 고양이가 번개처럼 더 위쪽으로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어느새 지붕 위까지 올라온 낙천의 손에 뒷덜미가 잡힌 후였다.
“끼야야야옹! 캭캭!”
고양이는 죽는다고 울어대다가 이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고양이를 무심히 바라보다 낙천은 지붕 아래로 사뿐히 내려섰다.
고양이를 대롱대롱 들고 여인에게 다가간 낙천은 입을 열었다.
“어찌해 줄까? 생선을 문 입을 찢을까, 아니면 아예 목을 부러뜨릴까?”
대롱대롱 매달린 고양이는 죽음을 예감한 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여인이 그런 고양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낙천의 말에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미쳤어요?”
여인은 고양이를 낙천의 손에서 뺏어 품 안에 안아 들려 했다.
“야오오오옹!”
고양이는 언제 얌전히 있었냐는 듯이 잽싸게 여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쏜살같이 오가는 사람들 틈을 파고들다가 건너편 지붕 너머로 사라졌다.
당황한 얼굴로 고양이가 사라진 지점을 바라보던 여인은 슬쩍 낙천을 바라봤다.
“난 분명 잡아 줬다? 놓친 건 그쪽이고.”
“근데 이 작자가? 언제 봤다고 자꾸 반말이야, 반말이?”
소화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낙천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시……”
움찔하는 여인과 소화를 두고 낙천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말을 시키지 말던가?”
“……”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하는 소화를 밀치고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아까 그 고양이 여기 오면 자주 볼 수 있는 건가요?”
여인의 물음에 낙천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알게 뭐야. 그 넘의 고양이.”
인상을 찌푸리던 여인이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뭐지요?”
낙천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운다 싶더니 히쭉 웃으며 답했다.
“계낙천!”
“계? 잠깐 그게 고양이 이름이에요?”
“웅?”
“헐! 누가 당신 이름 물었어요? 고양이 이름이 뭐냐고요?”
“아, 시……, 쯧!”
낙천이 민망해서 짜증을 부리는데 여인이 입술을 삐죽이며 답했다.
“무슨 이름이 그 모양이람. 시라니. 그냥 시시로 하면 어때요? 시시.”
급 피곤해진 낙천이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꺼지라는 뜻도 있었다.
“그럼!”
더는 볼 일이 없어서인지 여인도 짧게 목인사를 하곤 몸을 돌려 꼿꼿하게 걸어나갔다. 그런 여인의 뒤를 소화가 뒤따랐다.
점점 멀어지는 여인의 모습을 낙천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동안 어떻게 몰랐을까 싶었다. 여인은 한쪽 발을 절고 있었다.
여인과 소화가 사라진 후 사람들 틈에서 낙천을 위협하듯 쏘아보는 사내가 있었다. 하는 모양새를 보아 여인을 호의 하는 자인듯했다.
사내도 곧 사라졌다.
“지길! 돈도 많다.”
낙천이 중얼거렸다.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본 낙천이 걸음을 옮겼다.
귀찮지만 한 바퀴 둘러볼 참이었다.
갑자기 낙천이 뒤를 돌아봤다.
“……지길, 얼굴도 이쁘네.”
저녁노을이 불그스름하게 비치며 저잣거리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상인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낙천이 가장 미묘한 기분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일상을 끝내고 어딘가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낙천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매일 똑같이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제멋대로 자유롭게 살아온 낙천으로서는 너무 갑갑하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그런 낙천의 눈에 세 명의 사내가 노을을 등지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한 명은 40대 중반으로 장부를 펼쳐 들고 주판을 퉁기며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또 한 명은 20대 초반에 덩치가 산 만한 놈이었다. 웃통 앞섶을 한껏 뒤로 젖혀 긴 칼자국이 난 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큰 덩치에 비해 가벼움이 묻어났는데 걸음걸이조차 건들거렸다.
마지막 사내는 20대 중반으로 인상 자체부터 남달랐다. 가는 눈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데 입매는 오히려 단정해서 그 눈이 더욱 두드러졌다.
몸도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다. 보통 키에 보통의 체격이라 이조차도 날카로운 눈매를 돋보이게 했다.
누가 봐도 사람을 여럿 죽여본 자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사내가 문을 닫으려고 정리를 시작한 건어물 가게로 들어섰다.
“저것들은 또 뭐야?”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낙천은 그들을 눈여겨 바라봤다. 품 안에서 천 꾸러미를 꺼내 다시 말린 과일을 입으로 털어 넣었다.
건어물 가게 주인이 장부를 든 사내에게 연방 허리를 굽히는 것이 보였다.
“지길, 허리 부러지겠네.”
낙천이 이리 삐딱하게 구는 것은 건어물 가게 주인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낙천이 말린 과일을 사는 가게가 이 건어물 가게였다.
자신이 파는 물건이 삼릉현은 물론 대림주(大林州) 전체에서 가장 좋은 물건이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곤 했다. 거기다가 조금 깎아달라는 말만 하면 ‘그냥 나가’라는 한마디만 내뱉는 사람이었다.
그건 낙천 자신뿐 아니라 물건을 사러 온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보이는 태도였다.
그러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저리 허리를 굽혀대는 것을 보니 배알이 뒤틀렸다.
마침 세 명의 사내가 가게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장부를 든 사내가 가장 나중에 나오며 건어물 주인과 말을 주고받았다.
“내 다시 말하지만, 이 주 뒤에도 조금만 날짜를 밀어달라니 어쩌니 하면 그땐 어림없는 줄 알아. 그때에도 대금을 갚지 못하면 가게를 빼던가 해야 할 거라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때까지는 내 분명 갚을 겁니다. 대인은 염려 놓으세요.”
“험험!”
대인이라는 말이 듣기 좋았는지 장부를 든 사내는 허세 가득한 헛기침을 내뱉었다.
낙천은 건어물 주인이 장부를 든 사내에게 납작 엎드리는 이유를 알아차리곤 말린 과일을 오물거렸다.
“그러게 없으면 빌리질 말든가. 쯧, 저게 뭐하는 짓인지 몰라.”
가족과 함께 일상이라는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낙천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