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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만인지우
작가 : 야운
작품등록일 : 2017.10.6

만 명의 친우를 사귀어야 하는 주인공 계낙천의 성장물이자 유쾌통쾌한 구주강호 종횡기.

(악인이 개과천선한다는 말은
호사가들이 흔히 하는 개소리일 뿐.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3. 시, ……진짜 귀찮네.(1)
작성일 : 17-10-10 16:32     조회 : 446     추천 : 1     분량 : 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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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만임조는 선화로를 동서남북의 구역으로 나눠 일을 맡고 있었다. 그중 동쪽 구역을 맡은 낙천은 무료함에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상인들이 장사하는 모습을 보며 낙천은 한 가게 앞의 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입맛을 쩝 다시던 낙천은 품 안에서 천 꾸러미를 꺼내 그 안에 말린 과일을 집어 입으로 털어 넣었다.

 “야오옹!”

 울음소리에 아래로 시선을 내린 낙천은 하얀색 바탕에 검은 점이 군데군데 박힌 고양이 한 마리를 시야에 담았다.

 녀석은 제 주변을 경계하는 듯하면서도 배가 고파 왔다 갔다 배회하는 중이었다.

 녀석을 처음 본 것은 삼 일 전쯤이었다. 한쪽 귀가 반은 잘려나가고 목 바로 아래가 길게 아문 상처가 나 있는 놈이었다. 무엇보다 덩치가 다른 길고양이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길고양이들에게도 세상살이는 쉽지만은 않을 테지만 덩치도 작은 녀석이 이제껏 살아남았다는 것이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낙천은 녀석을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먹고 있던 육포을 던져 주었다.

 수인장에서 미리 받은 선수금으로 산 싸구려 육포였다.

 낙천은 워낙 돈이 없어 주급으로 삯을 받기로 했지만 삼 일 전에는 첫 주급도 받지 못한 때였다. 선수금만으로는 하루 한 끼에 싸구려 육포 정도밖에 살 수 없었다.

 낙천에게도 육포는 당시에 중요한 식량이었다.

 그 식량을 던져 주고는 낙천은 그런 제가 황당하게 느껴져서 녀석에게 “지길 넘의 고양이!” 라며 빽 소리를 질렀었다.

 그런데 녀석은 그 뒤로 계속 자신을 기가 막히게 찾아와 이리 경계를 하면서도 제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것이었다. 삼 일 전 딱 한 번 육포를 주고 그 뒤로는 “지길, 꺼져!”라며 소리친 기억밖에 없는데도.

 오늘은 첫 주급을 받은 날이라 국수도 먹었겠다 느긋한 편이었다.

 “……징한 넘!”

 한마디 내뱉고는 낙천은 먹고 있던 말린 과일을 툭 던져 주었다.

 녀석은 바닥에 놓인 과일을 입에 물고는 멀찌감치 떨어져 씹기 시작했다. 씹으면서도 잔뜩 털을 곤두세운 채 낙천이 언제 소리를 칠까 눈치를 보며 경계하고 있었다.

 낙천이 몇 개 더 말린 과일을 던져 주었다. 옆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장사도 안 되는데 도둑 갱이한테 자꾸 뭘 그렇게 주는지 몰라. 그리고 누가 고양이한테 과일을 줘? 그놈도 참 신기한 놈이네. 그걸 먹고 있네.”

 낙천이 앉아 있는 가게 옆, 생선가게 아줌마였다.

 낙천이 바라보자 아줌마는 슬쩍 시선을 피하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지저분하게 털 날리면 어쩌려고. 그러다가 여기 생선이라도 훔쳐가면 또 어쩌려고.”

 낙천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한마디 하기도 전에 생선가게로 두 여인이 다가왔다. 그중 한 여인이 장바구니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초어(草魚) 두 마리 주세요.”

 “아니, 다섯 마리는 사야지.”

 시녀로 보이는 여인이 말에, 부유한 태가 나는 또 한 여인이 끼어들었다.

 “아니, 아가씨 뭘 이리 많이 사시려고 해요?”

 “많으면 다 나눠 먹으면 되지.”

 여인의 말에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가 신이 난 얼굴로 다섯 마리를 얼른 장바구니에 넣었다.

 “예쁜 아가씨가 마음도 좋으시네요. 오늘 초어는 아침에 들어온 물건이라 싱싱하니 물도 좋아요.”

 아주머니의 ‘예쁘다’는 말이 기분 좋았는지 여인이 활짝 웃으며 전낭에서 은자 1냥을 꺼내 내밀었다.

 미소를 보이던 생선 아주머니의 얼굴이 쩌억하며 굳어졌다.

 “아이구, 아가씨! 생선 다섯 마리에 무슨 은자 1냥을 내밀어요?”

 당황한 시녀가 말하더니 제 주머니에서 동전 20문을 내밀었다.

 눈썹을 꿈틀한 아주머니가 그 20문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받다가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한쪽 눈썹을 치켜세운 낙천과 눈이 마주친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 시선을 얼른 피하고는 시녀에게 입을 열었다.

 “이보게. 20문도 너무 많아. 10문만 주면 되네.”

 시녀가 당황한 얼굴로 돈을 내미는데 여인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냥 20문 드려. 나한테 다 아는 것처럼 굴더니 인제 보니 소화 너도 시세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거네?”

 소화라는 시녀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게졌고 생선 아주머니는 좋아서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면서도 생선 아주머니는 얄밉다는 듯이 낙천을 쏘아봤다.

 계산을 마친 소화가 장바구니를 드는데 여인이 그 바구니를 빼앗아 들려 했다.

 “어멋, 아가씨!”

 “내가 가져갈게. 내가 직접 산 거라고 자랑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가서 드릴게요. 몸에 비린내 나면 어쩌려고 이래요?”

 “괜찮다니까.”

 “아가씨, 가서 드린다고요.”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바구니가 옆으로 기울어져 안에 든 생선 한 마리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어맛!”

 소화가 얼른 바닥에 앉아 생선을 주우려는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은 고양이가 그 생선을 낚아채듯 입에 물고 상가 지붕 위로 재빠르게 뛰어 올라갔다.

 황당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생선 아줌마가 한마디 내뱉었다.

 “어구구! 아까워서 어쩐대?”

 고양이를 바라만 보던 여인이 슬쩍 생선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제 잘못이 아닌데도 생선 아주머니도 여인의 눈빛이 불편한 듯 눈길을 돌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낙천을 겹눈 질로 자꾸 가리켰다.

 무슨 뜻인지 몰라 여인은 낙천과 생선 아주머니를 번갈아 바라봤다.

 생선 아주머니는 좀 전 일로 낙천이 얄미웠던 터라 겹눈 질로 가리키며 작게 입을 열었다.

 “저 사람한테 가봐!”

 너무 작은 소리라 듣지 못한 여인이 아주머니에게 바짝 다가섰다.

 “저 사람이 그 고양이 주인이라고. 그러니 가서 따져보라고!”

 낙천과 눈이 마주친 아주머니가 팍 고개를 돌리더니 부채를 들고 생선 위에 달려드는 벌레들을 부산스럽게 쫓아냈다.

 “아이고, 저리 못 가냐? 어딜 자꾸 달라붙어, 이게 어떤 생선인데?”

 여인은 낙천의 이모저모를 바라보다 어깨에 힘을 주고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가씨, 제발 그냥 가자고요. 네 마리나 더 있는데 뭘 그리 정색해서 그래요?”

 소화가 여인의 옆에 들러붙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니까? 저놈의 고양이가 내 생선을 훔쳐갔잖아? 이것도 엄연한 도둑질이라고, 도둑질!”

 고집을 부리며 낙천에게 다가온 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 봤으니 내가 왜 당신을 찾아왔는지 알겠지요?”

 낙천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모르는데?”

 여인이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이 생선을 도둑질 한 저 고양이 주인이라면서요? 아주머니한테 다 들었으니까 발뺌하지 말라고요.”

 낙천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생선가게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생선 아주머니는 움찔하는가 싶더니 지붕 위에 고양이를 손으로 가리키고 낙천이 앉아 있는 의자 주변을 다시 힘차게 가리켰다. 그리곤 입으로 먹는 시늉을 마구 해 보였다.

 아주머니의 격한 몸짓을 본 낙천은 제 손에 든 말린 과일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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