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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너를 만나러 가는 시간
작가 : 차캐
작품등록일 : 2017.7.31

호텔 '블루 온' 사장인 주혁은 어느 순간부터 같은 꿈을 꾼다.

고운 한복을 입은 소녀. 그리고 '오라버니!'하고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

주혁은 소녀에 의해 매일 밤 잠을 설친다.

어느날 친구의 생일 파티로 인해 클럽에 갔다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16화.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
작성일 : 17-08-01 20:38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5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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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혁은 평소와 다름없이 찬우와 아침을 먹었다.

 “너 오늘 좀 이상한 것 같다?”

 아까부터 자꾸만 주혁을 흘긋거리던 찬우가 입을 열었다. 뜬금없는 소리를 해대는 친구에 주혁은 찬우를 보았다.

 “뭐가?”

 “그냥..... 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 오늘따라 다르다고 해야 하나?”

 딱 정의내릴 수 없기에 찬호는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다는 건 느껴졌다.

 “너 어디 아프진 않지?”

 “내가 아플 일이 뭐가 있어. 매일 건강체크 하는데.”

 “하긴, 난 네가 아플 적을 못 봤다.”

 잠을 못 자도, 일을 열심히 해도, 주혁은 그 흔한 몸살 한 번 걸린 적이 없었다. 남들은 눈병이니 독감이니 난리가 아닐 때에도 주혁은 멀쩡했다. 오히려 너무 멀쩡하니 찬우는 얘 몸이 무쇠로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혁아.”

 “왜.”

 “우리 점 보러 갈래?”

 “....”

 주혁은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찬우를 보았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아무 말 대잔치야?”

 “번화가에 아주 유명한 점집이 있대. 신통방통하다고 많이 찾아 간다더라.”

 “너는 그런 정보를 다 어디서 얻는 거야.”

 “내가 좀 정보력이 많아.”

 이 정도는 껌이라는 듯 찬우는 자만의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칭찬 아니야. 그리고 난 안가. 점 같은 거 안 믿어.”

 “에에이, 또 튕기신다. 그냥 재미로 보는 거지. 아아아, 주혁아.”

 “씁, 애교 금지. 애교는 너를 좋아하는 애들한테나 많이 하도록.”

 어깨를 강하게 흔들며 앙탈을 부리는 찬호에게 주혁은 단호한 경고를 날렸다.

 매정하게 떠나버린 주혁을 보며 찬호는 빽 소리를 질렀다.

 “치사하다!”

 

 * * *

 마트에 아르바이트를 간 나은은 만두를 구우며 판매 행사에 나섰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만두입니다. 한번 시식해 보세요.”

 사람들이 쌩하니 지나가도 나은은 생글생글한 미소를 유지했다.

 “나은이? 나은이 맞지.”

 “어, 아주머니!”

 자신에게 알은체를 해오는 여자를 보곤 나은은 반가운 웃음을 지었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친해진 아주머니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땐 같이 슬퍼해주셨고, 취직했을 땐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해주셨다.

 “언제 왔어? 아이고, 못 본 새에 더 예뻐졌네.”

 “아주머니도 못 본 사이에 더 젊어지셨는걸요?”

 서로 오랜만에 보는 지라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마트에 찾아갔을 땐 아주머니께서 보이지 않았고, 그 뒤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뭐하고 지내셨어요? 갑자기 안 보이셔서 걱정했어요.”

 “남편 건강이 안 좋아서 그만 뒀었어.”

 마트에서 일했을 때도 남편이 아파서 걱정이던 그녀는 갑자기 악화된 남편의 건강에 의해 서둘러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나은에게도 말할 틈도 없이 그녀는 이곳을 떠나야 했다.

 “다행이 지금은 괜찮아져서 다시 일하고 있는 중이야.”

 긴 시간동안 병과 투병하던 남편은 지금 많이 호전되었다. 아주머니께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던 나은은 이제 한결 가벼워진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은이 너는 회사는 어쩌고 여기에 있어?”

 “아... 그게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잠시 아르바이트 중이에요.”

 “어머... 그렇구나... 내가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아니에요, 아주머니. 전 괜찮아요.”

 “힘들진 않아?”

 “네. 예전에 한 적 있어서 그런지 이 정도는 거뜬해요.”

 나은은 아주머니의 걱정을 무색하게 할 만큼 씩씩하게 말했다.

 “도움 필요하면 말해. 내가 짬밥이 좀 채워져서 웬만한 건 들어줄 수 있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를 보내고 나은은 다시 판매를 시작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녀를 무심히 지나갔지만 나은은 꿋꿋히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녀의 밝은 에너지가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는지 나은의 주위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음, 맛 괜찮네? 오늘 저녁은 만둣국으로 해야겠어.”

 “엄마, 나 이거 사죠.”

 “알았어. 아가씨, 이거 하나 주세요.”

 사람들이 제품을 사갈수록, 냉동고 속 만두가 줄어들수록 나은의 마음은 꽉꽉 채워졌다.

 “감사합니다!”

 그 마음을 닮은 웃음이 나은의 입가에 맺혔다.

 *

 주혁의 일정은 바빴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집무를 보고, 점심에는 프랑스에서 온 귀빈을 맞이했다. 프랑스의 유명 관광회사 사장인 루인 웨어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자라 주혁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점심식사까지 끝낸 후 주혁은 루인 웨어를 보냈다.

 “Ça m'a fait plaisir de vous parler aujourd'hui.(오늘 얘기 즐거웠어요.)

 “Moi aussi.(저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헤어짐에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를 했다. 입가에 걸친 미소를 보자니 다행히 계약이 잘 이루어진 모양이다.

 “제가 다녀 본 호텔 중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었어요. 직원들 서비스도 좋고, 고객들의 표정을 보니 정말 행복해 보이더군요.”

 호텔 내 시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표정이 정말로 행복해보였다. 고객들의 얼굴이 좋다는 건 그만큼 호텔이 그들에게 편안함과 만족감을 준다는 의미였다.

 “이 호텔이라면 한국 관광을 신청하신 저희 고객님들께 추천해 드려도 괜찮겠어요.”

 여기라면 자신의 나라 사람들도 좋아할 것임이 분명하다. 항상 최고의 여행 상품만을 주려는 그에게 이곳은 모든 기대에 부합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한국에 놀러온다면, 그때는 고객으로 찾아 뵈도 괜찮을까요?”

 “예, 물론입니다.”

 “그럼 그때 뵙죠.”

 루이 웨어는 차에 올랐다.

 “안녕히 가세요.”

 주혁은 멀어져 가는 차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마지막까지 격식을 차린 그는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굽혔던 허리를 폈다.

 집으로 돌아온 주혁은 소파에 몸을 기댔다. 원래는 바로 씻는 타입이지만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손가락 까딱할 힘이 없다.

 “잠깐만 있다 씻어야지.”

 그렇게 중얼거린 주혁은 몸의 힘을 더 느슨히 풀었다. 그래도 평소에 이정도 까진 아니었는데 오늘따라 몸이 더 고되다.

 ‘너 오늘 좀 이상한 것 같다?’

 주혁은 찬호가 한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신경 쓰여 호재에게도 오늘 자신이 이상하냐고 물었지만 호재는 아니라고 했다. 다만 좀 달라 보인다고 했을 뿐.

 자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겠는데 왜 주변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는걸까. 주혁은 신경쓰였지만, 이내 밀려오는 피로에 생각이 거두어졌다.

 

 동산에 올라온 도영은 무릎을 짚어 숨을 골랐다.

 거의 뛰다 싶지 올라왔기에 그의 미간에 빗금이 그려졌다.

 도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나무아래 정자에 앉아 있는 세연이 보였다.

 가느다란 미소를 띠운 채, 앞을 보는 그녀의 얼굴에 노을빛이 들어졌다.

 숨소리가 조금씩 안정되어 가면서, 도영은 반쯤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입꼬리가 개구지게 올라갔다.

 “세연아!”

 도영은 세연을 불렀다. 그 덕에 정면을 주시하고 있던 세연의 눈길이 도영에게로 돌려졌다.

 한 손으론 갓을 짚은 채, 제게로 달려오는 도영을 보며 세연은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끼지만 애써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녀의 볼에 돋아난 옅은 홍조는 그녀 스스로 숨길 수 없었다.

 “오셨습니까?”

 세연은 늘 그랬듯 밝은 목소리로 도영을 반겼다.

 “늦어서 미안하구나. 헌데, 무엇을 그리 어여삐 보고 있었느냐.”

 집안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오려다 보니 세연과 만날 시간이 그만 지체되고 말았다.

 저를 기다리고 있을 세연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노을이 진 마을을 보고 있었습니다.”

 세연의 시선이 다시 정면으로 옮겨졌다.

 노을을 받은 지붕 위가 꼭 주황 천을 덧씌운 것처럼 너울거렸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아 도영도 세연의 옆에 앉아 경치를 감상했다. 해가 지려다 보니 두 사람의 그림자가 뒤로 길게 늘어졌다.

 “오라버니.”

 세연이 도영을 불렀다.

 “저는 오라버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에 도영이 세연을 보면, 세연 또한 도영을 보았다.

 작은 미소를 걸치고선 저를 보는 세연의 눈동자는 깨끗했다.

 그게 티없이 맑아서, 도영은 어쩐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도영은 이리 말하는 자신의 음성이 메말랐다는 걸 알았다. 마음이 먹먹하니 목마저도 메여오나 보다.

 도영의 말에 세연은 작게 이를 보이며 웃어보였다.

 열렸던 입술이 닫히면, 세연은 이전보다 더 활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미소처럼 그녀의 눈동자도 더 반짝였다.

 세연의 고개를 잠깐 내리고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노을이 더 눈부셔 보이는 게 눈물이 나오려 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유난히 더 시린 봄이었다.

 *

 너와 있는 시간이 좋았다. 너와 함께 웃고, 장난치고, 얘기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세연아, 눈 좀 떠보거라.....”

 하지만 세연의 눈은 떠지지 않았다. 도영은 그녀의 몸에서 새어나오는 피를 손으로 막아봤지만 모두 부질없었다.

 “세연아, 세연아.....”

 애통하게도, 공허한 메아리만이 울려퍼졌다. 이제 내가 있는 시간에는 네가 없다.

 주혁은 눈을 떴다. 연보랏빛 하늘은 어느새 깜깜해졌지만 지금 그걸 신경쓸 겨를이 없다.

 주혁은 차키와 휴대폰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한순간이라도 서둘러야 했다.

 

 * * *

 아르바이트를 마친 나은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산들거리는 매화가지가 길을 밝혔다. 가로등 빛 아래 은은하게 핀 매화를 보며 나은은 살포시 웃었다.

 나은은 가방을 잘게 흔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나은의 뒤로 그녀와 걸음을 함께 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외투 주머니에 손을 꽂고 나은의 뒤를 밟았다. 모자와 후드를 뒤집어 쓰고있어 얼굴을 보이지 않지만 체격상으로 봐선 남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일순간 이상함을 느낀 나은이 뒤로 돌았다. 그순간 남자는 자동차 뒤로 몸을 숨겼다.

 ‘기분탓인가?’

 나은은 다시 앞을 보았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남자를 몸을 다시 나타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빠르게 남자는 나은과 거리를 좁혔다.

 여차하면 위협할 심산으로 남자는 주머니 속 칼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15m, 10m. 남자가 나은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번쩍ㅡ.’

 하이라이트가 켜진 자동차가 골목으로 들어왔다. 갑작스런 빛 때문에 남자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자동차는 정확히 나은의 옆에 멈췄다. 주혁은 운전석에서 내려 나은에게로 갔다.

 “강주혁 씨?”

 주혁을 보곤 깜짝 놀란 나은이 그를 불렀다.

 “강주혁 씨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나은이 말하고 있는 사이 주혁은 나은의 뒤를 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남자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새 도망 친 건지 보이지 않았다. 주혁은 다시 나은을 보았다.

 “전화.”

 “네?”

 “전화 왜 안 받아.”

 “아, 전화 하셨어요? 휴대폰이 무음이어서 몰랐어요.”

 나은은 가방을 뒤적였다. 무음인데다가 가방에 있어 그가 전화를 건 줄 몰랐다.

 “굳이 확인할 필요 없어. 일단 차에 타. 너랑 갈데 있어.”

 *

 목적지에 도착하자 주혁이 내렸고, 그다음 나은이 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꽤 새로운 세상이었다. 고급 단독주택들이 자리잡혀있고, 저마다 정원과 작은 주차장을 지니고 있었다.

 “여긴 어디에요?”

 신기한 눈빛으로 둘러보던 나은이 주혁에게 물었다.

 운전하고 있을 때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가보면 알아.”, “그런 게 있어.”하고 대답해주니 나은은 이제 이곳이 어딘지 물을 수 있었다.

 “우리 집이야.”

 “예? 강주혁 씨 집이요? 그런데 왜 여기에....”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

 주혁의 말에 잠시 벙져있던 나은은 “....네?”하고 말했다.

 “장난이죠?”

 “장난 아니야. 농담도 아니야. 진심이야.”

 “미쳤어요? 너무 뜬금없는 거 아니에요?”

 갑자기 차에 태우고선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니. 어이가 허를 찌른다.

 “알아. 내가 너였어도 엄청 뜬금없었을 거야.”

 “그럼 뭔데요.”

 아무리 계약연애 관계라지만 자고 가라는 건 심하다. 나은의 얼굴이 황당과 분노로 가득찼다.

 “..... 네가 나 때문에 죽었으니까.”

 뜸을 들이던 주혁이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죽은 너, 너를 안고 울부짖는 나. 이번에는 너를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다.

 주혁은 나은을 보았다. 너를 만나기 위해, 너를 지키기 위해 그동안 너를 찾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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