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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너를 만나러 가는 시간
작가 : 차캐
작품등록일 : 2017.7.31

호텔 '블루 온' 사장인 주혁은 어느 순간부터 같은 꿈을 꾼다.

고운 한복을 입은 소녀. 그리고 '오라버니!'하고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

주혁은 소녀에 의해 매일 밤 잠을 설친다.

어느날 친구의 생일 파티로 인해 클럽에 갔다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14화. 잘생긴 총각.
작성일 : 17-08-01 20:21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4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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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비비빅 삐비비빅ㅡ

 아침에 울리는 알람은 항상 시끄럽다. 그래서 더 잠을 자고싶어 이불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지만, 오늘 나은은 알람이 울리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직 단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라 나은은 몽롱했다. 하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을 위해선 얼른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나은은 고개를 숙이곤 팔을 앞으로 쭉 뻗곤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선 뺨을 두어번 챱챱 때리고는 한결 가벼워진 상태로 알람을 껐다.

 “으샤.”

 마지막으로 기합을 넣곤 이부자리 위에서 일어섰다. 마음을 단단히 먹기 위해 일단 씻어야겠다.

 수건으로 머리를 두르고, 씻고 나온 나은은 아빠다리를 하고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알바왕땅답게 알바들이 줄을 지어 나열되 있었다. 제가 사는 곳을 클릭한 나은은 마우스를 스크롤하며 알바를 쭉 훑었다.

 몸이 좀 고생하더라도 시급이 쎈 알바를 찾아야했다. 일자리를 찾을때까지 조금은 자신을 굴리지 않으면 안됐다.

 그래도 다행인건 방학이 끝나서 평일 알바자리가 많았다. 매의 눈으로 탐색한 결과 나은은 운 좋게 마트에서 하는 일을 찾을 수 있었다.

 혹여나 그사이 누가 채갈까 나은은 잽싸르게 통화하기를 눌렀다.

 “여보세요? 네, 여기 알바몽땅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빠르게 지나가고, 새로운 풍경을 나타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앞좌석에선 호재가 운전을, 뒷자석엔 주혁이 차창이 있는 곳에 팔꿈치를 올리곤 먼 곳을 응시했다.

 덤덤한 눈빛이 어디를 향하는지 몰랐다. 호재도 룸미러로 그를 흘긋 거리기만 할뿐 이야기를 붙이진 않았다.

 공원묘지에 도착한 주혁과 호재는 한 납골묘 앞에 섰다.

 “아버지, 저 왔어요.”

 두 손으로 꽃달발을 든 주혁이 묘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술도 들고 왔어요. 막걸리로요.”

 호재의 손에는 막걸리가 든 비닐봉다리가 들려있었다. 주혁은 애써 밝게 웃으며 말했지만, 애석하게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원래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주혁은 씁쓸한 미소를 감추고선 꽃다발을 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선 자그마한 제사를 치뤘다.

 두 번 절하고 짧은 묵념을 드린 주혁이 비석에 박혀진 이름 석 자를 보았다.

 강진호.

 그는 주혁의 아버지였고, 블루 온의 전 사장이었다. 하지만 진호는 주혁이 9살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며, 가족뿐 아니라 직원들도 그의 죽음에 슬퍼했다.

 피의 이어받아 그 또한 호텔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하지만 그 온전한 열정은 결국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

 주혁에겐 다정한 아버지였고, 직원들에겐 최고의 사장이었던 그.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이십여년이 넘었다.

 파란 하늘, 티 끝 한점 없던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걸렸다.

 아버지의 잔상이 남아있는것 같아 주혁은 그 구름을 빤히 올려다 보았다.

 

 * * *

 한편 아르바이트 자리를 보러갔던 나은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트 안을 나왔다.

 마트에서 일한 전적이 있어 손쉽게 면접을 마칠 수 있었다. 내일부터 당장 출근을 해도 좋다는 직원분의 말에 나은은 기분이 좋았다.

 시작이 좋으니 하늘이 더 없이 맑고 깨끗해 보였다. 나은을 손을 이마부근 올려 그늘을 만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보세요?”

 -나은!

 “어, 윤지야.”

 -지금 뭐해?

 “마트에 알바자리 있어서 방금 면접 끝나고 나오는 길이야.”

 -그럼 우리 백화점으로 올래? 나랑 밥 같이 먹자.“

 “그래, 알았어. 이따보자.”

 전화를 끊고, 나은은 길을 걸었다. 입가에 연한 미소를 걸치면서.

 백화점 안의 한 식당.

 “그래서, 가보니까 어때?”

 “다행히 일한 경험이 있어서 무사히 합격했어. 내일부터 와도 된데.”

 “잘됐다. 역시 하늘은 너를 버리지 않는구나.”

 음식을 꿀꺽 삼킨 윤지가 나은에게 말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윤지는 그런 상황이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일어서 길을 찾는 나은이 대단했다.

 윤지는 눈매를 길게 늘어놓은 채로 나은을 보았다.

 “왜.... 그래?”

 “그냥, 내 친구지만 궁디팡팡 해주고 싶을 만큼 대견해서. 나은아, 나 어때? 언니한테 시집올래?”

 윤지는 일부러 턱을 비스듬히 괴면서 매혹적인 표정을 지었다.

 “말은 고맙지만, 됐네요.”

 “하긴, 너한텐 강주혁 씨가 있으니까. 지금 우리 반 단톡방 너랑 강주혁 씨 얘기로 난리도 아니야.”

 아직 카톡을 만들지 않은 나은을 위해 윤지가 대신 소식을 전했다.

 동창회를 마친날 밤, 주혁과 나은은 연신 화제의 인물로 올랐다. 아마 나은이 단톡방에 들어간다면 그곳은 더 난리도 아닐 것이다.

 “지금 강주혁 씨 인기 장난 아니야. 애들이 막 멋있다고 난리라니깐?”

 잘 생기고, 매너도 좋고, 무엇보다 그 두 사람을 쫓아내주었으니 화두에 오르는건 당연했다.

 “좋겠어요, 서나은 씨. 점쟁이 말대로 인연의 상대를 만났네?”

 “에이, 인연은 무슨.”

 그러면서 나은은 음료수가 든 컵안에 있는 빨대를 빙빙 돌렸다.

 어제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막상 친구에게 들으니 부끄러워졌다. 딱 봐도 수줍은 티를 보이는 나은의 행동에 윤지는 픽 웃음이 일었다.

 ‘귀엽다, 귀여워.’

 “아, 나은아. 이건 아는 사람한테 들은 얘긴데 너 블루 온 알지.”

 “블루 온?”

 모를리 있나.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호텔인데. 인터넷에 블루 온이라고만 쳐도 거기에 관련한 기사가 수십개에 달한다.

 “거기서 이번에 새로운 호텔리어들을 뽑는다나봐. 재경부 쪽에서도 모집한다던데? 너 어렸을 때부터 호텔리어 백 오피스되는 거 꿈이었잖아. 한번 도전해보는 거 어때?”

 호텔이어에는 크게 프론트 오피스와 백 오피스로 나뉜다. 프론트 오피스는 앞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역할을 하며 백 오피스는 뒤에서 서포트 해 주는 역할을 한다. 백 오피스는 총무/기획, 인사/교육, 재경/전산 등이 있는데 재경/전산 부는 호텔 매출 및 손익계산, 자산의 총괄적 관리 등을 맡는다.

 나은은 어렸을 때부터 호텔리어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졸업을 한뒤 서둘러 일자리를 구해야 했기에 나은은 잠시 꿈을 접었다.

 “너 대학생 때 회계과에서 항상 과톱해서 장학금 받고, 회사 다니고 있을 때도 꿈 포기 못했잖아.”

 미련이 남아서일까. 나은은 틈틈이 호텔에 대해 공부하고 그에 필요한 자격증을 땄다.

 “그렇긴 하지.”

 “이왕 이렇게 된 거 기회다 생각하고 한번 해봐. 나은이 너라면 분명 합격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두 팔 벗고 도와줄게.”

 윤지는 팔을 걷으며 힘차게 말했다. 살기 위해 접을 수 밖에 없었던 꿈.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라고, 윤지의 말에 기운을 얻은 나은은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래, 까짓껏 한번 해보자. 그간 공부한게 아깝잖아? 윤지야, 나 해볼게.”

 “오케이. 이래야 우리 서나은이지. 아자 아자, 화이팅!”

 윤지는 주먹을 들어보이며 우렁차게 화이팅을 외쳤다.

 “그런데 ....거기 경쟁률 좀 많이 쎄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지....?”

 워낙 좋은 곳이니 그곳에 들어오겠다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아니다. 그까짓 경쟁 쯤 이기면 된다.

 나은은 다시 불을 밝혔다.

 인생 한 번인데, 두려울거 뭐있어?

 나은은 속으로 다짐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기필코 그곳에 입사하고 말거다.

 아버지를 찾아뵙고 호텔로 복귀한 주혁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일을 처리했다.

 “현재 우리 호텔 지원 현황은 어떻지?”

 “지금 프로트 쪽에선 159명, 재정 쪽에선 80명이 넘었습니다.”

 “필기 시험 볼 대학하곤 얘기 잘 됐나?”

 “네, 다행히 그 대학에서 그날 MT를 간다고 해서 얘기는 잘 마무리 됐습니다.”

 “그렇군. 장 비서가 수고가 많아. 고마워.”

 주혁은 호재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아무래도 저가 비서 하나는 잘 둔것 같다.

 “나도 이만 퇴근할테니까 장 비서도 퇴근해. 오늘도 고마워.”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주혁의 말에 호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퇴근하라는 말보다 오늘도 고맙다는 그의 말이 힘이 되었다.

 호재가 나가고, 주혁은 옷을 챙겨입고 주자창으로 갔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였다.

 “그 애는 밥 먹었으려나....”

 주혁은 나은을 생각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일 자리 알아본다고 못 챙겨 먹었음 어쩌지?

 어느새 머릿속은 나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찼다. 신경쓰지 않는다곤 했놓고선 도무지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 결심을 내린 주혁은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유연하게 바퀴를 움직이는 차는 어딘가를 향해갔다.

 *

 나은은 집에 도착한 주혁은 초밥집 이름이 표기된 흰색 봉지를 손에 쥔 채 차에서 내렸다.

 “미쳤어, 강주혁. 네가 정말 미친 게 분명해.”

 올 때 까지는 몰랐는데, 막상 그녀의 집에 도착하니 주혁은 저가 얼마나 미친건지 알았다.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찾아와버렸다. 그녀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어디야?하고 문자를 보내고 집에 있으면 이것만 주고, 없으면 할 수 없이 가야겠다.

 주혁은 나은에게 문자를 보내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다.

 “끄응-차. 어휴, 무거워.”

 무건운 종이상자를 질찔 끈채 끙끙거리며 철문에서 용산 댁이 나왔다.

 “아이고, 아이고 허리야. 이럴 줄 알았으면 재때재때 정리 좀 해둘걸.”

 날이 좋아 모처럼 집안일 좀 하려했건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체력이 딸렸다. 용산 댁은 허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무슨 일이세요?”

 “어? 전에 봤던 그 총각 아니여.”

 말을 걸어오는 주혁을 보곤 용산 댁은 밝게 웃었다.

 “저 옥탑방 아가씨 보러 온거여? 근데 어쩌나... 그 집 아가씨 아침 댓바람부터 나갔는디.”

 용산 댁은 본인이 더 안타까운지 아쉬운 소리를 내었다.

 “그래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려. 총각, 잘가.”

 용산 댁은 마지막까지 주혁에게 따뜻하게 인사하고는 다시 박스를 옮겼다.

 하지만 가는 줄 알았던 주혁이 다시 용산 댁한테로 걸어왔다.

 “혹시 힘드시면, 제가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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