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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너를 만나러 가는 시간
작가 : 차캐
작품등록일 : 2017.7.31

호텔 '블루 온' 사장인 주혁은 어느 순간부터 같은 꿈을 꾼다.

고운 한복을 입은 소녀. 그리고 '오라버니!'하고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

주혁은 소녀에 의해 매일 밤 잠을 설친다.

어느날 친구의 생일 파티로 인해 클럽에 갔다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10화. 너 뭐야?
작성일 : 17-07-31 23:34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7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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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은은 꿈을 꾸었다.

 꿈속의 나은은 여덟 살이었고, 나은은 부모님과 함께 단란한 식사를 가졌다.

 ‘나은아, 어때? 맛있어?’

 선화는 나은을 보며 물었다. 한 갈래로 머리를 묶은 그녀의 얼굴에선 아름다움이 묻어나왔다.

 ‘응!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어!’

 나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씩씩하게 말했다. 아마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엄마처럼 음식을 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은아, 이 야채하고 고기하고 밥이랑 같이 먹어봐. 그럼 더 맛있을 거야.’

 나은의 아빠, 도진은 나은의 밥 위에 적당량의 고기와 채소를 올려주며 말했다.

 나은은 아빠가 올린 반찬과 밥을 크게 떠먹었다. 아빠의 말대로 사르르 녹는 음식에 나은은 “음!”소리를 내며 선화를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어이구, 우리 나은이 볼이 햄스터 볼이 됐네?’

 도진은 음식 때문에 볼이 빵빵해진 나은이 귀여운지 나은의 머리를 작게 헝클어주었다. 나은은 그 느낌이 간지러워 눈을 살포시 감았다.

 ‘우리 나은이, 이렇게 귀여워서 커서 누구랑 결혼할까?’

 ‘나은이 결혼 안 할래. 그냥 엄마 아빠랑 평생 살래.’

 ‘나은아, 엄마 아빠랑 계속 살고 싶어?’

 ‘응. 나은이는 그러고 싶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딸아이의 얼굴에 선화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나은이 말처럼 나은이 하고, 엄마하고, 아빠하고, 오순도순 예쁘게 살자?’

 ‘좋아. 나는 찬성이야!’

 ‘나도, 우리 나은이랑 여보랑 알콩달콩 지내는 거 찬성이야!’

 도진은 엄지를 척 들며 힘차게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이지만, 나은의 머릿속엔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리운 추억이었다.

 나은은 눈을 떴다. 한 번 뜨면 희뿌옇게 천장에 있는 형광등이 보이고, 또다시 감았다 뜨면 어스름 푸하게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미진이 보였다.

 “미진아....”

 나은은 미진을 불렀다. 그 소리에 푹 숙여져 있던 미진의 고개가 홱 들렸다.

 “언니, 이제 정신이 들어요?”

 “여긴 어디야...?”

 “여기 병원이에요. 언니 그때 그 남자가 내팽개쳐서 언니가 쓰러지셨어요.”

 그러고 보니 남자가 자신을 내팽개치다 이마가 책상에 부딪쳤었다. 나은은 이마에 손을 올렸다. 자그마한 붕대가 다친 상처를 감싸주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서 별다른 증세는 안보인데요. 언니, 죄송해요. 저라도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

 자신도 무서운 나머지 그녀를 도와주지 못한 것이 미진은 미안했다. 그리고 나은이 일어나지 않아 그 미안한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괜찮아. 다친 건 나 하나라도 족해. 너까지 다치면 큰일 나.”

 미진 또한 다친다면 나은은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아마 많이 울었을 것이다. 나은은 자신만 다친 것에 만족했다.

 “언니... 이제 저희 어쩌죠...? 회사도 망했는데...”

 더는 오갈 데도 없는 회사에 미진은 시무룩해졌다.

 “걱정하지 마, 미진아. 넌 아직 젊으니까 금방 새 직장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나은은 기운 내라는 듯 미진을 다독였다. 그러면 미진도 나은을 따라 미소 지었다.

 “환자분, 혈압체크하고 괜찮으시면 퇴원할게요.”

 나은은 혈압측정기에 팔을 붙였다. 이내 ‘퓨슉’소리가 나더니 바람이 빠지며 그녀의 혈압이 측정됐다.

 “혈압, 맥박 다 정상이네요. 이제 퇴원하셔도 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행이다. 더 머물러 있었다면 병원비가 부담이 됐을 터였다.

 “운이 좋으셨습니다. 다행히 상처가 깊숙하지 않아 큰 수술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녀의 상처가 컸다면 그녀는 수혈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큰 수술을 했을 것이다.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나은은 자신이 다친 상처를 짚었다.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상저가 그렇게 크지 않아 나은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미진과 헤어지고, 나은은 집으로 향했다.

 “벌써 밤이구나.”

 병원에 누워있는 사이 새까맣게 칠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은이 말했다. 하늘에는 자그마한 별 들이 하나, 둘, 딱 두 개가 박혀있었다.

 “이제 어쩌지? 돈도 벌어야 하는데.”

 병원에게 나서고 처음 든 생각은 딱 이것이었다.

 회사가 망했으니 졸지에 백조 신세가 된 나은은 서둘러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자신의 휴대폰은 고장 났는지 전원이 켜지지 않아 나은은 미진의 핸드폰을 빌려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 번호는 없는 번호...⌟라고 하는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은의 고개가 푹 숙어졌다. 사장님을 믿었는데, 사장님은 결국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젠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나은은 우울해졌다.

 집에 도착하고, 철문을 연 나은은 계단을 올라 터덜터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잉, 이게 뭐야?

 반쯤 감겨있던 눈이 크게 떠지며 나은은 문에 붙어있는 종이를 떼었다.

 ⌜월세 올림. sorry⌟

 대문짝만하게 월세 올림이라고 쓰곤 그 밑에 작게 영어로 sorry라고 쓰여있는 종이에 나은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나은은 서둘러 주인아주머니가 사는 1층 용산 댁의 집으로 내려갔다.

 “아주머니! 문 좀 열어주세요!”

 “어유, 왜 그래? 아가씨.”

 문 두드리는 소리에 막 자다 일어난 것인지 용산 댁의 머리는 부시시해있었다. 나은은 용산 댁한테 종이를 내보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에요? 월세를 올린다니요. 전엔 그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나은은 울먹였다. 회사도 잃은 마당에 월세까지 올린다니, 첩첩산중이 따로 없었다.

 “미안해. 딸아이가 갑자기 공부하겠다고 학원을 끊어달라는 바람에. 그래도 부모 된 도리로서 자식이 공부하겠다는데 밀어줘야지.”

 용산 댁은 “그러니까 네가 이해 좀 해줘. 요즘 학원비가 좀 비싸잖어.”를 덧붙이며 나은에게 구슬리며 말했다.

 ‘딸아이가 공부를 한다고요? 걔 맨날 남친하고 놀러 다니는 거 봤는데요??’

 나은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입자 주제에 이런 말을 해봤자 달라질 건 없었다.

 나은은 울음 섞인 한숨을 뱉었다.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네... 알겠습니다...”

 “미안해, 나은 씨.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나은은 축 처진 등으로 뒤돌아섰다. 그 모습에 용산 댁은 죄책감이 생기긴 했지만 이내 문을 닫았다.

 쾅하고 매정하게 닫혀버리는 문을 보며 나은은 소리치고 싶었다.

 “걔 공부 안 해요! 걔 남친하고 맨날 놀러 다닌단 말이에요!”

 생각만 했던 말을 진짜 입 밖으로 내뱉고는 이내 눈물을 삼키며 도로를 내려갔다.

 주혁은 호재가 모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너 진짜 전화 안 받을 생각이냐.”

 주혁은 새까만 화면만 내비치는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후 몇 번 더 전화를 걸어봤지만 여전히 전화가 꺼져있다는 여자의 말뿐이었다. 이 여자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배터리가 다 된 것도 모르고 돌아다니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야, 신경 쓰지 말자. 그 여자가 뭘 하든 내가 뭔 상관이야.”

 주혁은 그렇게 말하며 최면을 걸었다. 하지만 그 최면은 얼마 가지 못했다.

 요즘 혼자 사는 여성을 상대로 살해나 성폭행 등을 하려는 몹쓸 놈들이 있던데, 집에 가는 도중이라도 혼자 걷는 밤거리는 위험했다. 주혁의 머릿속에 나은이 또 술을 마시고 칠렐레 팔렐레 돌아다니는 모습이 비쳤다.

 “장 비서.”

 “네, 사장님.”

 “난 잠시 들릴 데가 있으니까 그만 가봐도 돼.”

 결국 불안감을 참지 못한 주혁은 차를 멈춰 세웠다. 차에서 내린 주혁은 그녀가 사는 곳으로 달려갔다.

 

 * * *

 나은은 근처 고깃집에 앉아 처량하게 술을 홀짝였다. 안주도 없이 쓴 소주만 들이키기에 취기가 빨리 왔고, 나은의 볼은 금세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아가씨, 혼자 처량하게 왜 이러고 있어. 이거라도 먹으면서 마셔.”

 그런 나은이 안쓰러웠던 것인지 아주머니는 나은의 앞에 구운 생선을 내려놓았다.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돈이 없어서 안주를 못 시켰어요.”

 “됐어. 돈 없는 게 죄야? 먹고, 열심히 돈 벌면 돼지.”

 아주머니의 힘찬 응원의 말에 나은은 감동받았는지 잔뜩 물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어머, 쟤네 좀 봐. 정말 풋풋하지 않아? 아가씨, 아가씨도 남자친구 있어?”

 아주머니는 가게 앞을 지나가는 대학생 커플을 보며 말했다. 나은은 풀린 눈으로 커플을 멍하니 바라보고는, 이내 입술을 열었다.

 “아니요. 없어요.”

 나은의 집 앞에 도착한 주혁은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2층을 올려다보면 아직 안 들어온 것인지 불이 꺼져있었다.

 그때 철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용산 댁이 걸어 나왔다. 주혁은 용산 댁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실례지만 저기 2층사는 여성 분 아직 안 들어왔나요?”

 “응? 아... 저 여자? 내 문에 소리치고는 다시 나가던데?”

 “언제요? 몇 분쯤에?”

 “아마 좀 됐을 걸? 근데 얘는 또 왜 안 오는 거야. 진짜 남친이랑 놀러갔나.”

 용산 댁은 나은이 말한 얘기를 들은 것인지 양손을 허리에 짚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주혁은 용산 댁한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오르막길을 내려갔다.

 “근데 참 보기 드물게 잘생긴 총각이구먼.”

 용산 댁은 주혁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몇십 년만 젊었더라면 저런 남자와 연애하고 싶다.

 

 본인 집 앞에 도착한 은아는 시동을 끄곤 안전벨트를 풀었다. 옆에서는 애인 정우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정우야, 일어나야지.”

 은아는 정우에게 귓속말을 하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런 은아의 목소리에 잠에서 뜬 정우는 차츰차츰 눈을 떴다.

 “어? 아, 그래야지.”

 “피곤할 텐데 우리 집에서 잠시 눈 좀 붙이고 가. 내가 따뜻한 차도 내올게.”

 “그래도 될까? 고마워, 은아야.”

 서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고는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이내 집 앞에서 쭈그려 앉아있는 여자를 발견하곤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나은아...”

 은아는 나은을 불렀다. 나은은 한 손엔 소주병을 든 채 반쯤 풀린 눈을 하고 있었다.

 “어, 은아 왔구나.”

 은아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나은은 이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정우도 있네. 정우야, 안녕?”

 나은은 배시시 웃는 얼굴로 정우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어... 그래. 안녕....”

 “여기 왜 왔어? 네가 올 데는 아닌 것 같은데.”

 은아는 그런 나은이 달갑지 않은 지 팔짱을 낀 채로 나은을 쏘아붙이며 말했다.

 “그냥, 갑자기 커플보고 너희들도 잘 살고 있나 해서 와봤어.”

 “잘 살고 있는 거 알았으면 이제 돌아가 봐 줄래? 난 누가 내 집 앞에 있는 거 엄청 싫어하거든.”

 은아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나은을 향해 피식 웃었다.

 “넌...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내가 너한테 왜 미안해. 네가 남자 관리를 못 해서 그런 거지.”

 “뭐.....?”

 “솔직히 맞잖아. 정우가 나한테 왜 왔겠어. 다 네가 질려서 왔지.”

 “은아야.”

 정우는 조심스레 은아를 말렸다. 하지만 은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하긴, 네 부모님도 너 땜에 돌아가셨지? 너희 부모님 진짜 불쌍하다. 네가 착한 척만 안 했어도 살 수 있었을 텐데. 딸아이가 불행 덩어리라 괜히 애꿎은 부모님만 목숨을 잃으셨네.”

 은아는 그리 말하고는 정우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불행 덩어리라고? 항상 부모님께선 나은은 자신들한테 내려온 소중한 아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은은 화가 났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꺅!”

 갑자기 은아의 목이 뒤로 젖어지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은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너 그 말 취소해, 당장!”

 “야! 너 뭐하는 짓이야?! 이거 안 놔?”

 하지만 나은은 은아의 머리채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면 은아도 나은의 머리채를 잡곤 같이 잡아당겼다.

 “야, 서나은!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정우는 나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하지만 얼마못가 나은에게 머리채를 잡히고는 땅으로 내팽개쳐졌다.

 땅바닥으로 패대기 처진 정우는 겁을 먹곤 차 뒤에 숨었다. 그리곤 112를 눌러 다급한 목소리로 경찰을 불렀다.

 “여기 112죠? 지금 여기에 미친년이 술 처먹고 날뛰고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 * *

 경찰서 안.

 결국 경찰서까지 끌려간 세 사람은 신원파악을 위해 형사 앞에 앉혀졌다. 두 여자의 머리가 폭탄을 맞은 듯 산발이 돼 있었다.

 “그러니까, 이 여자분께서 술을 마신 상태에서 갑자기 머리를 잡아당기셨다는 거죠?”

 “맞아요! 저 여자가 잡아당긴 머리가 아직도 아픕니다, 형사님.”

 정우는 머리를 문지르며 일부러 불쌍한 눈빛으로 형사를 보았다. 형사는 한심한 눈으로 정우를 보곤 나은을 보았다.

 

 “여자분,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그냥... 쟤가 한 말에 저도 모르게 열 받아서.”

 “어머, 그럼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소리야? 너 때문에 네 부모님 돌아가신 거 맞잖아. 형사님, 얘 그냥 감방에 처넣어요!”

 “자자, 진정들 좀 하시고. 보니까 아가씨 말이 좀 심하긴 했네.”

 형사는 은아를 가리키며 꾸짖듯 말했다. 그런 형사의 말에 은아는 입술을 삐죽였다.

 “다들 아는 사이들인 것 같은데 서로서로 좋게 끝냅시다. 서로 얼굴 볼 일도 있을 텐데.”

 실제로 내일 다시 얼굴을 봐야 했다. 형사의 말에 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아가씨, 일단은 아가씨가 먼저 잘못했으니까 이 아가씨한테 사과해요.”

 형사의 말에 나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은아에게 악수를 청했다.

 “은아야, 미안해.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 봐. 내 사과받아줄래?”

 “뭐, 나도 잘못하게 있으니까 그래 줄게.”

 은아는 새초롬하게 나은의 반대편에 있는 손을 내밀곤 악수를 했다.

 “그럼 다들 좋게 끝난 걸로 알고, 이만 해산.”

 나은은 길을 걸었다. 가로등도, 가게도, 하다못해 저 하늘에 떠있는 달과 별까지도 빛을 냈지만 나은의 얼굴은 어두웠다.

 혼자 걷는 길은 외롭고 쓸쓸하다. 옆에 같이 걷는 사람 없이 나은은 터벅터벅 발을 옮겼다.

 주혁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서 힘없이 걸어오는 나은이 보였다.

 주혁은 나은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멈췄다.

 “어, 강주혁 씨다.”

 나은은 고개를 들어 제 앞에 선 그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그녀를 보는 그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너 뭐야?

 주혁은 나은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사람을 신경 쓰이게 만들어?”

 사실 주혁은 남한테 관심이 많은 타입이 아니다. 이익이 없으면 굳이 나서지 않았고, 호의를 베풀 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에게는 예외가 된다. 오늘 주혁은 나은을 찾기 위해 얼마나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는지 모른다.

 “네가 그러면 보이잖아.”

 주혁은 소녀가 떠올랐다. 예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는 소녀의 얼굴. 그리고 예쁜 미소와 함께 눈물을 떨어뜨리는 소녀의 얼굴. 이 두개의 얼굴이 주혁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자꾸 그 여자애가 보이잖아....!”

 주혁은 괴로운 듯 미간을 좁혔다. 그녀에게서 자꾸만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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