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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너를 만나러 가는 시간
작가 : 차캐
작품등록일 : 2017.7.31

호텔 '블루 온' 사장인 주혁은 어느 순간부터 같은 꿈을 꾼다.

고운 한복을 입은 소녀. 그리고 '오라버니!'하고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

주혁은 소녀에 의해 매일 밤 잠을 설친다.

어느날 친구의 생일 파티로 인해 클럽에 갔다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7화.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작성일 : 17-07-31 22:55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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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풍기가 돌아가는 작은 사무실 안.

 다시 월요일이 오고, 회사로 출근한 나은은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손으론 마우스를 달칵거리면서 업무를 보았다.

 “언니. 사장님, 오늘도 또 안 나오셨어요.”

 미진은 빈자리만 있는 사장의 책상을 가리키며 나은에게 작게 속삭였다.

 “이런 생각 하면 안되는데, 솔직히 조금 불안해요.”

 잠시 어디 갔다 오겠다하고서는 사장은 요 며칠간 그림자는커녕 보이지 않았다. 난생처음 가진 직장을 혹시나 잃게 될까 미진은 걱정이 되었다.

 “불안해하지 마. 사장님이 요즘 일이 바쁘셔서 그런 걸 거야.”

 “정말 그럴까요...?”

 “우리 사장님, 월급은 꼬박꼬박 주시잖아. 그걸 믿고 기다려 보자.”

 나은은 미진을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자리를 많이 비우시긴 해도 월급날은 제때제때 챙겨주시는 사장님이었다. 나은은 사장님이 오늘도 자리를 비우실 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죠?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거죠? 죄송해요, 언니. 제가 괜히 그런 말해서.”

 치부를 보인 것 같아 미진은 볼을 붉혔다. 사장님한테도 나중에 오시면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겠다.

 “이제 일할까?”

 “네, 언니.”

 나은은 말에 한결 안심된 미진은 다시 예쁜 미소를 짓고선 일을 시작했다.

 나은은 사장석을 보았다. 걱정 말라곤 했지만, 나은 또한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은은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는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과 달리 사장님이 계셨을 때쯤 나은은 우연히 사장님의 통화를 듣게 되었다.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제가 금방 갚을게요. 네, 네. 아 회사를 찾아오시면 어떡해요!’

 사장은 통화 상대에게 연신 머리를 굽신거리며 공손히 전화를 받았다. 그러다 무슨 말을 듣고는 전화기를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닙니다.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그 말은 잊어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사장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 통화 상대에게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곤 상대와 통화를 끊고는 한숨을 깊게 쉬며 이마를 짚었다.

 ‘사장님....’

 나은은 사장을 불렀다. 사장님의 등이 어쩐지 왜소해 보였다.

 ‘어, 나은 씨. 왜 그래?’

 사장은 나은을 보곤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다. 직원 앞에선 작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아까 누구랑 통화하신 거예요?’

 ‘들었어?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별거 아니라면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의 사장님은 본 적이 없었다.

 나은은 사장님께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사장님의 모습이 어쩐지 안쓰러워 보여 그저 “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장은 할 말이 있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건 다른 직원들한테 비밀로 해 주면 안 될까? 그래도 사장인데, 이런 모습 보이니 부끄럽네.’

 사장은 민망함에 코밑을 쓸며 멋쩍게 웃었다.

 ‘네, 사장님.’

 ‘고마워, 나은 씨. 정말 고마워.’

 사장은 나은의 손을 잡곤 눈물을 글썽였다. 그때 처음으로 잡은 사장님의 손은 거칠고 투박했다.

 나은은 회상에서 깨어났다.

 믿어야 한다. 사장님은 언젠가 또 웃으시며 회사로 들어오실 것이다. 그렇게 믿고 나은은 여기서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했다.

 

 * * *

 의자가 핑글핑글 돌아갔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있는 주혁은 이 의자보다 더 머리가 돌아갈 것 같았다.

 그러다 책상 바로 앞에서 의자가 회전을 멈추었고, 주혁은 책상 위에 자신의 팔을 내렸다.

 “암만 모르겠어. 암만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고.”

 주혁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깊은 상념에 빠졌다. 질끈 감긴 두 눈 사이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하아.”

 주혁은 짧은 숨을 내쉬곤 살며시 눈을 떴다.

 “너 오늘 좀 이상해. 평소의 네가 아니잖아.”

 주혁은 오늘따라 이상증세를 보이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주혁은 젖혔던 고개를 들었다.

 “이게 다 그 여자 때문이야. 그 여자 때문에 내가 일에 집중할 수 없잖아.”

 그래, 이건 다 서나은이라는 여자 때문이다. 내가 어제 운 것도, 지금 이러는 것도, 그 여자가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주혁은 휴대폰을 꺼냈다.

 “안 되겠어. 지금 당장 그 여자와의 인연을 끊어야겠어. 이러다간 내가 못 살아.”

 주혁은 전화 버튼 안에 연락처를 들어갔다. ‘서나은’이라 치면 금세 나은의 번호가 떴다.

 주혁은 나은의 이름 옆 통화버튼을 눌렀다.

 지잉ㅡ 지잉ㅡ

 “뭐지?”

 책방 옆에서 진동을 내며 돌아가는 휴대폰을 보며 나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휴대폰을 집었다.

 ‘가방 주인.’

 작은 창에 뜨는 상대방의 이름에 나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은은 책상 걸이에 걸려 있는 쇼핑백을 보았다. 혹시 이거 때문에 그러는 건가?

 나은은 폴더를 열었다. 그리곤 통화버튼을 누르곤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었다.

 “여보세요?”

 -너 어디야.

 “저 지금 회사요.”

 -그럼 회사 끝나고 곧바로 가방 들고 와. 장소는 내가 나중에 알아서 문자해줄 테니까.

 주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뭐야? 이 남자.’

 나은은 어이없게 끊겨버린 전화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튼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없어요.

 “후우.”

 주혁은 그제야 살 것 같은 얼굴을 지었다. 가방만 받고 오늘로써 그 여자와의 만남을 종결시킬 것이다.

 똑똑.

 “사장님, 접니다.”

 집무실의 문을 열고 호재가 들어왔다. 호재는 늘 그렇듯 주혁에게 인사를 하곤 주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래, 장 비서. 무슨 일이야?”

 “회장님과 사모님께서 오래간만에 점심식사를 같이 하시자고 하십니다. 장소는 셰프 조, 리사가 운영하는 유명한 레스토랑입니다.”

 호재는 조리사라고 하면 그가 알아듣지 못할까 봐 일부러 ‘조’ 뒤를 띄우고 말했다.

 “알았어. 나도 회장님 얼굴도 보고 좋지, 뭐. 회장님께 알겠다고 말씀드려줘.”

 “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

 호재는 살짝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곤 방을 나갔다.

 회장님과의 식사라.... 오늘은 또 어떤 재밌을 얘기를 해줄 실지 살포시 기대가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회장님은 주혁을 만나면 항상 여행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만 걱정이 있다면 거기에 자신의 엄마가 끼는 거였다. 엄마가 목적 없이 식사에 나올 리 없을 테고,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터였다.

 *

 셰프 조, 리사의 레스토랑.

 회장님을 만난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멀끔하게 차려입은 주혁은 마치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랑처럼 떨리는 걸음으로 회장님이 있는 곳으로 갔다.

 “오오, 우리 강주혁 사장님이 아니신가.”

 주혁의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 주혁을 발견한 회장님, 중겸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려 주혁을 반겼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주혁은 정확히 45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곤 중겸을 보며 예의를 갖췄다.

 “그래, 그래. 어서 자리에 앉게.”

 중겸은 호방한 미소를 지으며 주혁을 자리에 앉혔다. 중겸의 말에 주혁은 자리에 앉았다.

 “넌 엄마한테는 인사 안하니?

 “아, 어머니도 계신지 미처 몰랐네요. 지금이라도 일어서서 인사 할까요?”

 “됐어, 얘. 엎드려 절 받기 식의 인사는 받고 싶지 않아.”

 그리고 주혁이 인사를 한다고 해도, 그녀는 별다른 액션은 없을 것이다.

 “너희들은 어떻게 틈만 나면 싸우냐. 좀 친하게 지내고 그래.”

 “죄송합니다, 회장님. 앞으로 어머니와 보다 친밀하게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내 의사도 없이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니? 회장님, 저는 죄송하지만 아들과 이렇게 지내는 게 더 편합니다.”

 서로 다른 말을 제시하는 모자를 보며 중겸은 허허 웃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모자지간이로구먼.

 “그런데, 회장님. 오늘은 어떤 이유로 식사에 초대하신 겁니까?”

 “그냥 오랜만에 오붓하게 가족끼리 식사하고 싶어서 불렀어. 그리고 며늘아가가 할 얘기도 있다고도 해서.”

 “어머니가요?”

 중겸의 말에 주혁은 엄마, 윤정을 보았다. 윤정은 우아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술을 열었다.

 “그래, 내가 너한테 긴히 할 얘기가 있거든.”

 주혁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너 언제까지 연애도 안 하고 혼자 살 거니? 그러다 총각귀신이라도 돼서 죽고 싶어?”

 윤정을 주혁을 보며 다다다 쏘아댔다. 윤정의 말이 총알처럼 다가와 주혁의 가슴에 박혔다.

 “아무튼, 너 선 볼 여자 좀 고르려고 회장님하고 불렀어. 능력도, 외모도 모두 출중한 여자를 골라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원래 너는 안 끼워주려고 그랬는데, 네 의견 5%는 반영해 줄게.“

 윤정은 선심 쓰듯 말했다.

 5%면 그냥 반영을 안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너는 잠자코 우리 의견에 따르라는 뜻이다.

 “할아, 아니, 회장님. 저는 아직 선을 볼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좀 구해주세요. 주혁은 중겸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미안하지만 주혁아. 나도 네 엄마 말에 동의한단다. 언제까지 혼자살 수 없잖니.”

 어지간해선 손주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어서 빨리 예쁜 손녀손자를 보고 싶었다.

 “회장님...”

 믿었던 할아버지의 배신에 주혁은 충격에 빠졌다.

 “자, 그럼 회장님. 우린 저 친구의 임자를 구해볼까요?”

 “허허, 그러지.”

 주헉의 머릿속에서 비상벨이 삐뽀삐보 울렸다. 이대로 가다간 영락없이 선을 볼 팔자이다.

 주혁은 다급하게 문자를 찍었다. 이 순간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건 딱 한 명뿐이었다.

 지잉ㅡ

 또다시 울리는 휴대폰에 나은은 폴더를 열었다.

 ⌜어디야?⌟

 아까 통화한 지가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또 어디냐고 묻는 남자에게 나은은 살짝 짜증이 났다.

 ⌜회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또 왜요?⌟

 ⌜지금 당장 가방 들고 조리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와.⌟

 ⌜네? 조리사요? 음식 만드는 사람의, 그 조리사?⌟

 “아니 그게 아니라... 휴, 됐다.”

 이러다 시간만 가겠다 싶어 주혁은 문자 보내는 것을 그만두었다.

 “저, 회장님. 저 잠시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며늘아가, 이 여자는 어떤가?”

 주혁은 상대자를 고르는 두 사람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들어섰다.

 주혁은 나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더니 잠시 후 “여보세요?”하는 나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말하는 조리사는 그 조리사가 아니야.”

 -그럼 뭔데요?

 “그건 알 필요 없고, 주소 보내 줄 테니까 당장 여기로 와. 지금 시간이 없어.”

 네가 안 오면 난 선의 폭풍우를 맞을 거야.

 하지만 그 말을 했다간 얘기가 더 복잡해 질 것 같아 주혁은 딱 여기까지 말하기로 했다.

 “택시비는 내가 줄 테니까 총알 같은 속도로 와. 난 한시가 급한 몸이거든.”

 그렇게 통화가 끊겼다.

 “저기, 이봐요. 여보세요?”

 막무가내로 자기 할 말만 하곤 또 전화를 끊어버리는 남자에 나은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일이세요?”

 “미진아, 나 잠시 어디 좀 갔다 올게. 혹시 사장님 오시면 후딱 해치우고 오겠다고 말씀드려 줘.”

 나은은 자신의 가방과 쇼핑백을 챙기고는 회사를 나갔다. “다녀오세요!” 미진은 나은의 뒷모습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사뭇 다른 발걸음으로 다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온 주혁은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갑자기 급한 볼일이 떠올라서.”

 “아니야, 괜찮아. 주혁아, 이 사진 좀 보렴. 네가 보기엔 이 여자는 어떠냐.”

 중겸은 여자의 사진이 붙어져 있는 종이를 주혁에게 내밀었다. 주혁은 여자의 사진을 보곤 빙긋 웃었다.

 “예쁘네요. 하지만 회장님, 저에겐 이 여자들보다 한 명의 여자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쁩니다.”

 그의 말에 중겸과 윤정이 주혁을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말 그대롭니다. 저는 선을 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선을 보지 않겠다는 아들의 말에 윤정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

 “조금 있으면 한 여자가 올 겁니다. 제가 선물한 가방을 들고 말이죠.”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 나은이 문을 열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기, 저 여자.”

 주혁은 나은을 보고는 두 사람을 보며 의기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나은이 그의 앞까지 걸어왔을 때,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주혁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이 여자가 바로, 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주혁은 비장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뭐?”

 “뭐라?”

 “네?”

 그리고 동시에 세 사람의 물음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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