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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너를 만나러 가는 시간
작가 : 차캐
작품등록일 : 2017.7.31

호텔 '블루 온' 사장인 주혁은 어느 순간부터 같은 꿈을 꾼다.

고운 한복을 입은 소녀. 그리고 '오라버니!'하고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

주혁은 소녀에 의해 매일 밤 잠을 설친다.

어느날 친구의 생일 파티로 인해 클럽에 갔다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6화.그녀의 눈물과 그의 눈물
작성일 : 17-07-31 22:42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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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혁은 놀랐다. 우연이 손이 닿았고, 옆을 바라보니 나은이 있었다.

 나은도 주혁을 보곤 놀라긴 마찬가지인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경쟁자가 생겼다.

 두 사람은 가방을 보았다. 가방은 하나, 사람은 둘. 고로 먼저 잡는 사람이 가방의 주인이 된다.

 두 사람은 동시에 가방을 끌어내렸다. 그리곤 서로 줄다리기를 하듯 경쟁태세를 갖추었다.

 “내가 먼저 집었어.”

 “무슨 소리에요, 제가 먼저 집었거든요?”

 “증거 있어?”

 “증거는 그쪽도 없거든요?”

 서로 지지 않겠다는 듯 둘 사이에 스파크가 튀겼다. 졸지에 두 사람 사이에 낀 가방만 옴짝달싹 못 했다.

 “저기, 혹시 이거랑 같은 가방 있어요?”

 주혁은 여전히 나은과 싸우며 그녀 뒤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이 가방은 이걸로 마지막입니다.”

 워낙 예전 제품인 데다 재고도 없어 가방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직원은 어쩔 줄 모른다는 얼굴을 띠며 주혁에게 말했다.

 “들었지? 이게 마지막이래.”

 “그러면 더 포기 못 하죠.”

 “넌 이 가방 안 보여? 우리가 이러면 네가 아니라 얘만 다쳐.”

 주혁은 두 사람의 손안에서 가련하게 떨고 있는 가방을 보며 말했다. 자칫하다 작은 손상이라도 날 시엔 가방으로서의 가치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럼 그쪽이 놓으면 되잖아요. 전, 절대 못 놔요.”

 하지만 주혁의 협박에도 나은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불안하면 그쪽이 놓으시던가.

 “딱 보니 부자신 거 같은데, 그냥 다른 가방 사시는 게 어때요?”

 “미쳤어? 부자라고 해서 취향 없이 아무거나 막 사나?”

 “아무튼 전 절대 못 놓습니다.”

 “그럼 이대로 계속 가자는 거야?”

 “네, 가요. 한번 가보죠.”

 서로의 말을 맞받아치며 두 사람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두 사람도 계속되는 경쟁에 서서히 지쳐갔다.

 “그럼 이건 어때?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포기하기로.”

 “그거 좋네요. 대신 다른 말하기 없기에요.”

 “깔끔하게 한 판. 더는 기회 없어.”

 “좋아요. 그렇게 해요.”

 가방을 든 직원이 가운데에서 중계자 역할을 하고, 두 사람은 전투준비를 했다.

 복싱경기를 시작하기 전처럼 두 사람은 뜀뛰기를 하며 몸을 풀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가위바위보를 할 손을 가리고는 서로를 탐색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가위, 바위, 보!”

 “보! 예쓰~”

 나은은 환호성을 지르며 폴짝 뛰었다.

 주혁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신이 낸 바위를 들어 보였다. 남자라면 당연히 주먹이라 바위를 냈는데, 이 바위 때문에 자신이 지고 말았다.

 “원래 게임은 제시한 사람이 꼭 진대요. 진 사람은 다른 말 없기로 했죠? 그럼 사양 않고 잘 받아가겠습니다.”

 나은은 상을 수여받듯 직원에게 공손히 가방을 받았다.

 “잠, 잠깐만!”

 이대로 포기할 그가 아니다. 주혁은 손바닥을 쫙 편 채로 다급한 얼굴로 나은을 멈춰 세웠다.

 “내가 저 가격의 두 배, 아니 세 배를 줄게. 어때?”

 주혁은 손으로 숫자 3을 만들며 말했다. 이 정도면 꽤 솔깃한 제안일 것이다.

 세 배?

 그의 말에 나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참으로 매혹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세 배면 생활비가 더 추가되는 것이니까.

 나은은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로잡았다.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죄송하지만 싫습니다. 저한텐 이 가방이 꼭 필요하거든요.”

 나은은 또다시 흔들릴까 단호하게 말하곤 뒤돌아섰다. 돈 때문에 엄마와의 약속을 깨고 싶진 않았다.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나은은 계산대 앞에 섰다.

 “어? 어디 있지?”

 가방을 뒤적거리던 나은의 얼굴이 금세 당황함으로 물색했다. 암만 가방을 탈탈 털어 봐도 지갑은커녕 먼지만 날릴 뿐이었다.

 ‘아, 맞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나은은 윤지의 파일과 교통카드만 챙겼었다. 지갑을 들고 가면 쓸데없는 지출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가방이 가볍더라니. 이제야 떠오른 생각에 나은은 자책했다. 하필 이럴 때 필요한 지갑이 없냐고.

 “보니까 지갑을 깜빡하고 안 들고 온 거 같은데, 자리 좀 비켜주시지.”

 어느새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나은이 있는 곳으로 걸어온 주혁은 나은에게 비켜 달라 손짓했다.

 약 오르지만 나은은 어쩔 수 없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여기, 계산이요.”

 주혁은 당당하게 카드를 내밀었다. 삐까번쩍한 그의 카드를 보고 있자니 나은은 괜히 주눅이 들었다. 내가 지갑만 들고 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패자는 말이 없었다. 다만 가방을 성취한 주혁이 나은에게 가방이 든 쇼핑백을 보여주며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저기, 저기요.”

 백화점을 나가는 주혁의 뒤를 쪼르르 달려온 나은은 주혁을 불렀다.

 “무슨 일이지?”

 “저기... 그 가방 말이에요. 저한테 팔 순 없을까요? 제가 지금은 돈이 없지만 내일, 아니 당장에라도 꼭 드릴게요.”

 어느새 태세는 전환되었다. 하지만 주혁과 달리 나은의 부탁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싫어. 정 그렇게 갖고 싶으면 이 가격의 세 배를 주고 사.”

 “네? 세 배요??

 나은은 기겁했다. 이 가격의 세 배면 대충 이백 가까이 되는데... 나은은 울상을 지었다.

 “싫어? 싫음 말고.”

 “잠시만요!”

 나은은 돌아서려는 그를 다급히 붙잡았다. 대신 하루만 빌려주세요.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뭐 맡길 물건이라도 있어?”

 원래 뭘 빌리려면 자신에게 중요한 물건이라도 주어야 신용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주혁이 보기엔 나은에게 이렇다 할 물건은 없어 보였다.

 “이거요. 그쪽한텐 별로 안 중요해 보일 수 있으시겠지만 저한텐 엄청 중요한 물건이에요.”

 나은은 교통카드를 내밀었다. 여기에는 무려 5만 원이 들어가 있으니, 나은에겐 무지 중요한 물건이 아닐 수 없었다.

 “겨우 이걸로 이 가방을 빌리겠다고? 그리고 너도 다시 집에 가려면 써야 할 텐데, 그땐 어쩌려 그래?”

 주혁의 말에 나은은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여기서부터 자신의 집까진 걸어가기엔 턱없이 먼 거리였다.

 “됐고, 번호나 찍어. 그게 차라리 낫겠어.”

 주혁은 나은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교통카드는 다시 살 수 있지만, 전화번호라도 교환하면 통화라도 할 수 있으니까.

 나은은 주혁의 휴대폰에 번호를 찍고는 통화를 눌러 자신의 휴대폰에 그의 번호가 찍혔다는 걸 그에게 보여주었다.

 나은이 주혁에게 휴대폰을 건네고, 주혁은 나은에게 가방이 든 쇼핑백을 주었다. 이것으로 계약이 성립되었다.

 “그런데, 너. 나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분명 그녀와 이름을 주고받고 얘기까지 나누었는데. 그녀는 자신을 오늘 처음 본 사람처럼 대했다.

 “아니요. 전 그쪽 오늘 처음 보는데요.”

 나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녀의 눈엔 주혁은 그저 백화점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제가 좀 흔한 상이라 그런가 봐요. 저도 저 같은 얼굴 거리에서 많아 보고 그래요.”

 인상이 비슷하면 얼굴도 비슷해 보이고 그런다. 그는 아마 다른 여자랑 자신의 얼굴을 착각했나 보다.

 나은의 말에 주혁은 살짝 섭섭한 감이 들었다. 그래도 집까지 데려다 주고, 나름 걱정까지 했는데. 그것이 무색하게도 나은은 주혁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군. 내가 사람을 착각했나 보네.”

 하지만 주혁은 나은에게 너와 내가 만난 사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하곤 싶지 않았다. 자신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아, 전 서나은이에요.”

 “난 강주혁이야.”

 “그럼 강주혁 씨, 안녕히 계세요. 이건 제가 내일 꼭 돌려드릴게요.”

 나은은 주혁에게 인사를 하곤 뒤로 돌았다.

 “잠깐 서봐!”

 “네? 무슨 일이세요?”

 주혁의 부름에 나은이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았다.

 데려다줄까?

 이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주혁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아니야. 그냥 가봐.”

 “네, 안녕히 계세요.”

 허무하게 나은은 보낸 주혁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였다. 젠장. 이런 말 하나도 제대로 못 한 자신이 한심했지만.

 “아니야. 오히려 잘됐어.”

 그녀의 입장에선 자신은 처음 만난 사람이기에 오히려 그 말을 하는 게 더 이상해 보일 수 있었다.

 주혁은 애써 괜찮다고 했지만 허탈한 얼굴로 나은이 간 곳을 바라봤다. 나은을 보낸 마음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아서였다.

 

 * * *

 나은은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덜컹거리며 도시를 펼쳤고, 이내 탁 트인 전경을 펼쳤다.

 버스에서 내린 나은은 또 한참을 걸어 한 납골당에 도착했다.

 문고리를 잡곤 눈을 감은 나은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내쉬었다. 가슴이 파도처럼 울렁거렸다. 지금이라도 모든 게 예전대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눈을 뜨곤, 나은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납골당 안 많은 납골함 중에 나은은 두 납골함 앞에서 멈췄다.

 “엄마, 아빠. 나왔어.”

 나은은 부모님의 성함이 박혀진 납골함을 보며 말했다.

 “엄마, 내가 뭐 들고 왔는지 알아? 짜잔. 바로 이거 들고 왔지.”

 나은은 가방을 꺼내 엄마의 납골함에 가방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었다.

 “근데 이거 내가 산 게 아니라 다시 돌려줘야 해. 나중에 내가 이거랑 똑같은 거 나오면 꼭 사올게. 아빠는 멋진 넥타이로 사 오고.”

 나은은 눈물이 나는 것을 삼켰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단란했고, 화목해서 더 행복한 가정이었다.

 “엄마, 아빠, 내가 미안해...”

 스물 살.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나은은 아르바이트로 처음으로 번 월급을 부모님께 드리며 여행을 갔다 오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괜찮다고, 그냥 너 쓰라고 대답하셨지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놀러 가겠어. 난 괜찮으니까, 두 분께선 편안하게 놀다 오세요.’

 하는 나은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돈을 받아들였다.

 ‘고마워, 우리 딸.’

 ‘고맙긴 무슨.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얼만데.’

 ‘그럼 잘 다녀올게.’

 ‘응. 잘 갔다 와.’

 그렇게 부모님이 여행을 떠나고, 여행 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가던 나은은 부모님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큰 차량에 의해 그만 교통사고가 나고 말았다.

 큰 원인은 반대편 차량 기사의 졸음운전이었고, 그 사고로 나은은 부모님을 잃고 말았다.

 나은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저가 여행을 다녀오라는 말만 안 했어도 지금쯤 부모님께선 살아계셨을 텐데 말이다.

 나은은 주저앉았다. 나은의 무릎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미안... 내가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저가 밉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가족사진 안, 행복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이 보인다. 그리워서 더 붙잡고 싶은, 가슴 아픈 옛날이었다.

 *

 집으로 돌아온 주혁은 가방이 진열된 곳을 서성이며 가방들을 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낀 주혁은 심장을 움켜쥐었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심장이 크게 뛰었다. 난데없는 고통에 주혁은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주혁은 서둘러 주방으로 가 물을 들이켰다. 물을 마시니 조금씩 안정이 되었다.

 “뭐야, 나 왜 이래.”

 통증은 괜찮아졌지만, 주혁은 급작스레 흘린 눈물에 당황했다. 손으로 눈가를 닦곤 주혁은 손가락에 묻은 눈물을 보았다.

 “왜 운거야 갑자기. 왜 이렇게 슬픈 거냐고.”

 눈물이 날 이유가 없는데 주혁은 가슴이 아릿해졌다. 그리고 왜 그러는지 나은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나 지금, ...그 여자 때문에 운 거야?”

 주혁은 혼란스러웠다. 쿵쿵 거리는 심장이 유난히 더 크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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