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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너를 만나러 가는 시간
작가 : 차캐
작품등록일 : 2017.7.31

호텔 '블루 온' 사장인 주혁은 어느 순간부터 같은 꿈을 꾼다.

고운 한복을 입은 소녀. 그리고 '오라버니!'하고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

주혁은 소녀에 의해 매일 밤 잠을 설친다.

어느날 친구의 생일 파티로 인해 클럽에 갔다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5화. 손끝이 닿다
작성일 : 17-07-31 22:29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6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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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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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포스스 부서지며 그녀의 방안으로 굴러들어왔다.

 엎드린 채 잠을 청하는 나은은 그런 햇살을 받으며 기분 좋은 잠을 이뤘다.

 ♪♫♪♪♫ㅡ

 그녀의 가방 안에서 맹랑한 전화벨이 울렸다.

 난데없는 소음의 타격을 받은 나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팔만 쭉 뻗은 상태로 나은은 바닥을 짚으며 가방을 찾았다.

 손에 가방끈이 걸리자, 나은은 가방을 끌고 와 그 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전화상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나은은 귀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고는 전화를 받았다. 막 잠에서 일어난 상태라 그녀의 목소리가 나른하게 잠겨있었다.

 -나은아.

 “어, 윤지야.”

 약간 높은 톤의 목소리가 나은은 윤지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자는데 깨운 거야?”

 “아니야, 괜찮아. 무슨 일이야?”

 -내가 어제 네 가방에 파일 맡겨둔 거 깜빡하고 안 들고 갔더라고. 미안한데 그거 들고 백화점으로 와줄 수 있을까? 한 세 시쯤에.”

 자신의 가방은 작아서 대신 윤지는 나은의 가방에 파일을 맡겼었다.

 “알았어. 씻고 갈게.”

 -응. 땡큐, 나은.

 나은은 윤지와의 통화를 끊었다.

 “아, 아-함.”

 입 찢어질 듯 하품을 하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어우, 씁.”

 상체를 일으키니 폭풍우가 몰아칠 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아으, 머리야.”

 깨질듯한 머리에 나은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손으로 머리를 눌렀다. 동시에 쓰- 하는 잇새 소리가 나왔다.

 머리를 누르던 손이 힘없이 떨어지고는 나은은 살짝 벌어진 입술과 반쯤 풀린 눈으로 멍하니 주위를 살폈다.

 “근데 내가 여길 어떻게 왔지?”

 이제야 제대로 보니 나은은 여기가 자신의 집이라는 걸 알았다.

 이불도 깔려 있고, 나은은 덮고 있던 이불을 들쳐 자신의 발을 보았다.

 다행히 신발을 신고 들어온 것 같진 않아 나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은은 현관을 보았다. 어제 신은 하이힐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나은은 현관문을 열었다. 예상은 했지만 아무도 없고, 대신 찬바람이 불었다.

 훅 들어온 바람은 나은의 피부를 스쳤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에 나은은 팔뚝을 쓸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문 바로 옆에 놓여있는 자그마한 갈색 병이 보였다.

 나은은 병을 집었다. 요리조리 병을 살펴보니 부채꼴 상표가 표기된 숙취해소제였다.

 누군가 자신의 집에 들른 것이 분명했다. 아마 이 병을 놓은 사람이 자신을 집에 데려다준 사람과 동일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렇담 대체 누구지?

 

 * * *

 방 밖으로 나온 주혁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주혁이 스트레칭을 하며 주방까지 온 사이, 마침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하고 있던 찬호가 그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벌써 일어났어?”

 평소라면 저가 깨워야 아침을 맞던 그인데, 오늘은 깨우지 않아도 먼저 일어나다니. 세상 살다 보니 참 별일이 다 있다.

 “그냥, 눈이 떠졌어.”

 자신이 먼저 일어나고, 그다음 알람이 울렸다. 믿지 못할 상황에 주혁 본인도 놀라운 건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잘됐다. 식사 준비 다 하고 너 깨우려 했는데. 마침 다 끝났으니까 이제 먹자.”

 주혁은 찬호가 준비한 찌개와 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국물을 마시려던 찬호는 신기한 광경을 보는 듯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너 되게 잘 먹는다. 꼭 며칠 굶은 사람 같아.”

 어제까지만 해도 입맛이 없다며 자리를 떠난 친구가 오늘은 잃어버렸던 입맛이 돌아온 것인지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 전 같았으면 이미 숟가락을 내려놓기 오래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혈색도 좀 좋아진 것 같다?”

 찬호는 주혁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새 생명을 얻은 것처럼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돋았다. 어제와 180도 달라진 모습에 찬호는 놀랍기만 하다.

 “그래? 잠을 잘 자서 그런가.”

 개운하게 일어나니 밥도 술술 넘어갔다. 주혁은 여전히 식사를 놓지 못했다.

 사람이 변하면 일찍 죽는다던데. 주혁이 딱 그 짝인가 보다. 찬호는 순간 마음이 애잔해졌다.

 “주혁아...”

 “왜.”

 “나... 별장 좀 사주라.”

 찬호의 말에 주혁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미쳤어? 네 돈으로 사.”

 주혁은 그리 말하고는 다시 수저를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저리 반응을 하는 걸 보면 제가 아는 친구가 맞긴 맞나보다. 다행히 그가 완전히 바뀐 것 같진 않아 찬호는 안도했다.

 그럼 대체 뭘까. 찬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복권에 당첨된 걸까? 하지만 복권 당첨 돈은 얘 재산에 비하면 새 발의 피고, 주혁이 복권을 살 성격은 아니다.

 혹시 벼락이라도 맞았나? 이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어제 날씨는 벼락 따위는 찾아볼 수 없던 청아한 날씨였다.

 되게 작지만, 대신 엄청 큰 영향을 끼친 요인. 찬호는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으며 더 큰 고심에 빠졌다.

 ‘생각하자, 생각해.’

 눈을 질끈 감고, 찬호는 머릿속 기억의 끄트머리에 숨겨져 있던 작은 톱니바퀴 하나를 굴렸다. 친구의 작은 변화. 그리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딱 하나.

 “아!”

 찬호는 식탁을 탁 치며 유레카를 외치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머리 위로 번쩍번쩍한 전구가 떴다.

 “뭐야, 왜 그래?”

 찬호가 식탁을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주혁은 놀란 얼굴로 그를 보았다.

 왜 갑자기 미친 행동이야?

 “너 어제 꿈 안 꿨지.”

 “꿈? 무슨 꿈.”

 “왜 너 피곤하게 만드는 꿈 있잖아. 여자애 나오는 거.”

 여자애? 주혁은 생각했다. 순간 주혁의 머릿속에서 여자아이의 웃는 얼굴이 팟 나타났다 사라졌다.

 “글쎄, 꾼 것 같기도 하고.. 안 꾼 것 같기도 하고...”

 “와- 진짜 신기하다. 진짜 대박.”

 찬호는 연신 감탄사를 질렀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일어날 법한 상황이다.

 “근데, 그 여자애하고 내가 피곤한 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너 몰라? 너 요 몇 달간 그 여자애 꿈꾼 뒤로 잠도 제대로 못 잤잖아.”

 “내가? 하지만 난 그 여자애 꿨었던 기억이 전혀 없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린지. 주혁은 요 몇 달, 자신을 괴롭혔던 꿈의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더불어 여자아이도 그렇고. 찬호는 그가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했지만, 저를 보는 친구의 얼굴은 정말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쓸데없는 장난 치치마. 난 안 속아.”

 “와, 진짜 억울하다. 내가 그동안 너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 한 줄 알아?”

 주혁이 이러다 쓰러질까 걱정, 밥 제대로 안 챙겨 먹을까 걱정. 내가 얼마나 애가 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동영상이라도 찍어놓을 걸 그랬다.

 “아무튼, 이제 꿈 안 꾸니 그게 어디야. 축하한다.”

 찬호는 주혁의 팔을 툭 치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이제 제대로 된 아침을 맞을 수 있겠다.

 “싱겁기는.”

 주혁은 어린아이처럼 들뜬 찬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주혁은 뜬 국을 마시려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잔 밥이나 챙겨 먹고 있을까.”

 나은이 생각나 채 입속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숙취해소제를 놔두긴 했다만 그래도 밥을 먹어야 할 텐데.

 “응? 뭐라 그랬어?”

 “아무것도 아니야. 난 밥이나 한 그릇 더 먹어야겠다.”

 주혁은 싹싹 비워진 밥그릇을 찬호에게 들어 보이고는 전기밥솥으로 향했다. 참으로 신기한 아침이다.

 *

 한편 어느새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은 나은은 집안에서 자신만의 조촐한 해장식을 먹었다.

 자신보다 더 몸집이 작은 좌식식탁은 앞에 앉아, 그녀는 집에 있던 컵라면 용기에 든 북엇국을 쭉쭉 들이켰다.

 “캬, 역시 해장엔 북엇국이 최고지.”

 깨끗하게 북엇국을 비우고선, 나은은 마지막으로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아삭아삭 씹었다. 반찬은 김치 딱 하나밖에 없지만, 나은에겐 10첩 반상 부럽지 않은 차림이었다

 나은은 입가심용으로 남겨두었던 숙취해소제를 마셨다.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잘도 넘어가는 게, 한방에 숙취 음료를 들이킨 나은은 개운한 얼굴을 하고선 식탁 위에 음료를 내려놓았다.

 나은은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고선, 으, 하는 소리를 내며 양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켠 채로 벌러덩 누웠다.

 “아, 좋다.”

 들어오는 햇살은 따습고, 배도 채워 느른한 몸 때문에 눈꺼풀이 슬며시 감겨왔다.

 이게 행복이지. 행복이야.

 나은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선 눈을 감았다. 나중에 윤지한테 가려면 지금 준비를 해야 했지만, 나은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엄마, 아빠. 나 잠시 동안만 행복해질게.”

 나은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왠지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만 같았다.

 

 집무실 안.

 주혁은 사무 의자에 앉아 서류처리를 했다. 글자도 쏙쏙 들어와서 일 처리가 금방금방 되었다.

 “사장님, 오늘따라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호재는 휘파람을 불 것 같이 상쾌해 보이는 주혁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래? 찬호도 그런 말 하던데, 내가 오늘 좀 괜찮나 보네.”

 “사장님께서 좋아 보이니 저 또한 기분이 좋습니다.”

 호재는 입꼬리를 바짝 끌어올리며 웃었다.

 “우리 장 비서가 사회생활 하나는 잘하는구먼. 그 열정, 칭찬해.”

 “오늘도 스케줄 잡아놓을까요?”

 “아니, 괜찮아. 오늘은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이만 나가봐도 돼.”

 주혁의 말에 호재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곤 집무실을 나갔다.

 주혁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피부가 좀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잘생겨진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주혁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평가했다. 안 그래도 잘생긴 얼굴이 오늘따라 더 조각 같아 보였다. 아마 찬호가 이모습을 본다면 분명 미쳤냐고 할 게 뻔하지만.

 주혁은 흐뭇하게 거울을 내려놓고는 정장 재킷을 챙겨 입었다. 바닥과 마찰 대는 구둣발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

 “여기.”

 “고마워. 네 덕에 살았다, 야.”

 파일을 건네받은 윤지는 이제야 안도한 얼굴을 지으며 파일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런데, 뭐 준비하는 거야?”

 나은은 윤지 뒤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우리 백화점에서 행사 준비하거든. 그래서 좀 바빠. 너도 나중에 놀러 와. 내가 선물 많이 챙겨둘 테니까.”

 “고마워.”

 “아, 너 어제 잘 들어갔어?”

 응? 이건 무슨 소리래?

 “너희들이 데려다준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우리가 먼저 가고, 네가 마지막에 갔잖아.”

 윤지의 말에 나은은 깜짝 놀랐다. 당연히 친구들이 자신을 집에 데려다준 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들이 아니었다니. 그렇담 자신이 숙취 음료를 사고 집에 들어왔다는 말이었다.

 “너 또 필름 끊겼지? 뭐, 그래도 집에 제대로 들어왔으니까 괜찮은 건가. 넌 그 필름 끊기는 술버릇 좀 고쳐야 돼.”

 “알았어. 난 간다?”

 “응. 조심해서 가.”

 윤지와 헤어지고, 나은은 백화점 안을 돌았다.

 윤지를 만나러 오지 않는 이상 나은은 굳이 백화점을 오지 않았다. 어차피 와봤자 저가 살 수 있는 품목은 없기 때문이었다.

 나은은 가방코너를 돌았다. 가방들이 각자 조명을 받으며 진열대 안에 배치되어 있었다.

 나은은 멀리서 한 가방을 보았다. 위에는 작은 손잡이가 달려져 있고, 끝자락에는 작은 스마일 마크가 박혀진 분홍색 가방이었다.

 나은은 회상에 빠졌다.

 예전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온 적이 있었다. 지금은 할 수 없지만, 나은은 엄마와 도란도란 팔짱을 끼며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어머. 나은아, 저것 봐봐. 예쁘지 않아?’

 선화는 좀 전 나은과 본 것과 똑같은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런 가방 들고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딸 못 믿어? 나중에 내가 돈 모아서 저거 10개는 사줄게.’

 ‘네가 무슨 수로. 됐어. 엄마는 그냥 너 하나만 있으면 돼.’

 선화는 나은은 팔을 짚으며 말했다. 가방 10개보다 딸아이가 더 소중했다.

 ‘진짜라니까? 내가, 약속은 꼭 지킨다.’

 ‘알았어. 엄마 그럼 기대해도 되는 거지?’

 ‘응, 당연하지.’

 나은은 밝게 웃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결국 지키지 못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 나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

 여자라면 예쁜 가방을 들고 다니고 싶을 로망쯤은 있을 텐데, 엄마는 항상 시장에서 산 값싼 가방을 들고 다녔다.

 나은은 손등으로 눈물을 꾹 눌렀다. 엄마에게 예쁜 가방을 사주지 못한 게 죄송했다.

 나은은 가방이 진열된 곳으로 걸어갔다. 한동안은 허리띠를 졸라매야겠지만, 엄마에게 가방을 사드리고 싶었다.

 나은은 아까 자신이 본 가방 앞에 섰다. 예전보다 가격대는 많이 내려갔지만 그녀에게는 여전히 높은 가격이었다.

 나은은 손을 뻗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손도 튀어나와 가방을 잡았다.

 손끝이 닿자 두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놀랍게도 주혁이 그녀와 같은 가방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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