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결심
가슴이 뚫려 나가는 것처럼 저려왔다. 마치 승아를 잃던 그 날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민은 윤의 전화를 끊고 여러 번 머리를 쓸어내렸다. 리조트에 있었어야 했다. 리조트를 나온 건 남소현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남소현 교수를 만난다는 이유로 민아 곁을 떠나지 말아야했다. 솔직히 민아를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민아 씨가 아닌 승아의 동생으로 만나는 것이 어려웠다. 비록 정민아의 기억에 민은 없을지라도 이렇게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민아가 누구야? 윤이도 아는 사람이야?”
선미가 물었다. 민아가 누구냐고. 어떻게 설명해도 선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일 것이다.
“곧 만나게 될 거야.”
민은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병원까지 가는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민아는 3도 화상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직원들은 다 괜찮습니까?”
“네, 직원 중 10명가량 가벼운 부상이 있었습니다. 나머지 직원들은 모두 괜찮습니다.”
“나머지 직원들은 모두 리조트로 돌아가게 하시죠.”
“알겠습니다.”
김비서가 병원 밖으로 직원들을 데리고 나가자 윤이 다가왔다. 선미는 초췌해 보이는 윤이 팔을 쓸어내렸다. 윤은 살며시 미소 짓는다. 윤은 민을 바라보았다.
“어디 있어?”
“창문가 제일 안쪽. 치료 받고 막 잠들었어. 치료 받는 동안 많이 아팠을 거야.”
민은 민아가 있는 침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커튼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전문의가 치료하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 피부 전층이 손상되어 흰색으로 변해 있었고 진물이 흘렀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경과보고 피부이식을 해야 할 지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전문의는 나갔다. 민은 민아 곁에 앉았다. 민아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힘들었을 것이다. 아팠을 것이다. 피부 겉층이 모두 상해 있고, 그 안 피부가 들어날 정도로 화상은 깊었다. 자는 동안에도 고통스러운 지 어깨를 움찔했다. 민은 그저 민아의 손을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곁을 지켰다. 민아의 손을 꼭 잡고 손에 머리를 기댔다. 흔들리지 말았어야 했다. 승아를 보냈을 때처럼 한 순간도 망설여서는 안 된다. 민아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그때 커튼 안쪽으로 선미가 들어왔다. 선미는 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난 4년 간 민을 봐오면서 저 사람에게는 투정 부리면 안 되겠다. 저 사람에게 사랑을 바래서는 안 되겠다. 저 사람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를 욕심내지 말고 그의 옆에만 있어도 좋겠다. 마음먹었다.
“민아, 잠깐 얘기 좀 하자.”
“…나가 있어.”
그때 커튼을 젖히고 윤이 들어왔다. 민은 윤을 쳐다보았고, 윤은 나갔다 오라는 눈짓을 보냈다. 민은 민아를 한 번 더 바라보고 손을 꼭 쥐었다 놓았다. 민과 선미가 나가자, 윤이 민아 곁을 지켰다. 차로 온 선미는 민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민도 그런 선미를 바라보았다.
“민아.”
“그래.”
“누구야?”
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나 봐봐.”
선미는 민이 자신을 보도록 민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민아.”
민은 선미의 손을 피했다. 선미의 마음이 쓰라렸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곁에 있어도 늘 그 사람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너 왜 사람 바보 만들어? 넌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며? 사랑할 수 없다며?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어!”
민은 고개를 돌려 선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볼에 눈물이 흘렀다. 민은 선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올 거라 생각했다. 의지할 곳 없던 자신의 마음을 윤과 선미에게 의지해 온 것도 사실이다. 너무 힘이 들 땐, 선미에게 마음 한켠 내어주고 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의 결론은 항상 같았다.
“미안하다. 난… 평생… 지켜야 할 여자가 있어.”
“평생 지켜야 할 여자? 누구? 저기 병실에 누워 있는 사람?”
민은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차 속의 공기가 무거웠다. 민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아주 어렸을 때라 그게 사랑이었는지, 동정심이었는지, 연민이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만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져 오는 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랐었어. 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살아 있다면… 평생 그 생각만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 아이만 생각하면 늘 그랬어. 그래서 평생 그렇게 살려고 했어. 그게 맞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 아이와 똑같은 마음이 생기는 사람이 나타났어. 내가 놓은 여자는 한 명이면 충분해. 지금은 놓치면 안 된다. 선미야, 나한테… 마음 주지 마. 더는 네 마음…”
“아니! 그만해! 안 들을 거야!”
“선미야…”
“내려! 나 오늘 너 얘기 못들은 걸로 할게! 혼자 있고 싶어.”
민은 선미를 돌아보지 않았다. 망설이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라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들다. 좋은 사이건 나쁜 사이건 서로에게 그에 맞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노력과 시간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을 때, 그것처럼 무의미한 일이 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상대에 따라 일정한 거리감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거리감을 조절하지 못한 자신의 탓도 있다. 지금은 복잡한 생각들을 되도록 단순화 시킬 필요가 있었다. 민은 다시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응급실 안에서 고통을 참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커튼을 열어 젖혀 안으로 들어가자 고통스러워하는 민아가 있었다. 민은 민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떨림이 손끝까지 전해져 왔다.
“서울로 이동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손 박사님?”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 * *
민아를 실은 헬기가 서울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민아는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민은 수술실 앞에 앉아 머리를 수없이 쓸어내렸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민아의 살에 칼이 스친다는 생각만 해도 온몸이 떨렸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곁으로 몸을 기대섰다. 곁에는 그림자처럼 김비서가 있었다.
“김비서님, 지금 전 계열사 임원진 회의 소집해주세요. 민아는 아직 입니까?”
“아직 수술 중입니다. 회의 소집하겠습니다. 병원으로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민은 담배를 한 대 피고 싶었다. 담배를 펴 마음속에 답답함을 모두 털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수술실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수술실에 있을 민아를 생각하면 지금의 답답함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민은 숨을 깊게 고르게 내쉬고 수술실 앞으로 갔다. 수술실 앞에 있던 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뒤쪽에서 향냄새가 풍겼다. 회색 승복이 비춰졌다. 민은 자신의 눈에 비친 주지스님의 모습에 마음이 울컥했다. 민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주지스님도 민의 마음이 어떤지 잘 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연락드렸어.”
윤이 민에게 다가왔다. 민은 주지스님을 보니 정신없던 오늘이 꿈만 같았다. 주지스님의 평온한 미소를 보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손이 왜 그러느냐.”
주지스님은 자신의 팔 안자락에서 하얀 수건을 꺼내 민의 손을 감싸주었다. 언제 어디서 부딪혔는지도 몰랐다. 오른손에 어디서 긁혔는지 깊숙이 패여 피가 흐르고 있었다. 민은 스님이 감싸 준 하얀 손수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스님은 민의 손을 꼭 한 번 쥐었다가 풀어냈다.
“이만 가보마.”
“민아 안 보시고요?”
“너 보러 왔다. 널 어찌해야 하누… 그 무게를 어찌 다 짊어지려고…”
스님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 스님이 꾸지람을 세게 한 번 해주고 가셨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스님은 늘 하던 꾸지람을 하지 않으셨다. 대신 자신의 손을 꼭 잡아 주고, 어깨를 쓸어주고 발을 돌렸다. 민은 스님과 걸었다. 바람이 점점 서늘해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진솔하게 규칙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시간이 아닐까. 그 시간에 사람들의 삶이 녹아 들어가고, 수많은 사람의 삶을 품에 안고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네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잘 판단해서 결정 하거라. 늘 신중해야 한다.”
민은 스님이 하는 이야기에 반은 남겨두고, 반은 미래를 위해 남겨두었었다. 그래야 스님의 말씀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었다. 지금 스님이 한 말씀 중 ‘네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이 말은 미래를 위해 남겨두어야 할 말이었다. 잘 판단해 결정하라는 말씀은 현재를 염두해 두고 하신 말씀일 것이다. 민은 스님의 뒷모습이 작아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회의 소집됐습니다.”
민은 김비서의 전화를 받고 병원 21층으로 올라갔다. 민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전 계열사 임원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은 김비서가 안내하는 중앙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전 임직원 안전에 대한 인식을 재고할 시점임을 강조하기 위해섭니다. 어떤 계열사든 안전 특히 화재와 관련된 사고가 발생 했을 시, 이유를 막론하고 그 계열사 사장에게 책임을 묻겠습니다. 비용이 얼마만큼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각 계열사에서는 안전에 대한 비용은 아끼지 말고 과감히 투자하셔서 예방하시기 바랍니다.”
김비서는 민의 말이 끝나자 휴대전화 문자를 건넸다. 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직원은 안전 예방 대책회의를 진행하도록 지시하고 수술실로 내려왔다. 민아의 수술이 끝났다는 문자였다. 수술실 앞에는 윤과 선미, 그리고 민아와 입사를 함께했던 동기들이 있었다. 민이 수술실에 도착하자 민아가 나왔다. 민아는 잠들어 있었다. 오른쪽 어깨와 팔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민은 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돌려보내도록 지시했다. 병실로 들어가자 윤은 그대로 소파에 앉았고, 민은 담당의사에게 민아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수술은 잘 됐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라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다.”
“감사합니다. 장 박사님.”
“나야 늘 하는 일인데 뭐. 직원 걱정 많이 됐나보구나. 한 회사 짊어지고 가려면 좀 더 강해져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직원 한 명 한 명 그렇게 신경 쓰기에는 직원이 너무 많잖니. 너도 좀 쉬어.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장 박사가 나가자 두 명의 간호사와 집안일을 돌봐주시는 아주머니 두 분이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 민아에게는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할 것 같았다.
“윤 검사님이랑 함께 나가서 잠깐이라도 쉬세요. 그 사이 얼굴이 안되셨네요.”
민과 윤이 절에서 나와 집에 온 순간부터 함께 해주셨던 유모였다. 유모에게 민과 윤은 아주 착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이라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민도 윤도 그렇게 착한 아들은 되지 못했다. 그걸 유모는 알 수 없다. 민은 친어머니가 자신을 데리러 절에 오던 날, 어머니 눈에서 남몰래 우는 잔상을 읽은 적이 있다. 평생 눈물을 흘리시는 날이 많을 어머니가 갑자기 생각난 건, 자신이 아팠을 땐 늘 어머니가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강민.”
소파에 앉아 어머니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맞은편에 앉은 윤이 민을 불렀다. 민은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감고 있다 눈을 떴다.
“얘기해.”
민은 젖혔던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윤을 쳐다보았다. 늘 보던 잔상. 윤은 천상 검사다. 윤의 눈에서 검사를 보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너… 뭐야 뭐야. 나 촉 되게 좋아.”
“훗.”
민은 윤의 말에 피식 웃었다. 윤은 민의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어느 정도 읽고 있는 듯싶다. 피만 안 섞였지 윤은 형제였다. 형제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윤은 정말 촉이 되게 좋은 것일까.
“강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그래, 긴장되네. 뭔데?”
윤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민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몸을 가져갔다.
“윤아, 넌 검사랑 회사 중에 꼭 하나만 선택해야 된다고 하면 어떤 걸 선택할래?”
“아이씨, 난 또 무슨 질문이라고. 야, 그 대답은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난 평생 검사하려고 태어난 놈인데 뭘 물어. 검찰총장까지 해야지. 내 목표 몰라?”
민은 윤에게서 저 대답을 듣기가 싫었는지 모른다. 민은 회사 CEO로 살고 싶지 않았다. 윤이 회사를 맡아주면 유능한 안과의사로 평생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매일 사람들의 눈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지라도 충분히 이겨내는 척 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지금 민은 선택해야 했다. 민아를 지키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했다. 안과의사로 민아를 지켜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민은 이제 25년 전 그 날에 대해, 그리고 그 시간동안 민아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알아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님 말씀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