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향이 나는 여자
민은 가만히 민아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자그마한 얼굴에 살며시 손을 올려놓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녀의 코끝에 손등을 올려보았다. 따스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그녀가 가만히 눈을 떴다. 한쪽 눈을 겨우 뜨고 또 다시 한 쪽 눈을 떴다. 두리번거렸다. 눈동자에 민이 비쳤다.
“여기가 어디에요?”
“제 집입니다.”
민아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민은 그런 민아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아직 그렇게 움직이면 안 돼요.”
“제가 왜 이곳에?”
민은 침대에 걸터앉아 민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예쁜 잔상이 보인다. 불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쓰러졌었어요. 병원에서 보호자 찾으려고 최근 통화 목록 눌렀는지 연락 왔더라고요. 그런데 왜 그렇게 몸 관리를 안 해요? 밥 안 먹어요?”
이번에는 민아가 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좋은 향을 가진 사람이다. 이 사람은 언니를 찾고 있다. 언니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뭘까? 언니의 죽음에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무엇이든 알아내야만 한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에요. 죄송해요.”
“밥은 왜 안 먹는 거예요?”
“목에… 자꾸 뭐가 걸리는 것 같아서요.”
“왜요?”
그녀는 또 말을 아낀다. 답답한 여자다. 무슨 이야기든 속 시원히 털어놓으면 좋을 텐데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갑자기 자신을 보는 다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이 보기에 민도 답답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왜냐고 물었어요.”
민은 사연이 많은 여자에게서 무언가든 하나씩 들어야 했다. 미국에서 심리치료를 받을 때 자신도 그랬다. 하기 싫은 이야기든 하고 싶은 이야기든 털어놓아야 했다. 자신 마음에 공존하는 상반된 마음들을 밖으로 표출해 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연이 있다. 분명 이 여자에게는 말 못할 사연이 있다. 민은 고개를 숙인 그 여자의 어깨를 잡았다.
“나 봐요.”
민아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 보라고요.”
그제야 민아는 고개를 들어 민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는 거예요?”
민은 창가 곁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침대 곁에 두고 앉았다. 그 여자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단상 위에서 웃는 모습. 단상에서 내려와 대기실 같은 공간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 민을 바라보는 그녀]
“많이… 아팠어요. 어렸을 때.”
“강릉에 살 때?”
“네, 강릉에 살 때.”
민아는 민을 쳐다본다. 잘 외웠던 대로. 시나리오대로. 그렇게 이 사람한테 말해야 한다.
“PT 때 들었잖아요. 강릉에서 자랐다고.”
민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미국으로 갔어요. 1년간 한국에서 치료를 받았었는데 완치되지 않았어요. 미국에 갔는데…. 저는 그곳에서 제 10살 이전의 기억을 잃었어요.”
“왜?”
“괴로웠어요. 그냥 잊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전혀 기억 못 해요. 아무것도. 10살 이전 기억은.”
민은 짧은 숨을 내쉬었다. 승아는 떠났다. 승아 기일 날 박씨 보살님을 만나고 승아가 이 세상에 없다고 확신했다. 민아 역시 승아가 될 수 없다. 승아라고 착각했을 수는 있다. 그녀의 눈에서 본 승아와 동일한 잔상은 자신이 불러 낸 환상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단 한 번도 환상을 잔상으로 읽은 적은 없다.
“부모님은?”
“미국으로 갔을 때 감사하게도 담당 박사님께서 절 입양하셨어요.”
“한국에 연고는 전혀 없고요?”
“없습니다.”
그녀의 가족 관계에 대해 처음으로 들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나 강릉에서 9살인가 10살인가까지 살았었고, 심한 병을 안고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양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고, 한국에 자신의 연고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었던 것일까?
“10살 이전의 기억을 되돌리고 싶지 않아요?”
“아팠던 기억은 모두 잊고 싶어요. 그치만 한국에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꼭 만나보고 싶어요. 친구들도요. 그때 제 모습을 알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전… 초등학생 기억이 없으니까요.”
민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와 이유는 다르지만 민이 또한 초등학교라는 곳의 기억이 없다. 이 여자의 말을 들을수록 자꾸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진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때 초인종 벨만 울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집에 누가 와 있어?”
“손님”
윤이 본가 갔다가 반찬통을 잔뜩 들고 들어왔다. 거실로 가 냉장고에 이것저것 넣으면서 중얼 거린다.
“손님 누구? 내가 모르는 손님도 있어?”
“응, 넌 처음일건데.”
민아가 힘겹게 방문을 열고 나오자 민이 방문 앞까지 가 부축했다. 윤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민아와는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정민아입니다.”
“네, 네, 뭐 그럴 수 있지요. 저도 인사가 늦었습니다. 강 윤입니다. 윤의 친구이자 형제이자 동거인이자 그렇습니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사이라.”
강 윤. 언니와 같은 반 친구였다고 들었다. 강 윤과 강 민. 두 사람은 언니의 죽음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민아는 윤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윤은 갑자기 미간을 좁혔다. 정민아라는 여자의 미소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뭐지? 자꾸 마음에 남았다.
“윤아, 잠깐 여기 있을래?”
“그래, 음식 정리하고 있을게.”
민과 민아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민이 민아 씨라는 분을 손님방에 둔 걸로 봐서는 깊은 사이는 아닌 듯하다. 마음이 자꾸 꺼림칙하다. 그게 뭔지 모르겠다. 윤은 냉장고에 음식을 넣고 어머니가 싸주신 재료로 제육볶음을 만들고 있었다. 방문이 열리더니 민이 손님방에서 나왔다.
“같이 식사 해야지?”
“잠들었네.”
민은 냉장고에서 물 한 잔을 꺼내 식탁에 앉았다. 윤은 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왜?”
“나… 저 민아 씨라는 분…. 좀 그래.”
“뭐가 좀 그래? 한 번 봐놓고. 딱 5분 봐놓고.”
윤은 민을 보던 고개를 돌려 다시 제육볶음을 만들었다. 민은 계속 윤의 뒷모습만 봐야했다. 그러다 탁자 위에 놓인 책을 뒤적거렸다. 책을 서너 줄 읽고 다음 줄을 읽으려 하는데,
“아까 방에서 나오는데.”
“응?”
“아까 민아 씨라는 분이 방에서 나오는데.”
“응, 왜?”
“승아 같았어. 승아 향이 났어. 네가 말한 경력사원, 그래서 서둘렀던 거지?”
민은 책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자신이 간과 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윤은 부모님보다 자신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윤의 눈과 입을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둔 자신의 잘못이다.
“무슨 시덥지도 않는 소리야?”
“넌 몰랐겠지.”
윤은 요리를 하다 민 쪽으로 돌아섰다.
“넌 몰랐겠지만 승아한테는 승아한테만 나는 향이 있었어. 너하고 나한테 났던 향냄새. 나는 절에 산다는 이유로 이해받았지. 근데 승아는 아니었어. 승아 엄마가 무당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너 사람 잘 보는 거 알지만 나도 사람 막 보지 않아.”
“그래서. 너 말의 결론이 뭐야?”
윤은 깊은 한숨을 쉬며 민을 바라보았다. 민은 윤의 답을 알고 있다. 민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말의 결론은… 네가 더 잘 알잖아. 네가 저 여자 분의 어떤 부분을 보고 승아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사람을 볼 때 꼭 보는 부분이 있어. 내가 볼 땐 그래. 분명 승아와 연관 있는 사람이거나….”
윤은 틀리지 않았다. 윤의 말대로 ‘이승아’와 어떤 연관이 있는 사람일 수 있다. 윤과 같은 마음으로 저 여자를 곁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으니. 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지금은 직감이 뛰어난 두 남자가 그녀를 승아와 연관시켜 생각하고 있다는 것 외에 어떠한 사실적 근거가 없었다. 윤은 하던 요리를 마저 끝냈다. 식탁에 제육볶음을 올려놓았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민 앞에 놓고,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미역국도 정갈하게 놓았다. 맞은편에도 똑같이 밥과 미역국을 놓았다.
“생일 축하한다. 강민.”
4월 24일. 민이 태어난 날. 매년 민의 생일상은 윤이 손수 차려주었다. 그건 윤의 생일에도 마찬 가지였다. 절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윤과 박씨 아주머니, 주지스님뿐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생일을 챙기지 않으면 살아있다는 것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34년을 살면서 참 많은 일을 겪지 않았나 싶다.
“윤아.”
밥을 먹고 있던 민이 윤이 쪽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고맙다. 생일상.”
“그게 다야?”
윤이 피식 웃으며 민을 바라본다. 윤은 더 이상 민아에 대해 묻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만다. 민이 식탁 중앙에 놓인 케이크 촛불을 껐다. 윤이 요란스럽게 박수를 쳤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의 손이 두 개인 이유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친구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고, 누군가와 공손히 악수하기 위해서라고. 만약 손의 역할이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이것을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윤아, 저 사람은 승아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 아직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다.”
“알아, 지금 네가 한 말은 분명 진실이야. 유능한 검사 앞에서 거짓말은 안 할게. 그럼 너하고 나하고 동시에 느낀 거 뭐지? 뭐… 그건 천천히 생각해 보자. 당장은 답이 없으니.”
윤은 거실에 걸린 시계를 얼핏 본다.
“헉!!! 나 완전 지각!!!”
윤은 허겁지겁 넥타이를 챙기며 바람처럼 민의 집을 나갔다.
* * *
그녀는 민의 집에 이틀을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그녀는 약속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자신을 돌봐주셨던 양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에게서 받은 유산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혹시 살아계실지 모를 부모님을 찾았다.
“허망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다는 게 너무… 허망했어요. 미국에서 20년 세월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마음이… 참 무거웠어요.”
그녀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소파에 다리를 움츠리고 앉아 말을 이었다. 그녀는 가녀린 새 한 마리 같았다. 민은 그녀의 무릎에 담요 하나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고마워요.”
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무릎에 얹힌 무릎담요를 바로 잡아 주었다. 그녀의 가녀린 손이 무릎담요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민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민의 볼에 닿았다. 그녀는 민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민은 그녀의 목에 반짝이는 절 표식 목걸이에 손을 올려 쓸어내렸다. 그녀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었다. 그녀의 목에 흐르는 따스한 기운이 민의 손에 닿았다. 민은 자신의 입술을 그녀 곁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녀에게도 키스를 받아들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그녀의 입술이 서서히 민의 입술 가까이로 다가왔다. 두 사람의 입술이 천천히 포개졌다. 그녀의 촉촉한 입술이 민의 입술 사이로 스며들었다. 따뜻했다. 민아는 이상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니의 죽음을 알아내기 위해 접근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 승아라는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그 아픔이 가슴이 저미도록 시렸다. 목걸이를 돌려주던 날도 분명 술 취해 쓰러진 자신의 모습에 대해 궁금했을 텐데 묻지 않았다. 그때도 눈빛이 따뜻했다. 이 감정은 단지 많은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라 이름 붙였다. 그의 입술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민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민이 민아의 입술을 살포시 쓸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