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 여자
초등학교에서 화재사고가 있던 날, 민은 사고현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절대 상대의 눈을 보지 말라는 스님의 말을 듣지 않아 한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굴레에서 25년간이나 벗어나지 못한 민이었다. 어린 나이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버거웠고, 그것이 때론 트라우마로, 때론 콤플렉스로 남았다. 사람을 만나도 깊게 만날 수 없었고, 여자를 사귀어도 짊어져야 할 책임감이 커지면 지체 없이 헤어졌다. 불이 타오르는 교실에서 얼마나 큰 소리로 승아를 찾았는지 모른다.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살아 온 25년이다. 자신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들키지 않기 위해 단단한 막으로 감싸온 자신이었다.
“또 25년 전 일 때문이니?”
“죄송합니다.”
부모님은 모든 면에서 민을 자유롭게 해주었지만 25년 전 사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냉정했다.
“왜 아직 인거니? 그건 네 탓이 아니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잖니!”
“죄송합니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민은 자리에서 나왔다.
* * *
민은 늘 가던 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바는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곳이기도 하고, 윤과 늘 이곳에 들러 진토닉 한 잔을 하고 들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민은 오늘 면접 자리에서 본 승아를 떠올렸다. 연달아 진토닉 두 잔을 들이킨 후 얼굴을 깊게 쓸어내렸다.
“한 잔 더”
“뭘 또 한 잔 더 야!”
막 바 안으로 들어서던 윤이 민이 옆으로 앉았다.
“뭐야, 한 잔이면 족하던 술이 왜 오늘은 석 잔이나 스트레이트야.”
“훗, 그러게 말이다.”
민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윤의 눈을 바라보았다.
[강 윤, 위 사람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임명합니다. 법원 안. 사건일지를 보며 피고인을 심문하는 모습. 승소 했는지 밝게 웃는 모습.]
한 사람에게도 이렇게 다른 잔상이 보인다. 같은 사람이라도 같은 잔상을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오늘 면접장에서 승아가 아니라고 말하던 그 여자의 잔상은 25년 전 승아의 잔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넌 왜 검사가 됐냐.”
“뭐야. 갑자기.”
“갑자기 궁금해서.”
“정의의 이름으로 사회악을 처단하기 위해서! 라고 말하면 너무 거짓말 같지?”
민은 피식 웃었다. 진토닉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너 오늘 진짜 무리하는 거 아니냐?”
“거짓말 같은 거 말고 진짜를 얘기해봐.”
“나 같은 고아가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실력으로 승부하는 거. 법으로 세상과 싸우는 거.”
“그건 진짜 같네. 근데 니가 왜 고아야? 엄연히 부모님 계시는구만.”
“그렇긴 하지~ 네 부모님이 내 부모님이고! 내 부모님이 너 부모님이고!”
민은 피식 웃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진선미다. 선미는 들어오자마자 윤과 민의 어깨를 와락 끌어안았다.
“끝나고 오는 거야?”
“그럼~ 끝나고 오는 거지! 안 끝나고 왔을까봐?”
선미는 민이 곁으로 앉았다.
“자! 이제 모두 모였으니까 한 잔 더 해볼까?”
“민이 말려. 저 자식 스트레이트 넉 잔 째야.”
“진짜? 민이가?”
선미가 민을 쳐다보자 민은 고개를 끄덕인다.
“웬일이야?”
“가끔 술 땡기는 날, 오늘이 그 날인가 보다.”
“아서라, 너 술 땡긴 다음 날 너 환자까지 내가 다 봐야 하니까. 적당히 해둬~!”
민은 잔을 내려다보았다. 진토닉 안에 비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
매번 자책하지만 바뀌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민은 피식 웃었다. 민은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술을 마시면 그 날의 모든 기억이 악몽으로 되돌아 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두려워 술을 피했다.
“민이 술 땡기는 날 얘기하니까 4년 전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셋이 만난 것도 여기였잖아. 비에 젖어 들어와서는 저기 문 앞에서 쓰러지던 민을 내가 치료했지. 왜 내가 했을까? 민이 되게 멋있었거든. 같은 병원에 있으면서도 몰랐다는 게 신기해. 그때 민이를 데리러 온 게 윤이 너였고.”
“그랬나?”
민은 그날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4년 전 봄이었다. 강릉에 있는 대학병원에 세미나가 있어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날 비가 내렸다. 강릉 톨게이트를 지나 서울로 오다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그 길로 ‘안인 바다’에 갔다.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밟았다. 바닷소리가 귓전에 울려 차를 세워놓고 우두커니 바다만 바라보았다. 사찰 위로는 올라갈 수 없어 바다만 바라보며 소리쳤다. 승아의 기일. 늘 4월 5일 무렵이 되면 우연이라는 핑계를 대며 그곳을 찾았다. 그곳에 서서 짐승같이 울부짖으며 승아를 찾았다. 승아를 부르며 자신의 운명을 탓했다.
“먼저 일어날게”
민은 차에 오르자마자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했다.
“김 비서님, 인사팀 좀 연결해주세요.”
“급한 일인가요? 지금 퇴근 시간이라.”
“급합니다. 빨리 연결 바랍니다.”
잠시 연결음이 들렸다.
“인사팀 이상기입니다.”
“이 부장님, 강민입니다.”
“네, 강박사님.”
“오늘 낮 경력사원 면접 보러 온 사람 중에 이승아라는 사람 있었나요?”
“잠시만요.”
종이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길다. 그 시간이 너무 길다.
“지원자 중에 이승아라는 분은 없습니다.”
“면접 마지막 그룹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남자 둘과 여자 둘 들어왔던 그룹이지요?”
“그렇습니다.”
“거기 들어왔던 여자 지원자는 장미희 씨, 또 한 사람은 정민아 씨입니다.”
“정민아 씨 주소 좀 알려주시죠.”
“무슨 일이십니까?”
“놓치고 싶지 않은 지원자라 그렇습니다. 만나야겠습니다.”
민은 회사가 아닌, 면접장이 아닌, 그 여자의 공간, 그 여자가 다니는 길, 그 여자가 익숙한 공간에서 그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어딘가 잘못 되었다. 그 여자는 분명 이승아다.
* * *
그녀의 집은 골목길 후미진 곳에 있었다. 차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언덕 위에 있어 한참을 걸었다. 걷는 동안 ‘그녀를 다시 한 번 만나야겠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서울의 달동네. 달동네라는 이름이 새삼 묘하게 느껴진다. 달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어 달동네라고 부르는 것이라면 참 정감 가는 단어다. 정과 정, 사람과 사람이 맞닿은 달동네. 강릉 사찰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다가 없다는 것과 옆집 사람과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적막함이었다. 사찰에서야 사람이 없어 그랬다고 하지만 이곳은 작은 사찰이 모여 만든 적막함의 도시였다.
인사부장이 알려준 ‘정민아’라는 그녀의 집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밤 10시. 이미 잠이 든 것인지. 아무도 없어 꺼진 것인지 알 수 없다. 확신도 확인도 어렵다. 녹이 많이 슨 초록색 대문 앞에서 천천히 걸어보기도 하고, 가로등 밑에 서서 담배도 한 대 피웠다. 인기척이 없는 대문 앞에서 몇 시간을 서성이다 차가 있는 곳으로 다시 내려왔다. 차 보닛에 기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반짝이는 서울.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 한강 곁을 지나는 자동차. 자동차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 저 수많은 사람 속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겠다고 25년간을 헤맸다.
“어떻게 할까요?”
운전석에 있는 김비서가 물었다. 민은 얼굴을 깊게 쓸어내렸다.
“그냥 돌아가시죠.”
진토닉 4잔을 마신 이유가 있었다. 미친 척이라도 해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술김에 만나 그녀에게 다짜고짜 이승아 아니냐고. 왜 아닌 척 하느냐고. 도대체 너 정체가 뭐냐고. 그렇게 소리쳐 묻고 싶었다. 대답은 안 들어도 좋다. 악몽을 꾸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잠에 파묻혀 현실과 멀어지고 싶었다. 김비서가 헤드라잇을 켜고 골목길을 꺾는데 자신을 당황하게 했던 그 여자가 비틀거리며 언덕길을 올라왔다.
“잠깐만요.”
김비서는 속도를 늦췄다. 앞좌석 백미러에 비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리도 힘들까. 축 처진 어깨며, 가녀린 몸이며, 길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여자가 또 쓰러지려 하자, 민은 차 문을 열고 나가 그녀를 받쳤다. 술 냄새가 났다. 꽃내음이 났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이봐요!”
김비서가 차에서 내려 그녀를 부축했다.
“어떻게 할까요?”
자신에게 안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맑은 얼굴. 쌍꺼풀 없는 눈, 긴 속눈썹, 오똑한 코. 그 어디에도 화상 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가녀린 목선. 그리고 얇은 줄로 엮인 절 표식의 목걸이. 팔을 보았다. 그 정도의 불길이었다면 분명 어딘가에 화상 자국이 있어야 한다. 없다. 어디에도 화상 자국은 없었다. 정말 사람을 잘못 본 것인지도 모른다. 잘못된 잔상을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경찰에 연락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김비서는 경찰서에 전화하고 여자를 뒷좌석에 눕혔다. 잠깐 동안 김기사와 민은 나무 아래서 담배를 피웠다.
“저분은 누구십니까.”
김비서가 민에게 물었다.
“오늘 회사에 면접 보러 온 경력사원입니다.”
“경력사원 집에는 왜…?”
“그냥… 와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뭔가 착각하고 있던 부분이 있었나 봅니다.”
김비서는 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김비서는 아버지께 갓 태어났을 때의 민이 이야기를 들었다. 민은 다른 아이들처럼 울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사람들 눈만 쳐다보다가 미소 짓다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강민석 회장은 전국 각지 용하다는 의사란 의사는 다 찾아다녔다고. 하지만 건강에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고 했다. 결국, 강원도 강릉에 있는 ‘등명락가사’라는 사찰을 찾았다. 강민석 회장은 그곳에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민을 맡겼다. 9년이 지나고 민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사찰에 있던 9년간의 민의 이야기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신고하신 분들이십니까?”
“아! 네!”
김비서가 담뱃불을 끄고 경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서울 시내 빛의 향연을 감상했다. 하루의 해프닝이었다. 스치는 듯했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했고, 바람 같았지만, 폭풍이 일었던 악몽 같은 하루였다.
* * *
토요일 아침, 민의 침실로 햇살이 쏟아졌다. 햇살을 가리려 침대 협탁에 손을 뻗어 더듬거렸다. 버티컬 리모컨이 잡히지 않았다.
“일어나! 일어나 인마!! 해가 중천에 떴는데!! 어여 일어나!”
윤이 녀석이다. 민의 집에 이렇게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윤이 뿐이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잠이 덜 깬 민이 물었다.
“일어나! 영화 예매해 놨다고! 매주 하는 일인데 또 투정이야? 이러기야?”
윤이 말에 민은 피식 웃고 만다. 윤은 흥이 있는 사람이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자존감도 높았다.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늘 유한 편이다.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하는 기술이 있다.
“간다, 가! 오늘은 무슨 영환데?”
“1,000만 돌파가 눈앞인 영화라고! 아버지께서 관 만들어 주신다고 아침 시간에 보라셨어.”
“알았다, 알았어!”
“얼른 씻고 나와.”
민은 윤에게 떠밀리듯 샤워실로 들어가 음악을 틀어놓으려고 하는데 모르는 전화번호로 계속 진동이 울렸다. 평소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았다. 핸드폰을 세면대 위에 놓아두고 면도를 했다. 진동소리가 잦아들만하면 다시 진동이 울렸다. 받아야 하는 걸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세요.”
두 번이나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는데도 대답이 없다.
“전… 정민아라고 합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 드렸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어제 제가 술에 취해서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친 것 같습니다. 어제 집 앞에 쓰러진 절 경찰에 신고해 주셨다고 해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제가… 여보세요.”
“듣고 있습니다. 뭘 염려하고 전화하신지 알겠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피해를 준 것도 받은 것도 없습니다. 걱정 마시고.”
“그게 아니라… 사실은 그게 아니라 제 목걸이가 없어져서요. 혹시 어젯밤에 제 목걸이를 보셨는가 싶어서…”
“목걸이요?”
민은 샤워실 문을 열고 나가는데 김비서가 목걸이 하나를 펼쳤다. 절 표식을 나타내는 문양이 흔들거렸다. 금색의 절 표식 문양의 목걸이.
“혹시 절 표식으로 된 목걸이를 찾고 계신 거라면 제가 갖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절 표식 목걸이. 어디 계신지 알려주시면 제가 지금 바로 찾으러 가겠습니다.”
민은 그걸 핑계로라도 그녀를 다시 한 번 만나야 했다. 그리고 결정해야 했다.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둘 것인지 말 것인지. 둔다면 그녀에게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곁에 두지 않는다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그녀에 대한 생각도, 고민도, 오해도, 궁금증도 말끔히 씻어 내고 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