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홍꽃 신발
조용한 나날이다. 법당 촛불을 마구잡이로 끄던 여자는 소동 이후 묵언 수행에 들어갔다. 사찰은 여자가 오기 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코끝에 닿는 따뜻한 봄바람이 참 좋았다. 민은 돌담에 앉아 아래로 펼쳐진 ‘안인 바다’를 굽어보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것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학교에 가고 싶습니다.”
8살 된 민이 명철스님께 여러 번 말씀 드렸지만 스님은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주지스님은 그런 민이 곁에 윤을 두었다.
“민이는 윤이를 지켜라. 윤은 민이의 공부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라.”
그때부터 윤은 학교 수업이 끝나는 대로 사찰로 돌아왔다. 그 날 배운 내용을 민에게 바로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민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여느 초등학교 1학년과 다름없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허나 공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민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공부만 배우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간혹 윤이 책에 적힌 ‘오늘 끝나고 떡볶이 먹을래?’ ‘오늘 끝나고 같이 놀러 갈래?’라는 문구가 눈에 밟혔다. 윤은 지우개로 지운다고 지웠지만 책에 남은 연필 자국이 민의 마음에도 남았다. 윤의 학교생활이 점점 궁금해졌다.
“넌 항상 빨리 끝나?”
“그럴 때가 더 많아.”
“친구들이랑 떡볶이 먹으러 안 가?”
“매번 안 가는 건 아니고.”
“나 때문이야?”
“아니, 그냥 시시한 거야. 너 때문 아니고.”
라고 말했지만, 윤이 마음은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민은 더 잘 알고 있었다.
「깜깜한 밤. 고민하는 윤의 모습. 윤이 보고 있는 것은 ‘사건번호 325호, 살인’ 사건일지. 윤은 블루 넥타이를 풀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머리를 깊게 쓸어내린다. 베란다로 나가 멀리 한강을 보며 담배를 피우고….」
윤이 눈에 잔상이 보였다. 윤의 눈은 항상 빛이 난다. 그는 법을 공부할 것이고 악한 무리에게 벌을 주는 검사가 될 것이다. 민은 다른 날과 다름없이 돌담에 앉아 어젯밤 윤의 눈에서 본 것을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윤이 눈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스님은 민이 곁에 서서 민이 보고 있던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나쁜 사람을 법으로 다스리는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민은 윤에게서 본 잔상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스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에게 말했느냐”
“말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거라.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 알아도 모르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리 살아야 한다.”
민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 *
4월 5일 식목일, 나무 심으러 갔다 일찍 온다던 윤이 돌아오지 않았다. 민은 돌담에 앉아 노을이 지는 것을 보고서야 사찰로 갔다. 사찰 문은 언제나 민이 마음의 경계였다. 민의 세상에는 딱 두 가지만 있었다. 사찰 안의 세상과 사찰 밖 돌담에서 보는 바다. 민에게는 이 두 세계만 존재했다. 민은 사찰로 들어가려다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기.다.리.다’라고 바닥에 써보았다. 그러다 이내 발로 쓱쓱 문지르고 만다. 다시 ‘기다리다’를 쓰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다.리.다?”
누군가 자신이 쓴 글자를 따라 읽었다. 민은 고개를 들었다가 바닥으로 얼른 시선을 떨궜다. 그제서야 향긋한 꽃내음과 함께 분홍색 꽃이 달린 신발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보는 신발, 처음 맡는 향, 처음 듣는 목소리.
“윤이 없니?”
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윤이 기다리는가보구나~ 네가 민이야?”
또랑또랑한 여자아이 목소리. ‘낮에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된다. 만난다 해도 절대 얼굴을 마주해서는 안 된다.’ 스님의 말이 반복해서 귓전에 울렸다. 민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고개는 들 수 없었지만 눈에 밟히는 분홍색 꽃신이 자꾸 말을 걸어보고 싶게 한다. 눈을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게 한다. ‘네가 누군가의 눈을 보는 순간, 상대는 불행해진다.’ 스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자신이 상대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은 불행해진다고. 민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얘! 뭐하니?”
발로 바닥만 문지르는 민이를 보고 여자아이가 계속 말을 건넨다.
“그냥 뭐…”
“윤은 언제 와?”
“곧 오겠지.”
민은 아이를 등지고 섰다. 그리고 사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참을 뛰다 숨을 고르게 쉬고 있는데 자신의 시야에 자신과 똑같은 포즈로 허리를 숙이고 헥헥 거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야! 너 왜 도망가니?”
민은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단발머리에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 치마 밑단엔 주름이 져 있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자꾸 가슴이 콩닥거린다.
“이거 윤이 오면 전해줘”
여자아이는 민이 주머니에 무언가를 쏙 집어넣고 저만치 뛰어갔다. 여자아이가 뛰어가는 모습을 민은 멀뚱히 바라만 보았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단발머리 아이.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아 보이는 아이. 민은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멀리서 그 아이는 맑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봄을 타고 온 그 아이의 향이 민이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 * *
윤은 저녁 먹을 때가 다 되어서야 들어왔다. 나무가 많이 남아 옆 동네 뒷산까지 가서 심느라 늦은 것이다. 민은 윤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야 할 쪽지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윤에게 전할 타이밍을 계속 놓쳤다. 식목일 행사 얘기를 들으면서 줄 수 있었는데 차마 꺼내지 못했다. 저녁 식사 후, 스님이 주신 따뜻한 국화차와 다과를 먹으며 얘기할 수 있었는데 또 차마 꺼내지를 못했다. 잠자리에 나란히 누워 침묵을 지키는 순간에도 얘기할 수 있었는데 또 또 꺼내지를 못했다. 윤이 잠자는 소리가 들리자 민은 불빛이 있는 대웅전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제 서야 줄곧 꺼내지 못한 쪽지를 꺼냈다.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접힌 쪽지.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몇 자가 보이는 쪽지. ‘펼쳐볼까. 아니야, 이 쪽지는 윤이한테 줘야 하는데…’ 그 짧은 순간에 참 많은 고민이 오갔다. [ 왓다 간다. 내일 보자. 민이한태 주고간다. -이승아- ] 쪽지를 편 민은 피식 웃었다.
“이거이거 맞춤법이 영 엉망진창이네.”
삐뚤빼뚤 쓴 글씨 맞춤법이 훌륭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은 ‘민이한태’와 ‘이승아’에 자꾸 시선이 갔다. 분홍색 꽃신이 자신의 이름을 안다는 게 신기했고,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 생겼다는 것이 새삼 기뻤다. ‘이승아’라는 이름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이나 자신의 이름과 ‘이승아’라는 이름을 번갈아 보았다.
그 시간 사찰 마당에 고급 승용차만 들어오지 않았다면 민은 그대로 밤을 샜을 지도 모른다. 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민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밤이었다. 민은 고급 승용차의 헤드라이트를 피하기 위해 대웅전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승용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마치 사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큰 스님 방으로 다가갔고, 큰 스님은 마치 그들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마중 나와 계셨다. 부처님 오신 날이나 음력 초나 보름이 아니고서야 사찰에 손님이 오는 일은 드물었다. 특히 밤중에 오는 일은 더 드물었다. 민은 무슨 일인가 싶어 큰 스님 방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창문을 통해 목소리가 들렸다.
“스님… 부탁드립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못 견디겠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말이 오갔다. 창문 너머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저 두 분이 윤의 부모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막연하게나마 들었다. 민은 큰 스님 방 근처에 더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빛이 새어나오는 대웅전으로 갔다. 방석을 끌어다 가부좌를 틀고 부처님 불상 앞에 앉았다. 부모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처음부터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런 것이 스님은 단 한 번도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려 하면 ‘알려고 하지 마라.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하셨다. 그 후로 부모님에 대한 생각은 접었다. 그저 바람이 가는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지나갈 것이라 믿었다.
한 번도 사찰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서인지 세상 밖은 없는 곳이니 굳이 희망을 가지지 않아도 되어 궁금하지도 않았었다. 윤을 통해 듣는 세상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듯 했지만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편했다. 국어책에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말한다.’는 구절에서 민은 자신이 세상과 단절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를 깨달아 갔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승아’라는 이름을 가진 분홍색 꽃신은 그 후로도 사찰을 여러 번 찾았다. 그때마다 민은 먼발치에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윤에게 숙제를 물어보기도 했고, 공부하다 모르는 것을 물으러 오기도 했다.
민은 늘 그랬던 것처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돌담에 앉았다. 돌멩이 하나를 집어 돌 위에 ‘기다리다…’ 라는 글씨를 썼다. 민은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익숙했다. 학교에 간 윤을 기다리는데 익숙했고, 공부시간을 기다리는 게 익숙했고, 노을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했다.
“넌 매번 누굴 그렇게 기다리니?”
불쑥 나타난 분홍색 꽃신이었다. 이렇게 불쑥 불쑥 나타났다. 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아이가 코앞에 있는데도 그 아이를 보지 못한 채, 그저 눈을 감았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그 아이 앞에서 이렇게 늘 눈을 감아야 했다.
“너 바보야?”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민은 반발할 수 없었다.
“윤이 만나러 왔을 때도 말 한 마디 없이 멀찌감치 서있기나 하고. 사람이 얘기하는데 눈이나 감고 있고. 말은 할 줄 알아?”
민은 피식 웃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너… 설마… 앞이 안 보이는 건 아니지?”
1년이나 봐왔지만 늘 아이가 가까이 오면 이렇게 눈을 감았으니 당연히 궁금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래, 난… 앞을 볼 수 없어.”
승아는 앞을 볼 수 없다는 민의 말에 뒷걸음질 쳤다. 민은 사람들의 이런 반응이 오히려 나았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멀어져 갔고, 1년 전 대웅전 촛불을 꺼버리던 아줌마도 결국 멀쩡히 사찰을 나가면서 ‘네가 제일 무서웠다’고 했다. 그게 숨길 수 없는 자신이었다. 누군가와 가까이 있어도 안 되고, 누군가와 눈을 맞춰서도 안 되고,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서도 안 되는 위험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자신이었다.
“윤이 오면 나 왔다갔다고 전해줘.”
승아는 급하게 사찰을 빠져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며 ‘난… 앞을 볼 수 없어’ 라고 하던 그 아이를 곱씹어 보았다. 1년 전 사찰 마당에서 처음 만났던 그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민은 사찰 마당으로 뛰어갔고, 승아는 그런 민을 쫓았다. 그 아이 주머니에 쪽지를 넣고 돌아서서 본 그 아이는 멀리서 손을 흔드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윤에게 숙제를 물으러 갔을 때도 그 아인 먼발치에 있었지만 분명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만 가면 두 눈을 감았다. 단언컨대 그 아이는 눈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럼 왜?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러는 걸까? 그 아이가 점점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