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내 눈은 말을 한다.
어두운 밤이다. 별이 참 밝다. 귓전에 파도소리가 들린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야 마음이 평온해진다. 밤이 되어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아야 그 아이 눈은 편해졌다. 혼자다. 늘 혼자여야만 했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밤, 별, 바람, 어둠, 그리고 이곳에 있는 3명과 자정을 알리는 목탁소리다. 평소 자정이라면 목탁소리면 충분하다. 며칠 전부터 찢어질 듯한 여자 목소리가 목탁소리를 집어삼켰다. 새로 온 여자다. ‘그러다 말겠지.’ 참아온 게 벌써 사흘째다. 매일 밤 저러는 통에 사찰 내 어느 누구도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모두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 그 아이가 겁 없이 법당 가까이 다가갔다. 소음의 주범인 그녀는 머리를 미친년처럼 산발하고 법당 안에 물을 들이부었다. 덕분에 불자들의 염원을 담은 촛불이란 촛불은 죄다 꺼졌다.
“다 필요 없어! 이까짓 촛불 켜놓고 공들여 봤자야! 니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니가 나한테 해준 게 뭐냐고! 이 거지 같은 세상…”
평소라면 사람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그 아이였지만 오늘은 성큼성큼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그 여자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아이는 물벼락을 맞았다. 아인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린아이 눈빛이 여자의 눈동자를 흔들리게 했다. 법당 안, 몇 개 안 남은 촛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이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 냅다 소리친다.
“미친년 같이 뭐하는 짓이야!”
그 아이 호통에 그녀 흠칫한다. 그제야 주지 스님이 아이에게 달려왔다.
“그만!”
하지만 아이에게 주지 스님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미친년같이 뭐하냐고 물었다.”
어린아이 말치고 제법 무게가 있다. 눈썹을 치켜뜨며 부릅뜬 아이 표정이 그녀의 말문을 막았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나 보군. 아들과 남편을 잃었고.”
“아아아아아악!!!!”
여자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남편 잃고 아들 잃고 평온할 사람은 있겠는가! 가슴에 찬 응어리 마음껏 풀어내시게! 대신 남한테 불편을 끼치지는 말고! 몇 년 지나면 다시 강단에 서게 될 것이니 마음을 비우고. 당신은 강단에 서야 살아!”
“그만 못 할까!!!”
법당에 들어선 주지 스님의 벼락같은 말에 정신이 든 아이는 눈을 꼭 감았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누가 보이는 대로 말하라 일렀느냐!”
주지 스님의 호통에 정신 나갔던 여자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보살 박 씨가 그 여자를 데리고 법당 밖으로 나갔다. 법당 안에는 주지 스님과 아이만 남았다. 얼마 남지 않은 촛불이 힘없이 흔들렸다. 눈을 꼭 감고 서 있는 아이의 눈에서 반짝이는 것이 흘러내렸다. 적막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이의 눈에선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지스님은 아이를 바라보다 이내 꼭 끌어안았다. 품에 안긴 아이의 몸이 떨렸다.
“잘못했습니다.”
“안 된다. 민아, 절대 안 된다. 보이는 것을 전부 말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니가 산다.”
“힘이 듭니다. 너무… 괴롭습니다.”
주지스님 명철은 다시 한 번 민을 꼭 안았다.
‘눈에 타인의 인생이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울꼬. 얼마나 괴로울꼬. 가여운 운명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