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뭐지..
난 붐비는 건널목에서 두리번거리다가 행여나 객사라도 당할 듯하여,
냉큼 뛰어 건널목을 건넜다.
혼자다.
전화를 걸었다.
그가 받지 않는다.
그가 서 있다고 했던 그 건널목 앞이다.
며칠 전부터 식당을 예약하고, 나와 깨톡을 몇 번 주고받고, 조금 전 첫 통화까지 마친 황동철,
그 시키는 대체 어디 있는거지.
다시 걸었다.
전화가 꺼져있다.
나는 사진 속에서 본 그의 얼굴을 마구 찾았다. 둘러봤다.
가서 “저 황동철 씨?!” 이러면서 잘생긴 남자한테 다 물어본다면
도를 지나쳐,
‘도를 아십니까?’ 로 오해받을지 모른다.
왜 나는 이런 생각마저 해야 할까.
그래, 사실 내가 그렇게 생겼다.
오해를 부르는 얼굴.
건널목에서 사람들이 한 판 갈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두 판, 두 번째 신호등이 바뀌었다.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깨톡,
“만났냐? 면상 어때??”
수지의 말에 난 머릿속이 번뜩였다.
맞어! 그는 내 얼굴을 본 것이다.
볼때기에 스마트폰을 대고 길을 건너는 여자는 나 하나였어.
그는 내 얼굴을 보고 튄 거야.
눈물이 나지 않았다.
참았던 오줌이 마려웠다.
생각해보니 한 시간이 넘도록 지하철을 탔고,
별 필요도 없는 화장이나 고치느라 변소를 가지 못했다.
갑자기 ‘훅’ 떨어진 포도당과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카페로 향했다.
내가 아줌마 같았나, 진짜 내 동생 말처럼 촌 돼지 같아서 남자 시키가 튄 것인가.
화장실 거울에서 다시 비춰본 내 얼굴.
남자를 쫒을 관상 정도는 아닌데, 이게 웬 비극이란 말인가.
하염없는 자책감은 넣어두기로 하고,
프라프치노를 쪽쪽 빨면서 카페를 나왔다.
두 번 빨았는데, 반도 남지 않았다.
망할, 일리터씩 판매하지. 이게 뭔 감질 일으키는 짓인지.
지하철 개찰을 했는데, 기억이 났다.
화장품을 샀던 사실을. 망할, 찾아와야지.
점원은 소개팅을 간다던 내가 바닥까지 마신 음료수를 들고,
자신의 앞에 30분 만에 선 것을 보고 직감한 듯했다.
점원의 표정.
‘너 까였구나...’
그녀가 내가 맡긴 물건을 계산대 밑에서 주섬주섬 일으켰다.
난 그녀에게 눈빛으로 말한다.
‘그런가 봐... 나도 이유를 모르겠어’
점원이 슬픈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얼굴 봐봐. 답 나오잖아’
그녀는 갑자기 뒤 서랍에서 뭔가를 찾아댄다.
빨간 3ml짜리 비매품 ‘립글로스’.
조심스러운 그녀의 말투.
“고객님, 아까 많이 사셨는데, 이거 하나 드릴게요!”
“어머! 감사해요. 서초역 저 쪽으로 가면 되죠? 제가 식당 지점을 착각해서, 약속 장소를 잘못 왔네요”
“네, 저 쪽 방면입니다”
“감사해요.”
그의 심성에 나는 감동했다.
눈치와 인격을 동시에 갖춘 것 같으니라고.
게다가 남을 배려할 줄 저런 사원이 강남역에 숨 쉬고 있었다니. 내 너를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수지의 다시 깨톡,
“이년아, 재미 좋나보다. 답도 없고, 잘해봐ㅎㅎ”
난 더 이상의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지하철에서 전화를 걸었다.
내 말을 듣던 수지는 말했다.
“그 시키 여자 얼굴 엄청 따지나 보네.”
“맞..겠지? 나 보고 간 거”
“응! 거울 봐봐 당장 답 안 나오냐?”
“(거울로 눈가에 낀 기미를 보며) 기미 때문인가? 망할”
“그냥 전체적인 거지! 그러니깐 내가 같이 갈아엎자고 했자나!”
“난 그래도 지금 내 얼굴이 너보다는 난 것 같애!”
프사로 그의 얼굴 사진을 확인했다.
망할 시키, 더럽게 잘생겼네.
아직도 반밖에 못 왔다.
길고 긴 지하철. 아직도 여전히 먼 마이 홈.
집으로 가는 길이 참으로 더럽게 멀다!!
뭐라 해야 할지.
집에 가서 벽에 붙은 이 망할 자식의 사진을 떼야겠다.
갑자기 몸에 전율이 온다.
이런 스트레스가 심했나봐. 오한인가.
진동이었다.
역시나,
모르는 번호다.
김미영 팀장은 일요일에도 일을 하나 보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불쌍한 운명.
하지만 당신의 전화를 받아주지 못하겠어!
오늘 나도 운명의 수레바퀴에 낀 가여운 여인이거든.
다시,
문자가 울린다.
작은 미동만으로도 짜증 폭발이다.
육중한 몸을 앞뒤로 흔드니
지하철 안의 청년들이 웃지는 않고,
그냥 쳐다봤다.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어때? 괜찮지?"
주선자 경철 오빠의 문자다. 이가 부득부득 갈린다.
난 온 힘을 다해,
스마트폰의 액정이 닳아 없어질 것처럼 족손가락으로 통화버튼을 꾹 눌렀다.
“오빠!”
“어, 천지. 잘 만나고 있어? 그냥 문자로 해도 되는데…”
“문자? 장난해?”
"어..?!”
“그 남자 사이코야?”
“무슨 소리야?”
“나랑 전화하다가 사라졌다고!”
“엥? 동철이가?”
“갑자기 그 시키가 나랑 건널목 반대쪽에 있다면서, ‘오분 후에 보겠네요’ 이러더니 없어졌다구요!”
온 몸이 부서질 것처럼 난 소리치듯 얘기했다.
헐, 여기 지하철인 것을.
유일하게 엄마가 자부심을 느끼는 나의 기차 화통 트리플로 삶아먹은 듯한 우렁찬 음성인데.
이번엔 옆 칸까지 다 들린 듯.
사람들이 킥킥거린다.
나를 아래위로 훑는 이 주목이 온몸에 팍팍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반강제 하차하여,
사당역에 두 발을 내디뎠다.
경철 오빠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했다.
“헉.. 진짜?”
“......”
“왜 그랬지? 내가 사진도 안 보여줬는데...”
망할 자식, 나도 내 얼굴 보고 남자가 안 나오리라는 걸 안다, 그만하자!!
“그럼 건널목에서 통화하다가 내 실물을 봤나 보네?”
“그런가 봐…. 헉, 아니, 그건 아니겠지!”
“뭐가? 지금 오빠 속마음 말했잖아!”
“그게 아니고... 아, 내 생각엔 걔가 하는 일이 좀 특별해! 갑자기 급한 업무 연락이 와서 그럴 거야”
“급한 연락 뭐?? 이 주말에? 알바 뛰어? 뭐 투잡으로 주말 치킨 배달이라도 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러다 사당역에서도 얼굴을 가려야 할지 몰라. 다시 타야 해. 참자 참자.
하긴, 이 오빠 잘못은 아니다.
동철이에게 건널목을 건너지 말고 냉큼 돌아가라고 한 건 아니겠지.
“내 문자에 답장도 없던데... 아마 정말 급한 일이 있을꺼야!”
소개팅 하기로 하고, 주말에 전화했다가 맞은편 건널목에서 사라진 남자.
내 얼굴을 보고 튄 것이라면, 어떤 애플힙을 가졌다 해도,
곤장 백대를 처맞아도 모자랄 일이 아닌가.
어떻게 여자한테 이런 모욕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튼 이게 내 운명이라면, 가라앉히자.
더 이상 쪽팔림은 감당하기 귀찮다.
지하철 플랫폼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면,
기관사 아저씨에게 비극적 장면을 선사할 똥배짱이 없다면,
다시 열차에 올라야 한다.
“됐어, 아무튼 신경 써 준 건 고마워요.. 오빠도 주말 잘 쉬고”
됐다, 다들꺼져라!!
남의 탓을 하는 건, 비루한 일이다.
멀고 먼 내 생활권. 강북에 도착했다.
우울한 내 얼굴 위로,
그것보다 더 시커멓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