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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조선관상가
작가 : 나우주
작품등록일 : 2017.7.29

대한민국 최악의 돌팔이 관상가, 이상해.

조선 시대로 회귀 후,

조선 최고의 이름난 관상가로 다시 태어나다.

 
작은 날갯짓의 시작점 4
작성일 : 17-07-30 03:22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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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주머니군.’

 

  “내가 이것을 물어 뭘 하겠냐. 내가 보기에 너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 돌아가거라.”

  “저는 돌아 갈 곳이 없습니다..”

 

  혜걸은 상해의 말에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 그렇다면 니가 만들거라. 죽기 살기로 살다보면 언젠가 네가 돌아 갈 곳이 보일터.. 이만 가거라.”

 

  상해는 스스로가 무척 한심했다. 혜걸의 말이 어디 하나 틀리지 않았다.

  34년을 살아왔지만, 잘한다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것 하나 없었다.

  34년 간 남을 속이고 남을 등쳐먹으며 거짓된 희망을 팔아가며 살아왔다.

  이곳에 있는 것 역시 자신이 거짓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뭐 잘 하는 거 없슈? 아무거나 말해 봐유..”

 

  정만이 옆에서 상해에게 닦달했지만, 상해는 이미 혜걸의 말에 의욕을 잃고 풀이 죽어있었다.

 

  ‘이제야 알겠다. 천지신명님이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를.. 내 잘못 살아 온 인생을 반성하라고 여기 보낸 거였어...’

 

  상해는 그대로 걸어 나갔다.

  무릎 꿇고 받아 달라 빌수도 있었겠지만,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치부를 누군가 꺼내어 또박또박 읽어주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스스로가 한심하단 걸 잘 알기에 자신을 받아 달라 부탁할 수도 없었다.

 

  ‘쯧쯧, 사내대장부 놈이 참 한심한 놈이로다.’

 

  혜걸은 자신의 몇 마디에 돌아서버린 상해의 모습에 한심한 듯 혀를 찼다.

  장사꾼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신용이다.

  신용이란 정직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직해 보이는 것 역시 신용인 법.

  그렇기에 장사꾼에게 감정을 감추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혜걸은 상해에게 그걸 시험해 본 것인데, 몇 마디도 안 했는데 이내 풀이 죽어버리다니. 장사꾼으로서는 영 틀린 놈이라 생각했다.

  그때 정만이 다시 상해를 다그쳤다.

 

  “그냥 가면 어떡혀.. 갈 곳도 없잖여.. 응? 빨리 뭐든지 말해봐. 혜걸 형님이 겉은 저래도 속은 깊은 양반인께, 그냥 둘러대면 알아서 잘 거둬주실 거유.. 그러니까 아무거나 잘 한다고 말 해봐요..”

 

  하지만, 상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깐이지만, 혜걸의 질문에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지금 이 곳에 자신이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상해가 걸어 나가려는데. 정만이 다시 말을 꺼냈다.

 

  “맞어유! 관상!! 저 양반이 관상을 볼 줄 알아유!”

 

  혜걸은 정만의 말에 솔깃 하는 표정이었다. 관상이라..?

  하지만, 정작 상해는 여전히 풀이 죽어 자신 없는 모습이었다.

 

  “네 놈이 관상을 볼 줄 아느냐?”

 

  상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쫄보다.

 

  “맞느냐 물었다.”

  “어서 말혀유! 관상 볼 줄 알잖소! 엊그제 그 왜놈 우두머리 보고 말하지 않았슈!”

 

  정만이 다시 상해를 재촉하자 상해는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예.”

  “그래...? 그럼 나의 관상을 한번 말해 보거라.”

  “예..?”

 

  관상을 봐달라는 혜걸의 말에 상해는 당황했다. 관상을 보라고?

  관상풀이는 13년간 상해가 매일 해왔던 일이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었다.

  날카롭고 냉철한 눈매, 사람을 꿰뚫어보는 장사꾼의 눈을 가진 혜걸이 과연 상해의 엉터리 풀이를 믿을 까, 만약에라도 혀를 잘못 놀렸다가는 진짜 큰 사단이 날지도 모른다.

  상해는 혜걸에게 가족도, 정만, 정월과 같은 정을 나눈 부하도 아니다.

  게다가 기억도 없는 거지나부랭이인데 혹시라도 어디에 노예로 팔아버린다던지 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상해가 13년간 모든 관상을 거짓으로만 봐왔던 건 아니지만, 관상 책에서 배운 대로 풀이를 해봤자 사람들은 다시 상해를 찾지 않았다.

  그저 좋은 말을 해주고, 조금의 공포감을 심어주면 사람들은 상해가 용하다며 다시 제 발로 찾아왔다.

  그렇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말도 안 되는 연기를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말을 잘못 놀렸다가는 진짜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냥 나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상해는 결국 뒤돌아서고, 그 모습을 본 혜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쯧쯧, 남자 놈이 저리 자신감이 없어서야 어따 쓸고..그만 나가거라!”

 

  문 앞에 서 나가려던 상해가 멈춰 서더니 머뭇거렸다.

 

  ‘왜지.. 왜 이 문을 나가면 진짜 세상 가장 못난 거지나부랭이가 될 거 같지.. 저 사람이 뭐라고. 어차피 안 보면 그만일 사람인데...’

 

  정만은 나가려는 상해를 붙잡고 다시 닦달했다.

 

  “이 양반아! 갈 데도 없잖소! 뭐라도 둘러 대란 말이여..”

 

  하지만, 상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 앞에서 머뭇거렸다. 결국 혹시나 하고 기다리던 혜걸이 방문마저 닫는 데. 그때였다,

 

  ‘해보자.’

 

  나가려던 상해가 뒤돌아서서는 양손을 불끈 쥐고 두 눈에 힘을 주며 외쳤다.

 

  “눈썹이 짙고 굵어 경쟁심이 강하며 남자로써의 힘은 타고났다! 또한 코가 둥근 걸 보니 금전운이 타고났고 사람 마음 하나는 잘 잡게 생겼오! 전체적으로 보니 이마부터 턱까지 얼굴부위가 고루 발달하여 복으로는 타고난 팔짜요. 타고난 상업가로다...”

 

  머뭇거리다 드디어 입을 연 상해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정월과 정만, 소령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멍한 표정으로 상해를 바라봤다.

  게다가 혜걸 역시, 상해의 풀이에 꽤나 놀란 모습이었다.

  잠깐 동안 멍해진 혜걸은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어안이 벙벙한지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물었다.

 

  “너, 이름이 무엇이냐?”

 

  상해는 정신을 차리고 정식으로 인사를 건네곤 말했다.

 

  “저는 이 상해 입니다.”

  “이상해...?”

  “예, 저는 관상가, 관상가 이상해 입니다.”

 

  고개 숙인 상해의 얼굴엔 아직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상해의 답을 들은 혜걸의 얼굴엔 이내 미소가 보였다. 꽤나 만족스런 눈치였다.

 

  ‘제대로 된 물건이 하나 들어왔구나.’

 

 

 

  ***

 

 

 

 

 

 

  정만은 아직까지도 멍한 표정이었다. 상해의 얼굴을 몇 번이나 봤지만 믿기지 않았다.

 

  “아따 참말로 요상시럽네이. 기억이 돌아 온 것이여? 어째 그렇게 술술 관상을 봐분데.”

 

  상해는 정만의 말에 피식 웃었다.

  정만의 멍한 표정도 웃겼지만, 긴장이 풀리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혜걸의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관상풀이를 했지만, 속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떨고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했다.

  이렇게 진정성 있게 관상을 봐본 적이 언제인지. 매번 돈 때문에 듣기 좋은 말만 해대다 제대로 관상을 봐주니 마음의 화가 갈아 앉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뚫어져라 보던 정만이 이번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참말로 정체가 궁금혀네.. 아따, 얼굴은 곱고 어리게 생겨가지곤 어디서 그런 걸 배웠으까? 이제 기억이 나쇼..?”

 

  기억이 안날 리가 있나, 지난 2년 전부터 여기 조선시대까지 일어났던 일들은 모조리 생생히 기억난다. 아니 기억이 안날 수가 없지.

  죽고 또 죽고, 잡혀가고, 죽을 뻔한 걸 영웅이 나타나 구해주고, 이렇게나 다이나믹하고 기괴한 경험이 또 어디 있겠는가?

  웬만한 판타지 영화보다 판타지 같은 이 상황을 어떻게 잊을 리가 있겠나.

 

  “그런디, 상해양반은 나이가 어찌 되쇼?”

  “올해 서른넷이에요.”

 

  상해의 대답에 정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잉? 서른넷?”

  “네 서른넷이요.”

  “뭔 놈의 서른넷이여 서른넷은! 또 혹시나 했네... 아휴, 내가 지금 정신 나간 양반이랑 뭔 소리를 하는 겨.. 됐어, 됐어, 이제 그만 일이나 하러 갑세.”

 

  정만은 갑자기 화를 내더니 자릴 털고 가버렸다.

  갑작스런 정만의 반응에 상해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 말하기라도 했는지 어리둥절했다.

  왜 저러지?

 

  상해에게 처음 주어진 일은 상단의 창고를 정리하는 허드렛일이었다.

  창고는 상단만큼이나 크기는 작았으나, 그 작은 공간 안에 상품이 가득했다.

  게다가 갖은 종류의 물건이란 물건은 다 보관하고 있었다.

  쌀과 비단부터 도자기, 인삼, 경대, 비녀 등등 상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물품을 취급하고 있었다. 이 많은 물품을 구역별로 정리해 놔야한다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참을 상해가 상품을 정리하고 있을 때, 정월이 들어왔다.

 

  “잘 하고 있는 겨?”

  “네, 나름 해본다고 했는데 잘 했는지 모르겠어요.”

 

  정월은 마치 감독관처럼 팔짱을 끼고는 창고를 한번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상해가 꽤 일을 잘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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