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는 일어나려 애썼지만, 이제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온 몸에 마취가 시작된 상태였다.
여자는 애꿎은 상해를 보며 측은스런 미소를 보였다.
“그렇게 용 쓸 거 없어. 이미 너가 나한테 희망을 팔았을 때부터 우리의 연은 시작된 거야. 우리의 마지막 연은 아마 우리가 같이 죽는 거겠지. 다른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남녀가 동반자살을 한 것처럼 보일 테니 너무 염려할 거 없어.”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아무리 이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왜, 남편한테 차이고서 자신한테 복수를 하는지도 이해되지 않았고, 죽으려면 혼자 죽지 굳이 같이 동반자살을 하자는 것도 이해가 안됐다.
정신을 차려야한다.
그런데, 왜 점점 정신이 흩으려지냐고.
결국, 여자는 정신이 반쯤 나간 상해를 끌고 갔다.
상해는 손톱이 꺾이도록 바닥을 긁어댔지만,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여자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마침내 옥상 난간에 선 여자는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의 마지막 장면처럼 세상에 대고 외쳤다.
“하아.. 오늘은 참 바람이 맑네. 이제 이런 바람은 느낄 수 없겠지? 됐어. 그래도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 남자에게 버림은 받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기에 난 만족해. 만족한 삶이었어. 어때, 당신도 세상에 대고 한마디 하지 그래?”
‘도대체 왜 나랑 죽는데!? 바람 핀 놈은 니 남편 아냐! 그럼 남편이랑 죽던가! 왜 나랑 죽어, 왜!! 이건 인과관계가 이상하지 않아!?’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입이 제대로 벌어지지 않았다.
“사..사..려..저..”
마지막 한 마디로 여자에게 살려 달라 부탁했는데 여자는 상해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어보였다.
“자, 이제 가자..”
“여..어 벼..어”
‘염병! 염병! 염병! 염병하지마 이 년아!! 내가 왜 죽어!!’
마취가 다 됐는지 이제는 입도 벌어지지 않았다.
상해는 자신이 이렇게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할지 꿈에도 상상 못했지만, 혜자의 점괘 덕에 지난 2년 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직업이 미천한 무당이라 자주 고향에도 찾아뵙지 못했고, 떳떳하게 주변에 아들 자랑도 못하셨는데, 정말 불효자는 웁니다. 마지막이 되니 깨닫네요. 그리고 우리 혜자 누나, 2년 전에 죽을 목숨, 누님 덕에 2년은 더 살다 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제가 죽어도 제사는 누님이 꼭 좀 지내주십쇼...’
상해는 몹시 억울했다.
하지만, 여자는 작정을 했는지 치밀하게 상해의 목덜미와 자신의 목을 끈으로 연결했다.
‘치밀한 년’
그리고는 다시 일어서서 다이빙선수마냥 몸을 풀어댔다.
“자, 전 더 이상 미련 없어요. 이제 우리 갑시다. 이 세상을 떠나요!”
‘염병’
마침내 여자는 10층 가까이 되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러자, 상해의 목에 연결되어 있던 줄이 조여지더니 상해가 켁켁 대기 시작했고, 상해는 온 힘을 다해 옥상 난간을 붙잡았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침내, 상해도 여자와 함께 떨어졌다.
‘억울해!! 억울해!! 내가 왜 죽어!! 내가 왜 죽어야 되는데!!!’
상해는 마음속으로 억울하다며 난리를 쳐댔지만, 그의 몸은 어디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목이 조인 채 공중을 날고 있을 뿐.
***
“아이고 상해야..! 왜 그런 것이냐..! 왜 자살을 한 것이야..”
나이가 꽤 지긋한 노모가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 흐느적거리며 울고 있었다.
남편으로 보이는 노부는 부인을 애써 달랬지만 노모는 연신 울어댔다.
순백의 국화 꽃 사이로 보이는 영정사진에는 상해가 한껏 웃고 있었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사진 속 상해는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아이고 이 놈아! 힘들면 힘들다 말을 허지..! 왜 죽어 왜.. 애비애미보다 먼저 가는 놈이 어디 있냐.. 내가 네 힘든 걸 알았어야 했는데.. 참말로 미안하다. 이 애미가 애미 노릇 제대로 못 해 참말로 미안허다..”
상복을 입고 흐느끼고 있는 노부부는 상해의 부모였다.
부부에게 상해는 비록 어디 내놓을 만큼 자랑스러운 아들은 아니었으나, 둘도 아닌 하나뿐인 자식이었고 항상 부모를 생각하는 속 깊은 아들이었다.
무속인의 길을 간다고 했을 때도,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부부는 갖은 막말을 다 하며 아들을 내쫓았지만, 종교가 아무리 강해봐야 자식과 부모의 혈연만큼 강할까,
부부는 무속인으로서의 상해는 인정하지는 않았으나 자식으로서 아들은 놓진 못했다.
그런 아들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니, 부부는 믿지 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다.
상해 부모의 울음소리를 제외하고 장례식장은 적막했다.
식장의 적막이 상해가 어떤 인생을 살아 왔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적막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례식장 한 구석에서 홀로 쭈그려 앉아있는 남자였다.
남자는 다리를 팔로 감싼 채 얼굴을 수그리고 흐느껴 울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남자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장례식장이 떠나가라 울어 댔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왜 나를 못 본 다요!!? 아들이 여기 있고만 왜 나를 못 본 다요!”
그 남자는 다른 아닌 상해였다.
분명 상해는 여자와 함께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이곳에 있다니, 상해 스스로도 이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를 못 보는 걸로 봐선 분명 죽기는 죽었나보다.
상해는 부모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부지... 엄니... 저 여기 있어라.. 아부지 엄니의 못난 하나뿐인 아들 여기 있어라. 왜 말을 못 한다요..! 여기 내 아들이 살아있다, 하나뿐인 내 아들이 살아있다! 왜 말을 못 한다요!!”
상해는 자신의 부모를 잡고 흔들어댔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죽은 이는 산 사람을 만질 수 없는 법.
이제 다시는 부모님의 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아이고!!”
그때, 다급하게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혜자였다.
“아이고 상해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가 자살을 왜 혀 네가! 내가 그리 조심하라 일렀거늘..”
한참을 상해의 영정 앞에서 통곡하며 울던 혜자는 옷매무새를 다지고 영정 앞에 두 번 절을 올렸다.
비록 서울에 올라와 만난 동생이었지만,
가족 없는 본인에게 상해는 친동생이었고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런 동생이 죽었으니 혜자 역시 마음이 말이 아니었다.
상해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는 다는 심정으로 혜자의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누님.. 누님은 내가 보이지라!? 누님은 용한 무당이니께 내가 보이지라!?”
하지만, 전혀 답하지 않았다.
혜자는 상해의 부모에게 위로를 표하고 잠시 몸을 추스르려 앉았고 상해는 혜자의 앞에서 무릎 꿇고 울먹였다.
“누님.. 말을 좀 허유.. 제발 좀 말을 좀 허유..! 혜자누우님!!”
그때였다, 혜자의 눈빛이 어딘가 변했다.
뭔가를 알아챈 눈빛이었다. 혜자의 변한 눈빛을 보자 상해는 다시 희망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혜자와 상해의 두 눈이 마주쳤다.
이건 상해를 알아보지 않았다면 절대 지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엄니...”
뭔가 낌새를 알아챈 듯 혜자가 상해의 모에게 물었다.
“와 그라노..?”
“이 장례식장 누가 잡았어라?”
상해는 순간 희망에 부풀었다.
역시 혜자는 용한 무당이었다!
지난 2년간 살았던 게 혜자의 부적 덕이 확실했다.
불효자로써 다 하지 못한 마음, 마지막 말은 부모님에게 전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생겼다!
“여기...”
혜자는 어렵게 입을 떼었고, 상해는 혜자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길 기다리며 혜자의 입술만 보는데,
“아따, 뭔 놈의 잡귀가 이리 많다요. 아휴 겁나네. 식장을 잘 못 잡았소. 이래서야 우리 상해가 좋은 데로 못 갈성 십소.”
상해의 억장이 무너졌다.
돌팔이! 저 돌팔이!!
‘아이고!! 이놈의 돌팔이 무당! 내 네 도둑질 해댈 때부터 알아봤다! 그리 용했으면 니가 도둑질을 했겠냐!! 복채로 먹고 살지! 아이고 억울해 아이고!!’
상해는 억울하다며 바닥을 동동 구르고 난리를 쳐댔다.
혜자가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전혀 본인을 알아보지 못하니 억울할 만도 했다.
그때, 혜자가 상해 모의 어깨를 툭 만지며 말했다.
“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