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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작가 : 아범
작품등록일 : 2017.7.17

이벤트 당첨으로 일등석에 탑승한 담월. 그곳에서 한 남자와 크게 다투고 만다. 결국,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그가 속삭인다. "두 번 다시 마주칠 일 없길 바라거라." 아니, 뭐 저런 싸가지가 다 있어?!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인연이 황궁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도망치려는 그녀와 잡으려는 그. 마침내 사로잡힌 그녀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터져나왔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방송의 여파
작성일 : 17-07-24 17:52     조회 : 322     추천 : 0     분량 : 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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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야야, 시작한다. 빨리 와!"

 

 소파에 앉아 있는 진아가 주방 쪽을 향해 소리쳤다.

 담월이 오징어를 구워 들고 쏜살같이 달려왔다.

 

 "앗, 뜨거워! 내 맥주 어딨어?"

 

 자리에 앉은 담월이 자신 맥주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진아가 옆에 있는 맥주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것아, 넌 지금 맥주가 중요하냐? 저기 네 경쟁 상대는 안 보여?"

 

 "볼 거야, 일단 이것 좀 마시고."

 

 담월이 힘차게 맥주 캔을 따더니 입에 가져갔다.

 

 "크아! 아, 살 것 같다. 미스 태! 우리 에어컨 좀 틀면 안 돼?"

 

 "이걸 그냥 확!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에어컨은 무슨. 손 뒀다 엿 바꿔 먹을래?"

 

 진아가 소파 밑에서 부채를 꺼내 던져줬다.

 담월이 그녀를 노려보며 연신 부채질을 했다.

 

 "쓰지도 않을 에어컨은 뭐하러 샀나 몰라, 흥! 분명 나 모르게 건물이라도 한 채 사놨을 거야. 구두쇠 같은 것!"

 

 "조용히 하고 저것 좀 봐."

 

 진아의 핀잔에 그제야 담월이 TV로 시선을 돌렸다.

 산뜻한 배경음악과 함께 영선의 모습이 나왔다.

 자신의 방에서 가볍게 화장을 하는 장면이었다.

 손수 화장하는 모습과 함께 아래에는 '소탈한 그녀'라는 자막이 깔렸다.

 

 "웃기고 있네. 딱 봐도 샵에서 한 거 티 팍팍 나는구만."

 

 "오, 그런 게 보여?"

 

 진아의 말에 담월이 신기한 듯 바라봤다.

 그러자 진아가 턱을 치켜들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저 여우 같은 게 누굴 속이려고. 어디 샵에서 한 것까지도 알겠는데, 뭐."

 

 "와, 미스 태! 대단한데?"

 

 담월이 엄지손가락을 쓱 치켜세웠다.

 이어지는 화면에서 휘가 등장했다.

 근사한 슈트 차림의 그가 현관에서 막 걸어 나오는 장면이었다.

 

 "오, 멋진데?"

 

 옆에서 진아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담월도 TV 속 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잘나긴 참 잘났지, 성격이 영 별로라서 그렇지.'

 

 담월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담월에게 진아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가까이서 보면 어떠냐? 저거보다 훨씬 눈부시지? 그치?"

 

 "미스 태. 가만 보면 너 은근히 밝히는 여자 같아. 하루 종일 쭉쭉빵빵한남자 모델들이랑 같이 있으면서 아직도 만족을 못 하니?"

 

 남자 모델을 실컷 만지기 위해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온 진아였다.

 실제로 그녀는 남자 옷만 전문으로 디자인했다.

 그것도 아주 야하게만!

 

 야한 남자 옷 전문 디자이너 태진아가 뻔뻔한 얼굴로 대꾸했다.

 

 "은근히 밝히는 게 아니고 대놓고 밝히거든요? 됐고. 가까이서 보면 어떠냐고."

 

 "어떻긴. 그냥 그래."

 

 "죽을래? 이게 누구 앞에서 구라를 날려! 딱 봐도 장난 아니구만. 저 얼굴이 그냥 그래, 이럴 얼굴이냐?!"

 

 "뭐, 솔직히 좀 잘 생기긴 했지."

 

 진아의 타박에 담월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휘가 차에 올라타는 장면이 나왔다.

 옷깃 사이로 그의 매끈한 근육이 언뜻 비쳤다.

 

 "저거 봐, 저거. 저 딴딴한 몸매 좀 보라고. 저게 얼마나 희귀한 레어 바디인 줄도 모르고, 쯧쯧쯧. 너 눈이 고자냐?"

 

 "그래? 난 별로던데?"

 

 "어쭈? 이게 어디서 스테이크 먹고 와서 라면 먹고 있는 사람한테 입맛 타령이야!

 

 "크크크. 그 말 너무 웃기다."

 

 금세 둘이 마주 보며 킥킥댔다.

 잠시 후, 보육시설에서 봉사하는 장면이 나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아이들에게 반찬을 떠주는 모습이 참 자상하게 보였다.

 

 "이야, 저 여자 보통이 아니네.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답을 아는 여자야. 딱 여우네, 여우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이고, 이 맹추야! 네 눈으로 직접 보고도 모르겠냐? 지금 엄청 착한 이미지를 생성 중이잖아."

 

 "그게 뭐?"

 

 "아, 이 답답이를 어, 떡, 하, 지?! 저걸 보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냐? 부자인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봉사한다고, 역시 저 정도 인성은 돼야 황태자비로 손색이 없다고 하지 않겠어?"

 

 "그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게 왜 여우 짓이야?"

 

 "이렇게 맹하니깐 그대가 맹담월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사람들은 의외로 저런 거에 약해. 그리고 저렇게 한 번 만들어진 이미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거고."

 

 "……."

 

 "대중들에게 착한 이미지를 아주 제대로 남긴 거라고. 저것 봐, 저거. 내가 저 장면 나올 줄 알았다니까!"

 

 화면에는 어느새 두 사람이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 앞에 놓인 식판에는 조금 전 아이들이 먹던 반찬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태연하게 식판에 든 음식을 먹는 두 사람의 모습이 꽤 소탈하게 비쳤다.

 

 '저런 모습도 있었구나.'

 

 의외의 모습에 담월이 관심을 보였다.

 옆에서 진아의 못마땅한 소리가 들렸다.

 

 "보통의 사람들이 먹는 평범한 음식일 뿐인데 저 사람들이 먹으면 그게 또 대중이 보기엔 참 대단해 보이는 거거든."

 

 "하긴, 저렇게 먹는 게 뭐 대단한 거라고. 저 정도도 먹지 못하는 인류가 얼마나 많은데."

 

 담월이 진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곧이어 이불 빨래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바지를 걷어 올린 채 고무 대야에 발을 담가 이불을 밟는 그의 모습이 제법 근사해 보였다.

 

 "와, 저 불끈불끈 한 장딴지 좀 봐라. 완전 내 스타일인데? 다리만 봐도 몸이 보인다, 보여."

 

 "그만 좀 밝히세요. 너무 창피해서 같이 볼 수가 없네, 정말!"

 

 "어?!"

 

 담월이 자제를 촉구하는 순간.

 군침을 흘리던 진아가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담월이 그녀를 따라 자연스럽게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이불을 털다가 휘의 품에 안겨버린 영선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뭐, 뭐야?!'

 

 담월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와, 저거 크다. 내가 봤을 때 저 장면이 이번 방송의 베스트네, 베스트야."

 

 진아의 말처럼 정말 좋은 그림이 나왔다.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는 영선의 모습이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내내 차갑게만 보이던 그녀의 모습이 이제야 좀 사람처럼 느껴졌다.

 마침 적절하게 달달한 음악이 배경으로 깔렸다.

 

 때마침 그런 영선을 바라보는 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부끄러운 듯 안겨있는 영선과 그녀를 바라보는 휘의 잔잔한 눈빛.

 마치 로맨스 영화 속 다정한 연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담월이 맥주를 집어 들더니 사정없이 들이켰다.

 갑자기 타는 듯한 갈증이 느껴졌다.

 진아가 그런 담월을 힐끗 쳐다봤다.

 

 곧이어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근사한 차림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식사하는 장면이 나왔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휘와 그의 품격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영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월의 눈에 들어왔다.

 

 데이트 대신 봉사를 선택한 착한 마음.

 빨래를 하면서 보여줬던 수줍은 얼굴.

 그리고 황태자와 잘 어울리는 품격까지.

 

 정말 완벽한 모습이었다.

 어쩐지 시작도 안 했는데 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담월이 맥주 캔 하나를 다 비우고 새것을 막 집어 들 때였다.

 

 "어?! 황후 폐하잖아?"

 

 진아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고개를 돌린 담월도 금세 놀란 눈을 했다.

 화면에는 황후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영선에 대한 질문에 그녀가 침착한 얼굴로 대답했다.

 

 -상당한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그녀가 가진 영향력은 정말 대단하죠. 거기에 예쁘고 똑똑하고 겸손하기까지. 아주 눈여겨보고 있는 인재입니다.

 

 황후의 소감과 함께 영선의 수줍은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옆에서 진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맹담월. 아무래도 저 여자, 제대로 점수 딴 거 같다."

 

 "내 말이."

 

 담월이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

 

 

 황태자의 집무실.

 

 소박한 구조의 방 안에 휘의 모습이 보였다.

 손에 든 서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 역시 일밖에 모르는 황태자다웠다.

 

 잠시 뒤, 노크 소리와 함께 택원이 들어섰다.

 휘는 여전히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앞으로 택원이 다가섰다.

 

 "방금 방송 끝났사옵니다."

 

 "관심 없다."

 

 휘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택원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일전에 분부하신 일이옵니다."

 

 택원이 서류를 내밀며 용건을 말했다.

 그제야 휘가 고개를 들더니 서류를 받아들었다.

 

 "전하께서 짐작하신 게 맞았사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었던 일정이었다 하옵니다."

 

 "모두 다 말이냐?"

 

 "네."

 

 택원의 말에 휘가 서류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그날 영선의 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택원의 보고가 이어졌다.

 

 "해당 보육시설도 명운 그룹 계열사 중 하나가 관리하는 곳이었사옵니다. 또한, 그날 테스트에 참여했던 요리사는 총 3명이었고 이벤트는 아래층에서 이루어졌다 하옵니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군."

 

 휘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봉사활동에 이어 레스토랑 식사까지.

 모두 영선의 원래 일정이었다는 보고였다.

 

 영선과 만남을 갖던 그 날 저녁.

 

 화장실에서 나오던 휘의 눈에 수상한 물건이 포착되었다.

 살짝 열린 창고 문틈으로 작은 현수막이 보인 것이다.

 문제는 그 내용이었다.

 

 '최고의 쉐프를 뽑아라!'

 

 날짜와 장소가 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날 휘가 있던 바로 그 호텔이었다.

 순간 께름칙한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슬쩍 조사를 지시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고를 들어보니 그의 직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날 총 3명의 요리사가 호텔 레스토랑 쉐프 자리를 두고 마지막 심사를 받고 있었다.

 아래층에는 이벤트에 당첨된 사람들이 휘와 똑같은 메뉴를 먹으며 심사를 하는 행사까지 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자신의 일정을 마치 데이트처럼 소화한 그녀였다.

 

 "욕심이 많은 여자군."

 

 순간 휘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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