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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작가 : 아범
작품등록일 : 2017.7.17

이벤트 당첨으로 일등석에 탑승한 담월. 그곳에서 한 남자와 크게 다투고 만다. 결국,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그가 속삭인다. "두 번 다시 마주칠 일 없길 바라거라." 아니, 뭐 저런 싸가지가 다 있어?!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인연이 황궁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도망치려는 그녀와 잡으려는 그. 마침내 사로잡힌 그녀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터져나왔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그렇게 좋으냐
작성일 : 17-07-22 14:42     조회 : 328     추천 : 0     분량 : 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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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이 열렸다.

 

 "아, 정말 짜증 나. 거지 같은 것들 때문에 하마터면 머리 뜯길 뻔했네."

 

 미소가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들어섰다.

 그 모습을 본 추 장관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야?"

 

 "아, 몰라. 행사 끝나고 나오는데 어떤 미친 것들이 좋다고 달려들잖아. 좋으면 그냥 멀리서 좋아하면 되지 왜 만지려고 난리야, 이게 얼마짜리 몸인데."

 

 "경호팀 따라갔잖아."

 

 "말 잘했어, 엄마. 걔들 다 잘라버려. 아니, 그렇게 달려들면 잡아서 내팽개치던가 지들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지. 좋다고 하면 다 팬인 줄 아나 봐. 애들이 생각이 없어, 생각이. 머리에 든 건 죄다 된장이야?"

 

 미소가 씩씩거리며 분을 토해냈다.

 추 장관이 블라인드를 살짝 들춰 밖을 확인했다.

 다행히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철없는 딸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밖에서는 말조심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듣긴 누가 듣는다고 그래? 둘 밖에 없구만."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하니깐 그런 하찮은 스캔들이나 터지고 하는 거야. 모르겠니?"

 

 며칠 전.

 모델 출신의 남자 배우와 스캔들이 터지려는 걸 남편 기획사가 돈으로 간신히 막았다.

 간택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한 일이었다.

 하지만 미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 귀찮은 일 처리하라고 월급 받는 얘들 있잖아. 돈을 줬으면 일을 시키면 되는 거지, 왜 내가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돼?"

 

 미소가 짜증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토를 달았다.

 추 장관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이 있는 거니? 곧 있으면 간택이고 내년에는 선거야. 다 망치고 싶지 않으면 분별 있게 행동해."

 

 "내 일은 내가 잘 알아서 해요. 선거는 엄마 일이니까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고."

 

 미소가 금세 비아냥댔다.

 추 장관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선거도 네 일이야. 내가 선거에서 지면 그쪽에서 미쳤다고 너 같은 딴따라를 며느리로 들이겠니?"

 

 차가운 목소리에서 부모의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질 않았다.

 미소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누가 들으면 날 위해서 사시는 줄 알겠네. 흥!"

 

 "말조심해!"

 

 딸의 이죽거림에 추 장관이 득달같이 쏘아보며 외쳤다.

 당장 손찌검이라도 할 태세였다.

 순간 미소의 눈에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스쳤다.

 하지만 곧 태연한 표정을 되찾았다.

 

 "걱정하지 마! 엄마가 총리 자리에 못 앉아도 내가 황실 사람이 되는 데는 아무 지장 없을 테니까."

 

 그녀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사실 추 장관이 뭐라 하지 않아도 그녀 역시 실수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 간택은 그녀에게도 매우 중요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늘 화려하게 주목받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런 인기는 언제고 식기 마련이었다.

 그걸 막아보겠다고 온갖 발버둥을 칠 정도로 이쪽 세계에 미련이 남는 그녀도 아니었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말도 있잖은가.

 

 가장 화려하게 빛날 때, 가장 멋지게 떠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그가 반드시 필요했다.

 

 인기 톱스타와 황태자의 결혼.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자기 삶의 마침표였다.

 

 시간이 지나 그녀는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한 시대를 가장 화려하게 살다 간 여인으로 말이다.

 

 미소의 눈빛에서 강렬한 욕망이 일었다.

 그 모습을 본 추 장관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필요한 건 네 아버지가 다 지원할 거야. 그쪽 인력을 다 끌어다 써도 좋으니깐 멍청한 실수나 저지르지 마."

 

 "아, 네네. 꼭 그 남자 마음에 들어서 우리 어머니 총리 만들어 드릴게요. 됐죠?"

 

 추 장관이 쏘아보자 미소가 콧방귀를 뀌며 나가버렸다.

 

 두 사람에게서 사람의 온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

 

 

 노트북 앞에 앉은 담월의 손놀림이 분주해 보였다.

 

 "오케이, 드디어 끝났다!"

 

 마지막 점검까지 마친 그녀가 전송 버튼을 누르며 기지개를 켰다.

 뜻이 같은 사람들과 국제 인권 개선을 위한 작은 모임을 하고 있는 그녀였다.

 한국에 있는 동안은 이렇게 메일로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간택을 거절당한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어야 했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다니.

 

 '이게 다 그 잘난 황태자 때문이야!'

 

 갑자기 그를 떠올리자 화가 치솟았다.

 

 진짜로 그가 자신의 면접에 관여했다고 믿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제멋대로인 사람이라도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돌발 선언으로 인해 그녀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긴 것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 현우 오빠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분했다.

 그렇게 헤어지면 안 되는 거였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있었다.

 국회의원이라고 했으니 검색이라도 하면 어렵지 않게 연락은 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 그 타이밍이 딱 좋았는데!"

 

 담월의 얼굴에 아쉬운 빛이 감돌았다.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주고받은 후 다음 약속을 잡을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나타나 훼방을 놓다니!

 

 "아니, 자기가 황태자면 다야?"

 

 또다시 휘를 향해 그녀가 분노를 표출했다.

 

 "두고 봐. 잊지 못할 데이트를 준비해 줄 테니깐!"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담월이 주먹을 꽉 쥐었다.

 잠시 뒤, 현우를 떠올리며 다시금 얼굴을 붉히는 그녀.

 

 그렇게 한참 동안 차가운 분노와 뜨거운 욕망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바쁘니?"

 

 어느새 퇴근한 한 장관이 그녀의 방문 앞에 모습을 보였다.

 

 "아니요, 다 끝났어요."

 

 "한잔 할까?"

 

 "크크크. 좋죠. 씻고 나오세요. 제가 준비할게요."

 

 담월이 노트북을 닫은 후 얼른 부엌으로 달려갔다.

 서둘러 두부를 데치고 김치를 꺼냈다.

 시골에서 할머니가 보내주신 묵은김치를 들기름에 착착 볶은 후 접시에 담아냈다.

 그사이 한 장관이 편안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가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들자 담월이 냉큼 잔을 찾아들었다.

 

 곧이어 작은 술상이 식탁에 차려졌다.

 

 "먼저 한 잔 받아."

 

 "영광입니다, 한 장관님."

 

 담월이 공손하게 술을 받았다.

 뒤이어 한 장관의 잔을 채운 뒤 그녀가 외쳤다.

 

 "자아, 맛있는 김치를 협찬해 주신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 건배!"

 

 "그래, 건배!"

 

 짠 하고 잔을 부딪친 두 사람이 단숨에 잔을 비웠다.

 담월이 서둘러 두부김치를 입안에 넣었다.

 

 "음, 맛있어. 어때요? 맛있죠?"

 

 "제법이네, 우리 딸내미."

 

 아버지의 칭찬에 담월이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그런 담월을 한 장관이 지그시 바라보았다.

 

 "계속 그렇게 웃으면서 살 자신 있지?"

 

 "그럼요, 이 맛에 사는 건데. 크크크."

 

 담월이 특유의 괴상한 소리로 웃으며 아버지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한 장관이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됐다. 난 그걸로 만족하련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그런 게 있어, 인마."

 

 한 장관이 대답을 피한 채 술잔을 들었다.

 둘은 또다시 잔을 부딪치며 소주를 넘겼다.

 담월이 안주를 건네고 한 장관이 그녀의 잔을 채웠다.

 입안 가득 두부김치를 욱여넣는 딸의 모습을 한 장관이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네가 하려는 일 말이다……."

 

 "네?!"

 

 "그 일이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은 거냐?"

 

 느닷없는 질문에 담월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이런 얘기를 먼저 꺼낸 적 없는 아버지였다.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한 장관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어느새 꽤 진지해져 있었다.

 담월이 얼른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물론이죠. 얼마나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데요."

 

 "난 말이다. 네가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보람 있잖아요."

 

 "다른 일에도 보람은 있어. 네가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렇지."

 

 한 장관의 말에 그녀가 잠시 침묵했다.

 곧 그녀의 눈동자에 잔잔하게 열정이 출렁거렸다.

 

 "이 일은요, 제가 아주 쓸모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해줘요. 그래서 힘든 줄도 모르겠어요."

 

 "넌 원래 쓸모가 많은 아이야."

 

 "더 쓸모있는 사람이 돼보려고요. 크크크."

 

 담월이 가볍게 웃었다.

 한 장관이 말없이 그녀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이번 일 끝나면 원하는 거 실컷 하고 살아 봐. 방해 안 할 테니까."

 

 "어?! 진짜죠?! 진짜, 진짜 진짜죠?!"

 

 담월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럴 수가! 이게 꿈이야, 생시야?!

 면접 본 회사에서 일하는 걸 넘어 이젠 아예 그녀가 하고 싶은 일 자체를 허락한 셈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면접에 떨어져서 심란했는데.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이런 것일까.

 한 장관이 기뻐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좋으냐?"

 

 "그럼요, 크크크."

 

 "거 웃음소리 하고는. 그렇게 방정맞게 웃어대면 어떤 남자가 널 좋다 하겠냐."

 

 "이런 게 싫은 남자라면 제 쪽에서 먼저 사양합니다."

 

 "하여튼 저 고집은. 그 괴상한 웃음소리랑 고집은 네 엄마를 쏙 빼닮았구나."

 

 "오, 그래요? 그럼,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나도 엄마 닮아서 아빠 같은 좋은 남자 만나게 될 테니까. 크크크."

 

 "나 같은 남자가 어디 그렇게 흔하겠냐?"

 

 "그런가?"

 

 두 사람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간은 행복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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