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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작가 : 아범
작품등록일 : 2017.7.17

이벤트 당첨으로 일등석에 탑승한 담월. 그곳에서 한 남자와 크게 다투고 만다. 결국,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그가 속삭인다. "두 번 다시 마주칠 일 없길 바라거라." 아니, 뭐 저런 싸가지가 다 있어?!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인연이 황궁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도망치려는 그녀와 잡으려는 그. 마침내 사로잡힌 그녀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터져나왔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두 번 다시 마주칠 일 없길 바라거라
작성일 : 17-07-17 19:06     조회 : 577     추천 : 1     분량 : 8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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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담월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말로만 듣던 일등석 칸에 들어서자 눈이 번쩍 뜨였다.

 완전 딴 세상이잖아!

 예상한 것보다 훨씬 넓고 세련된 구조였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일반석과는 확연히 달랐다.

 어쩐지 공기마저 쾌적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좌석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예쁜 승무원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앞장섰다.

 담월이 쉴새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따라갔다.

 

 "이쪽입니다."

 

 마침내 자신의 좌석에 도착한 담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정말 굉장한데요?"

 

 세상에 이렇게 큰 의자도 있다니!

 혼자서 대자로 뻗어도 될 정도로 넓은 좌석이 그녀를 맞이했다.

 승무원이 미소를 지으며 물러가자 담월이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내 인생에 이런 호사는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흔적을 남겨야만 했다.

 첫 취항을 앞두고 실시한 이벤트에 당첨되는 행운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이런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나 한담월, 이곳에 다녀갔노라.

 

 증거를 남기기 위한 그녀의 몸놀림이 분주했다.

 이쪽에서 찰칵, 저쪽에서 찰칵.

 휴대폰을 든 그녀의 얼굴이 어느새 흥분으로 들떠있었다.

 

 그때였다.

 

 '툭!'

 

 "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뭔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놀란 담월이 돌아보자 바닥을 뒹구는 물잔이 보였다.

 

 아뿔싸.

 

 사진을 찍는데 정신을 판 나머지 그만 옆 좌석의 물잔을 건드려 떨어뜨린 모양이다.

 당황한 담월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아, 정말 죄송합니……."

 

 저도 모르게 대한제국어로 사과하던 담월이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의 눈앞에 너무나 비현실적인 남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창백할 정도로 투명한 피부에 짙은 눈동자.

 도도하게 솟은 콧날과 차분하게 닫혀 있는 붉은 입술.

 

 아, 오늘 눈이 제대로 호강을 하는구나.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눈부신 존재의 출현에 그녀가 그만 넋을 잃어버렸다.

 

 "구경은 그쯤 하지."

 

 얼음장처럼 차가운 남자의 말에 순간 그녀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네?! 아,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당황한 그녀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물잔에서 튄 물이 남자의 바짓단을 축축하게 적셔놓은 게 보였다.

 자신 때문에 빈틈없이 단정한 그의 옷차림에 작은 균열이 생겨버렸다.

 

 아, 이 방정맞은 엉덩이 같으니.

 

 그녀가 속으로 물잔을 떨어뜨린 주범을 탓하며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소란을 들은 승무원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그제야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부신 외모에 어울리는 훤칠한 키와 모델 같은 몸매가 드러났다.

 순간 담월과 승무원의 눈이 반짝였다.

 

 "우선 젖은 바지를 갈아입었으면 하는데."

 

 "네.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남자의 요구에 승무원이 곧장 갈아입을 옷을 챙겨왔다.

 마치 이런 일을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능숙한 모습이었다.

 남자가 말없이 옷을 받아들자 승무원이 좌석 컨트롤러에 손을 올렸다.

 

 "자리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곧이어 승무원이 버튼을 조작하자 좌석 위에서 검은색 암막 커튼이 천천히 내려왔다.

 순식간에 남자가 커튼 안으로 사라졌다.

 그사이 다른 승무원이 전용 청소기를 가져와 바닥을 정리했다.

 작은 소음도 없이 바닥의 물이 말끔히 사라졌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아닙니다. 혹시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전 괜찮아요……."

 

 담월이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졸지에 요주의 인물로 낙인이 찍힌 듯싶었다.

 

 잠시 후 커튼 안에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평범한 옷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입고 나오자 당장이라도 사고 싶을 만큼 근사해 보였다.

 

 "옷은 기내 세탁소에서 말끔하게 정비하여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다른 불편 사항은 없으십니까?"

 

 승무원이 옷을 받아들며 말하자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비행기 안에 세탁소가 있다니.

 그저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때 갑자기 출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곧이어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뛰어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가장 먼저 달려온 사내가 남자를 향해 침착한 말투로 물었다.

 남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호위를 배치하겠습니다."

 

 "소란 떨 거 없다."

 

 "그럼 저라도 곁을 지키겠습니다."

 

 "되었다. 그만 물러가거라."

 

 남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안에서 거역할 수 없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잠시 망설이던 사내가 다른 사내들과 함께 순순히 물러갔다.

 어리둥절한 담월이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별 일 아니니 신경 쓸 거 없다."

 

 "네?! 아, 네……."

 

 냉정한 남자의 대답에 담월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어쩐지 그의 말을 고분고분 따라야만 할 것 같았다.

 

 곧 비행기가 이륙했다.

 

 일등석에는 그녀와 남자 외에 다른 승객은 없었다.

 

 '아, 빈자리가 이렇게나 많은데 하필이면!'

 

 꽤 긴 시간을 남자와 딱 붙어 앉아 가게 생겼다.

 불편한 마음에 담월이 옆쪽을 힐끔거렸다.

 남자는 어느새 편안한 자세로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잠시 뒤.

 

 미리 지정해 두었던 기내식이 나왔다.

 

 "음, 맛있겠다."

 

 넓은 테이블 위로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차려졌다.

 담월의 얼굴이 금세 흐뭇하게 피어났다.

 

 "잘 먹겠습니다."

 

 담월이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하자 서빙을 마친 승무원이 미소를 지으며 물러갔다.

 서둘러 포크를 집어 들던 담월이 갑자기 멈칫했다.

 

 "아, 맞다! 증거를 남겨야지!"

 

 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평소 음식을 앞에 두고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 안 됐었는데.

 어느새 그녀도 인증샷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확실하게 증거를 남기고 나서야 그녀가 음식을 맛보았다.

 

 "아, 이런 게 바로 꿀맛이구나."

 

 입안 가득 행복한 맛이 퍼져나갔다.

 때마침 그녀의 시선이 옆쪽을 향했다.

 그 역시 한참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어쩜, 밥 먹는 모습도 화보처럼 보이는구나.'

 

 담월이 씹는 것도 잊은 채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갑자기 남자가 고개를 휙 돌렸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헉!"

 

 놀란 담월이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옆에서 사나운 맹수의 시선이 계속 느껴졌다.

 그녀가 애써 태연한 척 식사를 했다.

 하지만 당황한 마음은 쉽게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샴페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서둘러 잔을 집어 들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크으, 좋다."

 

 시원한 청량감에 온몸이 짜릿했다.

 긴장한 마음이 한순간 진정되는 것 같았다.

 

 "크흠."

 

 옆에서 남자의 못마땅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순간 담월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 바람에 그녀의 팔꿈치가 버튼 하나를 건드린 모양이다.

 잠시 뒤, 승무원이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네?! 아, 그게……."

 

 당황한 담월이 얼떨결에 샴페인 잔을 내밀며 대답했다.

 

 "이, 이것 좀 더 주실래요?"

 

 "한 잔만 가져다 드리면 되겠습니까?"

 

 승무원의 질문에 담월이 뭔가 망설이는 듯하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종류별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곧 승무원이 여러 종류의 샴페인 잔을 들고 돌아왔다.

 슬쩍 옆쪽의 눈치를 살피던 담월이 이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눈에 이어 입도 호강하는구나.'

 

 담월이 한 잔 한 잔 맛을 음미하며 샴페인을 홀짝댔다.

 점차 긴장이 풀리면서 그녀의 입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잠시 뒤, 그녀의 귓가로 차가운 음성이 날아들었다.

 

 "이곳의 술을 다 마셔야 직성이 풀릴 모양이군."

 

 순간 담월이 멈칫했다.

 들뜬 그녀의 기분에 찬물이 확 끼얹어졌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남자를 노려보았다.

 식사를 마친 그는 태연한 얼굴로 책을 읽고 있었다.

 

 '참자. 즐거운 순간을 이대로 망칠 순 없지.'

 

 담월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마침 쓸만한 게 눈에 띄었다.

 그녀가 얼른 헤드셋을 쓴 뒤 음악을 틀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달뜬 그녀의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켜줬다.

 

 '아, 진작 이렇게 할걸.'

 

 그녀가 샴페인을 홀짝대며 몸을 흐느적거렸다.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순간이었다.

 

 잠시 뒤.

 

 어느새 기내가 어두워졌다.

 설핏 잠이 들려던 그녀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서둘러 잠옷과 세면도구를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그녀의 몸이 비틀거렸다.

 

 '어이쿠. 너무 많이 마셨나?'

 

 그녀가 정신을 다잡으며 조심스럽게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갑자기 기체가 기우뚱하면서 그녀의 다리도 덩달아 휘청거렸다.

 

 "어?! 어, 어?!"

 

 한순간 중심을 잃은 그녀의 몸이 옆으로 휙 기울었다.

 곧이어 어딘지도 모를 곳에 그녀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라? 이 낯선 느낌은 뭐지?!'

 

 뭔가 단단한 것이 엉덩이에서 느껴졌다.

 

 맙. 소. 사.

 

 내가 지금 어디에 주저앉은 거야?!

 그때 그녀의 귓가로 서늘한 음성이 들렸다.

 

 "자객이냐!"

 

 "네?!"

 

 놀란 담월이 번개같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주저앉은 곳은 옆 좌석 남자의 무릎 위였다.

 아, 하필이면! 하필이면 왜!

 그렇지 않아도 자꾸 눈치를 주는데 느닷없이 무릎 신세까지 지다니!

 

 "죄, 죄송합니다!"

 

 그녀가 허둥대며 사과했다.

 그런 담월을 향해 남자의 차디찬 시선이 달려들었다.

 

 "일부러 이러는 것이냐!"

 

 "네?!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노골적이지 않느냐."

 

 "아니라니까요! 실수라고요, 실수!"

 

 남자의 지적에 억울한 나머지 담월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남자가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쉿! 목소리를 낮추어라."

 

 남자의 말에 순간 담월이 입을 꾹 다문 채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승무원이나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달려오지는 않았다.

 

 "번거롭게 만들지 말고 그냥 가던 길이나 가거라."

 

 남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한 마음에 담월이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더니 몸을 숙여 남자의 귀에 속삭였다.

 

 "정말 죄송해요……. 딸꾹!"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남자가 몸을 움찔거렸다.

 담월이 부끄러운 듯 후다닥 화장실로 달아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참으로 별난 여자로구나."

 

 잠시 후 볼일을 마친 담월이 쭈뼛거리며 돌아왔다.

 남자는 좌석등을 켜 놓은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무슨 책이길래 몇 시간씩 보는 거지?'

 

 담월이 의아한 얼굴로 자리에 다가섰다.

 어느새 그녀의 좌석은 길게 눕혀진 채 이불이 펼쳐져 있었다.

 승무원이 다녀간 모양이다.

 담월이 냉큼 이불 위에 몸을 던졌다.

 

 "아, 푹신푹신해라."

 

 그녀의 작은 감탄사에 곧장 싸늘한 반응이 날아왔다.

 

 "크흠."

 

 아, 또 눈치를 주는구나.

 그렇게 거슬릴 정도로 큰소리를 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일단 지은 죄가 있으니 참자.'

 

 담월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속이 탔다.

 문득 그녀의 눈이 좌석 아래쪽을 향했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작은 손잡이가 눈에 들어왔다.

 궁금해진 그녀가 슬쩍 손잡이를 당기자 금세 시원한 냉기가 쏟아져나왔다.

 좌석 전용 미니 냉장고였다.

 

 "세상에!"

 

 놀란 그녀가 저도 모르게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 냉장고 있는 거 아세요?!"

 

 그녀의 말에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흥! 자기도 몰랐으면서. 가르쳐줘도 신경질이네.'

 

 담월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냉장고에서 캔 음료를 꺼냈다.

 

 '푸쉭!'

 

 캔을 따자마자 남자의 예민한 반응이 들렸다.

 

 "크흠."

 

 오, 이 소리도 시끄러우시다?!

 담월이 고개를 돌리자 남자의 못마땅한 시선과 마주쳤다.

 지나치게 예민한 남자의 반응에 은근히 짜증이 났다.

 

 '나도 짜증 나긴 마찬가지거든요?'

 

 담월이 남자를 향해 약을 올리듯 혀를 날름거렸다.

 순간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담월이 얄밉게 휘어진 입꼬리를 한 채 보란 듯이 음료수를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요란한 목 넘김 소리에 맞춰 남자의 미간에 주름이 한 줄씩 늘어났다.

 하지만 담월의 추잡한 복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꺽!"

 

 대차게 트림까지 하고 난 뒤에야 그녀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곧장 날이 선 목소리가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적당히 좀 하거라."

 

 헐! 누가 할 소릴!

 담월이 차마 큰소리는 내지 못하고 속삭이듯 항의했다.

 

 "이봐요! 그쪽이야말로 좀 적당히 하세요."

 

 "무얼 말이냐!"

 

 "내가 그렇게 시끄럽게 군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눈치를 주냐고요!"

 

 "무어라?!"

 

 "이 정도 소리도 안 내고 어떻게 지내냐고요. 바로 옆자리라서 좀 크게 들리는 걸 가지고 왜 자꾸 시비예요! 왜요, 제 숨소리는 안 거슬리세요?"

 

 참아왔던 억울함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담월의 씩씩거리는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 남자가 바라보았다.

 

 "정말 염치가 없는 여자군."

 

 "아니, 그리고. 아까부터 왜 자꾸 반말이세요?"

 

 남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담월 역시 지지 않고 남자를 쏘아보았다.

 

 그때 마침 승무원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담월이 냉큼 자는 척을 했다.

 남자 역시 태연한 얼굴로 책을 보는 시늉을 했다.

 

 잠시 둘러보던 승무원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담월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던 남자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나도 흥이다, 흥!'

 

 담월이 곧장 남자에게 등을 보이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보란 듯이 꿀잠에 빠져들었다.

 

 이후로도 둘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비행하는 내내 두 사람의 신경전은 계속되었다.

 쉴새 없이 눈치를 주는 남자에게 담월이 태연하게 딴청을 부리며 맞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적대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마침내 인천에 도착했다는 기내 안내 방송이 나오고 나서야 담월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렇게 나의 호강도 끝이 나는구나."

 

 아쉬운 마음에 그녀의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무료로 제공되는 기내 용품이 꽤 많았다.

 

 "한살림 제대로 장만하는구나, 크크크."

 

 그녀가 괴상한 소리로 웃으며 짐을 챙겼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만두면 좌석까지 챙겨갈 태세군."

 

 그렇지. 또 시비를 거셔야겠지.

 남자의 비꼬는 말투에 담월이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아, 네네. 차마 비행기는 못 가져가고 그쪽 말처럼 의자라도 뜯어가야겠네요."

 

 "말버릇하고는. 쯧쯧쯧."

 

 오, 이젠 내 말투까지 거슬리신다?

 담월이 일부러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염려 마세요. 그쪽 의자까지 욕심내지는 않을 테니까."

 

 깐죽거리는 그녀에게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들었다.

 담월 역시 매섭게 노려보는 것으로 응수했다.

 한 번을 지지 않고 대드는 모습에 남자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대한제국 사람이더냐?"

 

 "이 사람이 근데 끝까지 반말을! 그래, 나 대한제국 사람이다. 그런 당신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길래 그렇게 예의가 없는 거야?"

 

 참다못한 담월이 턱을 치켜들며 따졌다.

 인권 변호사 일을 하면서 상당히 거칠어진 그녀의 성격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두 사람.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칼날이 수차례 교차했다.

 때마침 남자의 일행인 정장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들어섰다.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던 남자가 그녀의 옆을 지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두 번 다시 마주칠 일 없길 바라거라."

 

 그러더니 곧장 사내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가버렸다.

 순간 어이가 없는 얼굴을 한 채 굳어 있던 담월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외쳤다.

 

 "아니, 뭐 저런 싸가지가 다 있어?!"

 

 

 

 ***

 

 

 

 공항을 벗어난 차들이 빠른 속도로 도로를 달렸다.

 수많은 차량들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고급 승용차가 보였다.

 그 안으로 휘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게 그냥 황실 전용기를 이용하시지 그러셨습니다, 전하?"

 

 앞 좌석에 앉아 있던 택원이 뒤쪽의 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동하는 내내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였다.

 

 "신경 쓸 거 없다."

 

 휘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당돌한 여자군.'

 

 대한제국 사람이라면서 황태자인 자신을 몰라보다니.

 아무리 자신이 노출을 자제하며 살았다고는 하나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대한제국 내에서 인지도를 따지자면 황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였다.

 비록 차가운 인상이지만 쉽게 잊힐 외모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중들은 그런 자신을 차가운 황태자, 즉 '차황'이라고 칭하며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혹시, 일부러 모른 척 한 것인가?'

 

 의외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감히!

 

 눈을 부릅뜨고 대들던 그녀가 떠오르자 휘의 미간이 더욱 심하게 구겨졌다.

 

 "가시면서 이거 좀 보시지요."

 

 "무엇이냐?"

 

 택원의 말에 휘가 고개를 돌렸다.

 곧 그의 앞으로 작은 서류 뭉치가 내밀어졌다.

 

 "이번 간택에 올라온 처녀단자입니다."

 

 택원의 말에 휘가 관심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됐다. 그냥 적당히 거절하면 될 일이다."

 

 "그래도 한 번 보아주시지요. 대신들의 체면도 그렇고 절차상 한 번은 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제야 마지못한 휘가 서류를 받아들었다.

 그 안에는 간택에 참여한 처자들의 사진과 간단한 프로필이 담겨있었다.

 마치 잘 포장된 상품 카탈로그를 보는 것 같았다.

 

 휘가 무심한 얼굴로 서류를 대충대충 넘겼다.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 딱 질색인 그였다.

 그렇게 마지막 장을 막 넘기려던 순간.

 

 "음?!"

 

 갑자기 휘의 눈이 커졌다.

 택원이 의아한 얼굴로 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전하?"

 

 곧 휘의 한쪽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우연히 스칠 인연이 아니었나 보군."

 

 내내 굳어있던 휘의 얼굴이 어느새 활짝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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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저 인간들한테 이 나라를 맡길 수는 없어 2017 / 7 / 21 305 0 4130   
9 나도 한가한 사람은 아니다 2017 / 7 / 21 317 0 7462   
8 듣보잡이로구나 2017 / 7 / 20 313 0 4885   
7 정말 가관이구나 2017 / 7 / 20 304 0 5607   
6 궁으로 가자 2017 / 7 / 20 318 0 4656   
5 황제 폐하 납시오 2017 / 7 / 19 319 0 7434   
4 매력들을 불러 모으는 수밖에 2017 / 7 / 18 304 0 4228   
3 마음에 쏙 드는 생각을 해냈구나 2017 / 7 / 18 314 0 4698   
2 그대들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2017 / 7 / 17 315 0 5083   
1 두 번 다시 마주칠 일 없길 바라거라 2017 / 7 / 17 578 1 8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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