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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달빛을 쫓는 마법사
작가 : 바람빛달
작품등록일 : 2017.7.13

[환생물/환골탈태/흑막남주/다정한미친놈]

마법학자였던 엘리제 오데이른은 100년 후 다시 엘레나 그란디아로 환생했다. 죽음에 대한 단서도 없고 왜 환생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엘레나가 한 선택은 하나였다.

이번 생은 즐기자. 즐기며 노는거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꿈속에 100년전 남사친 리베리오가 찾아온다. 찜찜함을 떨쳐낼 수 없었던 엘레나는 리오의 흔적을 쫓고, 마침내 엘레나의 앞에 리베리오가 나타나는데...

“내가 엘리제라는 거 어떻게 알았어?”

리오를 추궁하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엘레나로 태어난 이후 가장 크게 감정표출을 하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너라는 걸 알고 있었어.”

슬금슬금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다. 더 이상 물으면 안 될 것 같으면서도 엘레나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는데?”
“계속 너를 기다렸으니까.”

“너 없이 혼자 살아갈 수 없었어.”

전우애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리오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이런 사이 였어?

 
마탑의 마법사
작성일 : 17-07-22 22:05     조회 : 336     추천 : 0     분량 : 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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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도 태연한 엘레나의 말에 말문이 막혔는지 남자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제가 이래봬도 만만한 꼬마가 아니라서 제 몸 하나 지킬 방도는 만들어 뒀거든요.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일레민 나무의 잎을 잔뜩 따와서 몰래몰래 만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특히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듀랜트 경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치료제 이후 다양한 약을 만들었던 엘레나는 절대로 독약을 만들지 않았었다. 자신의 몸에 늘 가지고 있는 이 작은 병에 들어있는 독약 하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몇날며칠을 몰래몰래 고생하며 만들었던 약이 드디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싶어 엘레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병을 쥔 손을 뻗었다.

 

 “더 다가오면 이 병을 깨트릴 거예요. 미리 경고하는데 이건 아주 강한 독이예요. 나는 해독제를 이미 먹었지만 당신은 곧바로 죽게 되겠죠. 퍼지는 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거든요.”

 

 이미 해독제를 가지고 있는 엘레나에겐 통하지 않을 독이었지만 엘레나가 늘 품고 다니는 독은 엘리제의 걸작이라고 할 정도로 손꼽히는 독이었다. 독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엘리제의 공간에 불쑥불쑥 찾아왔던 리오 한 사람 뿐이었지만.

 

 만약 손에 쥐고 있는 병을 깨트린다면 피해가 크겠지. 저택에 있는 사람들은.. 뭐 대부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엘레나는 가능한 평범하고 조용한 해결을 원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죽여라.”

 

 자신의 주변엔 왜 저렇게 극단적으로 꽉 막힌 사람들 밖에 없는 걸까. 엘레나는 침대 위에 단정하게 앉아 한쪽 손으로 턱을 받쳤다. 불만스럽다는 감정을 잔뜩 드러낸 것이었다.

 

 “죽는 것 보다 어때요? 저랑 거래 한번 해볼래요? 일단 죽고 나면 후회할 걸요?”

 

 사실 엘레나에게 찾아오는 밤손님은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겪는 상황이라 좀 긴장한 것뿐이었다.

 

 사람은 계속해서 자극에 노출되면 무감각해진다. 엘리제 역시 여러 번 상황을 마주하니 점점 태연해져 갔다. 엘리제의 이름이 점점 유명세를 타자 자신의 조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암살자를 보내왔던 것이다.

 

 물론 그 암살자는 반은 자신이 해치우고 나머지 반은 리오가 해치웠었다. 마법사의 탑 안쪽으로 거처를 옮기면서는 조용해졌지만. 덕분에 이렇게 침착하게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혹시 당신은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해요? 다르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할래요? 당신을 도와줄게요.”

 

 말을 하다 보니 무슨 종교집단 같았지만 엘레나는 애써 그 사실을 무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지금 하는 행동이 무모한 일임은 알고 있다. 눈앞의 저 남자가 언제 마음이 변해 엘레나를 해칠 지 알 수 없으니까. 마법진이 정말로 작동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혹시 일레민 나뭇가지로 그린 게 효과가 있었던 건가.

 

 “생각 있어요? 지금 월급은 얼마예요? 제가 더 나은 조건으로 고용할 수 있는데.”

 

 엘레나는 여전히 배짱을 부렸다.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었지만 엘레나의 눈엔 분명히 앞의 남자가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마법사인가?”

 “비슷해요.”

 

 그래, 비슷하지. 마법사는 아니야. 엘레나는 다시 속이 쓰린 진실에 르니아 여신을 저주했다.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지?”

 “일단 당신에 대해 말해주세요.”

 

 사실 그냥 죽여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엘레나는 신경이 쓰였다.

 

 저 눈이 리오와 닮아서인 것 같다. 빛이 없는 어두운 방 안에서 보니 저 남자의 눈은 리오와 똑같아보였다. 상처받은 것 같이 가라앉은 분위기도, 붉은 색도. 다시 리오를 떠올리자 엘레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한 쪽 주먹을 꼭 쥐었다.

 

 리오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 떠난 후 5년간 단 한 번도 엘레나의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무덤가라도 찾아와달라고 시위하는 걸까. 나쁜 놈.

 

 엘레나는 다시 무럭무럭 샘솟기 시작한 리오의 생각을 떨쳐내고 다시 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당신은 이름이 뭐예요?”

 “오렌.”

 “그래요 오렌. 내가 도와줄게요. 동생이 잡혀있다고 했죠?”

 

 오렌은 짧게 긍정했다. 동생이 잡혀있어서 어쩔 수 없이 암살길드에서 일하는 신세. 딱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한 오렌의 사정은 엘레나가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용이 아니라 정말로.

 

 엘레나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풀어헤친 머리를 단정히 한 쪽으로 빗으며 화장대 쪽으로 다가갔다.

 

 “방법은 두 가지예요. 돈을 가지고 가서 풀어달라고 요구하거나 몰래 빼돌리는 것. 물론 전자는 실패확률이 더 높아요. 그러니까.”

 

 서랍 안에 있던 가위를 집어든 엘레나가 긴 머리카락을 바싹 잘라 오렌에게 건네주었다. 풍성한 머리카락이 엘레나의 한 손에 가득 잡혔다.

 

 “일단 제 암살 건은 성공 했다고 한 뒤 동생을 보여 달라고 하세요.”

 “……괜찮나? 머리카락을 그렇게 잘라도.”

 

 오렌은 엘레나의 돌발행동에 놀랐다. 귀족영애로 보이는데 행동이 서슴없었다.

 

 “어차피 금방 자라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중간하게 잘라 가면 믿지 않을걸요.”

 “…….”

 

 침묵하는 걸 보니 오렌도 엘레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야 나중에 마법 약으로 기르면 된다. 지금 엘레나가 하려는 건 일종의 투자인 셈이니 잘려나간 머리카락 정도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동생을 보게 된다면 몰래 동생에게 해독약을 먹이세요. 여의치 않으면 그냥 동생에게 부어버려도 괜찮아요. 그 후에 독을 풀면 거기서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어때요, 괜찮은 거래 아닌가요?”

 

 저대로만 된다면 길드 하나가 박살나겠지만 엘레나는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끼고 있었다. 일단 자신에게 밤손님이 찾아왔다는 건 이번 한번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는 소리와 같았다. 그러니 하나라도 줄이는 게 오히려 유리했다.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려고 하는 겁니까?”

 

 엘레나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는지 오렌의 태도가 달라졌다. 엘레나는 여전히 태연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오렌도 나중에 제 일 하나만 도와주면 돼요.”

 “어떤 일 말씀이십니까?”

 “일종의 호위? 그란디아 가의 기사들은 엄밀히 말해 내 사람이 아니니까요. 마음대로 데리고 나갔다간 아버지께 혼날 게 분명하잖아요.”

 

 오렌은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엘레나를 멍하게 보고 있었다. 엘레나는 개의치 않고 아무렇게나 잘린 머리카락을 대충 추스른 뒤 마법 약을 찾기 위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뭐 내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대신 살아남는 건 오로지 당신 능력에 달려있겠죠. 암살자였던 과거를 청산하고 살고 싶다면 떠나도 좋아요.”

 “…….”

 “아, 그래도 성공하면 성공했다는 말은 전해줄래요? 궁금해서요.”

 

 이건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독이라며 엘레나는 걸음을 옮겼다. 오렌에게 가까이 다가간 엘레나가 오렌과 눈을 마주했다. 가까이서 본 오렌의 눈동자는 적갈색이였다.

 

 고동색 머리에 적갈색 눈동자라니. 붉은 눈에 은발이었던 리오와 전혀 닮지 않았는데 역시 아까는 착각에 불과했나보다. 꿈속에서 만난 리오의 모습을 생각하다보니 잠시 헷갈린 듯 했다. 엘레나는 작은 병 여러개를 오렌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안개를 일으킬 수 있는 탈출용 마법약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돌아오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럼 기다릴게요. 꼭 무사히 돌아와요.”

 

 마지막으로 두둑한 금화주머니까지 챙겨준 엘레나는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볍게 창문을 넘는 오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 독약을 떠나보냈으니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머리를 자르며 엘레나는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아버지와 공방전을 벌이며 그놈의 황태자비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갖은 추태를 부렸던 탓이었다.

 

 평민이나 입고 다닌다고 손가락질 받을 옷을 자주 입고 다니고 그 몰골로 일부러 아버지의 손님 앞에 나선 적도 있었다. 심지어 누더기같은 옷을 구해입은 적도 있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 황태자 쪽에서 포기하거나 아버지가 백기를 들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란디아 가의 영애가 이상하다는 소문은 착실하게 났음에도 오히려 황태자비로 맞이해야한다는 뜻을 더 거세게 밀어붙이니 엘레나 쪽에서 먼저 질려버렸다. 황태자씩이나 되어 적이 많은 듯하니 그런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아가씨!”

 

 어젯밤 일로 늦잠을 잔 엘레나는 무언가 먹을거리를 찾으러 주방으로 향하던 길에 자신을 황급히 붙잡는 손 때문에 멈춰 섰다.

 

 “아, 듀랜트 경.”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뭐가, 아. 이거요?”

 

 본격적으로 마법 약을 만들기 시작하며 뒤늦게 발현된 엘레나의 재능을 반기던 그란디아 가의 사람들은, 혹시 엘레나가 위험한 짓을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으로 엘레나의 방에 자주 기웃거렸다. 때문에 엘레나가 몰래 일을 벌일 시간은 모두가 잠든 밤 뿐이었다.

 

 그리고 어젯밤은 써버린 독약을 몰래 만드느라 머리카락을 위한 약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엘레나가 태연하게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하자 듀랜트 경은 울화통이 터지는 듯 했다.

 

 “어제 일이 좀 있었거든요. 말끔하게 마무리 지었으니까 걱정 마세요.”

 “아가씨!”

 

 이번엔 에바였다. 엘레나는 머리카락을 자른 일이 그렇게 큰일인가 싶었다. 귀족 아가씨는 긴 머리여야한다는 법이 있나? 엘리제였을땐 대부분 단발이었는데. 다른 이유는 없고 머리카락을 자주 태워먹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예요?”

 “기를 거야. 내일이면 원상복구 해놓을 테니까 오늘은 그냥 봐줘.”

 “절대로 안 돼요. 그동안 아가씨가 이상한 옷을 입을 때마다 얼마나 속상했는데 머리까지..”

 

 결국 엘레나는 에바의 손에 이끌려 초토화된 머리를 다듬게 되었다. 배고프다고 투정을 부리던 엘레나의 입에 작은 빵을 물려준 에바는 쉴 새 없이 엘레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어수선한 거야?”

 

 입안에 빵을 우물거리며 다 먹은 엘레나는 여전히 부산스러운 에바에게 물었다.

 

 “아가씨께 손님이 오실 거예요.”

 “손님? 누구?”

 

 갑자기 에바는 입을 꼭 다물었다. 에바의 분위기를 보니 그리 달갑지 않은 손님인 것 같았다. 엘레나는 호기심에 계속 재잘거리며 말을 붙였지만 에바의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다 됐어요.”

 “고마워.”

 

 아침의 몰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버린 엘레나가 거울 속에 들어 있었다. 짧아진 머리를 틀어 올려 화려한 장식으로 가렸기에 머리길이는 넘칠 정도로 잘 가려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엷은 분홍빛 드레스를 입은 엘레나는 익숙해질 때까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던 '귀족영애다운 걸음'을 옮기며 응접실로 향했다.

 

 엘레나는 커다란 문을 열어주는 기사에게 짧게 감사인사를 한 뒤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다짜고짜 자신의 손을 덥석 잡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금발에 밝은 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젊은 남자였다. 깜짝 놀란 엘레나가 호박색 눈동자를 크게 뜨며 곤란하다는 듯 손을 떨쳐냈다. 이건 왠 거지같은 상황이지?

 

 “실례했습니다, 그란디아 영애. 저는 마법사의 탑에서 나온 콜린 브라운 남작입니다.”

 “네 브라운 남작님. 무슨 일로 오셨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엘레나는 다시 자신을 과보호하려는 듀랜트 경을 손짓으로 슬쩍 물렸다. 마법사의 탑에서 왔다는 걸 보면 이 남자는 마법사인 것 같았다.

 

 엘레나가 많지 않은 수의 마법 약들을 풀어놓는 탓에 직접 그란디아 백작 가에 찾아와 마법 약의 제조자를 알려달라고 난리를 피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동안 그런 일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 중엔 마법사도 섞여 있었나보다.

 

 얼마나 몸이 달았으면 마법사의 탑에서 직접 왔을까. 직접 마법사가 찾아온 이상 아버지도 거절하기 힘들었겠지.

 

 “영애가 직접 만든 마법 약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역시 그렇구나. 엘레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앞의 남자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맹하고 순해 보이는 데 왜 이런 사람이 대표로 온 건지 모르겠다.

 

 “저는 영애께 개인적인 거래를 제안하기 위해 왔습니다. 이대로 가면 영애를 찾는 사람이 많아질 테니까요. 저희 쪽에서 마법 약의 제조를 전적으로 맡고 있다는 소문을 내면 훨씬 부담이 덜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확실히 저대로만 진행된다면 솔깃한 제안이기는 했다. 점점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란디아 백작가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러나 엘레나는 밀려드는 의문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요?”

 “아버님께서 항상 따로 들여오는 곳이 있다고 핑계를 대셨으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저희 쪽이야 위드모어를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직접 찾아온 것이고요.”

 

 진실을 끝까지 막을 수는 없는 법이라 엘레나는 적당한 때가 되면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다 터놓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암살자까지 맞은 상황에서 그 사실이 알려지면 불리해 지는 건 엘레나였다.

 

 “그런 이유라면 솔깃하긴 하네요. 그쪽의 조건은 뭔가요?”

 

 여기서 자신이 더 불리해지는 것을 추호도 바라지 않는 엘레나는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여유로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영애의 거래에 일체 손대지 않겠으니 마법 약들의 제조법만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영애의 제조법은 귀한 자산이 될 겁니다.”

 “…….”

 

 몸이 달았는지 스스로 저자세로 나오는 브라운 남작의 모습은 허탈할 지경이었다.

 

 그런 거라면 뭐 마지못해서라는 듯 들어줘야지. 어차피 저쪽에서 알고 있는 마법 약에 첨가물을 조금씩 더 섞었을 뿐이니까.

 

 엘레나의 제조법에는 빠져 있는 것이 있으니 마법사의 탑에서 본격적으로 마법 약을 만들게 되면 훨씬 월등한 품질의 약을 생산할 것이다. 그러나 엘레나는 다음으로 이어진 남작의 말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4대 로이스 임기 말에 모두 소실되어버린 자료를 복구하느라 분주한 저희들을 좀 도와주십시오. 모자라신다면 대가는 섭섭지 않도록 지불하겠습니다.”

 “잠깐만, 잠깐만요. 지금 뭐라고 했나요?”

 

 살벌하게 웃는 엘레나의 미소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브라운 남작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게, 모든 자료가 소실되었다고..”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절로 떨리는 손에 힘을 꽉 준 엘레나는 분을 이기지 못해 탁자를 쾅 하고 내리쳤다.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 브라운 남작을 무시한 엘레나는 누구인지 모를 상대에게 감정을 분출시켰다.

 

 “이런 머저리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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