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0분 뒤면 내가 그렇게나 가고 싶어 어린 시절 목 놓아 울었던 고향이란 곳에 도착하게 된다.
14시간동안 내가 이 기내에서 눈 한번 붙이지 못 한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정말 한 달이 지나면 꼬박 11년 만이였다.
아직까지는 무섭고 불안한 마음이 더 크지만 그래도 너무나 그리워했던 곳이 아니던가
내심 이 땅에 앞으로 10년 뒤에도, 아니 평생을 돌아올수나 있을까란 확신이 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
똑 똑...
서재 문을 살며시 노크하는 소리에 미간에 주름이 살짝 들어간채 왼쪽 손목을 들어 시계를 내려다 봤다.
밤 11시가 조금 안되는 시간이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문을 열었지만 왠지 가슴 한 구석이 심하게 요동쳤다.
그럴만도 한 것이 저녁 8시 이후부터는 왠만한 큰 일이 아닌 이상엔 자신의 시간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크게 혼을 날 게 뻔했으니 말이다.
서재 문을 조심스레 한 뼘쯤 열었더니 문 앞에 유모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내 눈을 올려다 보며 말문을 열었다.
" 도..련님"
" 대체 이 시간에 왜? 무슨... 일 있어요??"
유모의 떨리는 목소리까지 그대로 받아들은 나는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수있었다.
고요한 잠시의 정막으로 들리는건 너무 긴장한 나머지 침이 목젖으로 넘어가는 소리였다.
" 회장님이 위독하시다고 사모님이 연락이 왔습니다. 빨리 채비하시고 바로 돌아가셔야 할것 같아요 도련님"
유모는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눈가의 주름사이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알겠어요.. 바로 준비할께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을 닫았지만 몸은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긴 한숨을 내쉴수록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에 오히려 힘이 더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오만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좋아해야 하는건지 두려워 해야하는건지....
이게 어제 저녁의 일이였다.
유모와 박비서님은 착륙한다는 방송을 듣고나서야 내릴 채비를 하고있는지 조용하던 뒷 자석에서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있었다.
***
인천공항 입국장 앞에는 무슨 아이돌 스타라도 오는 모양인지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들이 , 학교수업은 이미 관심밖이에요~라고 광고라도 하듯 너도나도 교복차림의 여고생들이 뭐하나씩 손에 들고 인산인해를 이루며 자기들끼리 수다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입국장으로 나오는 인파 사이로 누군가 얼굴만 쏙 내밀었다 들킬세라 다시 종적을 감췄다.
" 아 놔~ 진짜 돌겠네!!"
검은색 벙거지 모자에 누가봐도 족히 2미터는 될듯한 검은 마스크를 한 남자가 선글라스를 긴 검지 손가락을 고쳐 올리며 자기보다 한 참이나 작은 여자 앞에서 작은 목소리로 수선을 떨고 있었다.
" 너 솔직히 말해봐!! 진짜 니가 흘린거 아냐??"
" 앙~ 오빠 무슨 소리야? 저도 정말~ 잘 단속하고 온 거란 말이야~"
애교가 잔뜩 섞인 콧소리로 앙탈을 부리듯 앵겨 붙으니 귀찮다는 듯 한 쪽 손으로 여자를 떼어놓느라 어지간히 애쓰는 모양이다.
"야, 안되겠어 스캔들 터진지 얼마나 됬다고 또 걸리면 나 진짜 대표한테 한 소리 듣는게 아니고 아예 일거수 일투족을 다 감시할게 뻔하다고~
너 먼저 빨리 나가!! 얼른~~!!"
억지로라도 일행인 여자를 입국장 문 밖으로 떠 밀려고 하고있고 여자는 다리에 온 힘을 주고 버티고 있었다.
" 아~ 싫어, 싫어! 오빠 같이 나가요~~ 우리 못알아 볼꺼야~ 제발~~~아앙~~"
점점 심해지는 비음섞인소리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곁눈질을 하며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가릴거 다 가렸어도 심하게 눈에 띄는 두 사람들의 행동이 어이가 없어 한심한듯 쳐다보며 막 여자의 옆을 스쳐 지나갈때 쯤이였다.
" 소희야 제발~!!"
그 소리에 나는 발길이 자연스레 멈춰지고 뒤돌아 보았다.
뒤돌아본 시선에 같이 있던 남자가 의아한 눈빛으로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쳐다봤지만 아랑곳않고 그의 앞에 있는 여자의 얼굴로 바로 시선을 옮겼다.
딱봐도 작고 하얀얼굴에 미끄러질듯한 날렵한 턱선에 선글라스를 꼈지만 오똑한 코는 숨겨지지 않는 것을 보니 꽤나 미인일거라는 짐작은 할수 있었다.
그리곤 바로 고개를 돌리고 가던 길로 발을 옮기려하는데 뒤 쪽에서 중 저음의 목소리 들어왔다.
" 어이 형씨!!! 잠깐만 거기 딱 서봐!!"
생김새와 다르게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신경쓰였지만 무시하고 발 길을 재촉했다.
얽혀서 좋을게 없을건 뻔했기 때문이다.
" 이봐? 내말 안들려?
발걸음에 속도를 더 내야했다.
내 어깨를 움켜쥐었던 그의 손 아귀가 얼마나 센지 왼 쪽 어깨가 그대로 멈춰져 걸음도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다.
"아..."
나도 모르게 나온 신음 소리에 앞서가던 유모와 박실장님이 그제야 뒤를 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뛰어왔다.
" 도련님!! 당신 뭐야?"
박실장님이 내 어깨를 제지하고 있던 손을 바로 제압하며 뿌리치고 내 양 어깨를 보호하듯 잡았다.
남자가 도련님이란 소리에 흠짓 놀란 눈치였다.
" 아 실장님 제 실수입니다. 잠깐 비켜주세요"
왼쪽 어깨를 잡은 실장의 손을 툭툭 가볍게 두드리고 손을 내 어깨에서 내렸다.
자기 여자를 흝혀 보는게 상당히 기분이 나빴던게 틀림없었다.
먼저 사과를 해야 이 상황이 빨리 끝날수 있을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실장님껜 앞으로 나오지말라고 손으로 제스쳐를 취하고 한발 앞으로 나와 슈트 단추를 하나 잠가메고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 죄송합니다. 오해하신거 같은데.. 낯익은 이름이 들려 잠깐 되돌아 봤을뿐입니다 . 기분 나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그럼 이만 바쁜 일이 있어서..."
이정도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엔 또 한번 가던 내 손목을 잡아 버리는게 아닌가?
" 이 형씨 이거 웃기네~ 왜 사람말을 안듣고 이러는거야? 누가 기분 나쁘데?"
' 뭐지 이사람?'
한국에 처음와서 마주한 사람이 왜 하필 이런 사람인지 좀 당황스러워졌다.
'왠지 얽히면 안 될거같다 이사람...'
손목을 힘차게 뿌리쳤다.. 헌데 떨어져 나가질 않는다...
" 뭐...정 미안하면... 나 좀 여기서 빼줘요! "
'뭐?'
너무 당황한 나머지 할말이 딱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뭐라고 하는건지 이사람 행동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수호오빠 무슨소리야? 오빠 나가면 난 어떡하라고? 안돼~"
일행인 여자가 앙칼지게 말하며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않은 이 남자의 다른 한 쪽팔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내 인생 21살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여서 그런지 순간 머릿속이 새 하얗게 되어버린것 같다.
***
한달 반 전쯤에 나보다 8살이나 연상인 톱스타 이혜수와 몰래 자동차를 사러 갔다가 파파라치에게 들통나 곤욕을 치룬적이 있었다
별로 내 취향의 여자는 아니였거니와 연상이라면 솔직히 진저리가 난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국내에서 난다 긴다하는 국내 정상급 톱 배우들이 대쉬 한 번쯤 안해본 사람 없었던 터다.
내가 작업 걸어도 조금은 튕기는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아주 굶주린 여우들처럼 날 보며 침을 질질 흘리는게 정말 꼴불견이였다.
화면에선 조신하고 순수한 배역을 도맡아 연기했던 이혜수 역시 이것 저것 선물공략하며 자꾸만 음흉한 얼굴로 애교를 부리는 모습은 차마 나 혼자 보기는 아까운 정도 였다.
하지만 이런 능구렁이 누님들 덕을 본건 확실하다.
일 년도 안되서 정상급 스타로 우뚝 선건 사실이니까...
남자 연예인의 평균키보다도 큰 194cm 지만 유난히 길게 뻗은 다리와 작은 얼굴 덕인지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기에 어디가도 눈에 띄는 이 키가 한때는 컴플렉스 일때도 있었다.
진하디 진한 검은색 눈동자, 짙고 풍성한 속 눈썹이 그 무게를 말해주듯 눈을 치켜올렸을때 속 쌍커플위로 깊은 선 하나가 더 해져 우수에 찬 눈을 보면 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것이다.
높은 코에 얇지만 시원스런 긴 입술과 하얀 건치가 다 보일정도로 웃으면 아직 미성년자 임에도 불구하고 섹시하기까지하니 내놓으라하는
탑 여배우들이 탐낼만한 모델 강수호였다.
기어이 고급 외제차를 사주겠다는 이혜수를 따라 나갔다가 사진이 찍히는 바람에 한 달간 집에 나오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로 기자들이 집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잠잠한 틈을 타 조용한 휴양지라도 가고싶었던 터였는데, 대표도 신경쓰였는지 괌에서 일주일 쉬고 오라고 해서 간만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던 찰라였다.
수영신나게 하고 잠시 썬베드에서 잠을 청할 요령으로 깍지 뀐 손을 베게 삼아 머리밑에 이자마자 누가 내 몸을 껴안는게 아닌가?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국민 여동생 걸구룹 초아의 리더 소희가 내앞에서 두 눈을 감고 입술을 쭉 내밀며 다가오려고 하고있었다.
다가오는 소희 입술을 손 바닥으로 밀쳐내면서 짜증이 머리 끝까지 올라왔다는 표정이 금세 얼굴에 드러났다.
" 너 대체 뭐야? 언제 여긴왔어? 하..."
한숨만 나왔다.
소희는 나와 같은 소속사 대표의 조카이다.
철없는 18살 펜심으로 삼촌을 들들 볶았을게 눈으로 안봐도 훤했다.
내가 위험했다.
앞 뒤 생각안하고 달려드는 성격이란걸 잘 아는 터라 여기에 있자니 편두통이 몰려 오는것 같았다.
휴가는 고사하고 잘못하다가 인생이 한 방에 곤두박질 할수도 있을거란 생각에 바로 짐을 싸서 이틀만의 자유는 물거품이 되어 입국 했는데 저렇게 기자들이 몰려있다는건 정보를 누가 일부러 흘렸다는 말밖에는 생각할수가 없다.
바로 내 앞에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은 양소희!!!!
철거머리처럼 달려들어 혼자 몰래 빠져나가기도 벅차다.
들킬세라 조용히 소희를 떼어 놓기 바쁜데, 소희 뒤 쪽으로 조금 비웃는듯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스쳐 가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좀 독특한 느낌의 사내였다.
알아주는 패셔니스타답게 스타일이 독특한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눈이 돌이가는게 습관이 있었던 수호였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은 아니였지만 댄디하고 세련된 슈트는 딱봐도 금액이 대수롭지 않다는걸 알수있었고 바지주머니에 꽂아둔 손목 사이로 고급 외제차 한대 값도 더 나가는 시계가 살짝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잠깐 넋을 잃은 수호에게 더 끈적하게 소희가 엉겨붙는게 느껴졌다.
" 소희야 제발~"
떼어내려고 손이 분주하지만 시선은 그 남자를 놓지 않고 따라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남자의 발걸움이 멈추고 뒤돌아보는게 아닌가?
' 내 시선을 의식했나? 아님 내가 누군지 눈치 챈거 아냐? '
하고 뜨끔하는 순간 다시 고개를 돌려 가던 길을 가려는 모습이 무슨 슬로우비디오 처럼 느껴지면서 머릿속엔 왠지 저 남자가 여기를 탈출 시켜줄수 있을 거란 확신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 어이 형씨!!! 잠깐만 거기 딱 서봐!!"
'어라? 못들은 척하네? 이 양반이~?'
" 이봐! 내 말 안들려??"
놓칠세라 유난히 긴 다리 몇 발작 서둘렀더니 금방 잡을 수 있었다.
오른 쪽 어깨를 잡는 순간 넉넉한 사이즈의 옷이여서 그런지 요즘 핏을 강조해 대부분의 옷이 타이트한 반면 일부러 어깨에 힘을 주려는 듯 숄더패드가 얼마나 도톰했는지 실질적인 어깨를 잡는게 좀 오래 걸린단 느낌이 들었다.
"아.."
짧은 외마디가 들리길래 내가 힘을 너무 줬나 생각하는 찰라에 어떤 삼십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사람이 와서 내 손을 잡고 바로 꺽어 내렸다.
잠깐이지만 힘이 보통은 아닌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내가 잘못 들은건지 도련님이란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러고는 갑자기 죄송하단다.
눈 마주친게 저렇게 정중히 사과할 일인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난 저 사람이 소희를 쳐다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자신의 시선에 되통수가 따가워 돌아 본 줄만 알았지...
은근 기분이 나빴다 아무리 가려도 강수호 라는건 숨길수 없는 비쥬얼인데 꼴에 남자라고 자기가 보낸 시선에 뒤돌아 본게 소희였다니...
지나치는 모습이 살짝 옆모습이여서 몰랐지만 햇빛도 안보고 사는지 그대로 드러나는 살빛이 무슨 밀가루 같았다.
그룹네에 가장 흰 피부를 가진 소희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가까이서 보니 대한민국 남자 평균키도 미달인것 같다.
키만 좀 더 컸으면 여자 꾀나 울렸을거 같단 생각이 나면서 얼굴이 작아 유난히 커보이는 선글라스 너머에 있는 온전한 이 남자의 얼굴이 갑자기 너무 궁금해졌다.
그렇게... 만나졌다 나를 궁금하게 만드는 이 남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