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렇게 저를 부른 이유는요?”
여관 인근의 한적한 광장.
평일 오전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유동인구가 적은 것인지, 지나가는 사람은 코빼기도 없고 유하와 로시에가 거의 전세 내다시피 하고 있었다.
“아이, 유하 씨도 참~ 어제 길드에서 돌아오는 중부터 계속 침울해 있었잖아요! 제가 기껏 위로해줬는데에!”
로시에가 두 주먹을 움켜쥐고는 키지브라 하늘의 태양빛처럼 열을 올렸다.
파르마란스에서도 키지브라는 적도 인근에 가깝기 때문에 테라로사처럼 더운 편이다.
게다가 아르키메시아처럼 마법사관리국에서 대마도사들이 가장 덥고 추운 도시에 파견 나와 기온조절에 힘을 써 주는 것도 아니니 체감은 열대지방과 다름없다.
물론 아르키메시아도 인력부족 때문에 지금은 그럴 여력이 별로 없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로시에가 유하에게 화를 낸 것은 진심은 아니겠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그만큼의 열정이 묻어나왔다.
“제가 마법을 가르쳐드릴게요!”
“마법……을요?”
“네! 보나치 공항에서 곤란에 처한 절 구해주신 답례로!”
거꾸로 뒤집어진 접시의 단면 같았던 로시에의 입이 어느새 오목하게 올라왔다. 결의에 찬 그녀의 눈을 보아하니 싫다고 해도 가르쳐줄 기세였다.
“그러니까, 저는 엘리에게 배우겠다고――”
“흐응~! 거짓말 하면 나쁜 사람!”
그녀가 유하 가까이 와 스태프로 이마를 살짝, 콩. 하고 건드리고는 볼 안 가득 공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는 검지를 펴서 좌우로 흔들며 유하를 향해 혀를 찼다.
“쯧쯧, 제 눈은 못 속여요.”
“뭐, 뭐가요.”
여전히 허당기 넘치는 얼굴이긴 하지만 왠지 모를 그녀의 자신만만한 얼굴이 유하의 가슴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유하 씨, 엘스승님 좋아하죠? 엄청엄청엄청 사랑하죠?”
“네, 네, 네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여자가.
어제 얼핏 ‘좋아하는’까지 얘기했다고는 하지만 주어도 목적어도 없었는데, 설마 이런 백치의 여자가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볼 리가.
“죽을 만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고 싶지 않은 거잖아요. 부담주고 싶지 않은 거잖아요.”
“어, 어떻게 그걸――, 앗!”
“헤헤, 역시! 맞췄다, 맞췄어!”
그녀는 정확하게 유하의 마음을 눈치 채고 있었고, 그래서 유하는 자신도 모르게 인정하고 말았다.
뒤늦게 입을 막고 뱉은 말을 주워 담아보려고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이상은 뱉었던 그 말이 다시 삼켜질 리가 없었다.
“끄응……. 엘리에겐 비밀로 해주세요, 제발.”
유하가 눈을 반개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얘기하자 로시에가 꽤 음흉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오홍이~ 약점 하나 잡았고~!”
“뭐, 뭐라구요?! 이제 보니 바보가 아니라 영리한 악마였어!”
“하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제가 설마 그러겠어요? 유하 씨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인데! 하하!”
로시에가 배꼽을 잡으면서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웃는 와중에도 그녀는 무언가 아련한 과거를 생각하고 있는지, 눈가가 살짝 촉촉해져 있었다.
“……제가 사랑했던 사람도 제게 그랬었거든요.”
“아…….”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처럼 로시에의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내려가자 유하는 할 말을 잇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어제처럼 멱살을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었는데, 그녀의 안쓰럽게 쳐진 눈썹을 보니 그런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이를 만난 건 5년 전이었을 거예요. 제가 스무 살 때니까요.”
로시에가 근처에 있던 벤치에 살포시 앉았다. 유하도 로시에를 따라 옆에 앉고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파르마란스에는 아르키메시아보다 다양한 인종이 있어요. 많지는 않지만 이그드라실의 인종인 앙고리아나 투르피스, 스피리쳐도 있고, 우리처럼 인간도 있고. 인간 중에서도 아르키메시아인, 세브란티아인, 동쪽 끝 나라인 카파라카인까지, 없는 인종이 없죠.”
“아아, 확실히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건 공항에서도 느꼈어요.”
여태껏 설명충같이 뭘 얘기해도 쓸데없는 것까지 얘기했던 로시에지만, 이번만큼은 흘려 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유하였다.
“처음에 공항 근처 레스토랑에서도 보셨겠지만, 비스티안들도 있죠.”
유하는 그 레스토랑에서 봤었던 묘인족 웨이트리스와 주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견인족과 토인족(兎人族)들을 떠올렸다.
“비스티안은 다시 두 종류로 나뉘어요. ‘피스트’와 ‘퍼리’로요. 퍼리는 태초에 이 파르마란스 대륙에 살고 있었던 원주(原住)수인이고 피스트는 인간과 수인의 혼혈이에요. 유하 씨가 봤었던 묘인족은 피스트죠. 피스트의 외형은 퍼리와는 다르게 사람과 거의 비슷해요.”
생각해보니 그 묘인의 외형은 사람이었고 고양이 귀와 꼬리가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그에 반해 주방에 있던 수인족들은―물론 그 모습 전체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확실히 그 묘인과는 동떨어진, 짐승의 모습이 더 많았다.
“그럼 설마 로시에 씨는…….”
“아, 제가 사랑했던 사람은 견인족 피스트였어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하던 로시에가 사랑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막상 꺼내니까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유하를 쳐다봤다.
“아아.”
인간의 골격이나 외형이 어느 정도 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론 짐승이나 다름없는, 퍼리를 사랑했다고 하면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뻔했다.
유하는 그 묘인족 웨이트리스의 제법 매력적이었던 모습을 떠올리자, 피스트를 사랑한 로시에가 충분히 납득이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자신이 짝사랑하고 있는 사람 역시 피스트처럼 동물의 외형적 특징을 가졌으면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드래곤이지 않은가. 그 ‘뿔’이라는 것이 위화감이 들 정도는 아니라고는 해도 말이다.
“헤헤, 사실 이런 얘기 잘 안하는데 막상 하려니까 민망하기도 하네요.”
――로시에의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제아무리 천연스런 그녀라고는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면 쑥스럽기는 마찬가지인가보다.
“그이는 듬직했고, 어깨도 넓고, 잘생겼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강아지 귀가 너무나도 귀여웠어요. 후훗.”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리는 로시에의 모습은, 여태껏 진지하지 않은 모습만 보여줬던 것과는 반대로 매력적이었다.
마치 ‘사랑에 빠지면 예뻐진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퍼리의 또 다른 특징인 인간보다 튼튼한 몸과 강한 육체를 물려받은 그이여서, 제가 마법을 배우기 전까지 저를 부랑배들에게서 구해주기도 했었죠.”
“아, 피스트도 인간보다 신체능력이 뛰어난 거군요.”
“아뇨. 평균적으로는 그렇긴 하지만 퍼리보다는 아니에요. 그런데 그는 퍼리보다도 더 강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신체능력을 타고난 거죠. ……차라리 평범했더라면 더 나았을 지도 모를 텐데.”
“평범…….”
유하는 잘 얘기하고 있던 로시에가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것이 신경 쓰였다.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강한 것이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다. 힘이나 능력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세상을 사는 데에 유리하다고, 힘도 능력도 없는 것이 얼마큼 분하고 서러운 일인가를 최근 더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는 그였다.
“휴…….”
“…….”
작게 한숨을 내쉬는 로시에와 그런 그녀의 이상기류를 감지한 유하.
이윽고 그녀가 비밀을 고백하듯이 입술을 떼었다.
유하는 과연 로시에가 어떤 얘기를 꺼낼 것인가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었고, 마른 침을 한 번 꼴딱 삼켰다.
“……그이는 4년 전에 누군가에게 고용된 매그벤쳐들에게 살해당했어요.”
“살……해……당했다고요? 왜죠?!”
“인간들의 눈에 거슬렸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였죠. 피스트 주제에 매그벤쳐 여럿과 겨룰 수 있을 정도라니. 그들에게 얼마나 눈엣가시 같았을까요.”
유하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그것은 정말로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로시에가 그 피스트와 사랑‘했었던’ 사이라고 말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얘기한 것이기에, 그저 서로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헤어졌겠구나 싶었다.
그가 남들보다 신체능력을 타고난 것에 한탄한 것도, 로시에가 결국 그것 때문에 자신이 늘 지켜지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기 때문에 ‘평범했다면’이라는 말을 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가장 놀랍고 의문인 것은, 아무리 매그벤쳐가 돈을 받고 의뢰를 들어주는 직업이라고 해도 그런 살인청부까지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꽤 놀라신 듯한 얼굴이네요.”
로시에의 담담한 말투에 유하가 한 번 더 놀랐고, 대답 없이 그저 눈을 꿈뻑꿈뻑거렸을 뿐이었다.
“파르마란스에서는 그리 보기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오히려 흔한 일이라면 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죠. ……비스티안들의 인권이 땅속 끝까지 추락해있거든요.”
“대체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이 비스티안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그런 로시에에게 스스로 그것을 말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기분이 이해가 가기에,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기에 더욱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인권이 없다는 것에는 임금이 없다는 것도 포함되죠. 퍼리들은 아무리 노동을 해도 하루 밥 한 끼 먹을 돈도 받기 힘들어요. 그래서 대부분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인간의 가정이나 공장, 직장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인간을 주인으로 따르고 임금 없이 노동을 착취당하죠.”
“그런…….”
유하의 미간이 구겨졌다. 노동착취라니, 21세기의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로시에는 그런 유하를 보면서 고작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피스트들은……, 인간에게는 없는 그 매력적인 수인의 특징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성노예가 되거나 윤락가로 팔려가는 일도 많아요. 어제 봤던 묘인족 피스트는 운이 좋은 케이스예요…….”
“어제 그 묘인족을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도…….”
유하는 이후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 대신, 불끈 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물론 불법적 인신매매나 성노예, 그리고 살인청부 같은 일들은 랜디아 연합법상으로도 금지되어있기에 버젓이 이루어지진 않아요. 그랬다면 파르마란스는 해적들의 소굴이 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암암리에 비스티안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아요.”
“젠장, 누가 인간이고 누가 마인인지…….”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귀신도 괴물도 무엇도 아니다. 바로 인간이다. 그리고 유하는 지난 몇 년 간 그것을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느끼며 지냈었다.
“그럼, 로시에 씨가 마법을 배우게 된 이유는, 그리고 매그벤쳐가 된 이유는 비스티안들을 지켜주기 위해서인가요?”
“네. 처음에는 그이에게 지켜지기만 하는 게 싫어서 배우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가난하고 인권을 탄압당하는 비스티안들을 돕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 다른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비스티안을 데려와 해방시키고 싶어요.”
그녀의 얘기를 들은 유하는 자신이 어제 길드에서 보여준 모습이 그녀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왔을지 실감이 되었다.
로시에에게 있어서 엘리시아와 알레라곤과 함께 파티를 맺는 것이―비록 잠시뿐이라고 할지라도―얼마나 도움이 되는 일인지 유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알레라곤에게 치기어린 행동을 한 자신에게 다가와 위로해주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다.
“죄송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전…….”
유하는 자신이 그렇게나 혐오하던,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보고 판단하는 인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로시에에 대해 그렇게 행동한 이중적인 자신의 모습이 창피했다.
그리고 어쩌면, 알레라곤도 그저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고작 알게 된지 얼마나 됐다고.
“아녜요. 그럴 수 있어요.”
오히려 어른스럽게 유하를 위로하는 로시에. 그녀는 유하에게서, 그리고 엘리에게서도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점을 보았다.
“유하 씨. 알스승님에게 보란 듯이 보여줘 보세요. ‘나, 당신이 무시할 정도의 사람 아니야.’라고 말이죠.”
“로시에 씨……. 하지만 전…….”
아무리 노력해도 엘리만큼이나 강한 그에게는 닿을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니까.
“바보. 그런 쭈구리 같은 모습을 엘스승님이 보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엘리는 절 그저 친한 동료일 뿐이라고 생각할 걸요. 그리고 저는 엘리와 절대로 사랑할 수 없는――, 으읍?”
“흥, 고작 그런 말 할 거면 입을 틀어막는 수밖에.”
로시에가 마법으로 유하의 입을 꿰매듯이 닫아버렸다.
“제 얘기 지금부터 잘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