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에를 따라 간 곳은 우리가 있던 번화가 반대편 쪽의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나 있는 골목이 많은 곳이었다.
“엘리도 참, 이런 골목까지 왔었단 말이야?”
“저쪽이에요.”
로시에가 제법 눈에 띄지 않는, 한낮인데도 음침한 골목 쪽을 가리켰다.
“으악, 빨리 도망쳐……!”
그런데 부랑배로 보이는 5명이 피를 뚝뚝 흘리는 팔을 부여잡으면서 골목에서 뛰쳐나왔다.
기겁을 하며 도망가는 걸 보니 보나마나 엘리한테 당했구나 싶었는데,
“응……? 엘리는 주먹으로 때리면 때렸지 저렇게 피를 흘리게 뭔가로 찌르거나 하진 않는데…….”
“유하 씨도 참, 제가 말했잖아요. 갑옷을 입은 기사도 있다고요.”
엥? 그거 정말이었어? 대충 그럴듯하게 꾸며낸 말인 줄 알았는데.
―가만, 그렇다면 적어도 저 부랑배들이랑 한패는 아닌 거 아냐? 그 갑옷인가 뭐시기의 기사.
“스승니임~”
“엘리―! 우리 왔어! 여기서 대체 뭐하고 있는……, ――?!”
골목에 들어서자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철갑옷을 입은 사람이 엘리를 골목 벽에 몰아세운 모습이었다.
그것도 그녀가 곤란한 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는.
“엘리! ――당신이 그 갑옷 뭐시기야?!”
나는 곧장 칼을 뽑아 달려들 기세로 그를 향해 겨누면서 소리쳤다.
―근데, 어디서 본 듯한…….
“오, 왔군.”
벽에 손을 뻗어 기대고 있던 강철의 기사가 나와 로시에를 발견하고는 곧장 내 앞으로 다가와서 낮지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반가워. 나는 알레라곤이라고 하지.”
“알레라곤……? 아, 설마!”
―마법사자격 인증시험 때 검에 화염마법을 전이시킨 다음 압축시켜 광선검처럼 만들었던 사람이다!
“WQT때의 그 마검사?!”
“오, 이 친구는 나를 기억하는 군! 뭐, 원래는 마법사고 검은 그냥 심심해서 가지고 다니는 거긴 한데. 아무튼 아무래도 오해를 산 것 같은데, 미리 말해두지만, 저 꼬마아가씨가 부랑배들에게 겁탈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어서 좀 도와준 참이야.”
알레라곤이 자신의 어깨 너머로 엄지를 뻗어 뒤에 있는 엘리를 가리켰다.
“야! 쓸데없는 소리는 왜……, ――앗.”
“호오?”
엘리가 그를 향해 얼굴을 붉히다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알레라곤의 면갑에서는 감탄사가 살짝 흘러나왔다.
―‘야’? 내가 잘못 들었나?
“둘이 아는 사이야?”
“아, 아냐! 단지 구해준 빚으로 말을 편하게 하고 싶다고 그래서…….”
“나 참……, 그런 부랑배들 그냥 후딱 처리하지. ――설마 다친 건 아니지?”
그럴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겠지만 빚을 진 게 혹시 감당하기 힘든 부랑배를 만났기 때문은 아니겠지?
“아, 응. 다친 데는 없어.”
“다행이다.”
“미안, 걱정 끼치게 해서……. 아, 아까 화낸 것도 일부러 그런 건 아냐! 갑자기 당황스러워서 그랬……어.”
그녀가 민망하다는 듯이 시선을 피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정말이지……,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엘리가 무슨 짓을 해도 밉지 않을 정도로 귀여운 매력에 빠지고 만다.
“하하, 뭐야. 그런 것까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으니까.”
“으, 으응.”
그렇게 또 나도 모르게 엘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데, 문득 알레라곤의 시선이 느껴졌다.
―투구의 면갑에 의해 가려져있음에도, 그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알레라곤 씨는 설마 세브란티아 기사단의 기사인 건가요?! 오왕, 오와앙!”
왠지 모를 그의 시선에 괜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때마침 로시에가 알레라곤의 철갑옷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리면서 눈을 반짝였다.
“으음. 아닌데……. 근데 이 호기심 많은 강아지 같은 여자는 뭐지? 보통 인간은 아닌 듯하고. 차림새를 보아하니 마법사인가?”
알레라곤이 한 손으로는 면갑의 턱을 괴듯이 받치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스태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나저나 호기심 많은 강아지라니. 적절한 비유일세. 비글 같은 여자지…….
“본 그대로예요. 아르키메시아에서부터 우릴 따라왔어요.”
“유하 씨랑 스승님이 절 도와줬어요! 전 로시에라고 해요! 알레라곤 씨도 스승님으로 모실게요!”
“스승? 하하하! 웃기는 여자로군! 마법이 배우고 싶다면 언제든 가르쳐주도록 하지. 저쪽보다는 지금의 내가 나을지도 몰라.”
알레라곤이 당당하게 어깨를 쭉 펴고 팔짱을 끼면서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엘리보다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하다니. 저 사람도 WQT때의 엘리를 까먹은 건가.
하지만 엘리는 그의 말에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뭐,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정말요?! 완전 신난다아――! 유하 씨도 알스승님한테 배워요!”
“아……, 전 엘리한테 배우려구요. 아하하……!”
그야 당연히 엘리가 저 사람보다 훨씬 강할 테니까.
“아, 물론 알레라곤 씨의 광선검도 멋지고 꼭 배우고 싶긴 해요. 전 그저 엘리랑 친하니까 그게 편할 것 같아서……!”
“광선검……? 아아, WQT때 보여준 플라즈마세이버를 말하는 건가. 의외로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걸?”
“자, 자. 우리 아직 머무를 곳도 못 정했으니까 키지브라 시내로 갑시다아! 우후훗!”
로시에가 엘리와 알레라곤의 손을 각각 잡고 골목 바깥으로 나갔다.
“기, 기다려라! 이 철면피랑은――.”
엘리가 당황해하며 식은땀을 흘리지만 하회탈 같은 얼굴의 로시에는 천진난만하게 콧노래를 부를 뿐이었다.
거 참, 당돌하기도 하지. 저런 말도 안 되는 로시에의 붙임성이 내심 부러울 정도다.
어쩌면 저 바보녀가 세계 최강일지도……?
“아, 잠깐! 나만 차별하는 거예요, 지금?!”
과연 그녀의 비글적 성격을 감탄하고 있는데, 뒤늦게 골목에 나만 남겨두고 먼저 가버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뒤따라가서 로시에에게 불만을 늘어놓았다.
“어쩔 수 없잖아요, 유하 씨~ 팔은 두 개 뿐인 걸요?”
하, 지금 마법의 고수들만 두 명이나 만났다고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소린가. 가만 보면 은근히 고도의 심리전으로 나를 놀리는 거 같다니까?
저런 바보녀의 손에 별말 안하고 끌려가 주는 두 사람도 참…….
* * *
우리는 키지브라 시내의 적당한 여인숙을 찾아 방을 잡고는, 여태껏 못한 엘리의 점심식사를 사주기 위해서 나왔다.
호텔이나 고급 여관 같은 곳도 있었지만, 아르키메시아에서 살았던 집을 사느라 모아둔 돈을 대거 사용했기 때문에 금전적인 여유는 많지 않았다.
“우와~ 엘스승님이랑 같은 여인숙에 머물게 되다니, 얼마나 행복하게요~”
……젠장. 도대체가 목적을 알 수 없는 두 명이 우리의 여정에 딸려오다니. 한 명은 바보녀, 한 명은 얼굴도 모르는 갑옷남.
그렇게나 우리는 한가로운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얘기나 좀 하죠. 이왕 이렇게 된 거.”
“유하 씨, 저는 감자튀김!”
레스토랑에 들어오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감자튀김이냐…….
그놈의 감자튀김, 전생에 못 먹고 죽었나. 감자튀김 빠순이 같으니.
……뭐, 아까 공항 주변에서 그건 내가 산다고 해놓고 그러지 못하고 나왔으니 어쩔 수 없구만.
“엘리는?”
“……오징어 튀김.”
“나도 같은 거로 하지.”
알레라곤이 손바닥을 보이며 자연스럽게 ‘이유하가 쏜다’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 내가 쏜다.
“그건 그렇고 두 사람은 파르마란스까지 온 이유가 뭐예요? 동행시켜주는 입장에서 그 정도는 들어야겠는데.”
“으음……. 심심하니까?”
알레라곤이 엄지와 검지 사이로 턱을 받치며 대답했다.
―고작 심심해서……? 우린 그럼 심심풀이의 들러리인 거냐, 젠장.
“―라는 것도 있지만 역시 엘리시아를 쫓아왔다고나 할까. 관심이 있어서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레스토랑에 오면서 엘리가 그랬었지. 이 사람, 우릴 조사하고 다녔다고.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엘리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에 영 석연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아, 정말로 오해하지 말라고. 관심이 있다는 소리는 그저 ‘이성’으로서 라는 거니까.”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결백을 주장했다.
“오호오~ 알스승님……. 로맨티스트네여. 후훗.”
“이, 이, 이성으로서?!”
로시에가 손뼉을 맞대며 흐뭇한 얼굴로 알레라곤을 바라보았고, 나는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놀라 테이블을 탁! 하고 치고 말았다.
“하, 정말…….”
엘리가 팔짱을 끼고 콧방귀를 뀌고 눈에는 살기를 띠며 말했다.
“이런, 이런. 미움받아버린 건가. 그녀의 마음에 꽉 들어 찬 유하를 밀어내려면 노력을 많이 해야겠는 걸.”
“야!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고 그랬지!”
“아, 혹시 비밀이었던가. 난 벌써 서로 연인인 줄 알았지. 하핫, 미안, 미안.”
“에……?”
“유하! 아, 아니야! 나는 너를 이성으로서 좋아하지 않……. 아, 아니, 친구로서 너를 좋아하는 것일 뿐! 아무튼! 이 남자가 엘프 똥 닦는 소리 하고 있는 거다!”
“하하하하! 정말 반하지 않을 수 없다니까.”
엘리가 테이블 위로 번쩍 하고 올라가 알레라곤의 강철로 된 갑주를 멱살 잡을 기세로 소리쳤고, 알레라곤은 호탕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에, 엘리! 일단 알겠으니까 테이블에서 내려와…….”
일순간에 소란스러워진 탓에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들과 직원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았다.
엘리가 얼굴이 홍당무처럼 잔뜩 빨개진 상태로 입술을 사리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알레라곤 씨도 그만 놀려요. 저랑 엘리는 그런 사이……. ……아니니까요.”
“호오. 그렇군.”
……사실이긴 한데도, 이렇게 제 입으로 설명해줘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호잇.”
“엥?”
갑자기 로시에가 스태프로 내 어깨를 톡, 하고 쳤다.
그러자 스태프에서 빛이 났고, 어깨 근육이 이완된 느낌을 받는 동시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나도 모르게 뭉쳐있던 어깨 근육이 풀어지면서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로시에는 자기소개를 하듯 일어나서 천돌에 손을 얹고 말했다.
“―저는요! WQT에서 마도사로 승격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겁니다아――! 마도사 자격증이 있어도 파르마란스에서 매그벤쳐를 할 수 있거든요! 이 나라에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돕고 싶어요! 이상입니다―!”
“알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 유하 씨도 참. 따라하지 마세여. 헤헤.”
바보같이 일어나서 바보같이 자기소개를 한 그녀가 쑥스러운 줄은 아는 지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매그……벤쳐? 그게 뭐예요?”
“아, 매그벤쳐란 마법과 어드벤츄어러의 합성어로, 아르키메시아의 ‘모험가’와 비슷한 직업이기는 하지만 자국 내에서만 해당되는, 좀 더 좁은 의미예요. 마공학과 인프라가 그 어떤 나라보다 발달된 이곳에서는 엠피슈츠(Magical Power Suits)나 엠피암즈(Magical Power Arms) 면허를 가진 사람이 길드에 매그벤쳐로 등록을 할 수 있고 의뢰를 받아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돈을 버는 직업이죠!”
―한 마디로 돈 받고 궂은 일하는 직업이라는 거 아닙니까.
“아, 알겠으니까 설명충 모드는 자제하고 앞으론 간단명료하게 얘기해주세요.”
“예이~”
로시에가 엄지와 검지를 붙여서 동그라미를 만든 다음 내게 내밀었다.
“그런데, 아르키메시아의 마도사 이상의 자격증이 있어도 매그벤쳐가 될 수 있다구요?”
“네, 원래 매그벤쳐는 엠피테크놀로지의 면허를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던 직업이죠. 하지만 최근엔 인력이 부족해서 외국의 면허를 가진 사람도 등록할 수 있어요. 아르키메시아의 마도사 이상, 세브란티아의 기사, 이그드라실 진영의 치안대 지구장 이상이면 가능해요.”
“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설마 최근의 마경정벌 때문에?”
“네, 맞아요. 기존의 매그벤쳐들도 차출되었죠. 아니, 차출이라기 보단 자원이지만.”
또 마경정벌인가. 이 나라고 저 나라고 도대체가 영향이 없는 곳이 없구만. 그렇게나 마족이 인간의 공적인 건가.
―하긴, 미로토러스나 멘탈이터를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 못할 것도 없네.
“엘리, 일단 이곳에서의 생활비나 운티네스란 사람의 정보도 알아볼 겸 우리도 길드에 등록할까?”
“응……!”
엘리가 포크로 찍은 오징어 튀김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아이 귀여워♥」
로시에의 핑거펜슬이 또 시작되었다. 이쯤 되니까 엘리도 민망한지 반개한 눈으로 애써 시선을 피한다.
“참, 유하 씨는 아마도 서포터밖에 못할 텐데 괜찮아요?”
“뭐, 저는 마법사 자격증도 없으니…….”
“흐음~ 좋아요, 그럼 식사 마치고 바로 길드로 같이 가요!”
그러면서 찰떡궁합, 감자튀김과 케첩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로시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