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뒤.
그동안 우리는 테라로사에서 받은 마기나이트의 나머지를 보증금으로 소서리아에 작은 보금자리를 구해서 여관생활의 종지부를 찍었고, 치유사업은 날로 번창해서 매출도 많이 늘었다.
번 돈으로 튼튼하면서도 유연한 고급 가죽옷을 포함해 사람들 구출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도 구했고, 또한 랄프 아저씨의 인맥에 자금을 동원에 레드럭 해적단에 대한 정보도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엘리와는 조금 더 친해지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소서리아로 돌아와서 생각보다 별 이야기는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엘리는 치유소 일 때문에 바쁘고, 나는 랄프 아저씨에게 검술에 대해서 좀 배우느라 바빴기 때문에…….
마기나이트 팔찌를 내 팔목에 걸어준 것에 대해서도 몇 번 물어봤었지만, 이유를 말해주지는 않았다.
당황스러운 것은 이 팔찌가 풀리지 않는 다는 것? 하아.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건가…….
――――.
모처럼만의 휴일.
―톡. 톡, 토독.
이거, 제대로 작동이 되는 거 맞나? 일단 엘리가 마력을 넣어줘서 켜지기는 했는데.
거의 2개월도 넘어서 켜보는 거라, 왠지 고장 났을 것 같은데…….
“어? 된다, 된다.”
“어디어디, 나도 한번 보여줘 보거라.”
아잇, 엘리 이 자식, 얼굴 들이밀지 말라구. 내꺼 핸드폰 구형이라 액정화면도 작은데…….
찰칵―!
“이런 젠장, 엘리 너 땜에 찐빵같이 나왔잖아.”
“네 녀석이 못생긴 걸 왜 내 탓을 하느냐. 보거라, 이 몸은 나이가 어려졌어도 모든 이들이 감탄할 만한 미모지 않느냐.”
“쳇…….”
그런 어린애 같은 모습이 내 취향이 아닐 뿐이지, 솔직히 외모 관련해서 부정은 할 수 없긴 하지만.
“잠깐만 기다려봐.”
나는 ‘일피스’ 피규어를 좀 더 멋있게 찍어서 SNS나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랑을 하기 위해 거금 5천원을 들여 받아놓은 카메라 어플을 실행했다.
“오오. 역시 이 어플이 좋군. 엘리, 다시 일로 와봐.”
“그런다고 뭐 달라지느냐? 어디…… 호오.”
엘리가 또 얼굴을 들이밀어 내 볼을 찐빵으로 만들었다.
“꽤 신기하지 않느냐. 다게르가 만든 발명품이 이렇게나 발전했다니. 인간의 과학에 대한 열망은 조금 인정해주어야겠구나.”
“엘리, 잠깐만.”
“뭐, 뭐하는……!”
액정이 작은데 어쩔 수가 있나. 이렇게 안하면 불편한 것을.
나는 엘리의 어깨에 팔을 올려 조금 더 가까이 엘리를 곁으로 붙였다.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잠깐――”
찰칵!
음, 좋아. 이 정도는 돼야 얼짱각도라고 할 수 있지. 셀카를 별로 찍어본 적은 없지만, 생각보다 셀기꾼 기질이 있는 걸? 후후.
“이, 이번엔 내가 너무 이상하게 나왔잖느냐! 빨리 다시 찍어라!”
“네가 이상한 표정 지으면서 딴대 보니까 그렇지. 다시 와봐.”
붙어있었음에도 거리를 유지했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엔 엘리도 제대로 화면 안쪽으로 들어왔다.
“…….”
“왜?”
내가 핸드폰 화면으로 엘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녀가 뺨을 살짝 붉게 물들이면서 어색한 표정으로 내 눈과 마주쳤다.
―원래 이렇게 예뻤나? 아니, 예쁜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어플의 힘인가.
“아무 것도 아니야. 자, 찍는다. 하나, 둘, 세엣!”
찰칵―!
“오 좋아, 이거다, 이거야.”
“어디어디, 한번 봐봐라.”
나는 방금 찍은 사진을 다시 보여주었다.
엘리 녀석, 꽤나 눈이 초롱초롱해 보이는 걸? 역시 추억거리 하면 사진인가! 설마 이세계에서 스마트폰을 쓰게 될 줄이야.
―지난 2개월 동안 소서리아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거지만, 생각보다 더 이 세계는 마법공학기술이 발달되어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전화기와 마력을 이용한 ‘마력전화기’라는 게 있는데, 가격은 비싸긴 하지만 일종의 휴대용 마력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RMP(Refined Magic Power, 정제마력)’라는 것을 공중전화에 주입하면 전화를 할 수 있는 기계였다.
그런 마법공학기술을 응용해 그동안 묵혀뒀던 핸드폰에 엘리의 마력을 주입했더니 이렇게 멀쩡하게 작동이 된다!
“엘리, 이것도 한번 해볼까?”
“뭔데, 뭔데?”
―녀석, 꽤 들뜬 게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잖아?
나는 얼굴 인식을 통해 다양한 필터를 적용시킬 수 있는 카메라 어플을 실행했다.
“음 좋아, 최신 업데이트는 당연히 안 되어있지만 그래도 쓸 만한 게 몇 개 있군.”
어떤 게 재밌으려나. 말머리?
“오, 크크. 엘리, 제대로 말머리인데.”
“어, 갑자기 말이 어디서 나타난 것이냐?”
엘리는 어리둥절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화면을 쳐다본다.
“하하. 엘리, 이건 진짜 말을 찍는 게 아니야. 말하자면, 이 카메라 안에 말이라는 이미지를 소환하는 거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우려나?”
“오호, 과연 그런 것이로군. 재미있다! 다른 것도 또 보여줘!”
엘리, 신났어? 그래그래. 이 위대하신 ‘펫’께서 주인님 신문물 교육 좀 시켜줘야겠구만. 키킥.
“짠, 이건 어때?”
나는 얼굴 비율을 조절하는 목록으로 들어가 엘리의 얼굴을 찌부시켰다.
“뭐, 뭐야. 이건 대체 뭐냐!”
“푸하하――! 아무리 엘리의 외모라도 이거에 당하면 소용없구만?!”
“빨리 원래대로 되돌려라! 흉측하지 않느냐!”
키킥. 본인의 외모에 꽤나 자신 있으신 엘리지만, 이런 굴욕은 난생 처음이겠지?
“알았어, 알았어, 그럼 이건 어떠려나?”
“이건…… 고양이 같은데.”
하지만 엘리의 묘안(猫眼)과 고양이 이미지가 만나면 어떨까?
고!
양!
이!
과연 결과는?
“오…… 완전 대박인데, 엘리.”
“뭐, 뭐냐, 반응은. 이상한 것 같으냐? 나는 나쁘지 않은 거 같다만…….”
엄청 초 귀여운 고양이잖아?! 우오오!
난 로리는 싫지만 동물은 또 사랑하는 부드럽고 자상한 남자!
화면상에서만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엄청 쓰담쓰담해주고 싶다! 머리를!
“아―악, 뭐하는 거냐, 유하!”
“조금만. 헤헤.”
나는 엘리의 머리를 듬뿍 쓰다듬었다. ――머릿결도 부드러워서 마치 반려묘를 키우는 느낌이야!
“악, 그만하거라…….”
으익! 머리 쓰다듬은 거 밖에 한 게 없는데 갑자기 그런 표정 지으니까 괜히 범죄자가 된 거 같잖아!
―엘리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에 홍조를 띠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절대 오해하면 안 된다. 난 그저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뿐! 그리고 멈출 수 없어! 이런 기회는 별로 없으니까!
그 어떤 인간이 감히 드래곤의 머리를 잠깐도 아니고 이렇게 오랫동안 마구마구 쓰다듬어보겠어!?
“아우…… 그만 하라고 했다.”
“안 돼……. 조금만, 조금만 더……!”
“크아앙――!”
“아아아악――! 물었어!”
악! 악! 피 난다, 피 나!
엘리 이 자식! 안 그래도 날카로운 송곳니로 물면 어쩌자는 거야!
“하이구, 그렇게 매너 없이 머리를 만져대니까 물릴 만도 하죠. 쯧쯧.”
“아, 루리?! 언제 왔어?”
“지금 방금요.”
루리는 테라로사의 세르만 아저씨에게 전화를 해서 배의 진행상황을 확인하러 나갔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데?”
“완성해서 엊그제 벌써 출항했대요! 예정대로 내일 도착할 거라니까 오늘 미리 준비하라고 했어요.”
좋아, 이쪽도 준비는 다 해놨지. 만약을 대비해서 루리도 활 쏘는 감각을 더 키우고, 나도 랄프 아저씨에게 검을 다루는 법을 좀 익혀놨으니.
이제 남은 건, 랄프 아저씨가 발품 팔아서 모으고 있는 레드럭 해적단에 대한 정보만 전해 받으면 된다.
“우리 쪽은 준비 거의 끝났잖아? ――참, 루리 너도 이리 와봐. 같이 사진 찍자.”
“네? 사진…… 요?”
루리는 모를 만도 하지. 이쪽 세계는 사진이라는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른 것 같던데.
다른 나라에 가면 또 모르려나?
어쨌든 아르키메시아에는 사진이란 개념보다는 종이에 어떤 이미지를 마력으로 채취해서 그림처럼 옮기는 방식이니까…….
“어디 골동품 상점 같은 곳에서 찾은 마공학기계인데, 쓸만하더라구.”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엘리도 내가 얼버무린 것에 대해 딱히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오! 처음 보는데 신기하게 생겼네요!”
“그치? 이걸 이렇게 누르면―”
찰칵.
“봐봐, 우리의 이미지가 저장이 돼.”
“우와앙―! 저만 빼놓고 이렇게 재밌게 놀고 계셨군요?”
루리, 은근히 말에 뼈가 있다? 원래 셋이 같이 찍으려고 꺼낸 건데 엘리가 끼어들은 거거든!
“으, 으흠! 아무튼, 셋이 같이 찍어보자!”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 개시 전날,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겼다.
모두가 무사히 돌아와서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사진을 찍을 기대를 하면서.
“자, 기다려봐. 타이머를 맞춰놨으니까.”
나는 핸드폰을 식탁에 고정시켜 올려놓고 루리와 엘리 옆으로 와서 브이를 만들었다.
“이게 가장 무난한 포즈니까 너희들도 따라해봐. 브이―!”
“브…… 이……!”
찰칵―!
둘 다 포즈가 어색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괜찮게 나왔다. 화목해보이고.
“헤헤. 이거 이렇게 보니까 무슨 가족끼리 같이 있는 모습 같아서 좋다. 나는 딸, 엘리 님하고 유하 님은 부부.”
“뭣……!”
“응, 그건 말이 아니라 방구야. 큰오빠와 로리 동생들이라고 해야 맞지.”
엘리가 뭔가 발끈하며 흥분한 기색을 보였지만 내가 먼저 끼어 들어서 불쾌감을 표현했다.
엘리보다도 애초에 내 입장에서부터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말이지.
그런 아청아청한 위험한 발언은 삼갔으면 좋겠어, 루리.
“뭐 어쨌든 ‘가족’인거니까 전 좋아요!”
“자, 그럼 내일을 위해서 오늘 저녁은 랄프 아저씨랑 같이 호프집에 가서 만찬을 하자구! 너무 많이 마시진 말고.”
“유하 님 완전 최고!”
“나는 찬성이다.”
“엘리, 너는 3잔 이상 금지.”
“뭐? 왜에!”
알면서 그르냐. 그 이상 마시면 또 무슨 사고를 칠 줄 알고. 암!
“그새 잊었어? 내일은 중요한 날이니까 반주만 하자는 거야. 모든 일을 무사히 마치면 상으로 몇 잔이든 마시게 해줄 테니까.”
“정말이지!”
“그래, 그래. 정말이야. 약속할게.”
녀석, 이상하게 요즘 들어 가끔씩 진짜 애가 된 것만 같다니깐.
* * *
“유하, 뭐 하고 있어. 저녁밥을 먹어야 하니 루리를 데리고 오너라.”
―루리는 마지막으로 세르만 아저씨한테 통화를 해서 나브 가에 알리기 위해 잠시 나갔다.
“잠깐만, 아, 아―. 아아――. 에헴.”
어제 사진을 많이 찍기는 했지만, 동영상도 하나 남겨 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안녕하시렵니까? 내 이름은 이유하. 올해 스무 살.”
음, 나중에 이 영상을 다시 볼 때 이불킥 할 수도 있으니 반말로 해야겠군.
“――뭐, 학교를 다닌다는 것 외에는 ‘은둔형 외톨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 아무튼 이런 모습이 나였다. 엘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빨리 식사준비 안 하겠느냐――? 이 몸이 손수 음식까지 만들어 주고 계시는데!”
“알았어―! 금방 갈게, 쫌만 기다려봐.”
거참, 루리가 음식을 못하니 어쩔 수 없이 계속 해 와놓고 이제와서 생색은!
[――귀여운 목소리로 저런 말투라니. 새삼 다시 느끼는 거지만 징그럽기 짝이 없군. ――]
오, 좋아. 이 정도면 꽤 잘 녹화 된 것 같네.
음, 카메라 동선이라도 좀 짜볼 걸 그랬나? 뭔가 가만히 있으니까 밋밋한데……. 조금만 더 녹화해보자.
“유하―!”
“뉘에, 뉘에――.”
얼른 끝내야겠다. 슬슬 목소리에 힘줄이 솟아나있는 게 보이네.
“――저 녀석의 정체는―”
퍼억!
두개골에 프라이팬 같은 걸 끼얹나……?
“네 녀석! 하찮은 인간 주제에 감히 드래곤의 말을 무시하는 거냐!”
“아, 그렇다고 프라이팬으로 때릴 것 까진 없잖아!”
끼익― 덜컹.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 루리가 왔나보다.
“아휴, 밖에서도 다 들리네. 두 분 또 티격태격하고 계셨어요?”
“루리, 왔느냐.”
엘리가 내 머리끄덩이를 잡으면서 돌아온 루리를 맞이했다.
“나브 가에 잘 전달해달라고 했어? 세르만 아저씨한테.”
시야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머리끄덩이를 잡히면서 얼굴 피부째 리프팅 돼 눈에 흰자가 반쯤 보이는 상황인 듯하다.
“엘리 님, 유하 님 좀 놔주세요……. 하하……. 눈알이 너무 무섭다아…….”
엘리가 루리의 말에 내 머리끄덩이를 놓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루리는 그제서야 내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네, 근데 힉스 님도 배에 타고 계신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리시스 님 혼자여서는 불안했나봐요.”
“그래? 뭐 그때 뉘앙스를 봐선 힉스 씨도 같이 탈 것 같긴 했지. 그래도 분명 힉스 씨가 자신만만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믿는 구석이 있을 거야. 우린 어서 밥 먹고 ‘이르자크 만’으로 가자. 조금 있으면 약속한 시간이니까.”
“네……!”
루리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이 조금 느껴졌다.
드디어, 작전명 ‘가족 구하기’ 개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