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시스 영감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보자는 세르만 아저씨의 얘기에 문득 우리에겐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그의 집에서 나왔다.
‘나브 가(家)’는 세르만 아저씨의 집에서 가깝기 때문에 도착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그곳에서 처음 들었던 말은―
“아버지께서는 정신을 되찾자마자 바로 작업장으로 달려가셨습니다. 아직 멘탈이터가 사라진 건지 어떤지 모르니 위험하다고 극구 말렸는데…….”
세르만 아저씨는 사정을 모르는 나브 가의 장남에게 멘탈이터가 소멸했다고 알렸고, 놀라는 그에게 대마도사인 엘리가 멘탈이터를 처리한 건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네에?! 그게 정말인가요? 역시 그래서 아버지가……. 모험가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 할지…….”
“보답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긴 한데, 사실 저희는 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도시에 온 거고, 의뢰비도 드릴 수 있어요. 선급금뿐이지만.”
세르만 아저씨 말로는, 나브 가문은 원래 대대로 조선공 집안이었다고 한다. 인접 국가인 ‘파르마란스’간 워프와 마장기가 발달된 근대 이후의 아르키메시아이기에 그 기술을 제대로 잇고 있지 않아 대가 끊길 위기에 있지만.
“저희가 마땅히 해드리는 게 도리이긴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실지……. 자식 된 입장에서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아버지께서는 지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으음…….”
그가 중간에 말을 멈춘 이유는 루리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루리의 얼굴이 시무룩해지는 것을 보던 그가 고민 끝에 방으로 들어가 외투를 챙겨서 나왔다.
“일단 아버지께 한번 가보죠. 저도 따라 가겠습니다.”
* * *
우리는 나브 가에서 나와 얼마 걷지 않아 해안가 구석, 그리시스 영감의 작업장에 도착했다.
띵― 띵― 띵―, 틱.
거대한 작업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안에는 조선에 몰두하고 있는 백발의 노인이 보였다.
백발, 호랑이 같은 사나운 눈썹, 지긋한 나이임에도 연장질로 다져진 다부진 몸.
여든 살 먹은 노인이라곤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다.
“아버지,”
“또 잔소리 하려고 온 거라면 돌아가! 당신들은 또 뭐야! 빨리 꺼져!”
그리시스 영감의 작업장에 들어서자마자 받은 것은 문전박대였다.
―으음……. 생각보다 좀 심한데. 자식에게까지 저렇게 굴 정도라니.
“아버지! 이 분들은 아버지를 구해주신 분들이나 다름없는 분들입니다!”
“구해달라고 부탁한 적 없어! 당장 여기서 나가!”
이분도 꽤나 한 고집 하시는 분이로구만. 생긴 대로 성격도 드센 것 같고. 이대로 배는 포기해야 되는 건가?
이런저런 정황들과 지금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 돈을 쥐어준다고 마냥 배를 지어줄만한 위인은 아닌 것 같아보였다.
“죄송합니다. 보시다시피 정신을 잃기 전에도 매일 저렇게 혼자 묵묵히 배를 지으셨어요. 그냥 포기하라고 그렇게나 말씀드리는 데도…….”
나브 가의 장남은 행여나 그리시스 영감이 들을까 입을 가리고 우리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흠……. 그렇게 들으니 딱히 팔려고 지으시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저러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게…… 일단 잠시 나가서 얘기하죠.”
그가 우리들을 경계하며 연장질을 하고 있는 그리시스 영감의 눈치를 곁눈질로 한 번 보고는 작업장 바깥으로 나갔다.
우리들도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가 해변가 주변 그늘진 곳에 있는 벤치에 다 같이 앉았다.
“원래 테라로사는 항구도시인데다가 파르마란스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 모험가들이 즐비했었죠. 그래서 치안만큼은 아르키메시아에서 수도 다음으로 좋은 곳이었습니다.”
“으음, 그렇기는 했지.”
세르만 아저씨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을 해주었다.
“그렇‘기는’? 그 말은 지금은 아니란 뜻인가 보네요. 한눈에 딱 봐도 그래 보이긴 하지만……. 멘탈이터 때문인가요?”
루리가 날카롭게 그의 말을 캐치해서 물었다.
장남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멘탈이터의 존재도 한몫 했지만, 그보다는 1년 전부터 랜디아 연합군이 마경정벌 준비에 많은 모험가들을 고용하는 바람에 테라로사도 텅텅 비어버렸어요. 역대급이었죠. 그래서 최근에는 해적들이 자주 나타나서 도시를 약탈하고 있어요.”
“해적…….”
루리가 그의 말에서 ‘해적’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모험가들이 쫙 빠진 뒤로 도시의 치안이 떨어지자, 레드럭 해적단까지 도시를 대놓고 쳐들어왔습니다. 그게 바로 1개월 남짓 전이었죠. 하지만 멘탈이터를 의식했는지 악랄하다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약탈 활동을 크게 하지는 않았어요. 대신 그들은 아버지에게만 관심을 가졌어요.”
“맞아, 맞아. 시민들은 전부 녀석들 때문에 겁에 질려있는데 그저 그리시스 영감한테만 갔었으니까. 아이러니했었지. 도시를 이 꼴로 만든 멘탈이터 덕에 해적의 약탈을 피해갔으니.”
“…….”
루리……. 표정이 좋지 않아.
젠장, 근데 이번에도 레드럭이냐. 빌어먹을 자식들, 대체 손을 안대는 곳이 없구만?
“미로토러스는 아버지께 제안했죠. 조선공으로 들어올 생각 없냐고요. 당연하지만 아버지는 거절하셨어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악인에게 배를 지어줄 분이 아니니까요.”
“그러면…….”
극악무도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미로토러스의 제안을 거절하고도 살아있다. 그 말은―
장남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떨궜다.
“네……. 미로토러스는 영악한 마인. 어머니를 인질로 삼았어요.”
“아아, 흑…… 흐흑……!”
부들부들 떨며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루리는 마침내 장남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에 못 이겨 눈물을 흘렸다.
“루리, 괜찮아? 엘리, 루리를 좀 챙겨줘. 이야기는 내가 들을게.”
“아니에요! 계속 들을 거예요!”
“루리……!”
“듣게 해줘요!”
루리의 대답은 단호했다.
엘리는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행동은 루리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라는 뜻일 것이다.
“후유…… 그래. 계속 얘기해주세요.”
“……아버지는 조선공으로 들어가기보다는 그들에게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배를 지어주는 것으로 대신하겠다고 하셨어요. 의외로 미로토러스는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죠.”
“그래? 그 얘기는 처음 듣는데. 배가 급하게 필요한 게 아니라면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미로토러스의 명성답지 않아.”
세르만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하며 얘기했다.
“……아무튼, 100일 뒤에 소서리아 북쪽 근처 해역으로 배를 찾으러 올 테니 그 때까지 배를 완성해 가지고 오라고 했죠.”
“영감이 하자 없이 배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염두까지 한 모양이군.”
그리시스 영감의 행동은 비합리적이다.
솔직히 말해, 부인이 살아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저렇게 계속 배를 짓고 바다에까지 나가서 그들에게 바친다는 선택은 그냥 저들 좋은 일만 하고 목숨은 버리는 거나 다름없다.
―그래도, 이런 지독한 현실을 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이로구나.”
“엘리!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아녜요. 마법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합리적이지 못하죠. 그래서 아버지께 그냥 포기하라고 말씀드렸지만…….”
“포기하면 안 돼요! 분명 부인은 살아있어요!”
루리가 얼굴이 눈물바다가 된 채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를 내듯 소리쳤다.
그래, 화낼 만도 하지.
루리의 부모님도 미로토러스한테 잡혀갔으니까, 포기한다는 것은 루리의 입장에선 자신의 부모님도 이미 돌아가셨다고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는 포기하지 않아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부모님을 구할 거예요!”
루리는 손으로 흘리는 눈물을 닦으며 자리를 떴다.
“……엘리, 이번에야말로 루리 좀 부탁해.”
엘리는 나의 부탁에 잠시 머뭇하더니 숨을 한 번 깊게 내쉬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루리를 따라갔다.
“저 앙고리아족의 부모님도……?”
“……네. 레드럭에게 끌려갔죠. 레드링 재배를 위해.”
“그렇군요…….”
그는 기도를 하듯이 깍지를 낀 양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쥐었다.
자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보였다.
“에휴, 그 썩을 놈의 해적들.”
세르만 아저씨는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꼬나물고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저기, 사실 저희는 저 아이의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배가 필요한 거예요.”
“네……?”
고개를 반쯤 떨구고 있던 그가 상상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눈이 커진 상태로 고개를 천천히 들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다는 말은 설마, 미로토러스에게, 아니, 레드럭 해적단에게 도전하겠다는 건가요?!”
“네. 자신감은 있어요.”
“허어.”
짧게 호흡을 내뱉은 그가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 듯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그러고 보니 대마도사라고 하긴 했었죠? 저 마법사님.”
“네 맞아요. 대현자 유클리아가 인정한 마법사죠.”
“네에?!”
그가 엘리가 대마도사라는 대목을 상기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눈을 조금 번뜩이는 데에 그쳤을 뿐이었지만, ‘유클리아가 인정했다’는 내 대답을 듣자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깜짝 놀랐다.
“자네! 다시 한번 말해보게! 아까 그 은발의 꼬맹이가 대현자님이 인정한 마법사라고?!”
악, 깜짝이야!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네!
이 할아버지, 아까 호통을 들었을 때 대략 짐작하긴 했지만 생긴 것만 무서운 게 아니라 목소리도 엄청나잖아.
그나저나, 언제 작업장에서 나온 거야?
“네, 네. 저흰 단지 레드럭 해적단에 가서 루리의 부모님을 구출하는 게 목표예요. 맘 같아서는 다 박살내버리고 싶지만, 요새는 해적토벌을 잘못하면 오히려 범죄자가―”
“아니야! 너희라면 분명 박살낼 수 있어! 제발 내 아내를 구해줘……!”
그리시스 영감이 단언을 하며 내게 쏘아붙였다.
솔직히, 아무리 엘리라고 하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해적단을 전부 쳐부수는 건 리스크가 클 것 같은데…….
“아버지! 이미 이분들 덕에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실 수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부탁하는 건 무례라고요!”
“아니야! 자네! 내 부탁을 제발 들어주겠나?! 제발 그 녀석들을 없애고 내 아내를 구해주게……!”
이제 그는 내가 앉은 벤치까지 와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솔직히 그의 아들은 생명의 은인에게 대하는 아버지의 행동이 무례하다면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저 그리시스 영감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랄프 아저씨의 부탁도 있고, 무엇보다 루리의 부모님을 구출하는 게 제일 최우선인데…….
“아버지! 제발 그만 포기하세요!”
“닥쳐! 너라면 포기할 수 있겠냐! 지금 이건 네 애미를 구할 수 잇는 신이 주신 기회야!”
그리시스 영감은 필사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지금 그의 매서운 눈과 무언가에 미쳐있는 듯한 모습을 보면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것은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루리의 민감한 반응도 마찬가지고…….
“……알겠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해볼게요.”
결국 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야 말았다. 아니, ‘외면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동질감…….
“오오! 정말인가! 고맙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배가 필요하다고 했지?! 내가 지은 배를 쓰게! 배는 얼마든지 있어! 내 아내만 구해줘!”
“……장담은 해드릴 수 없어요. 영감님의 아내분뿐만 아니라 루리의 부모님도, 랄프 아저씨 동료들의 유골도 구해야 해요. 모두를 구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
희망에 의해 부풀어 오른 ‘기대’라는 풍선은 부풀어 오를수록 그만큼 터지기도 쉽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대가 터질 수 있다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 풍선을 불 수 없게 된다.
“최악의 경우 어쩌면, 벌써 늦었을 수도 있습니다…….”
―젠장. 나 역시 냉정하게 말할 수밖에 없으면서……. 엘리를 나무랄 자격이 없다, 나는.
나는 애써 차갑게 벤치에서 일어나 해안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국화가 핀 쪽에 앉아있는 루리와 엘리 쪽으로 걸어갔다.
“아아아…….”
그리시스 영감은 무릎을 꿇은 채 모래밭에 머리를 박고 최악의 현실과 마주하는 싸움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