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다시 한번 말하자면 멘탈이터(Mental Eater)는 마족이야. 세 달 전에 이 도시에 처음 나타났었지.”
세르만이 테이블 위의 차를 호로록 마신 뒤 운을 뗐다.
그가 앉은 맞은편에는 엘리시아가 앉아있고, 루리는 그 뒤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유하를 돌보고 있다.
“역시, 마족……. 하지만 그런 마족은 처음 들어봐요.”
“개체수가 극도로 적지만 워낙에 처리하기가 골치 아픈 종족이지. 인간을 비롯해 다른 종족으로 모습을 바꾸다보니, 아무나 막 조사했다가 항의라도 받을까봐 마법경찰들도 속수무책이야.”
“듣기로는 인간 진영 내에 마족을 퇴치하는 연합기관도 있다고 하던데요.”
“랜디아 연합 수사국―LUBI(Landia Union Bureau of Investigation)를 말하는 거군. LUBI도 랜디아 연합군의 마경토벌 준비에 여력을 쏟느라 지원이 한참 느려. 인력도 부족하고.”
그는 다시 한번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나저나 모습을 바꾼다니, 그래서 엘리 님의 모습으로…….”
루리가 섬뜩하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에 대해서 더 얘기해라.”
지쳐서 그런지, 엘리시아의 눈동자에 점점 싸늘함이 아로새겨진다. 거기에 그녀의 분노가 더해져 살벌함은 배가 되었다.
세르만이 그녀의 분위기에 압도되었는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 응. 마법경찰들이나 나름 명성 있는 모험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상의 눈을 통해서 기억을 읽고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나 성적으로 가장 이끌리는 이성의 모습으로 형상을 탈바꿈 한다고 해. 그리고 그날 밤 대상의 잠자리에 나타나 홀려서 기절시킨 뒤 정신력을 빨아먹어 배를 채운다고 하지. 그렇게 당한 이들을 이 도시 사람들은 ‘삭았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 때…….”
루리가 어제 세르만이 잡화점 문을 닫으면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희가 밤늦게까지 그곳에 있을 줄은 몰랐어. 요즈음 이곳에 오는 모험가들은 주변 도시나 인접국 파르마란스에서 오는 사람들뿐인데, 보통은 도착한 뒤에 곧바로 도심 쪽에 숙소를 잡아. 외곽지역은 세달 사이에 거의 전멸하다시피 털렸으니까.”
“이미…….”
루리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가 그렇게나 찾고 헤매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된 데에서였다.
“이곳 사정을 전혀 모르는 것을 보니 멀리에서 왔나봐? 그때 보니 ‘지벨리트 호’가 도착하고 역사로 올라오던데, 설마 종점인 소서리아?”
“네. 저희는 소서리아에서 왔어요.”
“멀리서도 왔군. 테라로사 시청에서도, 마법경찰국에서도 이 상황을 해결 못하고 있는 책임을 추궁당하기 싫어 대충 얼버무리면서 쉬쉬하고 있으니 그 먼 곳까지 소식이 벌써 닿았을 리가 없지.”
“…….”
소서리아에서 정보 깨나 가지고 있다는 랄프조차도 테라로사에 분위기가 안 좋다는 것만 알았을 뿐,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몰랐다.
―루리는 새삼 그것을 떠올렸다.
“게다가 타 지역에서 오는 모험가들은 대부분 곧바로 출국하기 위해서니까…….”
갑자기 내려앉은 적막감.
그 고요함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이 하늘에 다시 먹구름이 끼고 비가 쏟아진다.
번쩍하고 친 번개의 빛이 어두워진 세르만의 작은 집안을, 그리고 엘리시아의 정색한 얼굴을 비춘다.
그는 일어나서 불을 켜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기차역 주변을 비롯한 교외에서는 비가 오거나 밤이 되면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아. 멘탈이터의 활동시간은 대체로 흐린 날이나 해가 진 이후거든. 도심은 피해가 확산되기 전에 마법경찰들이 예방하는 법을 알려줘서 아직까지 3주쯤 전에 발생한 피해자 한 명 밖에는 없어. 물론 도심도 밤이 되면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지만.”
“이곳도 피해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네요.”
“그렇다곤 해도 그 영감, 해안가 인적 드문 곳에 있는 조선공이니까 당하는 건 어찌 보면 예정된 일이나 다름없었지.”
진지하게 얘기를 하던 세르만이 별안간 눈이 휘둥그레지는 루리와, 동시에 조금 놀란 듯이 눈을 깜빡이는 엘리시아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표정이 왜 그래?”
“엘리 님.”
루리와 서로 통했다는 듯이 눈을 마주친 엘리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 조선공. 그리시스라는 인간이 맞느냐?”
엘리시아가 추궁하듯 고개를 앞으로 기울이며 물어보았고, 세르만은 그녀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고개를 뒤로 빼며 대답한다.
“마, 맞아. ‘그리시스 나브’라는 조선공이지. 근데 어떻게 그걸……?”
“소서리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랄프 님께서 소개시켜줘서 여기에 오게 된 거예요.”
“랄프?! 랄프라고 했어, 지금?”
세르만이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을 본 것처럼 까무러치며 놀랐다.
“네, 맞아요. 혹시 랄프 님 하고 아는 사이세요?”
“알다마다! 한 때 같은 모험가 파티에 있었지. 미로토러스를 토벌하겠다는 무모한 말에 나는 반대하고 탈퇴했지만……. 그 이후론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죽은 줄 알았는데…….”
그가 자신의 콧수염을 꼬부랑 말려 올라갈 때까지 만지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 조선공이 걸린 정신병이라는 게 이걸 뜻하는 거였군.”
“어떻게 하죠, 엘리 님?”
“유하와 같은 상태라면 치유마법으로는 소용없을 것이고…….”
자신의 지식 안에서 답을 찾던 엘리시아가 시선을 세르만에게 돌리며 루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떠넘겼다.
“크흠……!”
그가 엘리시아의 눈치를 보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어서 얘기하거라.”
“으으……, 어린애한테 이런 위압감이…….”
엘리시아의 이마에 힘줄이 솟자, 세르만이 그녀의 화를 잠재우기라도 하려는 듯이 입을 빠르게 들썩였다.
“가, 간단해! 그 멘탈이터를 죽이면 해결되는 문제야! ―다, 다만……”
“다만?”
“가능한 빨리 퇴치해야해. 빨아먹은 정신력이 소화되기 전에. 한 달이 지나면 영원히 정신을 되돌릴 수 없다고 하더라고.”
“한 달이라면 시간은 아직 충분하군.”
세르만의 대답을 들은 엘리시아가 유하를 쳐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폭신한 침대의 끝에 털썩 걸터앉았다.
“엘리 님, 그러면―”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루리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시아가 다시 눈을 번뜩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주먹을 불끈 쥔 엘리시아가 그녀 특유의 비음이 섞인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살벌하게 말했다.
“그 멘탈이터라는 쓰레기를, 처박살내야지.”
―라고 하자마자 스르륵 눈이 감긴 엘리시아가 침대 쪽으로 기울어졌다.
루리는 엘리시아가 기절하듯이 잠들자, 유하 옆에 나란히 눕히고는 자신은 의자에 옮겨 앉았다.
“그나저나, 어떻게 멘탈이터를 찾아내려는 셈인지…….”
“에?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세르만이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가 멘탈이터는 모습을 바꾼다고 했었지?”
“네, 그랬죠?”
“아까도 얘기했지만 멘탈이터의 가장 골치 아픈 점이 그거야. 멘탈이터의 본모습은 그것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형상을 바꾸기 전과 죽기 직전에만 볼 수 있어. 그러니까, 겉모습만으로는 절대로 파악하기 힘들다는 얘기지.”
“그러면, 멘탈이터와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은 없는 거예요? 방법이 없으면 안 돼요.”
루리가 이전과 달리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정색하며 얘기했다.
“응……? 너 생각보다 단호한 면도 있네. 하긴, 저 상태인 청년을 데리고 고개를 넘은 것도 너였을 테니.”
“방법을 알면 어서 얘기해주세요.”
“으, 으악, 밀어붙이지 말라고…….”
루리가 위협적으로 고개를 내미는 모습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낀 세르만이 항복을 하듯 두 손을 들고 또 다시 반사작용으로 고개를 뒤로 뺀다.
“크흠. 대마도사급 이상의 통찰마법이면 가능해. 근데 대마도사를 모시는 게 그렇게 쉬웠다면 이런 일도 애초에 없었겠지.”
“아하―. 히히.”
“결국 다른 방법으로는, 누군가가 미끼가 돼서 멘탈이터를 유인해야 하는데, 워낙에 교묘하게 정신을 빨아먹고 사라져버리니까―”
그가 자신의 얘기를 들으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루리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좁히며 눈썹을 모았다.
그 행동에는 ‘화났다’라기보다는 ‘궁금하다’, 혹은 ‘이상하다’라는 감정이 들어있었다.
“뭐냐, 그 헤벌쭉거리는 얼굴은.”
“엘리 님은 말이죠―”
꿀꺽.
루리의 뜸들임과 ‘엘리시아’라는 말에 긴장했는지 괜히 마른 침을 한번 삼키는 세르만이었다.
“마법사자격 인증시험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대마도사라구요.”
―라고 말한 뒤 “헤헹―.”하며 괜히 인중을 한번 비벼보는 루리의 모습은 영락없이 순진한 아이였다.
“뭐어? 요새는 상위클래스의 모험가 파티에서도 없어서 못 구한다는 대마도사라구? 저 꼬마애가?”
쿠울―. 쿠울―.
한번 잠 드니, 누가 드래곤 아니랄까봐 세상 떠나가도 모를 만큼 곤히 웅크리며 자고 있는 엘리시아였다.
* * *
멀찍이 노을이 분명히 보이면서도 드문드문 보이는 수분기 가득한 먹구름들이 무지개를 만들어낸다.
마치 떠올리기 싫은 ‘그날’을 연상케 하는군…….
“어제 세르만 님이 ‘멘탈이터가 기차역 부근 마을에서 식사를 했다면 그리 먼 곳에 있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으니, 역시 여기 이 여관을 기준으로 마법을 펼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루리가 자신과 유하가 묵었다고 하는 낡은 여관을 가리켰다.
“…….”
유하는 세르만에게 맡겨놓았다.
그는 겁이 많은 인간이지만 적어도 책임감은 있어 보이기에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인간을 믿고 무언가를 맡기는 날이 오다니…….
“엘리 님?”
옆에 선 루리가 고개를 살짝 내밀어 가만히 서 있는 내 상태를 확인한다.
“―알고 있다. 그럼, 바로 통찰 마법을 전개하마.”
“자, 잠시만요! 엘리 님.”
―오늘 아침 루리가 통찰 마법에 대해 물었다.
‘엘리 님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정보까지 통찰이 가능하세요?’
‘마력의 방해가 없다면 범위 내에 있는 자연 상태의 미시적·거시적 정보와, 필요하면 동물이나 사람의 심리 일부까지 파악할 수 있다. 내가 설마 놈을 찾지 못할까봐 그러느냐?’
‘아아, 아뇨……! 설마요!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어요. 헤헤.’
아닌 척 했지만 제법 당황했던 그 눈빛.
“후우―. 죄송해요, 그 멘탈이터를 생각하니 잠시 긴장해서……. 준비 다 됐어요!”
예상컨데 내게 심리를 들키고 싶지 않아 마음을 다잡은 게 분명하다. 어차피 심리적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통찰은 몇 단계는 더 상위의 마법인데다가 마력효율도 좋지 않아 쓸 일도 거의 없지만…….
―이 아이가 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럼, 전개한다.”
일단 지금은 그리시스라는 인간의 정신을 되돌리기 위해서 빠른 시일 내에 멘탈이터를 죽이는 게 우선.
유하를 따라 이 아이를 돕겠다고 약속한 것만 아니라면 좀 더 마력을 회복하고 여유를 가져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체면이라는 게 있으니.”
“네? 체면요?”
“……아무 것도 아니다.”
통찰마법이 점차 전개됨에 따라 여러 정보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다.
특별히 위험이 느껴질만한 요소는 없지만, 위화감이 드는 ‘이질적인 존재’가 확실히 감지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거시적 정보는 정말로 인간과 흡사하지만 내장기관이라든지, 쥐새끼만큼이나 작은 뇌는 그것이 예사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정말 콧수염 녀석의 추측대로 이 근방에 있었군. 꽤나 감이 쓸 만한 인간인걸.”
“모험가 시절에 전략가로 활동했었다고 하니까요. ―후우……, 부디 엘리 님 손에서 끝나야 할 텐데.”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여차하면 내가 미끼가 되는 것으로 루리가 멘탈이터를 마무리 짓는 것은 세르만 녀석의 전략이었지.
앙고리아라는 것이 엘프와 비슷한 점이 많다보니, 저렇게 활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건가.
―그럼에도.
“……남서쪽 45도 방향, 2km 거리니까, 감안하면서 따라 오거라. 너 정도라면 이르면 5분쯤 걸리겠구나.”
“네……!”
“먼저 가서 녀석을 처리할 테니 여유롭게 승리를 만끽하며 오거라.”
세르만 녀석의 작전 따위 드래곤에게는 하릴없이 무의미한 것이지.
정해놓은 목표로 통찰의 범위를 좁혀서 유지한 채 인식저하로 다가가서 암살한다. 미끼가 되는 우스꽝스런 상황 따위는 상정하지 않는다.
앞으로 100미터.
50미터.
드디어――
“……?!”
‘이질적인 존재’에 도착해 뒤에서부터 찔러 들어가려는 순간, 그것이 몸을 돌려서 나의 눈을, ―동공을 꿰뚫어보았다.
그리고 아차 하는 순간, 그것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던 것은―
“발…… 데르……?!”
“엘리, 오랜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