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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라이트노벨
너와 함께
작가 : rororiri
작품등록일 : 2017.7.2

인간을 증오하는 드래곤 ‘엘리시아’와 아름다운 그녀에게 반한 인간 ‘이유하’는 누군가의 음모로 이세계에 떨어졌다. 차원이동의 부작용으로 하필 유하가 가장 꺼려하는 로리가 된 엘리시아. 곧 죽어도 싫어하던 둘이지만 점점 서로에 대한 감정은 싹트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유하와 엘리의 이세계 모험기.

 
Carmen Puella(소녀의 노래)(10)
작성일 : 17-07-08 09:37     조회 : 85     추천 : 0     분량 : 5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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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꽃처럼 타오르는 엘리의 은빛 오오라와 푸른색 스파크.

 백옥색의 가녀리고 아름다운 맨발.

 엘리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에 걸린 은은한 빛깔의 꽃자수 발찌가 찰랑거린다.

 ―한 걸음.

 마치 영겁의 시간을 15초짜리 영화에 담은 것과 같은 시간 감각.

 그녀가 밟은 잔디는 순식간에 자라났다가 다시 순식간에 그 수명을 다해 자연으로 승화되었다.

 ―한 걸음.

 지난 계절 동안 잔디밭에 숨어있던 꽃의 씨앗이 발아해 그녀의 키를 훌쩍 넘을 만큼 자란다.

 ―그것은 코스모스와 비슷한 종류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 꽃.

 엘리의 그 다음 발걸음이 닿기 전, 잔디밭이 그러는 것과 마찬가지로 꽃은 수명을 다하여 꽃잎들을 우수수 떨어트린다.

 지금 그녀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눈이 부셔 멀 정도로 아름답지만―

 ―그만큼 엘리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엘리!”

 

 내 목소리가 닿자, 엘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만을 살짝 돌렸다.

 

 “힘 조절 잘못해서 누가 다치면 안 돼! 알고 있지!?”

 

 엘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며 케니자와 그 옆에 당황하며 서 있는 아만다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유하 님, 괜찮으세요?”

 

 잔디밭에 붙은 화염과 자욱한 연기가 걷히자 루리가 곧바로 응시자 관계인 한계선까지 달려온 모양이다.

 

 “아, 나는 괜찮아. 심사위원이 걸어준 배리어 덕분에 다친 곳은 없었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모했어요! 아직 광장은 번개가 치고 있다구요.”

 

 루리의 말은 일리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배리어가 쳐져 있었다고 해도 나 같은 일반인은 추가적으로 몸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

 때문에, 엘리의 머리 위로 떨어졌던 것을 케니자가 다시 한번 떨어트렸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엘리 님은…… 괜찮겠죠?”

 “응. 아무 상처 없었어. 분명히 괜찮을 거야.”

 

 루리와 잠시 얘기하는 사이, 엘리는 케니자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고, 그는 그런 엘리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이…… 꼬맹이년, 그걸 맞고도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는 거지?! 배리어 같은 건 걸려있지도 않았는데!”

 

 케니자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지껄였다.

 

 “이제 이 몸의 차례니라.”

 

 이윽고 걸음을 멈춘 엘리는, 케니자의 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아만다에게 말했을 뿐이었다.

 

 “네, 네? 아! 시, 시작하죠.”

 

 말을 더듬은 아만다는 엘리의 분위기에 압도된 것 같았고, 노심사위원―달프리스는 그저 넋을 놓고 엘리의 오오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만다는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최선을 다해 막지 않는다면 많은 이들의 선혈로 광장이 물들게 될 터인데 그렇게 앉아도 되겠느냐?”

 “네?”

 

 아만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며 고개를 꼬았다.

 ―엘리의 겨울바람보다 매섭고 빙하보다 차가운 한마디가 끝나자,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 아닛!”

 

 ―아만다는 고개를 번쩍 뒤로 젖혀 위쪽을 바라보았다.

 높고 푸른 하늘은 삽시간에 밤이 된 것처럼 어두워졌고, 이어서 새카만 먹구름이 몰려와 천둥번개를 치며 칠흑 같은 하늘에 유일한 빛을 뿌렸다.

 ―마치 비구름과 번개를 몰고 다가오는 광활한 태풍에 압도되는 듯한 느낌.

 

 “오오……! 아만다, 자네도 이 엄청난 마력이 느껴지나?!”

 “네……!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런 마력은 저는…….”

 “유클리아 님에 버금가는 마력……. 엄청나군.”

 “예!? 정말입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두 심사위원이 입을 다물지 못하며 연신 감탄을 주고받았다.

 그 때―

 

 “아만다 님, 달프리스 님. 심사위원장 권한으로 지금부터 저 응시자는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대신 저의 자리로 가 혹시 모를 사고의 대비와 함께 응시자들의 평가를 부탁합니다.”

 “유클리아 대현자님?! 어느새……!”

 

 아만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유클리아를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보았다.

 

 “예, 유클리아 님. 그렇게 하지요.”

 

 달프리스는 그녀의 말을 신뢰한다는 듯이 묵묵히 아만다와 함께 ‘마법사’ 구역으로 이동했다.

 

 “자아―, 그럼 안전에 만전을 기해볼까요.”

 

 고상한 목소리.

 검은 드레스를 입은 육감적인 몸매의 여신.

 특징적인 검은색 나비 머리장식.

 나는 또 다시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순간적인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핫, 유하 님. 보지마세요오! 지금 걸리면 진짜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으악, 왜이래, 루리!”

 

 루리가 갑자기 뒤에서 두 손으로 내 양쪽 눈을 가렸다.

 ―아무래도 내가 또 넋 놓고 저 여신에게 한눈만 팔고 있을까봐 걱정한 모양인데, 이런 진지한 상황에서까지 그럴 정도는 아니거든?!

 

 “아, 알았으니까, 이것 좀 놔봐. 난 지금 엘리가 궁금하다구!”

 

 루리의 손을 힘겹게 떼어내자, 푸른색 전기 스파크가 일고 있는 엘리의 손가락이 보였다.

 엘리가 어두컴컴해진 하늘에 그 푸른색 전기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짓으로 ‘상형문자’나, ‘룬문자’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자가 하늘에 푸른색으로 새겨지고, 그 문자는 정기를 방출하며 빛났다.

 

 “저건…… 혹시?”

 

 나는 그것이 ‘소환 마법’이라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판타지는 상당히 좋아했으니까.

 그 근거로, 허공에 엘리가 새겨놓은 문자가 원형을 그리고 마법진을 구축하면서도 정작 그 중심에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것을 들 수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위해 비워둔 느낌.

 ―마법진이 완성되자, 엘리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와라, 전격검 ‘일레비루스’.”

 

 

 * * *

 

 

 “유하! 루리!”

 

 천지개벽이라도 될 것 같은 이 상황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걸쭉하면서도 목에 근육이 많이 끼어있는 목소리. 하지만 알고 보면 동네 아저씨 같은 친근함이 있다.

 

 “랄프 아저씨!”

 “랄프 님!”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본 나와 루리는 동시에 아저씨를 맞이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점심시간이라 잠시 가게 문 닫고 응원하려고 왔지. 근데 이곳에 오는데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지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엘리가 지금 좀 화나있어요. 아저씨 괜히 온 거예요. 죽을 지도 몰라요.”

 “크하하! 농담도 참―”

 

 농담이 아니라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왠지 저릿저릿하고 서늘한 트라우마가 은근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야, 방금 한 말 취소다. 저, 저게 대체 뭐야?!”

 

 랄프 아저씨는 ‘진짜로’ 천지개벽한 하늘에서 무언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다, 일레비루스.”

 

 하늘에 새겨진 마법진의 중심에서 노란색의 검이 푸른 번개를 방출하며 내려왔고, 엘리가 공중으로 떠올라 그 검을 잡으며 말을 걸었다.

 ―검에게, 말을 건다고?

 

 “크카카카! 엘리시아! 나를 소환하다니! 종국(終國)선언이라도 할 참인 거냐?!”

 

 말도 안 돼. 진짜로 검이 말을 했다.

 현존하는 검의 형태라고 생각되지 않는 노오란 검.

 어떻게 말로 형용을 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억지로 그 생김새에 대해 비유를 하자면 ‘플람베르그’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검심이 길고 가느다랬기 때문에.

 다만, 대부분 물결치는 검신인 플람베르그와 달리 이 검은 ‘번개치는’ 검신이었다.

 

 “아쉽겠지만 종국선언은 다음에. 어차피 지금의 마력으로는 네 녀석의 힘을 전부 끌어낼 수도 없고.”

 “……그러고 보니 너, 왜 어려졌냐?!”

 “칫, 메르제비츠 녀석 때문에…….”

 “오호라. 그러고 보니 여기는 지구가 아니군! 설명하다 마는 것도 그런 이유구만! 크카캇!”

 

 의인화된 검과 말을 주고받는 건 만화에서나 보던 일이었는데 실제로 일어나니 오묘하게 느껴졌다.

 한편,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 검은 드레스의 여신―유클리아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관계인 분들, 위험하니까 멀리 자리를 대피해주세요. 후훗.”

 “싫어요. 여기서 지켜볼 거예요. 이 라인만 넘지 않으면 어쨌든 상관없는 거잖아요.”

 “헐. 유하 님이 웬일로?!”

 

 나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고, 루리는 그런 나를 별종을 보는 것처럼 신기하게 쳐다봤다.

 

 “유하 녀석, 이 랄프 아저씨는 너의 의견을 존중한다!”

 

 랄프 아저씨는 굳이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지는 않았지만 나와 의견을 같이하며 엄지를 척, 하고 내밀었다.

 이 모든 행동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아저씨의 시선은 나와 마찬가지로 유클리아에게로 집중되고 있었다.

 

 “아아. 어휴, 그럼 그렇지.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는 거 같긴 한데……. 일단은 저도 여기서 벗어나진 않을래요.”

 

 나와 랄프 아저씨의 속뜻을 알아챈 루리가 한심한 표정을 직소는 은근히 내게 눈치를 주며 말했다.

 

 “이런……. 이러면 정말 곤란한데.”

 

 유클리아가 미소를 유지한 채 눈썹만을 가운데로 모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녀가 갑자기 손을 뻗어 쓴 마법이 눈에 더 들어왔다.

 유클리아의 손에서 연녹색의 오오라가 빠르게 뻗어져나가 엘리의 주변 반경 몇 미터를 둘러싸는 구체를 형성했다.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고 하니, 우리가 떠드는 동안 엘리가 휘두른 그 ‘전격검’에서 뻗어 나온 수천 개의 푸른 번개가닥이 케니자를 비롯한 다른 응시자들을 향했기 때문이었다.

 

 “엘리 씨라고 했나요? 응시자분. 다른 사람에게 고의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행동은 금지합니다!”

 

 그녀는 엘리의 행동을 용서하기 어렵다는 듯이 날카로운 시선을 쏘았다.

 

 “크카캇! 너, 많이 약해지긴 했구나, 엘리시아! 아니면 저 인간이 강한 건가?”

 “알고 있으니까 닥쳐라, 일레비루스.”

 

 일레비루스라고 불리는 전격검이 독특하고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엘리를 놀려먹자, 엘리가 이마에 힘줄을 세우며 욕을 뱉었다.

 ―젠장, 전격검인지 뭐시긴지 엘리의 화를 더 돋우면 어쩌자는 거야.

 

 “천하의 엘리시아가 인간에게 당하기나 하고 말이야. 그나저나, 이 정도 공격을 ‘리버스 배리어’로 막을 정도면 엄청난 인간인 건 확실……, ――응?”

 

 일레비루스가 이래저래 감탄을 하다가 말을 도중에 끊었다.

 말하는 ‘검’이라 표정을 볼 수는 없지만 만약에 사람으로 치자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 그런 뉘앙스였다.

 

 “엘리시아, 혹시 저 인간―”

 “자꾸 입을 놀리면 검 부숴버린다. ――근데, 저 인간이 뭐.”

 

 일레비루스의 면전…… 아니, 검전에 대고 신경질을 내던 엘리가 일레비루스가 말한 ‘인간’, 즉, 바로 내 옆에 서 있는 유클리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르트’ 녀석과 닮지 않았냐. 게다가 저 머리장식―”

 “머리장식……? ――설마!”

 

 엘리의 동공이 콩알만큼 작아지며 이마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 내렸다.

 ―엘리가 이렇게 놀라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녀와 오래 알고 지낸 건 아니지만 저런 표정은 처음이다.

 

 “진짜로 카르트와 닮았다. 믿을 수 없어.”

 

 놀라운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로 공중에서 내려온 엘리가 전격검에 은빛 오오라를 덮어씌우고는 어디론 가로 던졌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여전히 견고해 보이는 배리어가 쳐져있는데……?

 

 “들어라.”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말한 엘리는 검을 던진 방향을 쳐다보지도 않고 이쪽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야! 엘리시아! 뭐하는 짓이냐!”

 

 일레비루스는 마치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하는 듯한’ 말투로 엘리에게 따졌지만 이미 검은 엘리의 손을 떠나있었다.

 은빛 오오라가 감도는 전격검은 엘리 주변에 쳐진 리버스 배리어를 뚫음과 동시에 깨트리고는 뱅글뱅글 돌며 케니자가 서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이…… 꼬맹이년, 무슨 수작을, ――으아아악!”

 

 얼떨결에 검을 받아 든 케니자는 전격검이 방출하는 ‘푸른 번개’를 견디지 못하고 감전되어 검게 그을리고 말았다.

 

 “응시자 분――!”

 “걱정 말거라. 죽이진 않았으니.”

 

 예상하지 못한 엘리의 행동에 유클리아가 따지려들었지만 엘리가 말을 끊고 그녀의 앞으로 걸음을 계속 옮겨간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두 여성―내 생에 최고의 미녀 두 명이 마주 서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영광을 맞았다.

 ―음, 하지만 역시 지금 상태의 엘리는…… 쩝!

 

 “‘카르트 데 메디치아’. ―라는 이름을 알고 있으렷다.”

 “……!”

 

 고혹적인 눈을 가냘프게 뜨며 엘리를 경계하던 유클리아는, 엘리의 입에서 나지막이 튀어나온 이름을 듣자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어, 어떻게 아버님의 이름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맞았군.”

 “……이 이상은 인원들의 보호를 위해 접근을 금지합니다.”

 

 유클리아가 관계인 한계선을 기점으로 아까보다 더욱 견고해 보이는 배리어의 장벽을 치자 그제야 우뚝 멈춰선 엘리가 그녀를 살짝 올려다보았다.

 

 “카르트는 내게 가장 가까운 벗이자 의동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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