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띠링―.
목재 현관문에 달린 풍경종이 울리는 소리.
그러나 그 소리는 내부의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수다소리와 잔끼리 부딪치는 맑은 파찰음에 금방 묻혀버리고 만다.
“어서오십셔! 세 분이십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제법 우락부락하게 생긴 종업원이 생김새와는 다르게 서글서글하게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오― 이런 곳에서 호프집을 다 오게 될 줄이야! 한나절 만에 출세했어! 크흐흑……! 감동적이야!”
당연하지만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이나 엠티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였다.
솔직히 말해 중학교 때부터 알던 그나마 연락하는 친구가 대학교 중간고사가 끝난 후 한번 나를 술자리에 불러주지 않았다면 호프란 곳은 이번이 난생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래, 저번에 얘기한 그 임해수 씨가 맞다.
“이쪽으로 앉으십셔!”
종업원은 안쪽 구석에 4인석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술을 마시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 않을까 하는 저녁이었지만, 호프집이 꽤 유명한지 한두 자리를 빼놓고는 만석이었다.
“주문은 뭘로 하시겠습니까? ――근데, 혹시 미성년자 아니야?”
“엑, 아닌뎁쇼! 전부 성인인뎁쇼!”
뭐야, 설마 이세계도 민증검사 같은 게 있는 거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젠장, 낭패다!
“아니, 댁이야 얼굴 보니까 성인 맞는 것 같고―”
―뭐라는 거야, 이 아저씨. 팔팔한 스무 살인데 액면가를 그렇게밖에 못 보나?! 어디 가서 삭았다는 소리 들어본 적도 없는데.
“―옆에 있는 앙고리아족 아가씨는 저래 보여도 나보다 나이가 많을 테니 상관없는데, 이 ‘꼬마’아가씨는 좀…….”
종업원은 엘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뽀글거리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충분히 이해가 되긴 하네. 오해할 만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법하지. 하지만 단어 선택이 잘못 됐어.
“꼬…… 마…… 라고?”
큭, 역시 예상대로 화났나보다. 드래곤이 꼬마라고 불리다니, 충격적이겠지. 엘리의 그 웅장하고 으리으리한 본체를 본다면 절대로 저런 말을 하지 못할 테니까.
일단 엘리의 화를 더 이상 키우면 안 된다. 이 일대가 박살나서 빚을 떠안기 전에.
“진정해봐, 엘리. 이봐, 종업원 아저씨. 이 아름다운 분이라면 걱정 마. 아마도 여기 있는 모두를 합친 나이보다 많을 거야.”
―빠직.
음. 어쩐지 내가 옹호하고 나서 화가 더 난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아니, 아무리 봐도 ‘꼬마’인데, 그걸 믿으라고 하기엔 내 입장도 곤란한데 말이지.”
파지지직.
―으, 으악. 큰일났다. 엘리 이마에 힘줄이 한 세 개는 돋아난 것 같아! 몸에 스파크도 돌고 있어……!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엘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종업원의 멱살을 잡았다.
“으, 으윽?!”
“네 녀석, 죽고 싶은 거냐. 자꾸 이 몸을 꼬마, 꼬마라 하는데…… 감히 드래고―, 으읍!”
“아휴! 이 분은 이래 뵈도 마법사라구, 종업원 아저씨!”
나는 흥분한 그녀가 불필요한 말을 못하게 입을 막아 제지하며 종업원에게 따졌다.
그리고 오늘 뼈 빠지게 벌어서 번 돈을 전부 가게 수리비로 탕진하기 싫으면 엘리의 폭발만큼은 무조건 막아야한다.
“뭐, 뭐셔, 정말? 이 ‘꼬마’가 마법사님이라구? 그렇게 안 보이는데…….”
파지직―! 파지지직!
“으덜덜덜덜……! 아, 아저씨이이, 이부우운, 지금 화나서 몸에 스파클를를를…… 도는 거, 안보여?!”
엘리 몸 주변에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 스파크가 일었다. 푸른색 스파크가.
그녀의 몸 주변을 타고 오르는 전기 때문에 나는 경련을 일으키듯이 떨면서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익후! 진짜로 마법사님이셨구만!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 * *
엘리와 루리를 마주보며 자리 잡은 나는, 각각 마실 맥주 한 잔씩과 식사, 그리고 튀김안주를 시켰다.
꿀꺽―, 꿀꺽―.
―키야! 맥주 맛 좋구나! 이런 맛인 줄 알았으면 엠티도 자주 가고 과모임도 자주 나가는 거였는데, 왜 그동안 몰랐지?
“크흐, 오늘 하루 참 고됐다.”
오늘도 하루 종일 쫄쫄 굶어서 그런가, 모든 게 꿀맛이로구만.
“너는 한 것도 별로 없으면서 뭘 그렇게 엄살인 것이냐.”
“한 게 없다니, 누가 보면 오해하겠네! 호객행위랑 계산이 얼마나 중요한데!”
앉아서 마법만 쓰면 되는 제일 편한 사람이 누군데 말이야.
싸구려 종이인지라 바람이 세게 불면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한 피켓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손님을 끌어 모으는 것도 일이라구.
그 뿐인 줄 아나. 언제 입소문을 탔는지 환자들이 갑자기 몰려서 통제하는 루리를 도와주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씩! 씩!”
“뭐. 그렇게 씩씩대지만 말고 할 말이 있으면 해보거라.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젠장. 이 거지같은 겁쟁이 이유하. 속으로는 한판 뜨면 누구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눈앞에서는 겉치레를 신경 쓰느라 제대로 따지고 들지 못하겠다.
뭐 그런 게 아니라도 엘리의 마약 같은 주먹맛에 한 번 중독되면 덤벼보겠다는 생각을 쉽게 못하게 되지만…….
“아이, 두 분 그러지 말구 우리 오늘 번 돈 정산 한번 해봐요! 아까 보니까 여관 예약한 선급금을 빼고도 제법 두둑해보이던데요!”
루리가 엘리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류를 깨며 재촉했다.
그래, 지금은 사소한 걸로 투닥대서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지.
“그럼 어디 한번, 세어볼까?”
나는 소중한 보따리 챙기듯 꼭 메어둔 힙색에서 천으로 된 동전 자루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풀어 놓았다.
촤르륵.
굴러다니는 동전을 잡아 멈추며 루리가 해쭉한 미소를 지었고, 엘리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척 하고 있지만 은근히 곁눈질로 눈을 반짝이며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다.
“1실버, 2실버……”
흩어진 동전을 쌓아놓으며 하나씩 세어본다. 루리도 내 말에 맞장구치며 같이 세어나갔다.
“――28실버. 2골드 하고 28실버!”
거의 5골드 정도인가? 한나절 만에 5골드라니, 이거야 말로 대박이다.
환산해보면 24만 원 정도가 되는 셈이다.
“역시, 내 선견지명이 빛을 발한 영업이었군!!”
“와아―!”
짝짝짝!
루리가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엘리도 예상 외로 수입이 괜찮다고 느꼈는지 눈썹을 들썩였다.
이걸로 오늘 여기 호프로 오는 길에 봐뒀던 캐노피 천막을 사서 설치하면 내일 영업할 때 그러대로 구색도 갖춰지고 딱이다.
이제 한 가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엘리, 네가 마법시험을 봐서 나와 루리의 신분을 보증 해줘야해.”
“내가? 왜지?”
“루리는 인간족이 아니고 나나 엘리 너도 신분 보증이 안 되어있어서 경제활동이 제한되거든.”
나는 일주일동안 나름대로 발품 팔아 얻은 아르키메시아에서의 경제활동과 신분 보증에 관한 정보를 엘리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정식 마법사로 인증을 받기 위해 자격시험을 치러달라?”
“응. 정식 마법사가 보증하는 사람은 경제활동이 가능하다고 하니까. 어떻게 보면 지금은 불법영업이라, 폭탄 세금을 떼야 할지도 모른다고?”
“후유. 인간들이란 정말 불편하게 생활하는구나.”
여기는 행정구역이 어떤 식으로 돼있는 지는 모르지만 구청이나 시청 직원 비슷한 게 분명 있겠지.
소서리아 ‘시(市)’라고 했으니까 시청이 있으려나.
어쨌든, 불법영업은 벌금이라는 명목의 세금폭탄이 일반적이니까, 순수익을 올리려면―
―응? 근데 갑자기 테이블 위에 그림자가…….
“잠시 합석해도 되겠나?”
“우아악!”
심장 떨어질 뻔했네!
이봐요! 깜빡이는 켜고 들어오셔야죠. 운전 똑바로 하란 말이―
―흐익!
방금 그 말이 목구멍에서 멈춘 게 천만다행이다. 고개를 올려 쳐다본 그 인물의 얼굴은 종업원의 우락부락함과는 비교 못할 정도로 무서웠다.
“어이쿠, 이거 미안하게 됐군. 내 이름은 ‘랄프’라고 하네. 이 도시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
어라?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아까 낮에 카페에서 매직을 빌렸던, 그리고 딸을 데리고 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왔었던……?
―아놀드 슈워제네거에 버금가는 근육질 몸매에 두건을 쓰고 안대를 매고 있는 무섭게 생긴 아저씨.
“따님의 화상치료를 받으러 왔었던 분 맞죠?”
호객행위 하느라 얼핏이나마 밖에 못 보긴 했지만 유일한 중상 손님이라 머릿속에 그 난리법석이었던 상황이 남아 있다.
“크하하! 기억하고 있구만!”
“일단 앉으세― 윽.”
4인석이 아니라 6인석에는 앉아야 그나마 넉넉할 것 같은 덩치가 내 옆자리를 밀고 들어오니 어깨가 찌부러질 것 같다.
“덩치 인간, 이 아이와 자리를 바꾸거라. 그러면 조금 나을 테니. 루리, 괜찮겠느냐?”
“아, 네! 저는 물론 괜찮아요!”
“크하하! 치유사님이 그러라면 그래야지.”
엘리의 제안으로 근육질 아저씨랑 루리가 자리를 바꾸었고, 간신히 4인석에 딱 들어맞을 배치가 되었다.
하지만―
이 난감한 상황을 계륵이라고 해야 하나. 저 아저씨랑 같이 앉자니 어깨가 탈골될 것 같았는데, 루리랑 나란히 앉으려니까 괜히 또 불편하네.
―로리 기피 증세를 극복하는 치유마법은 없으려나.
“또, 또. 혼자 불평하고 있는 것이냐, 유하.”
“전혀 아니거드―― 응? 지금 내 이름 불러준 거야?”
그러고 보니 엘리에게 내 이름을 직접 알려준 적은 없다. 그녀는 워낙 자연스럽게 나를 ‘인간’이라든가 ‘하찮은 녀석’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불렀으니 알려줄 생각도 못했다.
아마도 루리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알게 된 모양이다.
왠지 미안해지는걸.
“흥,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녀석. 잔이나 더 추가해라.”
벌컥―, 벌컥―.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가 무언가 쌓인 게 있는 듯이 맥주잔을 한 번에 들이키고는 잔으로 테이블 바닥을 쳤다.
―근데, 겨우 한 잔 마시고 그렇게 얼굴이 벌게지는 거야? 내가 알고 있던 판타지 상식의 드래곤은 주량이 약했었나?
“나쁜 놈…….”
“예―, 예―. 시켜드려야죠, 암요. ――근데 방금 나 매도했냐?!”
―허어. 이름 안 알려줬다고 나쁜 놈이라고 할 것까진 없잖아! 설마 벌써 취해버린 건 아니겠지?
그녀는 드래곤이 정말 맞나 싶을 정도로 인간적인 면모가 보일 때가 있다. 인간에게 특히나 매정한 것을 빼면.
“아저씨, 여기 맥주 추가요―!”
마침 종업원이 옆에 있길래 바로 엘리의 잔을 추가시켜주었다.
그건 그렇고.
“근육질 아저씨, 아저씨는 이렇게 합석한 이유가?”
“크하하! 랄프다, 랄프! 이런, 이런. 너무 경계하지는 말아줘. 퇴근하고 한잔 하던 참이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듣고 보니 외지인인 것 같아서 혹시 도움이 될 건 없나 해서 말이지. 오늘 이 치유사님이 아니었으면 내 딸 얼굴에 크게 흉이 질 뻔했어. 이 도시는 치유사가 없어서 말이야.”
아저씨는 벌써 취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호탕하게 웃으며 수다스럽게 말했다.
이런 덩치라면 과묵하고 투박할 것 같은데……. 하긴, 카페를 운영한다니 손님들하고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다가 늘긴 하겠다.
“흠, 흠. 참,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여러 의사를 알아보러 다녔을 때에도 마법으로 치료하는 사람은 없다고 그러더라구요. 왜 그런 거죠?”
“맞아요, 맞아요. 소서리아는 아르키메시아에서도 유명 마법사를 배출한 도시로 소문을 들었는데.”
루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질문을 보조하며 장단을 맞췄다.
“그거야 뭐, 뻔하지. 1년 전 쯤부터 랜디아 연합군이 마경 정벌들 다시 준비 중이라 전부 차출되어서 그렇지. 물론 다른 도시에는 아직 남아있는 치유사들도 있지만.”
“마경…… 정벌이요?”
‘랜디아 연합군’에 대해서는 인간 국가들의 연합을 만든 ‘랜디아 연합’의 통합군대라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마경 정벌에 관한 건 처음이다.
“유명하잖아. 모르는 건가? 무튼, 랜디아 연합군이 10년 전부터 마족들의 뿌리를 뽑을 단서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마경 정벌이란 걸 시작했는데, 젠장. 그거 때문에 오히려 해적들은 더 활개를 쳐서 말이야. 특히 이 동네는 ‘레드럭 해적단’ 세상이야.”
‘레드럭’이라면 그 마인 미로토러스가 선장으로 있는 해적단이라고 들었다.
“해적토벌 같은 치안을 안다지고 정벌을 나가는 건가요?”
“아니, 오히려 내실을 다진답시고 해적국가를 랜디아 연합에 가입시켜버렸어. 그래놓고 한다는 말이 상호불가침조약이래나 뭐래나. 대가리 빈 녀석들. 해적이 해적질 안하고 배기는 줄 아나?”
쾅―!
―깜짝이야!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루리가 갑자기 무서운 얼굴을 하고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레드럭 놈들은…… 다 죽어야 돼요!”